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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파도타기 이병수목사 2009-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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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4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사도행전 16:11-14; 23-34

제목:빌립보서 강해(1)-성령의 파도타기

바다에 파도가 많이 이는 날 사람들이 서핑을 하는 것을 봅니다. 서핑을 하려면 파도가 있어야 합니다. 파도 없이 파도타기를 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일도 성령의 파도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은 바람 같은 성령님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바람이 불지 않으면 우리들이 아무리 계획을 잘 세우고, 연구 분석하고, 인간적으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최선을 다해도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항상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에는 상상 할 수 없는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바울은 사역의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바울의 사역의 승리 원인이 무엇입니까? 성령의 파도를 탔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 결국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승리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말씀은 빌립보 교회를 개척하게 된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를 세우는 일도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에서도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서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먼저 빌립보서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빌립보 교회가 어떻게 세워졌는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먼저 보는 것입니다.

1.먼저 빌립보 교회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바울과 성령님이 어떻게 동역을 해 나가시는가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이 원리는 우리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할 때에 내 힘만으로 하면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계획하고, 준비하고, 완벽하게 실행해도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파도를 타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일할 것인가?에 하는 것입니다. 성령과 동역하는 원리를 나누기 원합니다.

(1)먼저 기도보다 성령보다 앞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덧입는 길은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기도하는 것입니다.

종종 주보나 신앙인들의 인용글 가운데 ‘기도보다 성령보다 앞서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내 판단이나 내 생각, 내 결정이 먼저 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보다 성령보다 앞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수동적으로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도만큼 적극적인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잠시 기도가 어떤 능력이 있는가? 기도의 대가라는 E.M 바운즈를 통해서 들어보기 원합니다. ⓵먼저 E.M 바운즈는 '응답 받기 전에는 결코 무릎을 펴지마라'고 합니다. 주님도 그렇고, 사도 바울도 그렇고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뜨겁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의 뜨거움을 보시고, 응답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헌데 우리는 결심이 약하고, 참을성이 없습니다. 영적으로 소심합니다. 그래서 뜨겁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응답 받기 전에 기도의 무릎을 펴 버리고 맙니다. 한 번 기도하면 30분, 1시간씩 기도하십시오.

⓶또한 성도들의 기도는 천사들을 정신없이 바쁘게 한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성도들의 기도를 담아서 하나님께로 가져가는 일입니다. 헌데 요즘 천사들은 너무 한가하답니다. 천사들을 정신 없이 바쁘게 만들어야 합니다. ⓷또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보다 기도가 더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기도한 사람은 죽을 수 있지만, 그가 드린 기도는 계속 남아 결국 응답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기도는 우리가 이 땅을 떠나도 여전히 남아서 반드시 응답될 것입니다. 기도를 남기고 가는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빌립보 교회를 세운 바울도 기도보다 성령보다 앞서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기도보다 성령보다 앞서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합니까?

(1)먼저 사람 편에서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만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 편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기도를 앞세우면 사람편에서 어떤 일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아니 성령께서 순간 순감마다 간섭해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먼저 바울은 더베와 루스드라에서 좋은 전도의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16장 5절입니다.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또한 루스드라에서 일평생 믿고 의지할 동역자인 디모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선교에 날개를 달아줄 탁월한 제자였습니다. 얼마나 바울의 마음이 기뻤겠습니까?

/사실 바울은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분명한 선교전략을 갖고 일을 했습니다. 바울의 선교전략은 어느 도시에 가든지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흩어진 유대인들은 남자 10명만 되면 회당을 세웠습니다. 바울은 거기에서 유대인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해서 회심자를 얻어 동역한다는 전략이었습니다.

/또한 복음을 위해서라면 생명도 내놓고 전할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보십시오.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완벽한 준비를 한 것입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한다고 사람이 해야 할 준비를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2)그리고 인간 편에서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고 난 뒤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바울은 어떤 계획을 세웠습니까? 탄력을 받아서 더 깊히 아시아로 가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헌데 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길이 열리지 않은 이유는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백방으로 길을 열어보려고 했지만, 열리지 않자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6장 6-7절에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뭐라고 합니까?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않았다’고 합니다. 성령님이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께서 원하시지 않는구나!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해석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길을 인도하시는 이는 ‘내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이 계획하나 그 일을 이루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예)1.다윗은 하나님을 위해서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했겠습니까? 그리고 최선을 해서 준비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짓는 일이 잘못된 일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교회를 세우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살아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가 군복무시절 교회를 건축할 때 파격적인 조건으로 교회를 지어준 회사가 있습니다. 신성토건이라는 회사였습니다. 이 회사 회장님은 하나님께 교회를 100개 지어드리는 것을 소명으로 알고 살아가는 분입니다. 이 일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윗도 성전을 짓고 싶은 마음에 최선을 다해서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2.그런데 자신의 기대와 하나님의 뜻이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성전을 짓지 말라고 하십니다.

3.이제는 다윗의 결정이 남았습니다. 자신의 기대와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다윗은 과감하게 자신의 뜻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요? 다윗도 기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성령께서 길을 인도하시고, 뜻을 알게 해 주십니다. 기도하면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니다.

 

만약에 바울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알지 못하고, 고집을 부려서 아시아로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바울과 동역하다가 문제가 있어서 바울과 헤어져서 아시아로 복음을 전하러 간 인격이 훌륭한 바나바가 있습니다. 헌데 재미있는 것은 그 뒤로 바나바의 사역은 성경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소 아시아 지역으로 거기서 유럽으로 가고 나중에 아시아로 전해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던 것입니다. 이 성령님의 흐름을 바울은 잘 간파했습니다. 왜요? 기도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적용)사랑하는 여러분! 무슨 일을 하든지 기도보다 앞서지 마십시오. 기도를 앞세우면 성령님이 앞서 행하십니다. 빌립보서의 배경이 되는 빌립보 교회는 철저하게 사람 편에서의 수고와 하나님 편에서의 도우심이 함께 함으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2)둘째로 성령님과 동역하는 원리는 성령님은 우리의 고난도 들어 쓰신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을 드렸듯이 사도 바울은 명실상부하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성령이 막으셨습니다. 결국은 드로아까지 오게 됩니다. 드로아는 터키의 고대도시 트로이를 말합니다. 트로이 목마로 유명한 곳입니다. 드로아에 도착한 바울은 어느 날 밤에 마게도냐 한 사람이 환상 중에 나타나서 이리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달라는 환상을 봅니다. 그리고 즉시 주님의 뜻임을 깨닫습니다.

10절에서 “바울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의 순종을 보십시오. ‘곧’ ‘즉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까지는 충분히 기다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나면 즉시 행동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도시에 왔습니다. 그런데 빌립보에서의 복음 전도는 바울과 실라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자기들에게 오라고 손짓하는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고 배를 타고 빌립보에 왔는데 그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더욱이 바울의 선교전략기지인 회당도 빌립보에는 없었습니다. 그만큼 유대인들이 살고 있지 않은 곳입니다. 오히려 바울과 실라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귀신들린 여종의 반대였습니다.

(적용)참 이럴 때는 당황스럽지 않습니까? 환상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 확신하고 순종하여 왔는데, 상황은 전혀 아닌 경우입니다. 이왕이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왔으니 모든 형편이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져야 역시 하나님이 하셨구나! 할 것입니다. 헌데 ‘정말 하나님이 인도하신 것 맞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은 확실한 건가?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는 건가?’ 헤갈 릴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테스트입니다. 충분히 기도하고 일을 진행합니다. 그런데도 길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더 어려운 일들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100프로입니다. 하나님의 시험입니다.

귀신들린 여종은 바울과 실라를 따라다니며 방해를 합니다. 처음에는 바울은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일에 방해가 되자 예수님의 권능으로 여종에게 있는 귀신을 쫓아 버렸습니다. (적용)성도들에게는 이런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권능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자는 성령의 권능을 받고, 악한 마귀를 멸하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귀신이 나가자 여종은 더 이상 점을 칠 수 없습니다. 돈도 벌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수입원이 끊어진 것을 보고 여종의 주인들은 바울과 실라를 고발하고, 상관들이 심문도 하지 않고, 옷을 찢고 매로 치고, 깊은 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적용)

참으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기도했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여기까지 왔습니다. 헌데 결과는 어떻습니까? 당신의 영광을 나타낸 종들에게 고난이 웬 말입니까? 이런 상황에서 보통 사람 같으면 하나님께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이 도시에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순종한 결과는 최악입니다. 차라리 아시아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못합니다. 우리를 보십시오. 이게 뭡니까?”했을 것입니다.

헌데 바울과 실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하게 매를 맞고, 손과 발이 차꼬에 채여 깊은 옥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미래도 암담합니다. 헌데 이런 고난 속에서 이들은 기도와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24-25절입니다.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한 밤 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 수들이 듣더라”

(저를 보세요.)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기도와 찬송이 나올 수 있을까요? 모르면 몰라도 바울과 실라의 마음 속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 기쁨은 성령이 주시는 기쁨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환경에서 오는 것입니다. 헌데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확신과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샘물이 터지듯 주시는 기쁨입니다.

(적용)지금 여러분의 삶이 지옥 같은 삶입니까? 어려운 자리입니까? 그렇다면 바울과 실라 처럼 거기를 교회로 만드십시오. 천국으로 만드십시오. 어떻게요?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운 자가 있느냐 저는 찬양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도와 찬송이 울려 퍼지면 거기는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헌데 불평하고 원망하면 천국 같은 곳도 지옥이 됩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은 기도하게 하시고, 찬송하게 하십니다.

더 놀라운 것은 기도와 찬송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강력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 옥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손과 발에 채인 차꼬가 풀렸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결국 간수와 간수 집안의 식구들이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에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억울해 하고, 불평하고, 원망을 했다면 간수와 그의 가족들을 구원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헌데 이들은 매를 맞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극한 상황속에서도 기도와 찬송을 잊지 않았습니다. 오늘 성경은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송 소리를 같은 죄수들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간수들도 들었을 것입니다. 29-31절을 다함께 받들어 읽겠습니다. “ ”

결론

(1)우리가 여기서 알게 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내 생각, 내 판단, 내 계획, 내 고집대로 하는 일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성령의 파도를 타야 합니다. 기도할 때 내 뜻을 내려놓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지금도 성령님은 우리와 동행하시고, 놀라운 능력으로 풍성한 열매들을 거두게 하십니다.

(2)또한 성령의 능력으로 악한 마귀를 물리쳐야 합니다. 성도는 영적인 권세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명령하여 승리해야 합니다.

(3)그리고 충분히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서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난을 당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시험입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간섭하심과 인도하심을 믿고 나갈 때 기적을 베푸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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