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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과 복 | 이병수목사 | 2012-11-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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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8일 추수감사주일 및 새 생명 초청 예배설교 성경:로마서 5:25- 5:10 제목:복음과 복 오늘 오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특별히 성도들의 초청을 받아 처음 교회 오신 분들이나, 오랫동안 쉬셨다가 오신 분들이나 모두를 환영합니다. 이왕 오셨으니 마음을 활짝 여시고 말씀을 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예배를 준비하면서 주님 써 주소서. 오늘 온 모든 분들이 은혜를 받고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써 주소서. 어제 미리 와서 강단장식하고 청소한 손길을 써 주시고, 코람데오 찬양단의 찬양을 써 주시고, 대표 기도자의 기도를 써 주시고, 설교를 써 주시고, 해밀의 특별찬양을 써 주시고, 교회 곳곳을 아름답게 장식한 꽃들을 써 주시고, 예배 후 점심까지도 써 주소서. 우리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입니다. 헌데 믿음에 있어서 많은 오해를 합니다. 1.우리는 믿음을 오해합니다. (1)무엇보다 맹목적으로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화)비행기를 운항하는 기장이 있습니다. 비행기의 한쪽 엔진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가까운 공항으로 회항을 해야 합니다. 헌데 위험을 무릅쓰고 비행을 했습니다. 가까스로 착륙한 기장에게 묻습니다. “비행기 엔진에 심각한 이상이 있었는데 어떻게 비행을 할 수 있었느냐?” 그 때 기장이‘믿음으로 했습니다.’라고 한다면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상식과 안전을 무시한 행동에 분노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상식적인 행동을 무시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2)또 이런 분들도 있습니다. ‘믿음 생활할려면 단순해야지. 너무 똑똑한 사람은 믿기 힘들어!’마치 믿음은 순진하고 생각이 없어야 믿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이 아닌데 생각없이 순진하게 믿는 것이 믿음 아닙니다. 성경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사실을 기초한 이성을 갖고 믿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이 어떻게 다 이해가 되겠습니까? 개미가 코끼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다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생각도 없이 믿지는 않습니다. (예화)지성인인 이어령 교수는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에서 밝힙니다. ‘글을 쓰면 돈이 벌렸고, 명예를 얻었고, 권세를 얻었다. 내가 노력하면 얻고자 하는 것을얼마든지 얻을 수 있었다. 허나 세상의 모든 것을 갖아도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인가?가 내 안에 있었다.’파스칼은 사람은 영적 존재이기에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다고 했습니다. (예)깊히 생각해 보면 성경이 설명이 안되고, 증명 할 수 없기에 믿어지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신 주님이 물위를 걸으셨다는 것이 믿어지지, 물위를 걸으시다가 그만 물에 빠지셨다는 것이 믿어집니까? 생각이 없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수록 믿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3)또 믿음을 요행수나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합니다. 공부 정말 안하는 고 3 수험생에게 ‘너 왜 공부 안하니? 어떻게 할려고 그래’하면,“예! 이제 저는 다 포기하고 믿음만 붙들기로 했어요?”라고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이것은 믿음 아닙니다. 성실성이 결여된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기에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 더 성실해야 합니다. (4)어떤 분들은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 종교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것이 좋아!해서 교회를 다닌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고 종교 하나쯤 갖아야 하기에 선택하는 기독교라면 왜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 버리고 주를 따르겠습니까? 종교하나쯤은 갖아야 하기에 선택한 기독교라면 전 내 인생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밥벌이나 하려고 종교를 기독교로 정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이 그 정도가 아닙니다. 2.그러면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뭘 믿는 것일까요? 우리는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이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가 들어야 할 복음이 있습니다. 복음은 내용은 같은데 학자들마다 몇 가지로 설명하느냐는 차이가 있습니다. CCC라는 대학생선교회에서는 4영리 4가지로 복음을 설명합니다. 어떤 분들은 5가지로 설명합니다. 저는 간단하게 7가지로 정리하겠습니다.“죄 - 죽 - 사 - 십 - 영 - 영 - 성”한 번 해 보실래요. 죄죽사십! 영영성! (1)‘죄’ - 먼저 우리 모두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이것이 성경의 진단입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서 모든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성을 갖고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예)어린 아이들을 보면 인간은 죄인이구나!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지난 번에 처남댁이 왔었습니다. 조카 아이가 4살입니다. 우리 둘째 아이와 함께 종이접기를 했습니다. 집과 정원이 있고, 정원에 나무가 있는 종이접기입니다. 헌데 남자 아이라서 놀다가 나무를 부러트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거 누가 그랬어?”그랬더니 ‘바람이 그랬답니다.’상상력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아! 4살짜리도 불리하니까 본능적으로 거짓말을 하는구나! 사람에게는 죄성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우리가 죄인됨을 인정해야 합니다. (2)‘죽’ - 죄의 값은 죽음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요”사람은 죄와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 죽음이 있습니다. ➀첫째는 육체적 죽음입니다. 사람은 한 번은 다 죽습니다. ➁둘째는 영적인 죽음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인 사람이 사는 길은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헌데 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끊어 놓은 것입니다. 물을 떠난 물고기는 살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떠나면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➂셋째는 영원한 죽음입니다. 끝까지 예수를 믿지 않으면 영원한 심판을 받아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사람들이 치러야 죄의 대가입니다. (3)‘사’ - 허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하나님은 사람들이 죄 값으로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차마 보고 계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일서 4장 9-11절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몰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4)넷째로 ‘십’-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하나님과 동등되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를 믿어야만 하는 지 아십니까? 우리 죄를 위해서 대신 죽으신 분은 예수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 어느 종교의 창시자가 죄인들을 위해서 대신 죽었습니까? 오직 우리 주 예수님만이 우리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몸 찢겨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사랑합니다. 십자가는 원래 끔찍한 사형형틀입니다. 보세요. 전기충격으로 사형하는 전기의자 미니어쳐를 목에 걸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람을 교수형 시키는 줄을 집에 걸어 놓는 사람이 있습니까? 끔찍한 일이지요. 헌데 우리는 왜 십자가를 목에 걸고, 귀걸이를 하고, 집에도 십자가를 걸어 놓고, 교회마다 십자가를 세워 놓습니까? 십자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왜 십자가를 사랑합니까? 사형형틀이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죄인을 죽이는 비참한 십자가 형틀에서 내가 죄 값으로 죽어야 하는데,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나의 죄를 씻으시고, 살려 주셨기에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볼 때마다... 두 가지를 확신해야 합니다. ➀나는 저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하는 죄인이었다. ➁헌데 하나님은 나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대신 죽이셨다. 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하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하시는데 내가 무엇을 두려워한단 말이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이 나를 왜 책임져 주시지 않겠느냐? 이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5)다섯째 ‘영’ - 이 예수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습니다. 우리 사람은 이 땅에서 몇 십년을 살다가 끝날 인생으로 하나님이 지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살도록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죄로 인해서 잃어버린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6)여섯째 ‘영’ - 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나니”리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구원을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영접하기만 하면 됩니다. 마음으로 믿기로 작정하고 입으로 시인하시면 됩니다. (7)뿐만 아니라 일곱째 ‘성’-우리를 고아처럼 홀로 두지 않으시려고 성령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과 동등된 분으로 우리의 보호자가 되시고, 돕는 자이시며, 지키시는 분이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복음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이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예! 복음을 한 번 듣고 전부를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회를 한 번 드려보시기 바랍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에 나오시면 놀라운 복음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거듭남의 은혜를 맛보시게 될 것입니다. 2.그러면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복을 주시는가? 예수를 믿는 자들이 받는 복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이 예수를 믿는 자들이 받을 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첫째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1절입니다. 같이요.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사람이 언제 평안을 잃어버릴까요? 관계가 깨졌을 때입니다. 부부싸움 한 번 해 보세요. 평안이 없습니다. 부부간에 관계가 깨지면 집안에 평안이 없습니다. 밥을 먹어도 평안하지 않습니다.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 않습니다. 자녀들도 불안해서 눈치를 봅니다. 반대로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관계가 좋으면 집안에 평안합니다. 뭘 먹어도 기쁩니다. 자녀들도 행복해 합니다. 인간의 불행이 시작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는 데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자 사람과의 관계가 깨졌습니다. 형이 동생을 죽이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자연과의 관계도 깨졌습니다. 결국 인간의 비극은 자연파괴와 환경오염으로 인해서 오고 있습니다. / 또 자기 자신과의 관계도 깨졌습니다. 불안하고, 우울하고, 무섭고,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자신을 무가치하게 생각합니다. 보세요. 모든 인간의 불행은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길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헌데 우리는 환경이 좋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안과 평안을 혼동합니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침대는 편안함을 줍니다. 그러나 평안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것이 불편한 것이지!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또한 부유하다고 평안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마귀에게 속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평안입니다. 평안은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습니다. 참된 평안을 얻는 길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우리는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평안을 갖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도 세상에서 우겨 쌈을 당합니다. 그래도 넘어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 신자의 능력을 말씀합니다. 성도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3-4절입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니라”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➀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예화)남편을 정말 사랑하면 고생하는 거 하나도 힘들지 않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면 얼마든지 희생을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 많은 환난을 받았지만, 행복했습니다. ➁또한 합력하여 선을 이뤄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환난을 받으면 기대가 됩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매듭을 지어주실까? 약속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장 28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예화)저는 어릴 가마솥에 쪄 주시던 개떡을 좋아했습니다. 재료는 밀가루, 강낭콩, 소금, 막걸리, 당원 아세요. 설탕도 비싸서, 알약같은 단맛을 내는 당원이 있습니다. 그것을 갖고 어머니는 적당히 썩어서 반죽해서 쟁반에 쭉 펼쳐서 가마솥에 걸고 불을 땝니다. 너무 너무 맛 있습니다. 헌데 보세요. 밀가루, 강낭콩, 소금, 막걸리, 당원 각각은 맛이 없습니다. 헌데 그것을 잘 섞으면 맛있는 빵이 되듯이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아픔과 슬픔, 고통, 상처, 시련, 실패 등등 모든 것을 갖고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것을 믿기에 환난 중에서도 성도는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2)둘째로 예수를 믿는 자들이 받는 복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2절입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은혜에 들어갔다는 것은 ➀은혜를 누린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누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율법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적으로 한다는 것이 뭘까요? (예화)사업파트너는 행위로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한 사람이 1000만원의 손해를 보게 했다면 아무리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도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관계가 회복되려면 1000만원을 갚아야 합니다. 허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다릅니다. 만약에 아들이 아버지에게 1000만원을 손해를 끼쳤습니다. 그러면 1000만원만 갚으면 끝입니까? 아닙니다. 1000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1000만원은 갚지 않아도 됩니다. 아버지가 원하는 것은 1000만원을 손해 끼친 것에 대한 진실한 사과와 뉘우침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진실함과 믿음입니다. 우리가 뭘 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누리길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그래서 힘이 나고, 평안이 있고, 자신감이 생겨야 합니다. 로마서 8:15-17절 “너희는 다시 무서워 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➁은혜에 들어갔다는 말은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 직접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는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막힌 담을 무너뜨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의 특권을 주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기도는 우리의 능력이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 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 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주시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우셔도 낙심하지 마시고, 기도의 자리 떠나지 말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손을 들어 기도하시면 하나님은 들으시고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역대하 7장 14절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이제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우리에게는 기도의 능력이 있습니다. 구하면 하나님은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간구해 보세요. 마음을 정결하게 뜻을 다하여...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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