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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질문(2)-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 이병수목사 | 2013-03-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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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3일 주일 낮 예배 하나님의 질문(2) 성경:창세기 4:6-9 제목: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첫 번째 하신 질문은 무엇이지요. “네가 어디 있느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묻는 거예요. “네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느냐?”왜 두려워 하고 있느냐? 왜 근심하고 있느냐? 왜 죄악가운데 있느냐? 왜 남의 탓만 하며 원망하고 있느냐? 왜 감사하고 기뻐하지 못하느냐? 오늘은 두 번째 질문입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이 질문은 사람의 관계를 묻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 하게 된 배경을 우리가 이해해야 해요.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어요. 그리고 아담과 하와 사이에 가인과 아벨이 태어났어요. 물론 성경에는 기록이 없지만, 딸들도 태어났어요. 큰 아들 가인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었고, 동생 아벨은 양을 치는 사람이었어요. 이들은 장성하여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은 동생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어요. 왜 하나님이 형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시고, 동생 아벨의 예배는 기쁘게 받으셨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어요. 허나 분명한 것은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나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어요.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해요. 또 창세기 4장 3절 말씀에 “세월이 흐른 후에”라는 말씀이 있어요. 이 말씀의 히브리 뜻을 이해해야 해요.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고 해요. 사실 이 말은 틀린 말이예요. 세월은 물처럼 한 번 흘러가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 앞에 다 쌓이는 거예요. (예화)지난 주간에 <철인>이라는 다니엘 김 선교사의 책을 읽었어요. 다니엘 김 선교사는 어릴 때부터 집에서 사용하면 안되는 한 가지 표현이 있었다고 해요. “아휴, 또 하루가 지나갔네”하면 혼이 났대요. 그러면서 어머니는 “하루는 지나가는 게 아니야. 잘 살든 못 살든 그 하루는 하나님 앞에서 쌓이는 거란다. 그러니까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야 가는 거야. 왼발이 나가면 다음에 오른 발이 나가고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 발... 그렇게 한 걸음씩 가다가 가끔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서 가면 돼.” “세월이 흐른 후에”라는 말씀이 그런 뜻이예요. 가인과 아벨이 지금 처음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예요. 그동안 늘 드려 왔어요. 그들이 드린 예배는 하나님 앞에 하나 하나 차곡 차곡 쌓여 있었어요. 헌데 하나님은 더 이상 참으실 수 없어서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신 거예요. (적용)이처럼 우리의 하루 하루, 매 주일마다 드리는 예배는 지나고 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 앞에 다 쌓이는 거예요. 그리고 종말이 속히 와요. 하나님이 결산하실 날이 와요. 그러니 하루 하루, 지금 드리는 예배 하나 하나를 귀히 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동생 아벨의 예배는 받으시고, 자신의 예배는 받지 않으시자 가인은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어요. 왜 가인 이렇게 열이 받은 걸까요? 질투예요. 제 일의 죄성이 욕심이라면, 제 이의 죄성이 시기 질투예요. 회개하면 되는데,,, 도리어 분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 거예요. 결국 질투의 화신이 되어 동생 아벨을 쳐 죽입니다. 이 때부터 가인은 문학작품의 단골이 됩니다. 인간의 죄성인 시기와 질투를 주제로 한 문학작품들이 생겨나게 되었지요. 불같은 질투심에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물으십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이 질문은 인간관계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물으시는 것이었다면, 오늘은 사람과의 관계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든 싫든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가족관계-부부, 부모와 자녀, 형제, 친척간에 관계를 맺고 삽니다. 친구관계, 교우관계, 동료관계, 이웃들과의 관계를 맺고 살아 갑니다. 하나님은 이 많은 관계들을 점검하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아벨은 누구입니까? 저는 너무 놀랍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깨진 관계를 갖고 살아갑니다. 여러분에게 아벨은 없으십니까? 당신 마음속에서 이미 죽인 사람은 없습니까? 이 사람은 상종할 가치가 없어 하고 버린 사람은 없습니까? 말도 섞기 싫다고 무시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무시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마땅히 찾아 보아야 하나 마음에서 멀어져 찾아 보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까? 하나님은 물으십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아우’란 가족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요. 네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중에, 아벨은 없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참 불편한 설교 일 수 있습니다. 힘들게 하는 설교 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문 앞에 정직하게 대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질문하시는 목적이 뭐라고요.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가인은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1)“내가 알지 못하나이다”정말 모릅니까? 이것은 완전 거짓말입니다. 고의적인 거짓말입니다. 만약에 우리 안에 고의적인 거짓말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면 기억해야 합니다. 그 부분에 있어서 나는 마귀에 끌려 다니고 있구나! 마귀는 요한복음 8장 44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 너희가 거짓을 말할 때마다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니요. 자기는 마귀의 자녀라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정말 듣고 싶은 대답은 뭐예요. 정직한 대답입니다. “제가 죽였습니다. 제가 동생을 죽였습니다.” (예화)다윗은 정말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다윗의 위대함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골리앗을 향해서 용기 있게 달려 나간거요? 사울이 그렇게 억울하게 해도 미워하지 않고, 용서한 거요? 수 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한거요? 그래서 이스라엘을 가장 부강한 나라로 만든 거요? 예! 이 모두 다윗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허나 저는 다윗이 정말 위대한 것은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중단할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뭘 더 하는 것은 쉬웠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쉽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서 근사한 성전을 짓고 싶었습니다. 그만한 능력도 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헌데 하나님이 No! 하셨습니다. Stop!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즉시 중단합니다. 이것이 위대한 것입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이것은 잘합니다. 헌데 그 다음요?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다”이것은 잘 못해요. 주님위해서 헌금하라면 하겠습니다. 봉사하라면 하겠습니다. / 헌데 죄악을 끊어라! 미워하는 마음을 중단해라! 불평하고 원망하는 잘못된 습관을 중단하라! 처음사랑을 잃어버러고 습관적으로 열정도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중단하라!는 말씀에는 왜 순종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중단할 줄 아는 것이 위대함입니다. ?또 하나 다윗의 위대함은 자신의 죄 앞에 정직하였다는 것입니다. 나단 선지자가 죄를 지적하자 아무 변명하지 않고, 인정합니다. 돌이킵니다. 눈물로 회개합니다. C.S 루이스가 말했습니다. “교인들은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헌데 다른 사람들이 당신은 죄인이라고 지적하면 불같이 화를 낸다.”고 했습니다. 그렇지요. 헌데 다윗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지적할 때 즉시 인정했습니다. 회개했습니다. 이것이 위대한 것입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에 정직해 보십시오.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하지 마세요.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정직하게 인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다음 가인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사랑하는 여러분! 가인과 아벨은 친형제지간입니다. 마땅히 서로 지켜줘야 하는 사이입니다. 또한 둘 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헌데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무슨 말이예요? ‘나에게 왜 부담을 주십니까? 왜 나만 그렇게 해야 합니까? 나만 잘못했습니까? 왜 저에게만 그러십니까? 왜 나만 변화되라고 하십니까?’ (3)설교를 준비하면서 계속 마음속으로 되물었습니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이 목사! 너에게 아벨은 없는가?’ 전에 담임했던 교회가 생각이 났습니다. 한 장로님이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그 교회를 사임하고 미래교회를 개척할 때, 조중성 집사님 가정과 김기은 집사님 가정이 미래교회로 오셨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그분은 매우 화가 나셨습니다. 미래교회 개척설립을 허락받는 노회에서 만나 뵈었는데, ‘목사님! 그렇게 목회하는 거 아닙니다. 제가 이번 노회에서다 폭로 할 것입니다. 주성교회 교인들 빼가서 개척하는 거라고 다 폭로할 것입니다. 한 번 보세요. 개척할 수 있나!!’ 사실인즉 집사님들을 빼내어 온 것은 아닙니다. 허나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오해하실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노회 때마다 그분을 뵙는데, 안색이 안 좋으세요. 늘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헌데 이 설교를 준비하는데, 성령께서 “너에게 아벨은 그 장로님이다. 찾아가라! 찾아가 용서를 구해라.”/“성령님! 아시잖아요. 제가 잘못한 것이 아닙니다. 저도 억울합니다.”/“너만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도 피해자다. 너로 인해서 성도가 상처를 받고, 힘들어 한다면 너는 그에게 잘못한 것이다. 찾아가라!” 그 때부터 가슴이 떨리더라구요? 헌데 깊히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성령님이 말씀하시면 순종하자. / 집사람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결심이 흔들릴까봐! 다음 날 홍삼 드링크를 사서 출발했습니다. 5년만에 찾아 가는 것입니다. 가는 내내 마음이 쿵쾅 거리더라구요. 가지 말까?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만나주지도 않으면 어떻게 하지... 나중에 목사님이 잘못했다고 와서 나한테 사과했다고 소문이나 내면 어떻게 하지... 그러면 내가 잘못한 사람이 되는데... 별별 생각이 다 나요. 그래도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다. 오늘 주일설교를 당당하게 하려면 나부터 순종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갔습니다. 고개 숙여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어찌되었든 목사인 저로 인해서 실망하시고, 상처를 받으셨다면 용서해달라... 그때는 그것이 옳은 줄 알고 행동했지만 지나고 보니 제 생각이 짧았던 것 같다. 용서하시라”고 하고 돌아왔습니다. 잘했지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전 너무나 마음이 기뻤습니다. 성령님이 참 기뻐하시는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려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4-35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새 계명이 뭐예요?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 아벨과 가인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헌데 서로 사랑해야 할 근거가 뭐예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십자가에 달려 우리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이 사랑을 기억하며 오늘 우리는 성찬예식에 참여합니다. ?또 하나는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어 주신 것입니다. 그날 따라 분위기가 냉랭했습니다. 서로 누가 크냐!는 시기와 질투심으로 제자들 사이가 냉랭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누구하나 종들이나 하는 주님의 발을 씻어 주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때 주님은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겉옷을 벗으셨습니다. 겉옷을 벗는다는 것은 자신의 위치, 신분, 체면, 지위를 모두 내려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과 동등되신 분이셨습니다. 헌데 하나님이라는 겉옷을 벗으셨습니다. ?그리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루셨습니다. 이것은 종이나 하는 행동입니다. 주님은 종이 되셨습니다. ?대야에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조금 있으면 예수를 팔려는 가룟 유다의 발도 씻어 주셨습니다. 가룟 유다의 발을 닦아 주고 싶었을까요? 우리 같으면 못합니다. 헌데 주님은 정성껏 닦아 주셨습니다. 가룟 유다의 발을 씻어주면서 꼬집으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 유다야! 난 너를 사랑한단다. 아직도 늦지 않았단다. 회개하거라! 마귀의 앞잡이가 되지 말고 돌아오거라! 하는 심정으로 발을 닦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에게 가룟 유다는 가인과 같은 자입니다. 자신을 죽이도록 배신하려는 자입니다. 그럼에도 발을 닦아 주십니다. 그리고 난 뒤에 말씀하십니다. “서로 사랑하거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거라 너희가 서로 사랑해야 그래야 세상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지 않겠니?”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용서할 수 없습니다. 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그 주님이 물으십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너는 어떤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느냐? 떡과 잔을 받기 전에 영상을 보겠습니다. -천관웅씨의 겸손의 왕 뮤직 비디오... 3분 38초짜리.... 그리고 떡을 나눈다. 잔을 받는다. 그리고 기도하자. 주님의 물음 앞에 정직하기 원합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내 마음에서 죽인 아벨! 그를 찾아 회복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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