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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질문(1)-네가 어디 있느냐? 이병수목사 2013-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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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4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창세기 3:6-12

제목:하나님의 질문(1)-Adam! Where are you?

창세기 3장은 인류의 타락 장면입니다. 인류의 타락이라고 하는 것은 아담과 하와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것을 왜 우리들에게 전가시키느냐고 합니다. 허나 로마서 5장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 아담으로 인해서 모든 인류가 죄를 지었다는 것을 인정할 때,예수님으로 인해서 모든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9절에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적용)국가대표 개념을 아시지요.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면 우리는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우리가 이겼다. 우리나라가 이겼다”고 합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내가 싸운 것도 내가 이긴 것도 아닙니다. 헌데 우리가 이겼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의 대표성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담은 모든 사람의 대표성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는 모든 인류의 죄가 된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해 봐요. 창세기 3장이 없었다면 성경은 창세기 1장과 2장이면 충분합니다. 창세기 4장부터 요한계시록 22장까지는 없어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앞으로 몇 시간 동안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질문들을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최초로 하신 질문입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1.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런 생각이 듭니다. 왜 하나님은 질문을 하실까?

(1)먼저 회복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질문은 하나 같이 회복을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죄를 짓고 난 이후에 하신 질문입니다. 성경에는 여러 하나님의 질문이 등장합니다. 헌데 그 질문들은 하나 같이 회복이 필요할 때 하신 질문들이었습니다. 죄를 짓고 넘어진 경우라든지... 믿음이 흔들릴 때라든지... 새로운 사명의 자리로 불러야 할 때라든지... 위로와 회복이 필요할 때였습니다.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

가인에게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모세에게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38년 된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마르다와 마리아에게는 그를 어디 두었느냐?

“네가 어디 있느냐?”

(2)하나님의 질문에는 패턴이 있습니다.

?찾아 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8절에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르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뭔가 문제가 있지요. 하나님이 오시는 소리가 들리면 뛰어나가야 하는데 숨었습니다. 그리고 9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하나님은 찾아 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름을 부르십니다. 아담을 부르시며라고 했습니다. “아담아! 아담아!”애타게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름을 부르신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앙은 개인적인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병수야!” “아무개야!”하나님은 다른 사람의 대답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 자신의 대답을 듣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본질적인 질문을 하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2.이 질문은 장소를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금 아담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묻는 것이겠습니까?

(1)이 질문은 상태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아담과의 영적인 거리를 묻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질문을 들으셔야 합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네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느냐?”

지금 아담과 하와는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아담의 대답속에 답이 있습니다.

?첫째는 두려움속에 있습니다. 10절을 보겠습니다.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지금 아담의 마음이 어떻습니까? 두려움 가운데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마귀는 우리의 마음을 흔듭니다. 마귀의 주공격 대상은 생각과 마음입니다. 잠언 4장 23절에서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지킬 것이 많지요. 이것을 잃어버리면 죽을 것 같은 것들이 있으시지요. 허나 그것보다 마음을 지키셔야 합니다. 마귀의 속임수가 뭔지 아십니까? 상황에 매이게 하는 것입니다. 허나 실상은 상황이 문제가 아닙니다. 불편한 것이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또 편안한 것이 다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마음을 지키면 환경은 불편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까? 두려움과 근심을 줍니다. 지금 아담도 마음에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두려움에 사로 잡히면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합니다. 메뚜기 콤플렉스에 사로잡혀서 삽니다. 오직 우리가 두려워 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면 다른 어떤 것도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두려움과 근심을 이기는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굳게 믿는 믿음입니다. 마귀는 절대로 두려워 할 대상이 아닙니다.

?둘째로 아담의 마음의 상태는 수치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 하여 숨었나이다” 생각해 보세요. 원래 벗고 있었습니다. 헌데 왜 지금 와서 벗은 것이 부끄럽게 된 걸까요? 죄가 마음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대로 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좋은 것만 보면 좋잖아요. 헌데 죄가 마음에 들어오니까 봐도 좋게 보지를 못합니다. (예화)남자는 ‘성격 좋은 여자를 더 좋아 할까요? 돈이 많은 여자를 더 좋아 할까요? 예! 무조건 예쁜 여자를 좋아합니다.’다 필요 없어요. 예쁜 여자를 좋아해요. 그래서 “야 몸이 장난이 아니다”“야! 몸이 장난이다”

좋게 보면 좋지 않습니까? “잘 됐네. 축하해.”하면 좋지 않습니까? “한번 잘 됐네 보네!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

뭘 보아도 악한 것을 생각합니다. 더러운 생각을 합니다. 왜요? 죄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예화)대입 자녀를 둔 8명의 성도들이 40일간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회를 갖았습니다. 헌데 기도회를 주관한 권사님의 자녀만 떨어졌습니다. 다른 분들은 기뻐하지도 못하고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헌데 이 권사님! 얼마나 마음이 훌륭한지... 더 나서서 축하해 주시고, 축하는 자리에 함께 참여해서 기뻐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권사님의 자녀는 재수를 해서 좋은 대학에 갔고요. 좋게 보는 눈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질문을 합니다. 11절입니다.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아담의 대답입니다. 12절입니다.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죄에 빠진 인간의 모습을 보세요. 책임을 떠 넙깁니다. 핑계를 댑니다. 하와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혼 잘못해서 이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언제는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로다”할 때는 언제입니까?

더 나아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건 남자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 번 대답해 보세요. “네가 어디 있느냐? 너는 내가 먹지 말라한 선악과일을 왜 먹었느냐?”고 하시면 뭐라고 대답해야 합니까?(대답을 들어본다??????? )

하나님이 아담에게 정말 듣고 싶은 대답은 뭘까요? 다른 말 필요없습니다. 단 한 마디입니다. “예 제가 먹었습니다.”“제가 잘못했습니다.”이 한 마디! 진실한 한 마디!를 듣고 싶으신 것입니다.

 

(예화)사랑과 전쟁이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를 실제적으로 다룸으로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드라마입니다. 거기에는 조정위원회가 있습니다. ‘4주 후에 뵙겠습니다.’ 4주가 지나고 난 뒤에 조정위원들과 이혼하려는 부부가 함께 모였습니다. 아마도 남편이 문제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조정위원장이 아내에게 최종적으로 묻습니다. “정말 이혼해야겠습니까? 다시 생각해 보시면 안되시겠습니까?” 그러자 아내가 말합니다. “위원장님! 저는 남편이 외도해도 참을 수 있습니다. 외박을 해도 괜찮습니다. 카드 빚을 냈을 때도 참았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한 마디가 충격입니다. “거짓말만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진실한 말 한 마디를 듣고 싶은 것입니다. “제가 먹었습니다. 모두 제 책임입니다. 아내에게는 아무 잘못 없습니다.”라고 했다면 역사가 달라질 것입니다.

 

(적용)우리들도 이 말 한 마디를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 때는 누르면 말을 하는 인형이 인기였습니다. 누르면 “사랑합니다. I Love You / 당신은 짱! 짱! 짱!”

진심을 담은 말 한 마디를 듣고 싶어합니다.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남편에게, 아내에게, 자녀들에게, 부모님들에게 하세요.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네가 있어 행복하다. 이는 내 뼈중에 뼈요 살중에 살이라”고 하세요. 너를 만나 내가 이 모양이 되었다고... 하지 말고요. (적용)여러분은 지금 어떤 상태에 있으십니까? 두려움과 근심으로 인해서 마음이 흔들리십니까? 하나님 앞에 나오기 두려운 죄가 있습니까? 근심된 일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조금만 어려우면 남의 탓을 했습니까? 엄마 때문이라고... 집안 형편 때문이라고... 친구 때문이라고... 아니 이 모든 것은 하나님 때문이라고...탓하고 있습니까?

늘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고백하십시오. 여러 말 필요없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 하나님! 모두 제 책임입니다. /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2)“네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은 지금 너의 상태가 어떤가 돌아보고, 그리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래 아담에게 뭐라고 하셨습니까?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먹었습니다. 그러면 죽으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류 역사는 거기서 끝입니다. 헌데 하나님이 물으시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이름을 부르시면서 “네가 어디 있느냐?” 지금 네 상태가 어떠냐? 왜 근심하고 있느냐? 왜 두려워하고 있느냐? 왜 낙심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서로 남의 탓만 하고 있느냐?고 물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왜 네가 지금 그 지경이 되었느냐?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3.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마귀 때문입니다. 마귀의 실체를 바로 알아야 한다. 마귀는 실재합니다. 마귀는 지금도 역사하고 있습니다.

(1)마귀는 교만해서 타락한 천사장입니다.

이사야 14장 12절 이하에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마귀의 특성이 뭐예요. 끊임없이 높아지려는 것입니다. ‘올라, 높이리라, 산 위에 앉으리라, 높은 구름 위에 올라가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마귀가 다스리는 이 땅을 보세요. 높아지려는 것입니다. 높아 지는게 인생의 목적입니다.

허나 기독교는 낮아지는 종교입니다.

(예화)삭개오가 구원받는 단계를 보세요. 예수님이 여리고에 왔습니다. ?삭개오에게 가장 먼저 한 말씀이 “삭개오야! 내려오라!”내려와야 합니다. 주님은 낮은 곳에 계십니다. 지금까지 삭개오는 높아지려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습니다. 세리장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나 높은 곳에 행복이 있지 않았습니다. ?다음 예수님은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 하겠다.”마음의 문을 열어달라는 것입니다. 네 마음의 집에 들어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삭개오는 속히 내려와 주님을 영접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것으로 가득했던 높은 마음들을 비우고, 주님으로 가득 채웁니다.

?둘째로 마귀는 속이는 자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 - -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우리가 사는 삶을 보세요. 거짓으로 도배된 삶을 삽니다.

?셋째로 마귀는 참소하는 자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0절에 “내가 또 들으니 - - -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마귀는 잘못된 것만 파헤쳐서 그것만 끄집어 내어 정죄하고 비판합니다. ‘이러고도 내가 목사인가? 낙심하게 만듭니다. 니가 그러고도 교회 다니는 사람이냐? 그럴 바에는 차라리 교회 다니지마!’ 하며 죄책감이 들게 하고, 정죄하는 자가 마귀입니다. 마귀에게 속으면 안됩니다.

(예화)예전에 인생극장에서 산악인 남난희 씨에 대해 방송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남난희 씨는 80년대 유명한 여성 산악인이었습니다. 1984년 1월1일부터 76일 동안 백두대간 단독종주에 성공했습니다. 1986년,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해발 7455M의 히말라야 강가푸르나 봉에 올랐고, 1989년에는 설악산 토왕성 빙벽폭포를 두 차례나 등반한 사람입니다. 이분이 도시 생활을 접고 지금은 지리산 화개골에서 맑은 물과 공기, 자연을 담은 차와 발표식품을 만들며 소박하고 여유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주 지리산자락을 오릅니다. 과거에 올랐던 7천 8천 미터의 산과는 비교도 안되는 낮은 산들입니다. 헌데 낮은 산을 오르면서 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진리들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7천 8천미터의 산은 산이라고 하지 않고, 봉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봉을 오를 때는 아무것도 보지를 못했다고 합니다. 오직 꼭대기 봉에 올라가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정말 힘들게 봉에 오르면 두 가지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어떻게 내려가지!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또 다음에는 어떤 봉우리를 오르지!하는 근심이 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 높은 봉우리를 찾게 된다고 합니다.

헌데 지금와서 생각해 보니 “봉우리도 산의 일부더라”는 것입니다. 전에는 꼭대기에 오르는 것만이 성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헌데 봉우리도 산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낮은 곳에서 산에 오르면서 미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본다는 것입니다. 꽃을 보고, 나무들을 보고, 새 소리를 듣고,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 낮은 산에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낮은 산도 산이더라”

우리에게 적용하면 낮은 삶도 삶이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귀에게 속아서 높은 봉우리에 올라야만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봉우리만 보고 갑니다. 더 높이 오르자! 오르자!하며 삽니다. 그러다보니 아무것도 보지를 못합니다.

 

남들이 오르지 못하는 높은 봉우리를 오르는 것이 성공이 아닙니다. 낮은 곳에 있어도 그곳에서 꽃을 보고, 나무를 보고, 구름을 보고, 새 소리를 들으며 걸어간다면 그것도 성공한 것입니다. (예화)“꼭 사람이 많이 모이는 교회만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성도 한 성도를 사랑하며 감사함으로 목회한다면 성공한 목회입니다. 집안 살림을 하고, 가족들을 위해서 희생을 하고, 기도를 드리고, 직장일을 하고,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그것도 그것도 아름다운 삶입니다. 마귀에게 속으면 안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진실하게 자신을 돌아보기 바랍니다. 주님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면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질문은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회복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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