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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관계의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 | 이병수목사 | 2010-04-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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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5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창세기 4:5-10 제목:인간의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 인생이 힘든 이유가 무엇입니까? 삶이 고달프게 때문에 힘든 것입니까? 아닙니다. 관계가 깨져서 힘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하나님과의 관계만 좋아보십시오. 어떤 시련도 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 큰 어려움과 아픔이 있을 때에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에 대한 확신만 있으면 얼마든지 인내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고린도 후서 4장 7-8절에서 “우리가 이 보배를 질 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내가 비록 질그릇과 같은 약하고 보잘 것이 없는 존재라 해도 능력은 하나님께 있다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기 때문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계가 좋으면 인생은 힘들지 않습니다. 지금도 관계 때문에 힘겨워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시댁식구와의 관계, 직장동료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성도와의 관계속에서 아파하고 신음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담이 지은 죄를 제 1원죄라고 합니다. 제 1원죄는 죄의 원인이 되는 죄입니다. 이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사람과의 관계가 깨졌습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영적인 관계를 깨뜨린 죄를 제 1원죄라고 합니다. 그리고 가인이 지은 죄를 제 2원죄라고 합니다. 제 2 원죄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깨뜨리는 죄입니다. 인간관계를 깨뜨리는 죄가 제 2 원죄입니다.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묻습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이렇게 물으신 이유는 “왜 네 동생과의 관계가 깨진 이유가 무엇이냐? 왜 인간관계를 깨뜨리는 죄가 네 안에 있느냐?”는 질문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시간에는 인간관계를 깨뜨리는 주된 원인은 무엇이며, 동시에 해결책은 무엇인가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면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가인은 하나님에 대해서 분노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제물은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권면을 잘 들으십시오. 야고보서 1장 19-20절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무슨 일을 하시든지 성냄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교회 일을 성냄으로 하면 안됩니다. (예)한 장로님이 있습니다. 가정도 부유합니다. 자수성가한 분입니다. 헌데 이 분은 성내기를 잘합니다. 당회를 하다가도 자기 마음에 안 맞으면 큰 소리를 치고, 나가버립니다. 노회에서도 화를 잘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를 못합니다. 왜 그런가? 살펴보니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그래서 반대의견만 들으면나를 무시하나?라고 생각하고 성을 냅니다. 그런 태도로 사업을 하니 가정은 점점 기울고, 결국은 부도가 나고 말았습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성내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그래서 잠언 22장 24-25절에서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의 행위를 본받아 네 영혼을 올무에 빠뜨릴까 두려움이니라.”
⓵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엡4:26)라는 말씀을 보아서 분을 내는 것 까지는 죄가 아닌 것 같습니다. 살다보면 분을 낼 일이 있습니다. 열 받을 일이 있지 않습니까? ⓶그러나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분을 내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분을 마음에 품는 것은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억울한 일 당해서 분한 마음이 일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슬픈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절대로 분을 품지는 말아야 합니다. ⓷왜 그렇습니까? 마귀에게 틈을 주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틈은 우리가 매우 열 받았을 때입니다. 열 받았을 때는 말도 막합니다. 행동도 함부로 합니다. 결국은 화를 참지 못해서 동생을 죽이고 맙니다. 사실 자신이 잘못한 것 아닙니까? 그러면 겸손히 인정하면 될 것을... 화를 참지 못합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화는 불과 같습니다. 작은 불 하나가 전부를 불태워 버리는 것입니다. 또 눈덩이 같습니다. 작지만 점점 더 커져서 결국은 집도 무너지게 만듭니다. 분노를 다스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합니다.” 하루 하루 분을 잘 다스리길 바랍니다.
우리 말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참 안 좋은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없어져야 할 말입니다.
헌데 시기와 질투가 사울의 눈을 멀게 만들었습니다. 시기와 질투가 나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를 잃어 버리고, 아까운 인생을 허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울이 이렇게 된 것은 여자들의 말 한 마디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김으로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했습니다. 금의환양하여 돌아올 때 마중 나온 여인들이 노래지어 불렀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이 한 마디에마음이 꽉 걸렸습니다.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왜 사울왕은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일까요? 사울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 ⓵먼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것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내꺼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생각입니다. 체험을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자신이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거져 받은 것이지, 자기가 수고하고 노력해서 받은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자기가 자격이 있어서 왕이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거져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라면 하나님이 지켜 주시겠지요. 설령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거둬 가더라도 그동안 주셔서 누린 것 감사할 뿐이지요. 동방의 부자 욥을 보세요.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오직 여호와만 영광을 받으실뿐입니다.” 이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헌데 언제부터인가 집착이 생겼습니다. 잃을까봐 안절부절 못하게 되었습니다. 집착하고 잃을까봐 두려워 하니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⓶또 시기와 질투는 비교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비교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사울은 사울이고, 다윗은 다윗입니다. 각자의 길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다릅니다. 다윗은 경쟁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남이 잘되면 기뻐하면 안됩니까? 세상 사람들이야 남이 잘되는 것을 배아파 하지만, 믿는 사람들은 달라야지요. 남이 잘 되면 함께 기뻐해 줘야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나의 고백)설교를 준비하면서 제 자신을 깊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 안에도 시기와 질투심이 있습니다. 비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힘들어하고, 낙심하고, 불평할 때도 있었습니다. 시기심이 왜 생길까? 왜 남들이 잘되는 것을 기뻐하지를 못할까? 결국은 욕심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난 주간에 노회가 있었습니다. 우리 충북노회안에 159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노회회의록 뒤에는 159개 교회의 교세 통계표가 있습니다. 일년 예산과 세례교인 숫자가 나와 있습니다. 그것을 보는데, 어느 새 우리 교회보다 큰 교회는 몇 개? 작은 교회는 몇 개?하면서 비교하고 있더라구요? 많이 부흥한 교회를 보면 부러우면서 은근히 질투가 나더라구요? 왜 그럴까? 결국은 욕심이더라구요.) 욕심은 결국 하나님의 계획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159개 교회는 절대로 비교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면 각자의 교회가 사명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고, 지역이 다르고, 뜻이 다르고, 그릇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교회마다 하나님이 뜻하신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 비교할 것이 없습니다. 나의 길을 가면 되는 것입니다. 헌데 비교하고 경쟁하느라고 사명을 다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굳이 경쟁을 할려면 이슬람이나 불교와 해야 합니다. 같은 배를 타고 가는 교회와 경쟁할 것이 없는데 말입니다.
헌데 베드로를 보세요. 이 중요한 시간에 한다는 말이 “주님 그러면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 곁에 사도 요한이 있는 것을 보고, 묻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신경쓰지 마! 너는 나를 따라. 너의 길이나 가!” 이게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그 중요한 순간까지 남들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지금 다른 사람의 길을 알아서 뭐하겠다는 것입니까? 알면 불평이나 하겠지요? 상관할 일이 아닙니다. 그는 그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길을 가면 되는 것입니다. 아셨지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십시오. 우리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우리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이루면 됩니다. 여러분들도 절대로 비교하지 마시고, 욕심을 조금 내려놓으시고,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길 바랍니다. (3)셋째로 인간관계를 깨뜨리는 원인은 열등감입니다. 열등감을 쉽게 말하면 나는 남만큼도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히면 두 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⓵달팽이처럼 숨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울증에 걸리는 것입니다. ⓶또 하나는 폭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인까지 가는 것입니다.
헌데 이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이 말에 주님은 감동했습니다. 보세요. 이 여인에게는 열등감이라고는 찾아 볼래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이 자신감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이것이 잣 인감?’ 그래서 묵상을 해 보았습니다. 이 여인은 어떻게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⓵먼저 믿음이 열등감을 극복하게 했습니다. 이 여인은 무엇을 믿은 것입니까?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모든 문제를 풀어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도움을 받고자 찾아온 사람들은 단 한번도 거절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몇 번을 거절하실 때도 믿음이 없었다면 못 견뎠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딸을 고칠 수 있는 분은 예수님뿐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무시를 받아도 매달릴 수 있었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이 있습니다. 이 동네에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가 있었습니다. 과부는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날마다 찾아가 울부짖습니다. 처음에는 무시하다가 나중에는 너무 귀찮아서 억울함을 풀어줍니다.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이익이 되어서도 아닙니다. 귀찮아서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시고 난 뒤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매일 찾아와서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매달리는 과부가 귀찮아서라도 소원을 들어주거든,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참으시겠느냐? 하시고 “왜 믿음이 없느냐?”고 하십니다.
성도들을 사랑하는 목사라면, 성도들이 힘들어서 아파하는데 기도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이런 간절함이 회복되길 바랍니다. 이 시간 다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통성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길 원합니다. 언제까지 열등감에 사로잡혀 사실 것입니까? 언제까지 난 틀렸다. 난 못났다. 난 해도 안된다. 다 끝났다라고 악한 마귀가 주는 생각을 갖고 살 것입니까? 언제까지 남들과 비교하면서 시기하며 질투하며 사실 것입니까?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길이 있습니다. 주님이 이미 주신 사랑과 은혜가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길을 가십시오. 비교하며 감사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십시오. 아직도 자신이 불만족스럽고, 짜증이 나십니까? 마음에 드는 것이라고는 하나 없고, 괜히 신경질만 나십니까? 나는 왜 이런가? 답답하십니까? 이 시간 주님께 쏟아놓고 기도할 수 있길 바랍니다. 다함께 은혜를 달라고 기도할 수 있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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