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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이병수목사 2013-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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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7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출애굽기 40:33-38

제목: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오늘은 출애굽기의 대단원을 내리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지난 해인 2012년 2월 12일 주일 낮 출애굽기 강해 설교를 시작한지 꼭 일 년이 되었습니다. 출애굽기의 말씀을 강해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은혜가 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무슨 말씀을 들었던가? 하나도 기억 안 나시는 것 같지요?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저는 성도들에게 망각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하 하)

 

출애굽기는 총 40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40장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이 성막에 대한 말씀입니다. 무려 13장이 성막에 대한 말씀입니다.(25장부터 40장 중에서 32,33장을 뺀 나머지가 성막에 대한 말씀이다.)

우여곡절(여러 사정으로 뒤엉키고 복잡해진 상황) 끝에 성막이 완성됩니다. 오늘 본문 33절을 보겠습니다. “그는 또 성막과 제단 주위 뜰에 포장을 치고 뜰 문에 휘장을 다니라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마치니”가장 중요한 말씀은 “이같이 역사를 마치니”입니다.

Moses finished the work!

(적용)이 말씀을 보니까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구원의 사역을 다 마치시고 난 뒤에 하신 말씀을 생각하게 합니다.(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남기신 말씀은 몇 마디일까요? 7마디입니다. 가상칠언이라고 합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이 무엇입니까?“다 이루었다. It is finished"

 

사랑하는 여러분! 모세가 모든 역사를 다 마치니 어떤 일이 나타났습니까? 35절입니다.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하나님의 영광이 임했습니다.

(적용)기억하십시오. 33절의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34절의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적용1)오늘 주일 예배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는 사람이 누굴까? 33절을 통과한 사람입니다. 지난 6일간 하나님이 주신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맡겨진 삶에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 34절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적용2)유혹도 많고, 시험도 많고, 어려움도 많았지만 있는 자리에서 성도답게 몸부림치고, 죄와 싸워 이긴 사람에게 34절의 영광이 임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4절에서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중고등부-너무나 쉽게 죄에 넘어지지는 않았나요? 죄와 싸워보려고 노력을 해 보았나요?)

(적용3)일어설 힘도 없고, 아픔도 있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기에 낙심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살았다면, 주의 영광이 가득 임할 것입니다.

한 주간 어떻게 사셨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셨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보려고 애를 써 보셨습니까? 죄악에 넘어진 자신의 모습 때문에 너무 맘이 괴로워서 탄식해 보셨습니까? 그렇다면 여호와의 영광이 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임할 것입니다.

 

1.먼저 생각해 볼 것은 회막, 성막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여기에서 회막과 성막은 오늘 날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1)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성막은 모두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들입니다. (2)또한 성막은 장차 임할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상징합니다. (3)셋째로 성막은 예수를 믿는 각각의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너희는(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솔로몬성전이 있기 전에는 성막이다)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믿으시길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내 안에는 성령이 계신다는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을 토대로 보면 성막된 우리들에게 무엇이 임해야 합니까? “여호와의 영광 즉 성령의 임재가 가득해야 합니다.”

 

2.먼저 성도들에게는 성령의 임재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임재를 느낀다는 것은 쉽게 말해서 ‘성령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구나! 성령 하나님이 지금 일하시고 계시는구나! 성령 하나님이 듣고 계시는구나!’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한 주간 동안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특히 우리 청소년 아이들이 은혜받기를 원하여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서 찬양을 불렀습니다. “주의 영광 이곳에 가득해! 우린 서네 주님과 함께! 찬양하며 우리는 전진하리 모든 열방 주 볼 때까지”이 시간 주님의 영광이 이곳에 임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차이점이 많이 있습니다.

❶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어느 종교가 믿음의 대상인 신이 신자들을 위해서 죽습니까? 오직 기독교뿐입니다.

❷또 하나는 C.S 루이스기 말한 것처럼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죄 사함의 은혜, 용서의 은혜, 도우시는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받을 자격도 안 되는데, 거져 주시는 은혜는 오직 기독교 뿐입니다.

❸또 하나 기독교와 타종교가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임재입니다. 타 종교는 신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지, 신이 친히 신자들과 함께 한다는 종교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독교는 오시는 종교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분이 누구예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 즉 하나님의 아들로서 구원자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7절에서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한복음 14장 16절에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하나님이)가 또 다른 보혜사(성령 하나님을)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예수님은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오셨습니다. 헌데 한 번 오신 성령님은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계십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앞에서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서 바울이 뭐라고 했다고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적용)우리가 많은 지식을 자랑하는데요. 가장 위대한 지식은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입니다.”이 지식을 모르면서 안다고 자랑하지 마세요. 이것처럼 축복이 없습니다. “성령님이 영원토록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만큼 큰 복이 없습니다.

 

(문제제기) 헌데 왜 우리는 성령님의 임재를 확신하지 못하나?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하는데, 왜 난 잘 모를까? 이 부분에 대해서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성령님의 임재를 알려는 마음도 없기 때문입니다. 늘 함께 있는데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자훈련을 하면 이 부분을 점검합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신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한번 자신들을 비추어 점검해 보세요.

(1)첫째는 예수를 믿으면 우리의 고백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합니다. 헌데 우리는 이것을 우습게 여기는데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아니고는 이 고백을 할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2)또 마음에 감동이 일어납니다. 용서와 사랑의 마음이 생깁니다. (예화)부부싸움을 했다면,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해 보십시오. 처음에는 다 자기가 잘한 것처럼 기도하는데, 기도하다보면 내 잘못이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자녀들이 잘못해서 야단을 치다가도 그런 마음이 듭니다. 하나님이 그러시는 것 같아요?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누군가와 심하게 싸우고 나서 기도하면 상대방이 아무리 잘못한 경우라도 나를 책망하십니다. 주님의 대답은 언제나 “네가 더 사랑할 수 없겠니? 네가 용서하거라”고 하십니다.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 내가 이러고도 목사인가? 내가 이러고도 성도라고 말할 수 있나? 갈등이 생기는 것도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화)한 청년이 고백을 합니다. 저는 너무나 괴롭습니다.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답게 살아보겠다고 서약하고 작정했는데, 여전히 죄를 짓고, 넘어지는 저를 보면서 너무나 낙심이 되고, 내 자신이 미워집니다. 왜 이 청년이 괴로워하는 것일까요? 성령님이 그 청년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3)또 거룩한 소원을 갖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싶어집니다. 성령의 사람은 기쁨이 넘칩니다. 생기가 넘칩니다. (예화)생기 없는 예배의 분위기가 뭔지를 경험했다. 둘째 아이 주영이의 졸업식장에 참여했다. 2부 순서로 졸업생들의 발표회가 있었다. 중창, 오카리나 연주, 키타연주, 째즈댄스 등등

헌데 정말 생기가 없더라. 참가하는 아이들의 부모님들 외에는 다 다른 것에 관심이 가 있습니다. “여기 봐라! 사진 찍고... 이따 정문으로 나와!... 핸드폰으로 연락하는 사람 등등”연주회에는 관심이 전혀 없더라... 또한 앞에서 공연을 하는 아이들도 생기가 전혀 없다.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 예배가 이러면 안되는데... 생기 없는 예배는 성령님이 없는 예배인데... 성령님이 거하는 사람은 생기가 넘칩니다.

또 전도하고 싶어집니다. 기도하고 싶어집니다. 이 모든 것이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신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확신을 갖으세요.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세요.

 

앞서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서는 “너희는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솔로몬성전이 있기 전에는 성막이다)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했습니다. 헌데 그 다음 말씀이 더 중요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전된 우리 몸을 거룩하게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음과 생각과 입술을 거룩하게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성전된 우리 몸을 더럽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전을 더럽히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우리 안에는 성령도 거하시지만, 마귀도 역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와 싸워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4절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죄와 얼마나 싸우십니까? 피 흘리기까지 싸우십니까? (예화-한 청년의 고백 “폭탄주를 마시고, 섹스를 하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육신이 하자는대로 죄를 짓는 것은 너무 쉽더라. 노력하지 않아도 되더라는 것입니다. 헌데 성령을 따라 살고, 믿음의 삶을 살고, 의롭게 살기란 너무 힘들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성령의 임재가 필요한 것 아닙니까?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 아닙니까? 그래서 기독교는 은혜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받을 자격이 안되지만, 다시 기회를 주시고,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것 아닙니까?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성령님을 상징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➀성령은 물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성령은 샘물입니다. 성령은 생수의 강입니다. 성령이 임하는 곳마다 나무가 자라고, 나무마다 열매가 맺습니다. 꽃들이 자라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래야 하지 않습니까? ➁성령은 바람과 같습니다. 생기입니다. 고단한 삶에 쉼을 주고, 더위를 식혀주고, 쾌쾌한 공기를 환기를 시켜줍니다. ➂성령은 비둘기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평화가 넘칩니다. 여유가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맡깁니다. 감사가 넘칩니다.

➃성령은 불입니다. 죄악을 모두 태워버려 주십니다. 식어진 가슴에 불을 붙여 주십니다. 열정을 회복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좋으신 성령님을 우리는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격려로 삽니다.

(어느 한 연구기관에서 결손가정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습니다. 무슨 가설을 세웠냐면 ‘결손가정의 아이들은 문제아 일 가능성이 많다.’라는 것입니다. 헌데 연구를 해 보니 이 가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요. 결손가정의 아이들은 문제아 일 것이라는 가설은 어떻게 나온 것입니까? 나쁜 환경이 나쁜 아이들을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헌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자들이기에 환경도 뛰어넘습니다.

결손가정이라는 환경이지만, 이 아이들이 건강하고 바른 아이들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연구해보니... 한 가지 공통점이 있더랍니다. “누구든지 그 아이를 진심으로 축복해주고, 믿어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한 사람은 있더라는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사람은 어떤 환경속에서도 축복받고 사랑받으면 건강한 사람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이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위로자가 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도움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교회를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서로 사랑하고 믿어주고, 격려해 주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어떤 환경도 뛰어넘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더 이상 무시하지 말고, 인정하십시다. 그리고 성령님을 의식하고, 기도와 말씀으로 성령님의 뜻에 순종해 보십시다. 그리하면 광야와 같은 험한 길도 넉넉히 승리하며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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