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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 이병수목사 201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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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4일 주일 낮 예배설교(부활주일)

성경:빌립보서 2:1-11

제목:부활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

이 땅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마치 한 그루 나무와 같습니다. 나무는 (1)심겨진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힘들고 마음에 안든다고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신앙인들은 하나님이 있으라고 한 자리에 그대로 있을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악인의 꾀를 따르지 말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오직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하나님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만드실 때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있으라하시니 그대로 되니라”고 했습니다.

(2)또한 나무는 하늘을 향해서 날마다 자라갑니다. 날마다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가야 합니다. 나무는 하늘에서 공급해 주시는 것으로 삽니다. 햇빛도 비도 하늘에서 주셔야 자라갑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3)그런가 하면 하늘을 바라보고 살아가지만,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삽니다. 나무는 흙을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정, 하나님이 주신 직장, 특히 하나님이 주신 교회를 절대로 떠나지 않습니다. 깊히 뿌리 내리고 산다.

(4)넷째는 늘 한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절대로 지루하지 않게 삽니다. 늘 계절을 따라 패션을 달리합니다. 봄이면 연록색으로 시작해서 녹색으로 옷을 갈아입습니다. 여름이면 꽃이 핍니다. 가을이면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겨울이면 자기를 온전히 비워냅니다. 새로움을 위해서 옛 것을 다 벗어 버립니다.

우리 성도들은 나무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심어놓은 그 자리에서 현실에 깊히 뿌리를 내리고 살지만, 날마다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에서 공급하시는 것으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주신 것으로 시절을 좇아 많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것이 성도들의 삶입니다.

 

오늘은 영광의 부활주일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예수 부활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믿는 자의 전부, 믿는 자의 자존심! 그 자체입니다. 예수님 부활이 없다면 우리도 부활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부활하지 못한다면 기독교인처럼 불쌍한 사람들은 없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한평생 씨름하며 삽니까? 이 땅의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참고 견디는 것은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사는 것입니다. 부활이 있기 때문에 손해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부활이 있기 때문에 더 욕심을 내지 않고, 나누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부활이 있기 때문에 져 줄줄도 알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육신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사건이 거짓이었다면, 절대로 2000년을 이어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지금도 부활의 신앙을 갖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땅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가지려고 합니다. 더 높아지려고 합니다. 잃어버리면 다 잃었다고 절망합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더 절망을 합니다. 왜요? 이 땅에 전부인데, 이 땅에서 누리지를 못하니 얼마나 억울합니까?

그러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죽음이 절대 끝이 아닙니다. 죽음 이후에 새 세상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이 땅은 영원히 살 곳이 아니기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욕망과 탐욕에 브레이크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예화)예전에 제가 일본으로 해외선교를 간적이 있습니다. 이틀 뒤면 귀국을 해야 합니다. 선교일정을 마치고 저녁에는 쇼핑을 갑니다. 만약에 제가 쇼핑을 가서 밥해 먹어야 하니까, 밥솥을 사고, 쌀도 한 달 걱정 없이 먹을 만큼 사고, 면도기도 1년 쓸 것을 삽니다. 계절 바뀔 것을 생각해서 여러 옷도 산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저 사람은 여기서 오래 살려나 보다! 할 것입니다. 이틀 뒷면 귀국할 사람이 한 달 살 것처럼, 일년을 살 것처럼 더 갖으려고 한다면 얼마나 우습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들이 지금 그렇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조금 있으면 본국인 천국으로 가야 하는데, 이 땅에서 아주 눌러 살 것처럼 욕심을 갖고 더 가지려고 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것입니까?

이 틀 뒤에 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무엇을 사겠습니까? 고국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을 위해서 선물을 사겠지요? 마찬가지로 부활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 땅에 뿌리를 두고 열심히 살지만, 이 땅에 영원히 살 것처럼 땅만 바라보고 살지는 않습니다. 땅에서 살지만, 늘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에 보화를 쌓고, 하늘을 향해서 자라가는 자들이 부활의 사람인 줄 믿습니다.

오늘 성경은 부활의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5절의 말씀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부활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

1. 첫 번째는 오직 예수만으로 만족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는 말씀을 보면 사람에게 가장 깊은 곳이 마음입니다. 말과 행동은 생각에서 나옵니다. 생각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마음이냐?에 따라서 생각이 결정되고, 행동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생각은 배우면 바뀝니다. 헌데 정말 안 바뀌는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거칠면 생각도 거칠고, 행동도 거칩니다. (예)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음을 한탄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창세기 6장 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왜 범죄가 많이 발생합니까? 생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 악한 생각은 죄에 오염된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늘 억울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생각도 말도 행동도 그대로 나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땅에서 지킬 것이 많지만, 너희는 무엇보다도 ‘마음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예)일단 마음이 상하면 생각은 알아요?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도 알아요? 헌데 마음 따라서 생각과 행동이 갑니다.

(적용)절대로 마음이 눌리면 안됩니다. 두려움에 눌리지 말고, 섭섭함에 눌리지 말고, 억울함에 눌리지 말고, 저주에 눌리지 말고, 미움에 눌리지 말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4장 18-19절에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설명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오직 눌린 마음을 자유케 하는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뿐인줄 믿습니다.

(예화)한 자매는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집안이 아들을 기다리며 셋째를 낳았다는데 딸입니다. 딸, 딸, 딸. 어느 날인가? 방안에서 할머니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셋째 저것은 태어나지 말아야 할 것이 태어났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에 마음에 박혔습니다. 마음이 눌려버렸습니다.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태어났다고...’ 무슨 일에 실패하면 ‘내가 하는 게 다 그렇지 뭐, 괜히 태어나서 부담만 주는구나!’라며 자신을 저주했습니다. 이것은 악한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받으시고, 내 대신 죽어주시고,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모든 눌림으로부터 자유케 되었습니다.

그래서 찬양도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가장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받고 있지요”후렴엔 “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세상은 우리에게 뭐라고 합니까? ‘넌 루저다(실패자다), 넌 못났다. 넌 행복하지 않다. 광고에 나오는 것을 가져야 행복한거다.’ 누가 그래요? 이것은 악한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태초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은 기쁘시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랍니다.(아멘도 안하시네!)

((예화)축복송과 관련하여 여러분도 아시는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교회 권사님이 찬송도 잘하시고, 기도발도 좋으시고 해서 교회 사람들이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이 권사님에게 기도 부탁을 하는 겁니다. 그 날도 어느 집사님 가정에 딸이 아파서 기도 부탁을 받고 갔는데,,,

기도를 하기 전에 찬송을 늘 먼저 하던 권사님이 바로 앞에 마귀가 보이는 거예요. 순간 당황해서 평소 알고 있던 노래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 겁니다. 고민하는 중에 문득 찬송이 떠올라 부른 찬송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그랬더니 마귀가 은혜를 받은 거예요. 물러가지는 않고 마귀가 손을 앞으로 내밀면서 답례로 찬송을 하는 거예요.

"감사해요~~~ 깨닫지 못했었는데~~~~~^^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대로 마음이 눌리지 말기 바랍니다. 생각에서부터 패배하지 않기 바랍니다. ‘그래 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야! 난 소중해!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은 날 사랑하셔! 날 위해 예수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망권세 이기시고 다시 부활하셨어’

오직 예수님만으로 채우시고, 모든 억눌림으로부터 자유케 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2.둘째로 부활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아무리 그럴 듯 해 보여도 예수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화)예수천당 불신지옥으로 유명한 최권능 목사님이 있습니다. 이 분이 일본군들에게 끌려가서 고문을 받을 때 몸을 대기만 하면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쳤습니다. 일본군이 넌 할 줄 아는 말이 ‘예수천당 불신지옥’ 밖에 없느냐? 그러자 최권능 목사님은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 ‘내 몸 안에는 예수가 꽉 차 있어서 내 몸 어디를 건들려도 예수가 튀어나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로 사는 자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채운 사람의 모습입니다. 내 안에 오직 예수님만으로 꽉 차 있어서 말할 때마다 예수가 나오고, 생각할 때마다, 움직일 때마다, 의식, 무의식중에라도 예수이 배어 나와야 부활의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속기 쉬운 것이 무엇입니까? 정말 그럴 듯 해보입니다. 멋져 보입니다. 옳아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옳으면 예수님이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불신자들 중에도 옳고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가 있느냐?입니다. 이것이 절대기준인 것입니다.

(예화1)지난 주일에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법정스님이 아무리 고매한 인격과 숭고한 삶을 살았다고 하지만, 예수님이 없는 한 거기까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감동케 하고, 멋있게 살았지만, 예수님이 없는 죽음이기에 거기까지인 것입니다.

(예화2)알버트 슈바이처를 잘 아시지요. 그는 철학박사요 신학박사요 오르간 연주가요 의사입니다. 편안한 삶을 뒤로하고 아프리카로 들어가 많은 사람들을 섬긴 사람입니다. 얼마나 고매한 인격과 삶을 살았습니까? 인류애의 정신을 잘 보여준 분입니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교회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예수가 없습니다. 그는 신학자로도 유명합니다. 헌데 그의 논문에서 역사적인 예수에 대한 연구를 했습니다. 결국 슈바이처가 예수님에 대해서 내린 결론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는 사회부적응자다. 현실의 삶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시대착란증에 걸린 자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십자가를 조롱했습니다. 십자가는 실패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아무리 인류에 봉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지만, 예수는 없었습니다. 슈바이처의 삶은 가장 예수를 닮은 모습으로 살았지만, 자신의 죄를 씻어주는 십자가를 조롱하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역사적으로 믿지 않았기에 결국은 실패한 인생인 것입니다.

(적용)우리는 어떻게 보면 법정스님이나 슈바이처에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내 마음 안에 있는 한 우리는 승리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하는 한 우리는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3.셋째로 부활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예수님의 생애를 재현하는 것입니다. (성서의 예)가장 예수님을 많이 닮고,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스데반 집사입니다. 스데반 집사 마음에는 예수님이 가득했습니다. 스데반은 예수님의 생애를 재현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스데반집사의 꿈은 예수처럼 살아보는 것입니다. 적당히 믿다가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데반이 돌아 맞아 죽어갈 때를 보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와 똑같습니다. 사도행전 7장 59-60절에 보면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철저한 자기 부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철저한 자기 부인이었습니다. 십자가 밑에 저들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그러면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를 철저히 부인하셨습니다. 얼마든지 내려오실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을 부인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스데반도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살려주십시오. 난 억울합니다. 나를 잊으십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어떻게 내가 돌에 맞아 죽게 내버려둡니까?’라고 했을 것입니다. 헌데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철저하게 자기를 부인하는 모습입니다. 오직 주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절대 감사요 절대 맡김이요 절대 믿음입니다.

(적용)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되 철저히 자아를 부정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하나님께 축복받을 행동은 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시지 않는다고 실망하면 안됩니다. 주일성수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금식하며 긱도해 보지 않으면서... 십일조를 온전히 드려보지도 않았으면서 복을 달라고 하면 안됩니다. 철저하게 자신을 부인할 때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조건적인지 모릅니다. 뭐 이유가 많습니다. 해달라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삼아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며, 천국을 예비해 주셨는데, 해주신 것은 기억도 하지 못하면서... 아예 여기에서 눌러 살 것처럼 달라고만 하면 안됩니다.

또 스데반은 절대용서를 선포합니다.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라는 모습과 똑같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본받아 용서의 삶을 산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으로 산다면, 예수의 생애를 삶의 한 부분이라도 닮아 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조금이나마 닮기위해서 자신을 부인한 한 분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예화)저는 신대원 2,3학년 때 서울 신촌장로교회에서 교육전도사를 했습니다. 그 때 담임목사님이 오창학 목사입니다. 오 목사님께서 저희 주례도 해주시고, 큰 아이 유아세례도 주셨습니다. 오 목사님께서 작년 12월 31일부로 은퇴하셨습니다. 헌데 은퇴미담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신촌교회는 장년 3000명 가량 모이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에서 22년을 시무하시고, 원로목사님이 되셨습니다. 원로목사가 되면서 교회는 아파트와 지금의 사례비 70%를 주시기로 했다고 합니다. 22년 퇴직금과 아파트 구입비를 합치니 약 10억이 되었다고 합니다. 헌데 은퇴하면서 받은 퇴직금도 은퇴 후 살도록 교회에서 사 준 아파트 소유권을 교회로 넘겼다고 합니다. 대신 살아 있는 동안만 그 아파트에서 살기로 했답니다.

이 사실을 밝히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설교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먼저 교회에 너무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내 생애 언제 10억을 손에 넣어 볼 수 있겠느냐? "42년의 목회를 잘 마친 것도 감사한데 이런 은혜를 입으니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내 생애 언제 하나님께 10억을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있겠는가? 이것을 드릴 수 있어서 감사하다며 일체를 헌금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제 가슴에 깊히 와 닿습니다. "하나님께서 공중에 나는 새를 먹여주시고 들의 백합화를 아름다운 옷으로 입혀 주시는데 걱정할 게 뭐 있느냐? 예수님께서도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는데 저는 은퇴 후에도 살 집이 있고, 생활비도 교회에서 나오니 더 욕심 부릴 게 없지요. 저에겐 아파트보다 더 좋은 천당(天堂 · 하늘의 집)이 예비돼 있잖아요?" 그리고 이렇게 삶의 한 부분이라도 예수님의 생애를 흉내 낼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부활의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 아닙니까?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까? 부활주일을 맞아서 결단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삶의 한 부분이라도 주님의 생애를 재현해 보고 싶다는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오신 모든 여러분! 결코 이 땅이 전부가 아닙니다. 끝이 아닙니다. 죽음 이후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이 땅은 80년, 90년이면 끝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육신은 죽으면 무덤으로 갑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영혼은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육신은 무덤으로 갑니다. 영혼은 천국으로 갑니다. 그리고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죽은 육신은 다시 일어나 영혼과 만나 영원한 부활을 갖는 것입니다.

이 땅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사시지만, 절대로 땅을 바라보고 살지는 마십시오.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을 향해서 날마다 자라가야 합니다. / 부활의 사람은 오직 예수로 만족하고, 예수님으로 가득채우고, 예수님만을 나타내며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결국 Sad Ending입니다. Dead Ending으로 끝납니다. 지난 번에 아주 재미있게 본 지붕 뚫고 하이킥이 있습니다. 보셨어요? 헌데 마직막 회 때문에 문제입니다. 가정부 세경과 의사 지훈이 결국은 죽는 것으로 마지막이 장식되었습니다. 왜 둘을 죽이냐? 이것이 말이되냐?면서 논쟁이 되었습니다. 헌데 아셔야 합니다. 이것은 메시지입니다. 세상은 어짜피 Dead Ending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과정은 어떻든지 결국은 Happy Ending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고통이었지만, 부활로 끝났기에 우리들도 결국은 Happy Ending인 것입니다. 진심으로 원하오니 부활의 사람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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