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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를 범하지 않으려면 | 이병수목사 | 2010-06-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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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27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창세기 9:18-21 제목:죄를 범하지 않으려면 하나님께서는 대홍수의 심판으로 이 세상의 모든 죄악을 멸하셨습니다. 그러나 죄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본성인 죄성은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마틴 루터는 사람의 죄성은 ‘남자들의 수염과 같다’고 했습니다. 오늘 깨끗이 면도를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또 다시 수염이 자라 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깍아 주지 않으면 금방 지저분해 집니다. 마찬가지로 죄의 현상은 제거할 수 있지만, 죄의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노아와 그 가족들은 방주에서 나온 이후에 점점 안정을 찾아 갔습니다. 몸서리가 쳐지는 홍수가 지나간 후에 다시 평정을 찾았습니다. 홍수를 겪은 노아의 가족들은 경건하게 살았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또한 다시는 심판하지 않겠다는 무지개 약속을 받고 어떤 먹구름이 몰려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살아 갔습니다. 본문 18-19절을 보십시오. “ ”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대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해져 갔습니다. 다시 인류가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노아는 정착하여 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포도나무를 많이 심었습니다. 20절을 보겠습니다. “ ” 얼마나 한적하고 아름다운 분위기입니까? 홍수의 삶은 모두 지나갔습니다. 폐허의 땅도 지나갔고, 무섭던 기억도 지나갔습니다. 헌데 21절을 보십시오.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0절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21절에서 시작됩니다.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포도주를 마시고, 그 장막에서 벌거벗었다는 것입니다. 표현은 단순하지만, 이 사건은 엄청나게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원래 노아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6장 9절에 보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했습니다. 헌데 이것은 노아가 자격이 있어서 의로워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6장 8절에서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어서 홍수의 심판으로부터 모든 인류가 멸망당할 때에도 그의 가족들과 함께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노아가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것은 오직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적용)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와 구원과 사랑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임하는 줄 믿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와 구원과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노아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인것입니다. 노아는 600세 되던 해까지 깨끗하게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헌데 노아는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고 수치를 당하고 있습니다. 벌거벗었다는 말은 모든 인류의 대표인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나자 자신들이 벌거벗고 있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게 됩니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함을 받는 복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공급받을 수 있고, 풍성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헌데 죄가 들어오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두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아무리 의롭고, 은혜를 입고, 성자처럼 살고, 존경받는 사람이라도 그도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10-12절에서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훌륭해 보여도 언제나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자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갖아야 할 마음은 무엇입니까? 자신을 너무 과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사람을 너무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틀림없겠지 하는 사람들도 어느 한 순간에 넘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리 훌륭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도 한 순간에 넘어졌다는 것입니다. 나는 절대로 넘어지지 않아! 나는 절대로 실수하지 않아!라고 하면 오히려 더 넘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안넘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질은 죄입니다. 도덕이나 윤리나 지성으로 포장된 것이지 사실 우리의 내면은 추악한 죄악덩어리입니다. 사람들은 결과를 보고 판단하지만, 예수님은 중심을 보시지 않습니까?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다고 하십니다. 마음에서부터 사람을 미워하고 비난하면 이미 살인한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간음하지 않았다고 해도 마음속에 탐심과 음욕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겉으로 좋은 옷을 입고, 그럴듯해도 보여도 우리 속 사람은 죄악 투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노아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노아가 노아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길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실수할 기회가 많지만 하나님께서 감싸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이만큼 살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지금도 “시험에 들지 않도록, 다만 악에서 구원하여 주시도록 기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라고 했습니다. (예화)한국교회의 산증인이신 100세가 되신 방지일 목사님 한국교회가 가장 시급하게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는 후배들의 질문에 ‘죄사함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신의 죄인입니다. 그대로 있으면 심판받아 지옥에 갑니다.’ 이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죄인이라고 하면 싫어합니다. 싫어한다고 진리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이며, 벌거벗은 자임을 알지 못하는한 구원은 먼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죄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로마서 3장 13-18절에서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이것이 우리의 실체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예수님 앞으로 가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자비와 은혜와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씻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 아닙니다. 우리의 선행이 아닙니다. 우리의 의지나 지식도 교양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앞에 항복하는 것입니다. 벌거벗은 모습으로 죄인된 모습으로 예수님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보혈만이 우리를 깨끗케 씻어 주시는 것입니다. 2.또 한가지 노아의 실수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메시지는 방심은 금물이라는 것입니다. 노아가 언제 넘어졌습니까? 120년동안 약속의 말씀을 믿고 방주를 지을 때였습니까? 아닙니다. 온갖 조롱을 받고 비난을 받아도 사명이 있는 한 절대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대홍수 사건 때 방주 안에 1년을 있으면서 절망했습니까? 언제 나가나? 낙심하며, 자포자기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더 견고하게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인내했습니다. 그러면 언제 넘어진 것입니까? 잘 나갈 때였습니다. 모든 것이 평안할 때였습니다. 대홍수 이후에 아무 문제가 없고 평온했으며 농사도 잘되고 자녀들도 잘 살고, 하는 일마다 잘 되었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방심했습니다. 노아는 좋은 환경에서 실수했습니다. 스펄젼 목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가난하고 병들 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부하고 건강하고 성공할 때 하나님의 은혜는 은혜위에 은혜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람은 한가하고 큰 문제없고 잘 나갈 때 넘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무릎을 꿇고 더 주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적용)저는 성도들의 두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갖습니다. 하나는 누가 봐도 매달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을 보면 안타까움을 갖습니다. 또 하나는 너무나 순탄할 때, 아무 문제가 없을 때, 환경이 좋을 때 더 무릎을 꿇는 겸손함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 안타깝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든지 날마다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서의 예)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이 언제 넘어졌습니까? 목동시절 양을 돌볼 때 넘어졌습니까? 아닙니다. 골리앗을 향해서 달려갈 때 넘어졌습니까?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사울 왕에게 미움을 받아 아무 잘못 없이 도망자신세가 되었을 때 절망했습니까? 낙심했습니까? 사울에 대한 원한과 미움이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언제 넘어졌습니까? 다윗이 왕이 되어 나라는 부강해지고, 경제는 윤택해지고, 전쟁은 모두 승리하고, 다윗의 인기를 하늘을 찌를 때 그 때 넘어졌습니다. 환경이 좋을 때 넘어졌습니다. 왜 집에서 안주하고 있습니까? 왜 모든 사람들은 전쟁에 나가서 사명을 감당하는데 다윗은 홀로 집에 있다가 유혹에 넘어졌습니다. 방심할 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들도 어떤 경우에도 방심은 금물입니다. 늘 영적인 긴장감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5장 8-9절 “근심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영적으로 긴장하라) 신앙생활에는 영적인 긴장감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다.’라고 해서 마음대로 살면 되는가? 그렇지 않다. 긴장감이 확풀어져서 사는 것은 참된 신앙이 아니다. 신앙생황에는 설렘임이 있어야 한다. 감동과 감사와 감격이 있어야 한다. 복음을 들어도, 주님의 사랑을 노래해도 아무런 설렘이 없다면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기쁨이 없다면 문제인 것이다. (결론)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으려면 넘어지지 않으려면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한 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방심은 절대로 금물입니다. 영적인 긴장감을 갖고 늘 감사하고 감동하고, 감격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계속해서 동영상을 하나 보기 원합니다. 화질은 좋지 않습니다. 중국의 지하교회 성도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와 비교하면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나 열악한 상황속에서도 예배의 기쁨과 감격을 누리는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핍박받고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하나로 모든 손해를 감수하고 힘겨운 삶을 살아야 하는 그들의 기도제목을 잘 보십시오. 잘 살게 해달라, 어려움이 없게 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더 사랑하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죽고 싶다는 것입니다.’ -성찬예식에서 떡과 잔을 받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죄악 덩어리인 나를 오직 일방적인 사랑과 은혜로 구원하신 은혜에 감사해서 통곡하는 모습을 보며 성찬예식에 임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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