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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간증한다면... 이병수목사 2011-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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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28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창세기 45:1-8

제목:요셉이 간증한다면...

우리는 지난 시간에 요셉이 형들을 시험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 시험에 형들은 당당히 통과하였습니다. 예전에 형들이 아니었습니다. 변화되었습니다. 형들이 변화된 것은 유다의 고백 속에 잘 담겨 있었습니다. 유다의 고백은 한 마디로 “내가 대신 남겠습니다. 내가 책임을 지겠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유다의 고백 속에는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정직하게 인정합니다. 누구를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변명하지도 않습니다. 모든 책임을 기꺼이 감당하려고 합니다. 유다의 고백이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인지, 이 고백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는 지난 시간에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요셉의 일대기에 클라이막스입니다. 드디어 요셉이 형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힙니다. 형들과 재회하는 감격적인 장면입니다.

저는 본문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요셉의 간증이다라는 생각입니다. 만약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요셉이 간증(자랑)을 한다면 무엇이라고 하겠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요셉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섭리를 간증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구절이 5절과 7절입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 ”

 

이 말씀은 하나님의 섭리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 각자에게 계획과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원이 있습니다. 헌데 우리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뜻과 목적대로 이뤄지도록 우리를 도우시고, 보존하시고, 다스리시고, 인도하십니다. 이것을 우리는 섭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과 사람들을 만들어 놓으시고, 뒷짐 지고 잘하나? 못하나? 보자 하고 구경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시며, 간섭하시며, 도우시며, 지키시며, 결국 합력하여 좋은 쪽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섭리입니다. 할렐루야!!!

 

요셉은 간증은 무엇입니까? 내가 얼마나 억울한 일을 당했으며, 13년동안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매일 밤마다 고통의 눈물을 흘려야 했는지...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헌데 하나님은 역시 내편이셨다고... 결국 하나님은 나를 이렇게 성공하게 하셨다고...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다고... 지금은 내가 연봉을 얼마나 받고, 날마다 바로 왕을 만나고 있고, 이 큰 나라를 내가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결코 말하지 않았습니다.

(적용)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받는 유혹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자랑하고 싶어 합니까? 무엇을 간증하고 싶어 합니까?

예수님을 믿었더니 내가 이렇게 잘 되었다고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예수를 믿었더니 총리가 되었다. 물질의 큰 복을 받았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유혹입니다. 예수를 믿어서 내가 얼마나 잘 되었는가?를 말하는 것이 간증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9절 이하에 읽으면 자신의 성공을 말합니다. 허나 이것은 형들을 위로하고,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한 것일뿐입니다. 오해하지 않기 바랍니다. 요셉이 간증하는 것은 내 삶속에 늘 함께한 하나님의 섭리하심입니다.

 

구체적으로 요셉이 간증한 내용을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1.첫째로 요셉은 과정 과정을 소중히 여기라고 간증합니다.

모든 일에는 과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일에는 절대로 과정이 생략되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13년이라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노예가 되고, 보디발의 가정총무가 되고, 유혹을 받아 억울하게 누명으로 감옥에 가고, 그 감옥에서 관원장을 만나고, 틀림없이 도와주겠다고 했던 관원장에게 배신을 당하고, 2년이라는 시간동안 철저히 잊혀진 사람으로 지내는 과정 과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헌데 이 과정중에 있을 때는 뜻을 몰랐습니다.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습니다.

금요성령집회 시간에 말씀을 드렸지만, “위기는 이 메일처럼 빨리 오고, 설명(응답)은 돛단 배를 타고 천천히 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난 가운데에서 중간에 포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결과를 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이 과정이 왜 있는지 설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되면 반드시 거두리라는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이유를 알려고 하지 마십시오. 과정 과정속에서 최선을 다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인생은 항상 공사중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 모두는 예상지 않은 실망스런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때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는 것이다. 보는 관점만 바꿀수 있다면 실망도 희망으로, 불유쾌한 경험도 독특한 흥미로운 경험으로 바꾸어진다. 최근 암과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난 서강대 영문학과 장영희 교수의 유고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란 책이 있다.

장영희 교수는 황당했던 자신의 인생 경험으로 뉴욕 주립 대학의 박사 논문 사건을 이야기 하고 있다. 2년간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그녀는 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논문 최종 본을 여행 트렁크에 넣은 채로 친구 집에 잠간 커피 마시러 갔다가 그 논문이 들어있는 트렁크를 도둑맞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내 논문 내 논문을 외치며 기절한 그녀는 닷새를 어둠속에서 지내다 일어나 논문을 다시 쓰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1년의 시간을 연장하며 마침내 논문을 완성하여 통과 받으면서 논문의 헌사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내게 생명을 주신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께 이 논문을 바칩니다. 그리고 내 논문 원고를 훔쳐가서 내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다시 시작하는 법을 가르쳐 준 도둑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일은 다시 시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1년으로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장영희 교수는 그녀의 유작에서 자기 인생에서 가장 용기가 된 말이 <괜찮아>였다고 회상한다. 어린 시절 지체 장애자였던 그녀가 친구들의 놀이에 끼지 못해 서운했을 때 지나가던 깨엿장수가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괜찮아> 그동안 우리가 비록 실패 투성이의 인생을 살았어도 절망만 하지 않는다면 다시 일어 설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응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괜찮아> <괜찮아>

 

(적용)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정 과정을 소중히 여기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과정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하루에 내일 할 일까지 다 하시지 않았습니다. 오늘 하루 하실 일만 하셨습니다. 내일 일은 내일 하셨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한국 사람들의 성품을 갖고 계시다면 하루만에 밤새서라도 다 창조하셨을 것입니다. 헌데 하나님은 6일 동안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7일째는 안식하십니다. 이렇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구원자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실 때 시간절약하기 위해서 완성품처럼 20대 후반이나 30대의 건장한 사람으로 오시면 될텐데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에게 천사를 보내십니다. 그들을 설득하십니다. 뜻을 전하십니다. 바로 막달이 되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10개월 꽉 채우십니다. 그리고 영아 아이로 태어나 유아, 유치, 아동, 청소년, 청년시기를 다 거치십니다. 하나님은 한 과정도 빼놓지 않으십니다.

(적용)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다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을 믿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과정 과정을 충실하게 맞이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기적은 하루 일상의 삶을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일상의 축복이 얼마나 좋은 것인데요... 큰 병으로 고생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처럼 건강을 얻는 것도 귀하지만, 일년 내내 감기한 번 앓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이 얼마나 더 큰 기적입니까? 하루 하루 아침에 눈을 떠서, 온 식구가 둘러 앉아 감사기도하고 밥을 먹고, 각자의 자리로 가서 성실하게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와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이 기적이요 은혜입니다.

 

2.둘째로 요셉은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만남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간증하고 싶은 것은 기적입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기적은 거의가 환경과 상황을 한 순간 바꿔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에게는 어떤 기적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까? 감옥에서 단번에 꺼내 주셔야 합니다. 헌데 하나님은 환경을 바꾸어 주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 환경 속에서 요셉에게 만남을 주십니다. 환경은 그대로 있고, 그 상황속에서 섬겨야 할 사람,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기적입니다.

(헌데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다 좋은 사람만은 아닙니다. 요셉에게 형들을 만난 것은 어떻게 보면 악연이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를 만난 것도 썩 기쁜 만남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왜 그런 사람을 내가 만났나?할 때가 있습니다. 허나 생각을 바꾸어 보면, 그 사람이 없었다면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만남도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을 봅니다.

지나놓고 보면 그 사람을 만나서 힘도 들었지만, 그것이 다 하나님의 섭리였고, 인도하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생의 악역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을 만나게 하심으로 나를 단련하시고,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길로 나를 인도하게 한 도구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그 사람이 내게 좋은 사람이었든지 그렇지 않은 사람이었든지 감사할 수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면 부족한 나를 단련하시려고 그 사람이 악역을 감당한 것입니다. 나를 잘되게 하고, 나를 더욱 성숙시키려고 하나님이 붙여주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이라도 미워해서는 안됩니다.

더 긴장되는 것은 내가 누군가를 잘되게 하고, 성숙하게 하는데 악역을 담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보세요. 악역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요? )

 

3.셋째로 요셉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거룩이라는 것을 간증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셉이 간증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를 팔리게 하셨고, 하나님이 나를 이곳으로 보내셨고,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하나님이 나를 지키셔서 결국은 승리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헌데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섭리는 나에게만 임한 것이 아니라, 형들에게도 임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0년이라는 시간동안 하나님은 자신과 함께 하시면서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셨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헌데 20년이 지난 지금 이 자리에 함께 있는 형들도 변화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와도 함께 하셨지만, 형들과도 함께 하셔서 예전에 형들이 아니라 변화된 형들이 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요셉의 일대기만을 전해주고 있지, 형들의 삶은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헌데 요셉이 시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형들은 이기적이었고, 적대적이었고, 거짓되었지만, 지금의 형들은 책임질줄 알고, 희생할 줄 아는 사람들로 변화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안 것입니다. 하나님은 형들에게도 섭리하셨다는 것을요?

 

(형들의 변화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사람은 유다입니다.)

우리가 유다의 일생은 자세하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37장부터 50장까지는 요셉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헌데 그 사이 38장에서는 유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38장의 내용이 무엇이냐면 사연은 어찌되었든지 며느리와 관계를 맺고 아이를 낳는 사건입니다. 인간이하의 행동을 한 것입니다. 38장에 유다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헌데 44장에서 아름다운 고백을 하는 유다는 달라져 있습니다. 38장에서 44장으로 오는데 누가하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유다를 만지시고, 깨닫게 하시고, 가르치시고, 그래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신 것입니다.

보세요.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하나님은 섭리하시고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지금도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그래서 결국은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과를 보지 못했기에 답답합니다. 두렵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나를 보라는 것입니다. 나도 과정 과정에서는 몰랐지만, 인내함으로 하루 하루 지나왔더니 결국은 알게 되었다고...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결론)무엇을 간증하시기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섭리하심, 모든 사건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을 볼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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