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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이병수목사 2014-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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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6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마태복음 6:19-21

제목: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사람은 실제와 관념의 사이를 오고 갑니다. 무슨 말이냐면요?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는 피곤해 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없어도 시간을 만들어서 합니다. 그 일에는 돈을 쓰고, 시간을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왜요? 그것은 나에게 실제이기 때문입니다. 관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화)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예배해야 한다는 것도 압니다. 헌데 아는데 안됩니다. 힘듭니다. 왜 그래요? 실제가 아니고 관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시면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예수님, 보혈의 능력, 죄사함의 은총, 복음, 십자가와 부활, 천국, 재림, 교회, 예배...”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이것이 ‘실제’인 사람은 감동이 다릅니다. 정말 믿는 사람들은 여기에 시간을 씁니다. 여기에 마음이 있고, 여기에 헌신 하고, 여기에 돈을 씁니다. 그러면서도 행복해 합니다.

헌데 이런 것들이 관념인 사람은 다 압니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헌데 안됩니다. 너무 바쁘고 피곤해서 새벽기도를 못한다고 합니다. 예배 드릴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헌데 자신이 좋아하고, 즐거운 일에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합니다. 피곤해도 즐겁게 합니다. 돈을 아끼지 않고 씁니다. 왜요? 그 일이 실제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 자신들을 돌아 보세요. 내게 실제가 되는 것이 내가 보물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늘 생각하고, 하면 즐겁고, 그 일에 돈을 써도 아깝지 않은 그것이 보물입니다. 여러분의 보물은 무엇입니까?

오늘 주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을 하십니다. “네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이 당시 보물은 세 가지였습니다. ①하나는 의복입니다. ②또 하나는 곡식입니다. ③그리고 금은 보화입니다. 헌데 이 당시에는 은행이 없던 시절이기에 소중한 것들을 스스로 보관해야 했습니다. 헌데 땅에 쌓아 둔 의복은 좀이 들어서 못쓰게 됩니다. 곰팡이가 생겨서 옷감을 상하게 합니다. 곡식은 동록이 생깁니다. 동록은 녹슬다는 말인데, 더 정확히 말하면 벌레가 먹어 치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금은 보화는 도둑이 훔쳐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십니다.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지 못하고, 도둑질도 못한다고 하십니다. 주님이 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시는 이유는 21절입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러면 이 시간에 생각해 보기 원하는 것은 (1)우리의 보물은 무엇인가? (2)그 보물을 하늘에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1)첫째로 보물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받고 싶어 하시는 것이 있다면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예1)성경에 주님이 구원받는 것은 공간에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두 여인이 한 공간 안에서 맷돌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헌데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다른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하였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똑같은 공간 안에 있었습니다. 헌데 마음은 달랐습니다. 마음 안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서 구원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적용)우리들도 지금 이 시간에 똑 같은 공간 안에 있습니다. 헌데 하나님은 마음을 살피십니다. 마음 안에 예수가 있느냐? 믿음이 있느냐? 사랑이 있느냐?를 살피십니다.

(예화)가룟 유다를 보십시오. 주님과 마가의 다락방에 함께 있었습니다. 주님이 가룟 유다의 발을 닦아 주셨습니다.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헌데 마음과 생각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주님과 한 공간 안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이미 사탄의 마음이었습니다. 사탄이 준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예화)아무리 사랑이 타락했다고 하지만, 진정한 부부 관계에 있어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가장 받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마음입니다. 아니예요? 마음은 없고 돈만 주면 됩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성서의 예)한 번은 예수님이 성전 입구에 놓인 헌금함 곁에 계셨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헌금함에 돈을 넣는가를 보셨습니다. 여러 부자들이 많이 넣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 틈에 한 가난한 과부가 와서 헌금을 하는데,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 것을 보셨습니다. 이 때 주님은 제자들을 불러다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사실 두 렙돈은 아주 적은 액수입니다. 당시 하루 임금이 한 데나리온입니다. 우리 나라 돈으로 하면 10만원 정도입니다. 헌데 한 데나리온이 64 고드란트입니다. 한 고드란트가 두 렙돈이니까, 두 렙돈은 한 데나리온의 64분의 1입니다. 10만원의 64분의 1이 두 렙돈입니다. 약 1600원입니다. 가치로 따지면 정말 적은 액수입니다. 헌데 주님은 이 여인이 어떤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이유가 뭐예요? 드리는 마음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많은 중에 넣은 사람의 마음과 비록 1600원이지만, 생활비 전부를 드리는 마음이 어떻게 같겠습니까? 주님은 액수를 보시지 않습니다. 주님이 정말 보시는 것은 마음을 보십니다. (적용)저는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이 무엇을 하든지 진실한 마음, 정성을 다하는 마음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실 때에도 온 맘을 다해서 예배하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회개하는 진실한 마음을 드리기 바랍니다. 헌금을 드려도 부끄럽지 않은 마음을 드리시길 바랍니다.

 

2.둘째로 우리의 보물은 돈입니다. 사실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돈 쓰는 것을 보면 압니다. 하나님께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위해서 돈을 아까워 하지 않고 씁니다.

돈을 땅에 쌓아 두는 것이 뭘까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나의 만족만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되면 부담이 되어야 합니다. 내 돈과 시간이라고 하지만 나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잘 하는 것인가? 아니지 않은가? 고민이 되어야 합니다.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살게 하는 것이 악한 마귀의 유혹입니다. 타락한 루시퍼 즉 사탄을 믿고 섬기는 사탄교가 있다는 것을 아시지요? 사탄교 경전 1장 1절에는 “네 인생의 주인은 네 자신이다. 네 자신을 위해서 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 창세기 1장 1절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지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주어가 다릅니다. 기독교인들은 내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라고 믿습니다. 헌데 악한 마귀는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 자신이라고 속입니다. 기독교인들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헌데 악한 마귀는 내 자신의 기쁨과 내 자신의 만족과 내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만 쌓아 두게 합니다. 돈은 좋은 것이지만, 돈을 사랑하게 합니다. 돈을 믿게 합니다.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돈을 섬기게 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만 투자하게 합니다. 사람은 돈을 투자한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주식에 투자한 사람은 온통 주식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땅에 투자한 사람은 땅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돈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십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기 때문이라는 하십니다.

그렇다면 돈을 하늘에 쌓는 방법은 뭘까요? 그것은 하나님 몫과 내 몫을 구별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몫은 무엇입니까? 예! 십일조입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참으로 조심스러운 마음입니다. 아! 목사님이 헌금 얘기 하나 보다라고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우리들이 십일조에 대해서 흔히 오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십일조는 구약시대에 하던 하나의 율법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율법은 폐하여졌으니 십일조도 구약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십일조는 율법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십일조를 교회 재정을 채우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자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신앙고백이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를 가장 먼저 한 사람 = 아브라함)

십일조를 가장 먼저 드린 사람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조카 롯이 살던 소돔과 고모라 성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연합군에 의해서 롯과 그의 자녀들이 다 잡혀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집에서 훈련한 군사 318명을 데리고 롯을 구하기 위해서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전쟁은 아브라함의 큰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318명의 적을 수를 갖고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두 사람이 아브라함을 맞이합니다. 한 사람은 소돔 왕이었고, 또 한 사람인 멜기세덱이라는 왕이었습니다. 창세기 14장에 보면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고 말합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천지의 주재이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느끼셨습니까? 이것은 아브람을 축복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찬송하라는 충고입니다. 풀어서 보면 이런 말입니다. “네가 318명으로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천지의 주재이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네 대적을 네 손에 붙여주셨기 때문에 이긴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하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에서 ‘찬송하라’는 다른 말로 ‘감사하라’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네 대적을 네 손이 붙이셔서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으니 네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라!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린 이유)

재미난 것은 멜기세덱의 말을 듣고 아브람이 보인 반응입니다. 아브람은 즉시 그 전쟁에서 얻은 것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드립니다. 이것이 십일조의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아브람이 멜기세덱의 말을 듣고 십일조를 드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 멜기세덱의 말이 맞다는 것입니다. 내가 잘나서, 내가 잘 싸워서, 내 전략이 좋아서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었구나. 맞다. 하나님이 대적을 내 손에 붙이셔서 승리한 것이다. 내가 찬양하고 감사할 분은 하나님이시구나라는 신앙고백으로 십일조를 드린 것입니다. (적용)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십일조를 드리는 이유는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잘나서, 내가 열심히 해서, 내가 노력해서 이 물질을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십일조를 드리지 못합니다.’ 허나 ‘ 하나님이 은혜 주셨구나! 직장도 주시고, 건강도 주시고, 일 할 수 있게 하셔서 수입을 얻게 되었구나! 이 모두가 하나님의 도우심이구나’라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십분의 하나를 드리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멜기세덱의 정체)

헌데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리는 이 사건에 더 놀라운 것은 아브람의 십일조를 받으신 분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바로 성육신 하신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멜기세덱이 누구인가를 밝혀 주는 성경이 히브리서 7장입니다. 히브리서 7장 1절 이하에 보면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이 멜기세덱이 누구라는 것입니까? 예! 하나님의 아들!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십일조를 누구에게 드린 것입니까? 주님께 드린 것입니다. 우리들이 드리는 십일조는 주님께 감사해서, 믿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또 하나 성육신 하신 예수님이 아브라함을 만나러 올 때 무엇을 갖고 오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4장 18절에 보면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에서 떡과 포도주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성육신 하신 예수님이 갖고 오신 떡과 포도주를 받아 먹고 감사하여 십일조를 드린 것입니다. (적용)우리들이 드리는 십일조는요? 주님은 이 땅에 왜 오셨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살과 피를 찢기시고, 흘려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에 너무나 감격하고 감사하여 아브람과 같이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찬예식에 참여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찢겨주신 몸을 상징하여 떡을 받습니다. 흘리신 보혈의 피를 상징하여 포도주를 받습니다. 이 떡과 잔을 받는 자들은 (1)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내 힘이 아닌 주님의 은혜로 삽니다. 내가 잘나서 내가 노력해서 내가 계획을 잘 세워서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이 신앙고백으로 내 마음을 드립니다. 십일조를 드립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받으면서 내 보물을 이 땅에만 쌓는 인생이 되지 않겠습니다. 내 보물을 하나님 위해, 하나님 영광 위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사용하겠습니다. 이 결단으로 떡과 잔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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