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염려극복의 노하우 | 이병수목사 | 2014-02-23 | |||
|
|||||
|
2014년 2월 23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마태복음 6:25-33 제목: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염려 극복 노하우 믿음은 하루 아침에 자라지 않습니다. 날마다 날마다 자랍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자랍니다. 헌데 어느 순간 보면 믿음이 크게 자라 있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채우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오늘 하나님은 어떤 말씀으로 우리 마음을 채우고, 믿음으로 말하고 행동하길 원하십니까? 31-32절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우리들이 먹고 입고 마시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이것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은 거래가 아닙니다. 이것을 해 주시면 나도 이렇게 하겠습니다가 아닙니다. 믿음은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갓난 아이들이 많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갓난 아이의 엄마의 우선순위는 아이입니다. 갓난 아이의 엄마가 우선순위가 아이가 아닐 때 아이의 생명은 위험합니다. 소치 올림픽이 거의 끝나갑니다. 올림픽 참가 선수들의 우선순위는 오직 운동입니다. 다른 것은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라는 것입니다. 엄마의 우선순위가 아이이고, 선수의 우선순위가 운동인 것처럼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이 우선순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어떤 일을 하든지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을 최우선에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오늘 말씀은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을 제일 우선순위에 두고 산다면 하나님께서 먹고 입고 마실 것은 책임져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염려가 많지요? 자식을 키우는 일, 먹고 사는 일, 건강, 노후에 대한 염려 등등. 이 모든 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면 하나님이 책임지시겠다는 것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헌데 우리는 어때요? 늘 염려하고 삽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채우기 보다, 생각 속에는 무얼 먹을까 무얼 마실까 무얼 입을까?만을 염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주님께서 염려를 극복하는 노하우를 알려 주십니다. 1.첫째로 염려 자체에는 아무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 염려라는 말이 6번이나 나옵니다. 염려란 'double focus'입니다. 마음이 갈라진 상태입니다. 두 눈이 하나의 초점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헌데 각각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면 정상이 아닙니다. 주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동시에 두 주인을 기쁘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화)누가복음 10장에 마르다와 마리아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일행이 마르다 마리아 자매 집에 오셨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일행을 대접하려고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헌데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마르다가 보니 너무 얌체 같고, 예수님도 눈치가 없으신 것 같아서 속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마르다는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는 것을 보고도 돕지 않는데 가만히 계십니까? 그에게 말해서 나를 도와주라고 하소서” 그 때 주님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보실 때 이분법적으로 보시면 안됩니다. 흑백논리로 마르다는 어리석고, 마리아는 지혜롭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 마르다의 봉사와 마리아의 예배가 둘 다 중요합니다. 둘 다 필요합니다. 때가 있는 것이지요. 예배할 때가 있고, 봉사할 때가 있습니다. 예배만 드리고 봉사는 하지 않는 신앙생활도 잘못이고, 봉사하는 것은 열심인데, 예배는 소홀히 여기는 것도 잘못입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나누어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한 번에 한 가지 밖에 못합니다. 그러니까 밥할 때는 발하는 일에 집중하고, 공부할 때는 공부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지금 할 일에 집중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헌데 마르다는 여러 가지 일 즉 생각으로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마음이 나누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하게 된 것입니다. 헌데 마리아는 말씀 듣는 일 한 가지에 집중을 했다는 것입니다. 염려는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27절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키라는 말은 목숨이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그러면 염려한다고 누가 키를 1mm라도 늘릴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중요하지요. 염려로는 키를 자라게 할 수 없습니다. 또 염려한다고 생명을 1시간 더 늘릴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오히려 염려는 목숨을 단축시킵니다. 염려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적용)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염려는 내가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내가 하려고 여기 저기를 뛰어 다니는 것입니다. 젊은 날에는 될 것 같지요?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지요? 그러나 어느 한 가지만 잘못되어도 다 무너지게 됩니다. 내가 염려한다고 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벌새 신앙과 알바트로스 신앙) 금요성령집회 시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새 들 중에 가장 작은 새가 벌새입니다. 벌새를 외국인들은 Humming Bird라고 합니다. 벌새는 날개짓을 1초에 빠르면 50-70회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날개 짓 소리가 벌 소리와 같다고 해서 우리는 벌새라고 하는데, 외국인들은 허밍으로 노래하는 것 같다고 해서 허밍 버드라고 합니다. 온 몸을 다해서 날개 짓을 합니다. 벌새가 빨리 날아갈 때는 시속 80-110Km/h 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저기를 누비며 다닙니다. 마치 성도들 중에도 벌새 신앙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기 힘으로 자기 노력으로 열심히 삽니다. 여러 가지 일로 여기 저기를 뛰어다닙니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서인지 벌새의 평균 수명은 4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한편, 알바트로스라는 새가 있습니다. 알바트로스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새입니다. 몸 길이가 90센티미터고, 날개를 펴면 무려 3.5미터나 됩니다. 알바트로스는 모든 새 중에서 가장 높이, 가장 멀리, 가장 오래 나는 새입니다. 알바트로스가 이렇게 가장 높이 가장 멀리 오래 날 수 있는 방법은 역동적 활강과 비행원리 때문으로 밝혀졌습니다. 다른 새들과 달리 알바트로스는 태풍을 가장 좋아한다고 합니다. 거칠게 몰아치는 폭풍을 뚫고 폭풍의 꼭대기까지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 바람을 타고 날아갑니다. 그래서 이 새는 나는 데 필요한 힘의 98퍼센트를 하늘의 바람에서 얻습니다. 나머지 2퍼센트만 자신의 힘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새의 별명을 ‘신천옹’ 이라고 지었습니다. ‘하늘을 믿는 늙은이’라는 뜻입니다. 참 멋진 이름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신천옹이 되야 합니다. 하늘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알바트로스는 자신의 힘으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벌새처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하면서 이리 저리 뛰어다니지 않습니다. 오직 바람을 탑니다.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 할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이렇게 맡기고 살아서 그런지 이 새의 평균 수명은 40~50년입니다. 그 중에서 어떤 새는 80년 이상 살기도 합니다. 이게 사람이지 새입니까?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통해서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까? 벌새처럼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벌새신앙으로 살지 말고, 알바트로스 신앙을 갖으라는 것입니다. 많은 일로 염려하여 마음이 분주합니다. 그러다보니 정작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합니다. 주님 말씀처럼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분주하기 보다 오직 한 가지 일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더 좋으니라’ 우리들이 집중해야 할 한 가지는 하나님이십니다. 2.그러면 구체적으로 주님이 오늘 본문에서 가르쳐 주시는 염려를 극복하는 노하우가 무엇입니까? (1)첫째로 “보라”입니다. 26절입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공중이 새를 보라= Look at!! "유심히 보라. 잘 보라. 마음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지상에 존재하는 새가 약 4000종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본 새의 종류는 100가지나 될까요? 종종 새의 아름다움을 영상으로 볼 기회가 있습니다. 그 많은 새들이 다 어떻게 먹고 살까? 생각합니다. 헌데 그 새들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다 먹이십니다. 헌데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새들을 다 먹이신다고 해서 새들이 입만 벌리고 가만히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먹고 입고 마시는 것을 염려하지 않는다는 것이 먹고 살기 위해서 열심히 살지 말라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일찍 일어난 새가 먼저 벌레를 잡는다는 말처럼 새들도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날라 다닙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않습니다. 욕심내지도 않습니다. 모아들이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해 주실 것을 믿고 하루 하루 살아갑니다. (예화)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주실 때도 매일 매일 내려 주신 이유가 뭐예요? 믿음을 보시려는 것입니다. 내일 일을 미리 염려하고 쌓아두지 마라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하나님이 내일도 주실 것을 믿고 오늘 먹을 양을 거두라는 것입니다. (적용)보라! 그러면 무엇을 봐야 할까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세요. / 예레미야 33장 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세요? 새들에게는 창조자 하나님이십니다. 헌데 우리에게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십니다. 우리 아버지는 ①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이십니다.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②또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이십니다. 하나님이 성취하십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③그러므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그리하면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시편 46편을 보라! 1-2절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세상이 아무리 요란하고 흉한 소식이 들려도....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10절입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가만히 있으십시오. 요동하지 마십시오. 하나님만 잠잠히 바라보십시오. 하나만 더 말씀을 보겠습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입니다. 잘 아시는 말씀이시지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염려하지 말고 가만히만 있으랍니까? 아닙니다. 우리들을 염려하게 걱정하게 하는 일들이 많지만, 오직 우리는 초점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기도와 간구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입니다. (2)둘째로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염려를 극복하는 두 번째 노하우는 “생각하여 보라”입니다. 28절입니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여기에서 “생각하여 보라”는 말씀의 헬라어는 “카타만싸노”입니다. 영어로는 Consider입니다. 뜻이 뭐예요? ①유심히 관찰하다 ②수고하여 찾아내다 ③열심히 배우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도전하는 것입니다. 한번 깊히 생각해 보라! 유심히 관찰해 보라. 수고하여 찾아보라! 29-30절을 보겠습니다. 주님의 마음이 느껴지길 바랍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①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깊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새들과 꽃들에게 하나님은 창조자이실 뿐입니다. 헌데 우리에게 하나님은 아버지이십니다. 이 믿음만 있다면 뭘 두려워 할 것이 있습니까?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고, 책임져 주시지 않겠습니까? 새들을 먹이시고, 꽃을 입히시는 하나님이 왜 너희들을 책임지시지 않겠느냐? 왜 믿음이 없느냐?는 것입니다. (적용)우리들이 염려를 이기는 길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심을 정말 믿는다면 염려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어떤 일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예화)자녀들이 자기 할 일 열심히 하면 부모님들은 다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학생인 자녀들이 열심히 공부하면 나머지는 부모가 채워주지 않습니까? 헌데 자녀들이 책상 의자 걱정하고, 등록금 걱정하고, 책값 벌어오고, 어두운 조명 바꾸고 합니까? 공부만 열심히 하면 나머지는 부모들이 다 해야 할입니다. 하나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 하나님이 나머지는 다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것입니다.
깊히 생각하여 보십시오. 어느 해인들 염려할 것이 없었던 적이 있었습니까? 또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걱정이 많았던 해였지만, 어느 해인들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더 깊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이 앞으로는 주켜 주시지 않겠습니까? 저는 교회를 섬기면서 확신합니다. 은혜로 주님이 이끄셨고, 앞으로도 은혜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한번 깊히 생각해 보십시오. 망할 것 같았지만 망했습니까? 죽을 위기였지만, 죽었습니까? 요한복음 14장 1-2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사람은요? 생각한 것이 말과 행동으로 나옵니다. 말과 행동은 생각의 토대입니다. 사람이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생각하지도 않은 것이 말이나 행동으로 나오는 경우는 없습니다. (예1)한 번도 선한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선한 말과 행동을 할 리 만무합니다. (예2)한 번도 누군가를 불쌍히 여기고 도와 줘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선한 일을 할 리 없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생각한 것이 말과 행동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들은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왜 우리들이 예배에 참석해서 말씀을 듣습니까? 말씀을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서 예수님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말씀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면 그런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믿음이 무엇입니까? 매일의 삶속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령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그 말씀대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만으로 족합니다. 헌데 매일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를 생각하지 마세요.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세요.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