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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거기서 너를 만나리라 | 이병수목사 | 2012-12-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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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출애굽기 27:13-16 제목:내가 거기서 너를 만나리라 출애굽기는 총 40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애굽에서 나온 이야기를 기록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출애굽기는 구원의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세가지 핵심단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원 - 율법 - 예배입니다. ➊먼저 1-18장까지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구원에 대한 말씀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은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었습니다. ➋둘째로 19-24장까지는 시내산에서 주신 율법의 말씀입니다. 율법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순서입니다. 먼저 구원하시고 난 뒤에 구원받은 자의 합당한 삶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합당한 삶았더니 구원하여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로서 마땅한 순종의 삶을 살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은혜와 율법입니다. 율법과 은혜가 아닙니다. ➌셋째로 25-40장까지는 제사법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목적이 뭐예요?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자들을 자유케 하시려는 것입니다. 바로를 섬기던 자들을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자가 되게 하시려고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들을 구원하신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룩한 예배자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할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말씀하십니다. 특히 성막에 대한 말씀이 출애굽기에 13장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오경에는 50장이나 됩니다. 하나님은 성막과 성물을 지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25장 9절입니다.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 지니라”출애굽기 25-27장까지는 성막과 성물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Ⅰ.성막의 의미 하나님이 성막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막이 오늘 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1)첫째로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성막을 보면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성막만 다 이해하면 예수님을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메시지 성경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너희는 성경(구약의 율법이겠지요. 특히 모세 오경입니다.)에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있는데,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증언하는 것이다”구약의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구약성경은 예수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을 알면 예수님을 온전히 알고 믿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5장 46-47절에는“너희가 모세를 믿었다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세가 기록한 것이 나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모세의 글을 믿지 않는데, 내가 말하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분명하죠? 모세가 기록한 말씀은 모두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성막은 예수님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적용)한번 성막과 성물을 사진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4컷의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 ❶성막 전체를 보여주는 사진이다. ❷성막 문이다. 이것을 잘 봐두세요. 오늘을 성막 문의 의미를 생각하겠습니다. ❸성소와 지성소입니다. ❹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휘장입니다. ❺완성된 성소의 모습입니다. (2)둘째로 성막은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혹시 아십니까?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뭘까요? 맞추시면 선물을 드릴께요? 예!! 여호와 삼마입니다.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모형이 되는 예루살렘의 성전회복을 말씀하시면서 “내가 너희와 거기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걸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물론 우리 하나님은 안 계신 곳 없이 계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하나님의 거하시길 기뻐하시는 곳은 예배자들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예배자들을 지켜보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길 기뻐하십니다. 성막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 나는 너희와 늘 함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한 예로 사진을 보겠습니다.(성막을 중심으로 진을 친 모습) 광야에서 진을 칠 때 반드시 성막을 중심으로 진을 쳐야 했습니다.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세 지파씩 진을 칩니다. 가장 안쪽에는 아론 가족과 레위 지파 사람들이 진을 치고, 그 뒤로 12지파가 세 지파씩 진을 칩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디에서도 성막을 보이도록 한 것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은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적용)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여호와 삼마!이십니다. 여러분이 무릎 꿇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그곳에 하나님은 계십니다. 하나님은 아프고 힘들어서 주님을 바라보는 가정에 하나님은 계십니다. 여러분의 직장에도 하나님은 계십니다. 지금 예배하는 이곳에도 하나님은 계십니다. 여호와 삼마!!!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셋째로 성막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입니다. 에덴동산에는 성막이 없었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성막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에덴동산의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과 소통이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헌데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타락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께 나아 갈 수 없었습니다. 동행의 복을 잃어 버린 것입니다. 죄를 지은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길은 하나님이 찾아 와 주셔야만 합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가장 큰 고통입니다. 뿌리 뽑힌 나무가 잠시는 푸른 것 같지만, 금새 말라 죽는 것처럼, 물을 떠난 물고기가 처음은 퍼득거리는 것 같지만, 결국은 죽는 것처럼,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잠간은 행복한 것 같지만, 결국은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허나 문제는 하나님께 나가고 싶으나 나갈 길이 없습니다. 죄를 갖고는 절대로 하나님께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십자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하나님께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성막입니다. 성막이 신약의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은 성막을 주셔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러 나올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성막을 주신 목적을 오늘 성경에서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25장 22절입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 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할렐루야!! (적용)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목회가 무엇입니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게 도와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다 변화됩니다. 그러니까 변화되라!고 잔소리 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도와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삽니다. (적용)예배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어느 순서에서건 하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찬송 중에 은혜를 받으십시오. 참회의 기도 중에 은혜를 받으십시오. 특별히 설교 중에 큰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은혜 받아야 삽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삽니다. Ⅱ.지성소로 나아가는 길 그러면 하나님이 계시는 지성소로 나가는 길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성막으로 들어가려면, 가장 먼저 성막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오늘은 성막 문의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1)첫째로 성막 문은 오직 하나입니다. 정문이 있으면 옆문도 있고, 뒷문도 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허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나가는 성막의 문은 오직 하나입니다.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성막이니 문이 여러 개면 얼마나 편리하겠습니까? 그러나 200만 명이 이용하는 문은 오직 하나입니다. 무엇을 의미하시는 줄 아시겠지요? 예!!! 하나님을 만나는 길! 다시 말해서 구원받는 길은 오직 하나라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타 종교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타 종교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고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는 독선적이라고 합니다. 배타적이라고 합니다. 너희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말하느냐?는 것입니다.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구원의 길은 오직 하나의 문 밖에 없다고 하는 주장 때문에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라고 비난을 받는다면 기쁘게 받아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의 태도가 독선적이고, 무례하다면 돌이켜야 합니다. 요한복음 10장 7-9절에서 예수님은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또 요한복음 14:6에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은 오직 하나의 문!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둘째로 성막 문은 크고 넓습니다. 성막은 약 378평 정도 됩니다. 문이 있는 쪽 길이가 50규빗 즉 25m입니다. (한 규빗은 팔꿈치에서 중지 끝까지의 거리입니다. 사람마다 다릅니다. 숏팔이 있겠고, 롱 팔이 있겠지요. 보통 1규빗을 50CM로 봅니다.) 문 쪽이 25m인데 문이 10m입니다. 대단히 크고 넓은 문입니다. 왜 하나님은 성막 문을 이렇게 크고 넓게 만드셨을까요? 예! 누구든지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도, 온 유다 사람도, 사마리아 사람도 누구든지 문제가 있으면 나오라는 것입니다. 성막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들어와서 죄 사함 받고, 병 고침을 받고, 상한 마음 치유 받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롬 10:1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우리들은 전해야 합니다. 전하는 자가 없으면 들을 수 없습니다. 듣지 못하는데 어떻게 성막으로 들어오겠습니까? 성막으로 들어가는 문은 크고 넓습니다. 구원받는 데는 차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3)셋째로 성막 문은 4가지 색으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16절에 보면 ‘뜰 문을 위하여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 놓아 짠 스무 규빗의 휘장이 있게 할지니’ 성막문은 하나이지만, 청색, 자색, 홍색, 가는 베실은 흰색의 세마포입니다. 네 가지 색깔로 정교하게 짠 휘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성품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❶청색은 생명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❷자색은 왕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❸홍색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을 의미합니다. ❹백색은 의의 세마포 옷을 입고 다스리시는 승리하신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4)성막 문은 항상 동쪽으로 나 있습니다. 13절에 보시면 “동쪽을 향하여 뜰 동쪽의 너비도 쉰 규빗이 될지며”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세울 때에는 반드시 동쪽으로 문을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나중에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도 동쪽으로 문을 만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동쪽으로 문을 내면 어떤 결과가 오는 것일까요? 동쪽으로 문을 내면 들어 올 때는 서쪽을 보고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나갈 때는 동쪽을 보고 나가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하나님에게로 올 때는 서쪽을 보고 들어오게 하시고, 나갈 때는 동쪽을 보고 나가게 하셨나?하는 것입니다. 동쪽과 서쪽이 갖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 해가 질 때 어느 쪽으로 집니까? 서쪽입니다. 해가 뜨는 곳은 동쪽입니다. 서쪽하면 영적으로 어두운 곳, 쓸쓸한 곳, 그늘 진 곳을 말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들어올 때는 석양의 그늘 같은 문제를 안고 들어오지만, 예배를 드리고 성막문을 나갈 때는 떠 오르는 태양 같은 확신과 기쁨을 갖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적용)여러분이 교회 오실 때는 어떤 모습으로 오셨든지 나가실 때는 치유 받고 나가야 합니다. 저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나는 성도들에게 짐을 덜어주는 목회자인가? 짐을 지우는 목회자인가?’우리 성도들이 서쪽을 보고 들어왔지만, 나갈 때는 동쪽 하늘을 보고 나가게 하고 있는가? 저는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미래교회의 예배가 짐을 덜어주는 예배가 되기 바랍니다. 미래교회의 목회가 짐을 덜어주는 목회가 되기 원합니다. 얼마나 힘든 세상입니까? 우리 성도들이 교회로 들어올 때는 어떤 모습으로 왔든지, 나갈 때는 두 손을 불끈 쥐고 그래 다시 해 봐야지... 견뎌야지.... 마음의 사슬들로부터 자유하며, 기쁘며, 살아서 가길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짐은 죄의 짐입니다. 죄의 짐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서 밤 낮으로 뛰어야 하는 수고, 자녀들로 인해서 힘겨워 하는 짐, 근심과 염려의 짐, 아픔과 상처의 짐들을 다 주님께 내려 놓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맡기시고 너무 힘들어 하지 마세요. 그만한 일로 죽을 것 같으면 주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위해서 죽으시지도 않았습니다. ‘목사님!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안되요?’라고 마음의 문을 닫지 마시고, 주님께 기회를 드려 보세요. 믿음은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끝까지 가보십시오. 분명히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이 있을 것입니다.
(5)마지막으로 성막 문은 문턱이 없습니다. 무엇입니까? 구원받기는 너무 쉽다는 것입니다. 값싸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치루신 값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구원받도록 구원의 문턱을 없애셨습니다. 예수를 마음으로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받습니다. (예)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구원받은 한편 강도를 보십시오. 그는 주기도문도 모릅니다. 교회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십일조도 헌금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봉사도 전도도 한 번 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끄러운 구원입니다. 교회는 문턱이 없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교회에 올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죄인들이 와서 구원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이 교회에 오더라도 우리들은 판단하고 손가락질하고,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힘들고 지친 마음으로 주님 만나기 위해서 온 사람들을 우리들이 상처주고 실족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 시대에 누구든지 나와서 구원받을 수 있도록 문턱이 낮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문을 열고 누구든지 들어와 예배를 드리고, 죄 사함 받고, 모든 짐을 내려놓고, 나갈 때는 동쪽을 바라보며 밝은 모습으로 나가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만나고 싶어서 성막을 주셨습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예수님의 이름으로 힘을 내시길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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