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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의 길, 아벨의 길 이병수목사 2010-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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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8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창세기 4:1-10

제목:가인의 길, 아벨의 길

부모님들의 가장 간절한 소원이 무엇일까요? 모르면 몰라도 자녀들의 문제일 것입니다. 자신들보다 자녀들이 더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가 잘 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 주는 것이 부모님들의 마음입니다. (예)본인이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서 소 팔고, 땅 팔아서라도 가르치던 때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자녀들이 이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녀들과 갈등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배후에는 ‘너희들은 나처럼 살아서는 안된다. 열심히 공부해서 나보다 더 훌륭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었습니다. 특히 부모님들이 뼈아픈 실수를 저질러서 실패한 경험이 있다면 더 더욱 자녀들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꼭 그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므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치러야 할 대가는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자녀를 낳았습니다. 가인과 아벨입니다. 가인과 아벨을 바라보는 아담의 마음에는 ‘너희들은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간절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실패담을 전해주면서 어릴 때부터 순종의 삶을 살도록 신경을 썼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님들의 바램과는 달리 끔찍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계획적으로 돌로 쳐 죽이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때 아담과 하와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범죄한 것보다 더 괴로웠을 것입니다. 두 아들들을 동시에 다 잃게 된 것 아닙니까? 아벨은 죽었고, 가인은 동생을 죽였으니 보모님의 낯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결국은 부모 곁을 떠났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사건을 통해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첫째는 죄책감의 문제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말 할 수 없는 죄책감을 갖았을 것입니다. 가인의 범죄를 보면서 가인을 원망하기 보다, 이게 다 나때문이라는 자책감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했으면 너희들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 중에도 자녀들로 인해서 죄책감을 갖는 분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자녀들이 그렇게 된 것이 다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차라리 내가 잘못되는 것이 낫지? 자녀들이 잘못되는 것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이란 찢어지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잘못된 일들이 다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자녀들이 저런 것은 다 내 죄 값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예수님의 말씀으로 위로를 받기 바랍니다. (성서의 예)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부모이 죄입니까? 아니면 본인의 죄때문입니까?’ 그 때에 주님은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부모의 죄도 아니고, 본인의 죄도 아니다. 오직 이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을 나타내가 위함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너희들에게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리고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눈을 고쳐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눈을 갖으십시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악한 마귀의 생각에 지배되지 말고, 자유함을 누리기 바랍니다. 이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나타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길 바랍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고통을 치료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나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대신 그 문제를 갖고 주님 앞으로 나가십시오. 예수의 보혈을 의지하십시오. 은혜를 구하십시오. (적용)제발 근심하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근심하고 염려하는 것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근심하고 염려하는 것은 죄악의 씨앗입니다. 근심하고 염려하는 것은 악한 마귀에게 초청장을 보내는 것입니다. ‘나 지금 심히 근심하고 있다. 웰컴 마귀!’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근심하고 염려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근심하고 염려하면 속에 불만 생깁니다. 화병입니다. 그 열이 얼굴을 굳게 만듭니다. 목을 붓게 됩니다. 소화 장애를 일으킵니다. 만사에 의욕을 잃게 만듭니다. 근심하고 염려하는 것은 백해무익합니다. 근심 염려가 몰려오면 성전에 나와서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예레미야 29장 12-13절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이 기도를 들을 것이요 /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먼저 제안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안한 것이기에 부도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부르짖을 권한이 있고, 하나님은 들어주실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오죽 답답하시면 하나님이 제안을 하셨겠습니까?

지금 근심, 염려 많으시지요? 성도님들에게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저도 잘 압니다. 그래서 저도 제가 회개할 사람처럼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책감에 시달리지 말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이 죄책감에 시달리길 원치 않습니다. 모든 근심과 염려를 주께 맡겨 버리십시오. 주님 앞에 나와서 소리쳐 기도해 보십시오. 마음에 기쁨이 회복될 것입니다.


2.또 하나는 죄의 권세가 얼마나 무서운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자식들만은 잘 되길 아담과 하와가 바랬지만, 자신들의 바램과는 달리 끔찍한 살인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확장성입니다. 죄는 눈덩이처럼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것입니다. 작은 거짓말 하나를 감추기 위해서 또 다른 거짓말을 해야 하고, 또 다른 거짓말을 하다보면 자꾸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걷잡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는 시작부터 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죄를 다스릴 수 있습니까? 7절에서 하나님은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제어장치를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자동차의 생명은 브레이크입니다. 어떤 자동차가 좋은 차입니까? 잘 달리는 자동차가 좋은 차입니까? 아닙니다. 제어장치가 뛰어난 것이 좋은 차입니다. 가인과 아벨! 이들이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어장치의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죄의 제어장치는 예배입니다.
예배의 성공자가 되면 죄악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매일 새벽예배, 주일 지나 수요예배, 그리고 금요예배, 주일 예배를 일주일 내내 곳곳에 디자인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배가 죄악을 이기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죄악을 이기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배려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배를 적게 드릴수록 죄악에 노출되어 유혹에 빠질 가능성은 더 많습니다. 죄를 이기는 길은 예배를 온전히 드리는 길입니다.

훗날 성경이 가인과 아벨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를 보기 원합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

우리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이들의 결정적인 차이는 예배에 있었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예배자였습니다. 우리는 가인하면 못된 불량배로 생각합니다.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모두 믿는 집안의 아들들이었습니다. 가인도 아벨도 다 신자였습니다. 둘 다 열심히 일을 하는 성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가인은 농삿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아벨은 목축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솔직히 농삿 일하고 목축일하고 누가 더 힘들까요? 쉽게 예를 들어서 돌짝 밭 개간해서 고추농사 짓는 게 힘듭니까? 우리 쳐놓고 염소, 닭 키우는게 힘듭니까? 제가 해봐서 아는데요? 농삿일이 훨씬 힘듭니다. 어떻게 보면 아벨보다 가인이 수고는 더 한 사람입니다.


헌데 왜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예배는 받으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본문 3-4절을 보겠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절요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고 했습니다.

예배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⓵예배는 삶입니다. 일주일의 삶이 동반되지 않는 주일 예배는 예배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세월이 지난 후에”라는 말은 하나님은 먼저 가인과 아벨의 삶을 보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6일 동안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다가 주일이기에 와서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라면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찬송을 하고, 기도를 하고, 헌금을 드려도 일주일의 우리 삶이 동반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제발 하나님을 쉽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성경은 ‘아벨과 그의 제물’ ‘가인과 그의 제물’이라고 합니다. 제물만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아벨과 가인 사람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예)일주일간의 삶이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삶이었습니까? 혹 누군가와 다투지는 않았습니까? 아직도 마음에 미움이 가득하지는 않습니까? 누군가를 억울하게 하지는 않았습니까? 말로 상처를 주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 것을 의지하지는 않았습니까? 생각 속에서 패배하지는 않았습니까? 꼭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받으십니다.


⓶또 예배에서 중요한 것은 제물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고, 아벨은 제물은 받으셨습니다. 가인이 드린 제물은 자신이 농사를 지은 농삿물입니다. 아벨이 드린 제물은 자신이 키운 양의 첫 새끼였습니다. 이 제물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제물은 드리는 사람의 마음과 믿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모든 예배에는 죄사함의 은총이 있습니다. 예배의 유익은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로 덮임 받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내리는 사죄의 은총을 받는 시간입니다. 헌데 구약의 제사제도에서 죄사함은 반드시 피 값이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서는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반드시 예배에는 피 흘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사람들의 죄를 대신 씻기 위해서 짐승을 잡아 드린 것입니다.

 

이렇게 정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최초의 아담의 죄를 사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창세기 3장)아담이 죄를 짓고 나자 부끄러워 가장 먼저 한 것이 무화과 나뭇잎으로 몸을 가린 것입니다. 헌데 사람이 자신의 허물을 가린들 얼마나 가리겠습니까? 아무리 사람이 노력한들 죄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안됩니다. / 그래서 하나님은 아무 죄 없는 짐승을 잡아서 아담과 하와를 덮어 주셨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 편에서는 희생을 치러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 아닙니까? 한 마리의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 아무 흠도 죄도 없으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누구든지 모든 죄가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더 감사한 것은 예수님의 피는 영원히 효과가 있어서 두 번 다시 짐승을 잡을 필요가 없습니다. 단번에 모든 죄를 영원히 씻어 주시는 능력의 보혈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자는 반드시 예수님의 보혈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능력을 믿어야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헌데 가인은 결국 예수의 보혈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피가 모든 죄를 씻는다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가인의 예배에는 피가 없습니다. 농삿물을 잔뜩 드렸다는 것은 자기 노력으로 나갔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시간입니다. 헌데 가인은 피는 없고, 자기가 노력해서 얻은 수확물만 드렸습니다. 자기 의만 살아 있는 것입니다. 예배는 내 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내세울 것이 뭐가 있습니까? 몸도 헌금도 드려야 하지만, 무엇보다 예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아담은 가인과 아벨에게 신신당부했을 것입니다. 모든 예배에는 피흘림이 있어야 한단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일러 주었을 것입니다. 레위기서를 보십시오. 왜 하나님이 제사종류, 어떤 경우엔 어떻게... 제물의 종류, 제물을 잡는 법 등등 자세하게 설명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내가 지시하는 대로, 내가 원하는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잘 들어야 산다)

아담은 우리 자식들만큼은 나처럼 실패하면 안된다는 부모의 마음으로 간절하게 부탁했을 것입니다. 자기의 실패담을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가죽옷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덮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할 것을 부탁했을 것입니다. / 헌데 가인은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엄마 하와가 아담의 말을 경솔히 듣고, 결국은 악한 마귀의 유혹에 넘어진 것처럼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았습니다.

잘 듣는 게 복입니다.

(성서의 예) 누가복음 11장에 보면 아주 귀한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중에 한 여인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소리를 칩니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이 말은 당신을 나은 어머니는 참 복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같이 잘 난 아들을 둔 어머니는 참으로 행복하겠네요?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요 인사입니다. 이렇게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만큼 행복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여인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 헌데 우리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행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랍니다.

여러분은 언제 행복하십니까? 여인처럼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때 행복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때 행복하십니까? / 이 세상의 것을 많이 갖으면 행복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많은 것이 행복하십니까? (솔직하게 무엇입니까? )

주님이 생각하는 행복과 우리들이 생각하는 행복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는 것이 행복입니다. 지금 이 시간 설교가 들리는 것이 행복한 것입니다. 왜냐면 말씀은 영원히 사는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들려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섣불리 행동하지 말고, 우왕좌왕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앉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들리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들려야 지킬 수 있습니다.

(성서의 예1)성경을 묵상하다가 듣는 것이 영생을 좌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가 있지 않습니까? 부자는 막상 지옥에 와 보니 너무 끔찍합니다. 그래서 남은 형제들이라도 지옥에 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간절하게 부탁을 합니다.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면 남은 형제들이 믿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런 일을 보면 우리 생각으로는 다 믿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보는 것으로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으면 안된다고 합니다. 듣는 것이 이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듣는 것을 실패하면 영생을 놓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정말 설교가 들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성서의 예2)명문가문이 있습니다. 사무엘 시절에 엘리 대제사장 가문입니다. 돈도 있고, 명예도 있고, 권세도 있는 집안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들을 불량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예배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삶은 고기를 상품가치가 없으니까 하나님 앞에 예배하기 전에 와서 생고기로 좋은 부분을 먼저 가지고 갑니다. 심지어는 성전에서 봉사하는 여인들을 성추행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혼을 내어도 듣지 않습니다. 사무엘상 2장 17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이것이 가인이 범한 죄였습니다. 예배를 무시한 것입니다. 헌데 가인이나, 엘리의 두 아들들이나 이 지경이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아담의 말, 아버지 엘리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헌데 엘리 제사장 밑에서 자라가는 어린 사무엘이 가장 먼저 훈련받은 것이 무엇입니까? 듣는 훈련입니다. 처음에는 분별을 못해서 하나님이 부르시는데도 엘리에게 쫓아 갑니다. 그 때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시는 줄 알고 엘리제사장이 가르쳐 줍니다. “다시 가서 누워 있다가 너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하라고 했습니다.


(결론)자녀들을 잘 키우고 싶으십니까? 훌륭한 아이들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줄 아는 아이들로 키우십시오. 우리교회는 말씀을 듣는 일, 기도하는 일에 집중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면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주일 예배 한 번 드리시는 분들은 긴장하십시오. 오늘 이 시간에 말씀을 들리지 않으면, 우리는 예배의 실패자가 됩니다. 오전예배에 졸았어도, 오후예배를 드리시는 분들은 한 번 더 기회가 있습니다. 헌데 오후 예배는 점심먹고 드리는 예배라서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러니 오전에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새벽예배에 나오시는 분들은 주무셔도 됩니다.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헌데 말씀이 들리는 분들은 졸라고 해도 졸지 않습니다.

일년에 한 번 가는 민방위 훈련 때는 틀림없이 좁니다. 듣는 훈련이 안되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이기도록 안전장치로 주신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의 성공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찬양에 은혜를주시고, 무엇보다 말씀에 은혜를 주셔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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