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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분석(2)-잘 다듬어진 보석 베드로 | 이병수목사 | 2014-08-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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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17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마태복음 10:2-4 제목:제자분석(2)-잘 다듬어진 보석 베드로 오늘은 가장 유명한 제자 베드로를 생각하기 원한다. 베드로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길 원하시는 음성을 듣기 원한다. 성경에 베드로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나온다. 한 시간에 다 실필 수는 없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설교의 초점을 ‘만약에 베드로가 간증을 한다면’ 무엇을 말할까?에 두었다. 아마도 변화되고 난 이후의 베드로라면 틀림없이 자신의 약함에 대해서 말할 것이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 난 정말 연약한 사람이었다. 헌데 내가 이렇게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주님의 은혜였다.’라고 간증할 것이다. 베드로의 인생은 성령 받기 전과 받고 난 후로 나눌 수 있다. 성령 받기 전의 베드로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①첫째는 배신자였다. 가장 결정적일 때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다. 다 주를 버릴 지라도 자신만큼은 주님을 지켜 드릴 것이고, 죽기까지 주님과 함께 하겠다고 했다. 헌데 수종 드는 여종 앞에서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한다. 맹세했다. 주님을 저주까지 했다. ②둘째는 실패자였다. 주님의 뜻을 헤아리는 데 늘 실패했다. (예화1)변화산에서는 초막을 지을 테니 여기에서 영원히 살자고 한다. 주님의 뜻이 뭘까?를 생각하기 보다 먼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내세웠다. (예화2)신앙고백 후 칭찬을 받았다. 하나님 나라의 반석이 될 것이라고 칭찬을 받았다. 헌데 조금 있다가는 사탄의 자리에 선다. 주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신다. (예화3)겟세마네 동산에서는 칼을 빼어 휘둘러 주님의 길을 방해하는 모습을 본다. (예화4)하나님 나라 위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는 부르심을 받고 나선 베드로는 결국 예전의 고기를 잡는 어부로 돌아갔다. 낙향하여 주를 따르기 위해서 버렸던 그물을 다시 잡았다. 완전히 실패자의 모습이다. 헌데 이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을 받고 난 이후에 완전히 달라졌다. ①다혈질적이고 충동적인 사람이 겸손해 졌다. ②무지한 자였으나 진리를 바로 깨달았다. ③의심하는 자, 늘 넘어지는 자였으나 주님을 위해서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아는 자가 되었다. ④자기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하던 사람이 오직 주님만 내세웠다. ⑤영적으로 늘 깨어 있는 자가 되었다. 베드로전서 4:7 ⑥성령충만하여 위대한 설교자가 되었다. ⑦자신의 인생을 예수의 증인으로 십자가의 삶을 살다가 순교자의 길을 걸어 갔다.
베드로가 사도가 된 것은 오직 주님이 선택하시고, 주님이 불러 주신 것이다. 베드로가 부름 받는 장면을 보면... 두 번의 콜링이 있다. (예화)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과정에서 부르심! 콜링!은 두 가지이다. ①하나는 교회의 부르심을 받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을 통해서 교회로 초청을 받는 것이다. 교회에 와서 복음을 듣는 것이다. ②또 하나는 교회에만 와 있다고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야 한다. 주님의 부르심이란 예수를 믿게 되어, 예수를 구원자요 내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구원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참 부르심이다. (적용)우리들을 보세요. 우리들도 두 부으심을 받았다. 누군가에게 인도함을 받고, 교회에 와서 예수를 믿게 된 것이다. 오늘 우리들이 태신자를 작정하는 것도 교회의 부르심을 갖게 하려는 것이다. 전해주는 자가 없이 어떻게 저들이 들을 수 있겠는가? 우리들의 사명은 저들을 교회로 인도해서 예수를 만나게 하려는 것이다.
베드로를 보라. 베드로는 먼저 동생 안드레의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주님의 부름을 받았다. 주님께서 밤새도록 그물질을 하며 물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를 찾아 가셨다. 베드로의 배에 올라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고,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베드로를 부르시는 장면은 흡사 구약의 기드온을 부르심과 같다. (1)먼저 새로운 이름을 주셨다. 베드로의 본명은 시몬이다. 헌데 주님은 베드로를 보시자 마자 “너를 장차 게바라 하리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뜻은 반석이라는 뜻이다. 사사기 6장 12절에 보면 하나님의 천사가 기드온에게 나타나서 가장 먼저 “큰 용사여!!!”라고 불러 주셨다. 새 이름을 주신 것이다. (2)둘째로 주님께 부름을 받을 때의 이들의 모습은 실패자의 모습이었다. 무슨 말인가? 전혀 이름값을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전혀 반석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큰 용사의 모습이 아니었다. 베드로는 평생을 바닷가에 살면서 고기를 잡았던 전문가이다. 바닷 속을 훤히 꿰뚫고 있는 사람이다. 경험도 많은 사람이다. 헌데 밤새도록 수고하고 애를 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빈 그물을 거두고 있는 피곤에 지친 베드로였다. 하나님께서 ‘큰 용사여!!!’라고 불러 주실 때 기드온의 모습은 어땠나? 미디안 군을 피해서 포도주 틀에서 몰래 밀을 타작하고 있는 옹색한 모습이다. 밀은 마당에서 타작해야 한다. 헌데 숨어서 몰래 밀을 타작하고 있다. 이 모습은 전사의 모습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 볼 수 없는 초라한 모습이다. 헌데 주님은 이 때에 이들을 찾아 오셨다. (3)이들을 부르시는 장면에서 우리들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①주님은 가능성을 보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나 현재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을 보신다. 하나님은 현재 초라한 내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잠자고 있는 미래의 잠재력을 보신다. 헌데 우리는 어떤가? 늘 지금만 본다. 과거를 본다. 그래서 절망하고 낙심한다. 지금의 모습만을 보고 판단한다. 나라가 소망이 없다고 한다. 한국교회가 소망이 없다고 한다. 교육이 무너지고 있다고 한다. 이유가 뭔가? 지금만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을 계산해 넣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처음 만났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장 42절에서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여기에서 중요한 주님의 시선은 무엇입니까? “장차”입니다. 지금 베드로의 모습은 흙속에서 찾아온 돌멩이 같다. 헌데 “장차” 잘 다듬어서 보석처럼 쓰시겠다는 것이다. 네가 지금은 고기를 잡고 살아가는 평범한 인생이나, 장차 내가 너를 반석이 되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②절대로 여러분 자신을 바라볼 때 육안으로만 보지 말라. 하나님의 눈으로 보라. 나의 눈으로 보면 어때요? ‘상처 투성이인 나, 열등감에 사로잡힌 나, 부족하기 짝이 없는 나’로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라. 하나님은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힘 있게 살아 갈 자,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반석과 같이 쓸 자. 절망도 넉넉히 이기는 소망의 사람, 돌멩이가 아니라 보석 같은 사람’이라고 하신다. 믿음은 내 눈으로 나를 보지 않고,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보는 것이다. 믿음은 내 생각으로 가정과 교회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주님은 기드온도 베드로도 성공했을 때 찾아 오시지 않았다. 실패 했을 때 찾아 오셨다. 연약하기 짝이 없는 자들을 찾아 오셔서 미래를 열어 주셨다. 믿어주시고 기대해 주셨다. 약속을 주셨다. 결국 베드로는 어떻게 되었나? 갈릴리 바다의 조약돌이 보석이 되었다. 땅속에서 방금 꺼낸 흙 투성이의 원석이 잘 다듬어져 보석이 되었다. 누가 하신 것인가? 베드로가 한 것인가? 아니다. 주님께서 신실하게 약속을 지켜 주셨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선택하신 이상 후회하지 않으시고, 이끌어 주셨다. 실수하고 넘어지고 연약해도 주님은 참아주시고, 성령의 능력을 주셨다. 말씀을 가르쳐 주셨다. 주님의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다. 주님의 선택에는 실수가 없다. 나를 선택하시고 불러 주신 주님의 결정에는 후회가 없음을 기억하라. 2.둘째로 주님은 이름대로 되게 하셨다. 베드로의 이름은 두 가지이다. 이 두 가지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결국 베드로는 주님께서 이름대로 되게 해 주셨다. (1)하나는 시몬이다. 본명이 요한의 아들 시몬이다. 시몬이라는 이름의 뜻은 “들음”이다.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순종을 잘한다는 뜻이다. 우리 아이는 참 말을 잘 들어!라는 것이 청력이 좋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순종을 잘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몬이라는 이름은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이다. 헌데 중요한 것은 누구의 말을 잘 듣느냐?였다. 변화되기 전에는 사람의 말, 자기생각을 잘 들었다. 헌데 변화되고 난 뒤에는 오직 주님의 말을 잘 들었다. 성령의 말을 잘 들었다. (2)또 하나의 이름은 베드로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베드로는 반석이란 뜻을 갖고 있다. 주님이 반석이라는 이름을 주신 진짜 마음은 뭘까요? 사람 스스로의 능력으로 어떻게 반석이 될 수 있겠습니까? 원래 반석이신 분이 누구이시지요? 마태복음 7장에 보면 참된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24절-25절을 보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신실한 믿음의 삶은 반석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고 했다. 반석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자가 반석위에 인생의 집을 짓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반석이 되는 것은 반석이 되시는 주님에게 붙어 있는 것이다. 종이 한 장은 약하다. 그래서 약간의 충격에도 쉽게 뚫린다. 허나 반석에 딱 붙어 있으면 절대로 뚫리지 않는다. 종이 한 장은 약하지만, 반석에 붙어 있어서 강한 것처럼, 우리들은 약하다. 부족하다. 그러나 반석이신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사람들은 반석이 되는 것이다. 반석의 힘이 내 힘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예수님이 가진 생명을 갖는 것이다. 예수님이 부할 하셨듯이 우리도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마귀를 이기었듯이 우리들도 마귀를 이기는 것이다. 예수님이 천국에 계시듯이 우리들도 천국에 들어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시몬 베드로가 사는 길은 무엇인가? 철저하게 시몬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주님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가 반석이 되는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베드로 같은 인생이 되는 것이다. 반석 같은 인생이 되는 것이다. 비가 오고 창수가 나고, 비바람이 불어도 끄떡 없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결국 베드로가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할 때 복의 통로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복의 통로가 되었다. 가는데 마다 주님의 살아계시는 역사를 나타내었다. 주님은 종종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라고 하셨다. 무슨 말씀이신가? 듣고 잊어 버리는 자가 되지 말고, 행하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순종하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아무리 많이 들어도 삶으로 순종하지 않는다면 들을 귀가 없는 것이다. 베드로가 위대한 사도가 된 것은 진정한 뜻에서 시몬 베드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적용)우리들도 시몬 베드로가 될 수 있다. 먼저 시몬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베드로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반드시 행동으로 순종해야 한다. 그러면 반석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다. 깊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은 말씀을 들으시면 나는 어떤가?를 살피시는 분이세요? 아니면 듣고 잊어 버리는 분이세요? 주일에 주신 말씀을 붙잡고 자신을 비추어 보며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하고, 힘도 얻고, 행동도 고치세요? 어떠세요?
(적용)지난 주간에 <굶주림 보다 더 큰 목마름>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북한 지하교회 성도의 순교이야기이다. J라는 사람이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헌데 뭘 알아야 가르칠 것 아닌가? 성경이 없었다. 그래서 한 사람에게 중국에 가서 성경책을 구해 오도록 부탁을 했다. 헌데 그 부탁을 받고 갔던 사람이 성경책을 갖고 돌아오다가 경비대의 총에 맞아 죽고 말았다. 그 뒤에 한 동료가 중국의 어느 교회에 가서 성경책 한 권을 가져 왔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이들도 성경을 갖게 되었다. 헌데 문제는 갖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책은 한권 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 논의 끝에 66권의 성경을 일일이 쪼개서 돌아가면서 읽기로 했다. 이 책의 저자에게 할당된 성경책이 레위기서 였다. 레위기를 읽는데 내 말에 순종하지 않으므로 이 땅에 기근과 흉년이 든다. 내 말에 순종하지 않으면 파종하는 자의 수고가 헛될 것이라는 말씀을 읽는다. 그 말씀을 읽는데 지금 북한을 휩쓸고 있는 재앙들 폐병, 홍역, 콜레라, 기근 등등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 무슨 말씀에 순종해야 하나? 레위기서가 제사를 드리는 책 아닌가? 짐승을 잡아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말씀을 읽었다. 집단농장에서 있는 짐승이라고는 암소 한 마리와 황소 한 마리였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말라 비틀어진 소 두 마리가 전부였다. 그러나 그 소들은 대들보 같은 존재였다. 소 한 마리가 100명의 가치를 하는 것이었다. 헌데 마음에 소를 잡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려야 이 재앙이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고 보면 무모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너무나 심각했다. 헌데 소를 잡는 일은 불가능했다. 소를 죽이는 것은 도살죄가 아니라, 살인죄에 해당되었다. 갈등을 하고 있는데 제정신이 아닌 난희 엄마가 두 살된 자기 아이를 삶아 인육을 팔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땔감도 없어서 설익은 아이의 눈동자를 보고 경악을 한다. 헌데 이 일로 인해서 북한 안에서 아이를 잡아 먹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이대로는 이 민족이 멸망할 것 같은 위기감을 느끼고 소를 잡기로 한다. 목숨을 걸고 소를 잡았다. 이 일로 인해서 그는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즉각 처형될 위기에 처한다. 그 때 수의사로 일하는 친구가 지혜를 내었다. 당시는 전 세계가 광우병으로 떠들썩할 때였다. 수의사 친구는 그 소는 광우병에 걸려서 반드시 불에 태워 없애야 했다고 했다. 헌데 그 친구가 그것을 알고 북한 전지역을 구하기 위해서 한 일이었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수의 진단서를 제출해 주었다. 하루 아침에 역적에서 영웅이 되어 풀려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몇 시간만 달려가면 만날 수 있는 북한 사람들! 언어도 같다. 같은 하늘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북한 주민들 가운데는 우리와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헌데 그들은 목숨을 걸고 이 시대의 시몬 베드로로 살아가고 있다. 말씀을 들은 대로 순종하려는 시몬 베드로들이다. 우리나라는 환경면에서는 북한 지하교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하다. 헌데 한국교회에는 시몬 베드로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헌데 북한 땅에는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서는 목숨도 아낌없이 내 놓을 사람이 지천이라고 한다. 헌데 우리는 어떤가? 말씀을 듣고 우리 나름대로 해석을 한다. 우리의 잣대로 말씀을 난도질한다. 그래서 순종하지 않는다. 약점 많고 실수 많고 부족한 시몬이 진정한 시몬 베드로가 된 것은 말씀대로 살았기 때문이다. 예수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하다가 죽었기에 진정한 시몬 베드로가 된 것이다. 우리들도 말씀을 들었으면 그대로 살아야 한다. 변명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시몬 베드로를 찾고 계신다. 누가 이 시대에 시몬 베드로가 될 것인가? 지금은 비록 부족한 돌멩이에 불과하지만, 반석이신 주님에게 붙어 있을 때, 이 시대에 시몬 베드로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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