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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병수목사 201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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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31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창세기 1:31

제목: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의 창조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장을 고른다면 두 문장입니다. 하나는 창세기 1장을 시작하는 1절의 말씀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문장은 끝절 31절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말씀의 의미를 살펴보므로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크게 두 가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1.첫째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는 말씀은 창조목적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물건이든지 목적이 있습니다. 여기 마이크가 있습니다. 이 마이크의 목적은 작은 소리를 크게 울려 퍼지게 하여 많은 사람들이 잘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마이크가 마이크 다우려면 목적대로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헌데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 아무 쓸모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하나님이 목적을 갖고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아무 목적없이 만든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나는 우연히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원하시는 목적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조금도 낭비됨 없이 잘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낙심하거나, 인생을 포기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릭 워렌 목사의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에서 잘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크게 다섯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①첫번째 목적: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기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웃게 하시는 분입니다. (예화)아브라함 100세, 사라가 90세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했을 때 너무 기가 막혀서 이들은 웃었습니다. 말도 안 되기에 웃었습니다. 불신의 웃음이었습니다. 헌데 하나님은 전능하신 능력으로 아들 이삭을 주었습니다. 정말 웃게 하셨습니다. 아들을 낳은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잔치를 벌일 때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이 진정으로 우리를 웃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웃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죄와 사망으로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공포와 두려움으로 일그러진 우리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헌데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심으로 그를 믿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또한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 안에 평안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웃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을 웃게 해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는 목적입니다. ②두번째 목적: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로서 자녀됨을 누려야 합니다. 고아같이 살아서는 안됩니다. 탕자처럼 살아서도 안됩니다. 큰 형처럼 살아서도 안됩니다. 친밀한 사랑을 나누는 가족같이 살아야 합니다. (중고등부 수련회 부흥회에서 엄마와 아버지가 자식을 끌어안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또 부모된 마음으로 아이들을 안고 기도해주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③세번째 목적: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다. 사람은 하나님처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닮도록 만들었습니다. ④네번째 목적: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지금의 모습으로 지음 받 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친히 보여주신 모습처럼 섬김으로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⑤다섯번째 목적:우리는 사명을 위해 지음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화)하나님의 사람들은 사명을 위해서 웨슬레는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고 외쳤습니다. 찰스 스펄전 목사는 ‘나는 타오르는 불꽃같이 살겠다’고 외쳤고, 조지 휠필드 목사는 “나는 녹슬어 없어지기보다는 닳아서 없어지기를 원한다.” 고 했습니다. 사명을 위해서 사는 인생, 주님께 붙잡혀 쓰임받는 인생이 아름다운 인생인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는 말씀은 피조물들이 창조자 하나님의 뜻대로 목적대로 쓰임 받을 때 하시는 말씀입니다.

(왜 둘째 날에는 이 말이 없을까?)

헌데 이상한 점이 하나있습니다. 하나님이 6일간의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난 뒤에 후렴구처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총 7번에 걸쳐서 이 말씀이 나옵니다. 헌데 특이한 것은 둘째 날에는 이 말이 없습니다. 둘째 날에는 하늘을 만드셨습니다. 지구의 대기권을 만드시고, 물을 나누셨습니다. 하늘 위에 물과 하늘 아래의 물로 나누셨습니다.

왜 둘째 날 하늘을 만드시고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는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을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사실입니다. 허나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습니다. 다만 추측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각할 때, 후에 잠시나마 하늘을 악한 마귀가 지배하게 될 것을 아셨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천사장 루시엘과 그를 따르는 천사들이 타락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쫓겨났습니다. 타락한 천사들이 유리방황하다가 머문 곳이 이 지구였습니다. 이곳엔 하나님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기에 이 땅을 선택한 것입니다. 결국 악한 마귀와 악한 영들의 공격을 받고, 벌어지지 말아야 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람이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그 죄로 말미암아 죄를 갖게 되었고, 결국 죽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우리 사람들은 이미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영적인 죽음이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악한 마귀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다음 말씀입니다.) /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여기에서 악한 마귀를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공중이란 둘째 날에 만드신 대기권 즉 하늘을 말합니다. 잠시잠간이지만, 악한 마귀는 공중의 권세를 잡고, 하늘 아래의 사람들을 유혹하고, 지배하고,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6장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심판하셨습니까? 물로 심판하셨습니다. 하늘에 구멍이 나면서 하늘 위에 물이 쏟아져 세상이 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기대와 특별한 섭리가운데서 지음 받은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서 결국 ‘하늘’이 심판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화)노벨이라는 사람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고, 인류발전에 기여하기를 기대했습니다. 헌데 다이너마이트를 갖고, 전쟁무기를 개발하고, 수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곳에 사용되는 것을 보고, 너무나 후회를 했습니다. 만든 사람은 사람을 살리고, 유익하게 사용하길 바라는 목적으로 만들었는데, 사람의 욕심은 다이너마이트를 악의 도구로 사용하고, 살리는 곳이 아니라 죽이는 곳에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만든 사람의 기대와 목적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을 때 차라리 그것을 만들지 말았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자신들이 잘못 사용하면서 ‘누가 이런 것을 만들어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느냐?’고 오히려 원망합니다. 이 지경이 되면 더 이상 다이너마이트는 노벨에게 영광이 아니라 수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벨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고, 사죄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사재를 들여 노벨 평화상을 만들게 된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심정이 이와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대로, 창조목적대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헌데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저버리고, 죄악된 길을 간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은 듣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입니까?’ 하나님을 후회하게 해드리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고,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지 않는 곳은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깃들인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리 미래교회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둘째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의 의미는 살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신다, 하나님이 좋아하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표현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사람이 직접 경험하여 고백한 곳이 창세기 16장입니다. 사라가 아이가 없었습니다. 기다리다 못해 몸종인 하갈에게 남편 아브라함과 동침하여 대신 아이를 낳게 했습니다. 임신한 사실을 안 하갈은 주인 사라를 무시했습니다. 하갈이 조금 어리석습니다. 조금 신중하게 행동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주인 사라에게 학대를 받습니다. 참다 못한 하갈은 도망을 갑니다. 임신한 몸으로 광야로 도망을 쳤지만 갈 이 없습니다. 뜨거운 광야 길 에서 방황하다가 지쳐서 쓰러질 지경이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하갈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주인 사라에게 돌아가서 복종하라.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 아들은 장차 큰 나라가 될 것이다. 그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13절에서 하갈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최초로 사람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난 뒤에 부른 이름이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적용)우리들이 종종 이런 나눔을 갖습니다. 내가 만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대답은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을 고백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갈은 내가 만난 하나님은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과 연결을 시키면 ‘보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보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생각해 주시는 하나님, 보호하시는 하나님, 염려하시는 하나님, 관심을 갖고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갈도 살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갈이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하갈을 찾아오셨습니다. 자신의 형편을 말씀드린 적도 없습니다. 헌데 미천한 하갈도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자비를 베푸시고, 하갈의 생명과 그의 후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계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갈은 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을 ‘브엘라해 로이’ 즉 엘=하나님, 로이=살피신다 /살피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잘못된 두 가지입장이 있었습니다. 범신론과 이신론입니다. 범신론은 모든 만물 속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자연 만물이 다 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연만물의 주인이시지, 자연만물이 신은 아닙니다. 또 이신론은 하나님은 자연만물을 만드시고, 멀리 떨어져 지켜만 보고 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역사 속에 오셔서 지켜보시고, 도와주시고, 인도하시고,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고백할 하나님은 살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의 예2-아브라함)

아브라함이 고백한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 = 여호와는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말이고, 이레는 준비하신다.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 준비하신다는 말입니다. ‘이레’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①하나는 미리 본다는 뜻이고요 ②둘째가 미리 준비하신다는 뜻입니다. 미리 보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미리 준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미리 아시고 내 필요한 것을 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적용)그러므로 우리들은 결코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염려는 마음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초점이 하나가 아니라 더불 포커스입니다. 초점이 하나여야지 두 개이면 정상적으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밖에 보지를 못합니다. 내일도 보지를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미리 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미리보시고, 미리 준비해 주실 것을 믿고, 맡기고 살아 가는 것입니다. 절대로 염려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염려가 왜 나쁜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염려는 불신앙으로 가기 때문에 하면 안된다. 염려는 전염성이 강해서 다른 사람들도 죄를 짓게 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해서 어린 양을 미리 준비해 주셔서 이삭 대신 드리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2000년 전에 우리를 위해서 어린 양을 준비해 주셔서 인류를 구원하신 구원사건의 예표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성서를 보는 눈-기초성경공부에서 나누었다. 성경 66권은 오직 예수님으로 풀어야 한다고... 구약의 사건과 말씀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는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요)

 

에베소서에서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창세전부터 하나님은 나를 아시고, 예정하시고, 이 땅에 보내시고, 때가 되어 구원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주실 뿐 아니라 우리의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숫 양을 미리 아시고, 준비해 주시듯이 우리의 모든 것을 미리 보시고, 준비하시는 하나님임을 믿어야 합니다.

로마서 8장 31-32절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만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빌립보서 4장 19절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예화)빅터 프랭클린 이야기

독일의 아우슈비츠 포로 수용소에 프랭클린이라는 사람이 갇히게 되었습니다. 입고 있던 모든 옷을 빼앗기고 죄수복을 받아들었습니다. 갈아 입은 죄수복 안에 조금만 쪽지가 있었습니다. 성경구절이 기록되어 있는 쪽지였습니다. 신명기 6:4-5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하신 여호와이시니 /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을 사랑하라 ”

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보는 순간 ‘하나님은 여기에도 계시는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시고 계시는 구나!’ 이 사실을 깨닫고 결심을 했습니다. ‘이 비참한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비참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 몸은 자유를 빼겼지만 마음은 자유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원망하는 대신 차라리 할 수 있는 일에 순종을 하자. 절망하는 대신 믿음을 갖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여기를 연구실로 삼자, 극한 절망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그 태도에 따라서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연구하고, 깨달은 것을 갖고 석방 후에 쓴 책이 <삶의 의미를 찾아서>라는 책이다. 우리의 삶이 의미가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보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적용)하나님이 다 살피시고 보고 계시기에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내 모든 삶을 맡기고 주를 향한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는 신실한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독교 신앙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살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 마음을 보시고, 내 가정을 보시고, 내 인생을 보시는 분이신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되길 바라십니다. 심판하시려고 보시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시려고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되도록 애쓰시고, 도우시고, 보호하시고, 개입하시고, 인도하시고 지키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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