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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는 사람보다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더 중요하다 | 이병수목사 | 2012-11-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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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1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로마서 5:1-11 제목:믿는 사람보다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더 중요하다. 기독교는 논쟁의 종교가 아닙니다. 이해의 종교도 아닙니다. 믿음의 종교입니다. 성경을 보세요. 일방적인 선포입니다. 선포란 동의를 얻어내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성경 첫 책 첫 장 첫 절인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우주,천지만물, 인류역사를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 로마서 5장 1절을 보십시오. 구원역사에 대해서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예화)기독교를 향해서 사람들이 공격하는 것 중에 하나는? “착하게 살면 구원받는다고 하지, 왜 기독교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들의 말대로 착해야 구원받는다고 하면 얼마나 착해야 할까요? 그 기준을 어디까지 정해야 할까요? 만약에 90점까지 착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89점 맞은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제일 억울할 것입니다. 만약에 80점까지라고 하면 79점은 아슬아슬하게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공평한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무엇으로 구원받는 자격을 결정할까요? 지적인 수준, 외모, 건강...이라고 한다면 구원받지 못할 사람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선포합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믿음으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믿음만큼 공평한 것이 있을까요? 믿음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예1)많이 배운 사람이라고 믿음이 다 좋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깊은 산골에 사는 일자무식한 할머니, 할아버지도 믿음을 갖을 수 있습니다. (예2)믿음은 나이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철부지 어린 아이들도 믿음을 갖을 수 있습니다. (예3)사람을 죽인 희대의 살인마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자라는 추앙을 받는 사람도 믿음이 있어야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4)한국의 지성인이라는 이어령 교수는 성경을 수도 없이 읽고 연구를 했습니다. 헌데 읽으면 읽을수록 믿지 못하겠더라는 것입니다. 헌데‘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그의 책에서 지성에서 영성으로 문턱을 넘어오기까지 7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영성의 눈으로 바라보니 모든 것이 믿어지더라는 것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위고하, 지식유무, 건강유무에 상관 없이 갖을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깊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만큼 공평한 것이 없습니다.” (문제제기) 다음 주일은 한해 동안 주님의 은혜로 살아 왔음을 감사하며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하나님은 수장절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한 해동안 수고하여 얻은 곡식들을 모아 창고에 거두고 난 뒤에 드리는 절기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거두게 하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습니다. 헌데 지금 이만큼 누리고 있습니다. 올 한해도 힘들다 어렵다하지만, 지금까지 살아 왔습니다. 이만큼 거두게 하심에 감사하여 추수감사주일로 드립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새 생명 초청 주일로 지킵니다. 우리 성도들이 1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작정해 주셨습니다(작정카드를 보여주면서). 우리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을 초청 할텐데, ‘교회에 가자!’라고 할 때, 그들이 ‘왜 교회를 가자고 하느냐? 교회는 뭐하는 데냐?’고 하면 무엇이라고 하시겠습니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는데 도대체 믿음이 뭐냐? 복음을 믿어야 한다고 하는데, 복음은 뭐냐?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하는데 예수 믿으면 뭐가 좋은 거냐? 예수 믿으면 받는 복은 뭐냐?고 물으면 말문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핵심인 믿음과 복음에 대해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들이 믿음을 생각할 때 기억해야 할 것은 믿음을 갖았다는 사람보다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입니다. 사람을 보면 분명히 실망합니다. 전도를 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덕이 안되는 이야기들은 어디에서 그렇게 많이들 알고 계신지... 그런 사람이 무슨 믿는 사람이냐? 그 사람 보기 싫어서 못가겠다고 합니다. 최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한국교회의 문제들의 공통점은 교회가 세속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세속화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세상식이라도 목적을 위해서는 괜찮다는 논리가 팽배한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요한복음 1장에서도 세례 요한이 분명히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주목하자, ‘나는 참 빛이 아닙니다. 나는 참 빛을 증거 하러 온 사람일뿐입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는데 그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 분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지만 사람들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참 빛이신 예수님을 보여주는 창문과 같습니다. 창이 더럽다고 빛이 더러운 것은 아닙니다. 물론 창이 깨끗하므로 빛이 더 밝고 맑게 비추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이 믿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믿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믿음의 대상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1.첫째로 우리는 성부 하나님을 믿습니다. (1)첫째로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의 과학과 의학이 아무리 발달하였다고 해도 인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요즘 사람이 못하는 것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지만, 창조는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흙 1g, 공기 한 모금, 피부 한 겹, 피 한 방울을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또한 사람이 아무리 강한 것 같아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몸이 내 것이지만, 내 맘대로 안됩니다. 40대가 되면서 오는 노안, 흰 머리카락 하나도 내 마음대로 조절을 못합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사람입니다. 사람이란 깨지기 쉬운 존재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분 앞에 경배와 찬양을 올려 드려야 합니다. 물을 떠난 물고기가 살 수 없듯이 사람들의 행불행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면서부터 불행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면서부터 행복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2)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어머니이십니다. 물론 하나님이 남성 여성이라는 성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아버지와 같으시고, 어머니와 같으신 분이십니다. (예화)갓난 아이 일 때 친 엄마로부터 고아원 앞에 버림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엄마로부터도 버림받은 사람이다라는 상처와 배신감으로 마음을 닫고 살았습니다. 이 사람은 친 엄마도 자식을 버리는 세상에 무슨 사랑이 있느냐고 세상은 사랑엔 없다고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노래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순 거짓말이라고... 세상에 사랑은 없다며 소리쳤습니다. 한 목사님이 이 사람을 상담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굳게 닫고 있는 그 사람에게 목사님은 물었습니다. “자네는 정말 세상엔 사랑이 없다고 믿는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는가?”“그렇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자네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네!. 생각해 보게. 자네는 친 엄마도 나를 버렸다고 했는데, 그 갓난 아이일 때 자네를 먹이고 입힌 사람은 누구인가? 고아원 원장님이었습니다. / 그렇다면 자네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고아원 원장님, 자식도 아닌데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키워주지 않았나! 그것은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닌가? / 자네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사랑받지 못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사람은요? 4세 이전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엄마의 젖을 빨던 것이 기억난다면 그 사람은 다섯 살 까지 젖을 빨던 사람입니다. 보세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미쳐 생각하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 번도 사랑을 받아 본적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나님은 없으며, 하나님의 사랑도 없다고 말하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시편 121:3-4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이사야 49:15-16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 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우리도 종종 잊지 않으려고 손바닥에 써 놓습니다. 헌데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기 위해서 손바닥에 문신으로 지워지지 않도록 새겨놓으신다는 말입니다.) 이 사랑으로 살아왔습니다. (3)또한 하나님은 복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1장 27-2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창세기 5:1-2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랑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4)또한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의 길을 예비하시는 분이십니다. (5)하나님은 우리들을 날마다 살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둘째로 우리 믿음의 대상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우리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의 창시자가 우리 죄 때문에 대신 죽은 사람이 있습니까? 죄 문제를 갖고 가면 충고만 해 주었습니다. ‘용서해라. 자비를 베풀어라’고 할 뿐입니다. 헌데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내 대신 달려 죽으셨습니다. 오늘 본문 6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10절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예)사랑의 가장 큰 고통은 죄의 대한 두려움입니다. 예전에 영국에서 한 젊은이가 사회의 저명 인사들에게 전보를 보냈습니다. “당신의 모든 죄가 들통났다. 빨리 피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음 날 어떻게 되었습니까? 전보를 받은 사람들 대부분이 출근을 하지 않고 도망을 갔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람들은 죄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외일까요? 우리들도 내 부끄러운 모습들이 드러날까 두려운 마음을 갖고 살지 않습니까? 헌데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할렐루야! 마태복음 11장 28-29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3.세째로 성령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시기 전에 유언으로 남겨 주셨습니다.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을 받으리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거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약속대로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바람같은 성령! 불같은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성령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오셔서 무슨 일을 하십니까? 요한복음 14장에서 주님이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은 성령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한복음 14장 17-18절에서는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그를 능히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찬양 함께 하기)허무한 시절 지날 때... 깊은 한 숨 내쉴 때... 그런 풍경 보시며 탄식하는 분 있네. 고아 같이 너희를 버려두지 않으리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리라 성령님이 왜 오셨습니까?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하시는 일이 5가지가 있습니다. (1)첫째는 우리를 도우시고 힘주시는 분이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라”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구에게 가서 도움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실력자입니다.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 문제를 누구에게 갖고 가야 하나? 어디로 갖고 가야 하나?를 아는 것이 실력입니다. 헌데 신자들에게는 성령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성령님께 갖고 가서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매사에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성령님! 우리 자녀를 도와 주십시오. 직장생활을 도와 주십시오. 성령님! 공부를 도와 주십시오. 결혼문제 가정문제를 도와 주십시오. 성령님 사업을 도와 주십시오.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전도하는 일도 도와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능히 도와주실 것입니다. (2)성령님은 우리의 선생님이 되십니다. 야고보서 1장 5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지혜가 부족하거든 성령님께 구하십시오. 성령님이 아아디어를 주실 것입니다. (3)성령님은 우리의 인도자가 되십니다. 우리는 어디가 길인지 무엇인 좋은지 알 수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인도해 주셔야 합니다. 날마다 성령님께 인도하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우연 같지만 성령님께서 환경을 열어주시고, 만남을 인도해 주십니다.(룻기) (4)성령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자이십니다. 나도 나를 지킬 수 없습니다. 내 자녀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닐 수 없습니다. 성령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성령님의 보호하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5)성령님은 우리의 위로자이십니다. 슬픔가지고 나와 간절하게 기도하면 성령님께서 나의 마음을 만져 주십니다. 위로해 주십니다. 새 힘을 주십니다. 지난 수능일에 성도들과 함께 종일 기도를 했습니다. 수능을 보는 아이들의 시간표에 맞춰서 저희들도 기도하고, 찬송하고, 말씀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았습니다. 1교시 80분, 2교시 100분, 3교시 70분, 4교시 94분이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기도회가 끝나고 났는데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 긴 시간을 어떻게 기도하나?싶었는데, 넉넉히 기도가 되었습니다. 정말 성령님이 위로하시는구나!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구나!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영원한 함께 하시며, 우리를 고아와 같이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 하루 24시간 우리와 함께 하시며, 일하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전해야 합니다. 믿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이 중요한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삼위일체 하나님을 확신하시고, 담대히 전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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