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족하지 않는 능력 | 이병수목사 | 2015-08-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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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2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마태복음 17:24-27 제목:실족하지 않는 능력 유대인들에게는 성전세가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30:11~16에 보면, 유대의 남자는 이십 세가 지나면 성전세를 내야 합니다. 그 액수는 반 세겔입니다. 한 세겔은 네 데나리온입니다. 한 데나리온이 하루 임금이니, 반 세겔은 이틀 동안 벌어야 모을 수 있는 돈입니다. 성전에 바쳐야 하는 것은 일 년에 반 세겔입니다. 그러니까 이틀 일한 정도의 수입을 일 년의 성전세로 바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헌금이 아닌 의무금입니다. 이 돈은 성전을 유지 ․ 보수하기 위해서 쓰입니다. 성전세는 부자라도 더 낼 수 없습니다. 가난하다고 예외 되지도 않습니다. 반드시 이스라엘 남자라면 내야 합니다. 성전세를 받는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와서 너희 선생은 왜 성전세를 내지 않느냐?고 시비를 겁니다. 베드로는 “내신다”하고 뒤돌아 와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임금은 세금을 누구에게 받느냐?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당연히 타인에게 세금을 받겠지요. 자식에게 세금을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예수님은 성전세를 내실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참된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성전세를 내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전세를 내셨습니다.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7절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주님이 성전세를 내신 이유는 당신 자신 때문에 사람들이 실족하지 않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은 어느 누구도 실족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실족하다는 말은 ‘스칸달리조’라는 말입니다. 스칸달리조라는 말은 해석하면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첫째는 유혹해서 죄를 짓게 한다는 것입니다. (2)둘째는 믿음을 포기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3)셋째는 공동체에서 떨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악한 마귀의 역사입니다. 악한 마귀는 끊임없이 성도들을 실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죄 짓게 만들고, 믿음을 포기하게 만들고, 예배와 교회 공동체에서 떠나게 만드는 것이 마귀의 일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실족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헌데 주님은 한 사람이라도 실족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족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첫째로 일상생활속에서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라!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바다로 가서 낚시를 던져 고기를 잡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잡은 물고기의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물고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한 세겔을 나와 너를 위하여 성전세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왜 주님이 이렇게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를 남기셨습니다. 칠병이어로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시고 일곱 광주리를 남기셨습니다. 주님은 얼마든지 기적으로 일하실 수 있습니다. 헌데 지금은 왜 그렇게 안하셨을까요? (1)초월적인 기적도 행하시지만 일상 생활 속에서도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일깨워 주시기 위함입니다. 낚시를 하라-어부 생활은 청산했어도 낚시는 했을 것이다. 고기는 먹어야 하기에... 늘 하는 일이었다. 가장 먼저 잡은 물고기 입을 열라 주님은 우리 삶에 놀라운 기적도 주시지만, 평범한 일상 생활 속에서 맛보게 하시는 은혜를 날마다 부어 주신다. 오늘 하루 잠에서 깨어나 숨을 쉬고, 아침 밥을 가족과 함께 먹고, 일터로 나가서 일을 하고, 사랑을 하고, 웃고 울고, 기대하고, 수고하고 땀을 흘리는 모든 것이 기적이요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마태복음 17장은 순서가 중요합니다. 변화산 위의 사건 - 변화산 아래 사건 - 그리고 가버나움에서 있었던 일들을 차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어디에서 살아 가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1)변화산의 체험 - 가정이 있는 베드로입니다. 헌데 그는 가정도 잊은 채 이곳에서 초막 셋을 짓겠다고 합니다. 자기들은 어디 거할지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뭘 먹고 살 것인지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은혜를 받으면 그만큼 놀라운 영적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은혜 받으면 현실의 문제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2)헌데 주님은 산 아래로 내려가라고 하십니다. 산 아래로 내려오면 어떻습니까? 귀신들려 말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식 때문에 괴로워 하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아무리 도움을 싶어도 능력이 없는 제자들이 있습니다. (적용)이것이 목사의 마음입니다. 성도들을 돕고 싶은데 능력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고쳐 주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기도 외에는 이런 능력이 나타날 수 없다고 하십니다. 목회는 기도인 것입니다. 오직 성도들을 위해서 믿음으로 기도하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3)변화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은 가버나움으로 가셨습니다. 가버나움으로 왔을 때 성전세를 내라고 합니다. 더 현실적인 문제를 만납니다. 은혜 받고 집으로 오면 돈 걱정을 해야 합니다. 당장 내야할 공과금이 밀려 있습니다. 학원비를 내야 하고, 카드 값을 결재해야 하고, 대출 원금과 이자 상환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변화산과 가버나움을 오고가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은혜를 받으면, 가버나움으로 가야 합니다. 막상 가버나움에 가면 현실의 문제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버나움에서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는 가버나움과 같다. 성전세를 내야 하는 삶이다. 그러나 그 곳에도 주님은 함께 하신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에서 사도 바울은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우리들은 문제가 해결되면 감사하고, 기뻐할 것이라고 합니다. 허나 주님은 지금 누리라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 받을 은혜가 있고, 아픔 중에 받을 구원이 있습니다. 지금 받을 은혜를 나중으로 미뤄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힘든 상황속에 있다 할지라도 지금 기뻐하고 감사하고, 믿음으로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2.둘째로 실족하지 않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살아보라! 주님은 베드로에게 오직 순종을 원하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아 보라는 것입니다. 가버나움에서도 함께 하시는 주님이 일러주신 대로 낚시대를 들고 바다로 나간다. 물고기를 잡아 성전세를 낸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훈련을 시키시는 것이다. (3)오늘 날에도 하나님에게 실망한 사람들이 많다. (예화1)세례 요한도 실족했다. ①세례 요한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헌데 감옥에서의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것입니다.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자 요한의 마음에 갈등이 일어난 것입니다. 불의한 사람 헤롯은 잘만 살고 있는데, 오히려 아무 죄가 없는 자신은 감옥에서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이게 뭔가? 왜 하나님은 불의한 자를 심판하지 않으시는가? 또 나를 이대로 내버려 두시는가? 하는 마음이 든 것입니다. ②또 세례 요한은 주님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이라면 얼마든지 자신을 구원해 줄 수 있습니다. 아니 뭐라고 위로의 말씀 한 마디라도 해 주실 수 있습니다. 헌데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다. 왜 메시야가 아무 일도 안 해 주시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놀라운 일들을 많이 행하시면서 나에게는 아무런 능력을 베푸시지 않으시나? 하는 마음이 든 것입니다. ③의를 위해서 인생을 드린 삶에 보상이 이건가?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이게 뭔가?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실족할 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 나를 믿으라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을 보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메시야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을 내가 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로 실족하지 마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예화2)이어령 교수의 딸이 이민아 목사입니다. 이만아 목사는 참으로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갑상선 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습니다. 망막 박리로 인해서 실명위기까지 갔습니다. 다시 암이 재발하여 결국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딸이 죽고 난 뒤에 사람들은 이어령 교수에게 물었습니다. “딸이 실명위기에서 건짐을 받고 눈을 뜨게 되어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딸을 암으로 잃고 난 후에도 여전히 예수님을 믿습니까?...” 그 때 이어령 교수님은 “하나님이 고쳐주신 분들도 모두 다 죽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열두 제자도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불행하고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오히려 그 죽음이 기독교의 새 복음이 된 것을 압니다. 사도 바울은 죽을 때까지 병을 못 고쳤습니다. 감옥에서 풀려나지 못했지만 그 일로 인해서 기독교는 더 융성해진 것을 잘 압니다. 나도 인간이라 믿음이 깊지 못하여 하나님을 원망도 했습니다. 손자를 잃었을 때, 딸을 잃었을 때 세속적인 말로 왜 삐치지 않았겠습니까? 실족할 뻔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나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누구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셨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딸이 눈을 떴으니 예수님을 믿고, 딸이 세상을 떠났으니 예수님을 버리는 것은 시장의 거래지. 믿음은 아닙니다. 남대문시장에 가서 값이 싸면 사고, 값이 비싸면 사지 않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리 세상이 부패했어도 교회는 시장이 아닙니다. 필요에 따라 취하거나 버리거나 하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를 시장으로 만들지 맙시다. 교회를 시장으로 만드는 것이 사탄의 유혹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을 믿고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내 소원을 들어주시면 사랑하고, 내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으면 떠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신령한 약속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예화3)왜 우리가 실망합니까? 욕심이 너무 많기 때문은 아닙니까? 밀레의 만종이라는 그림을 아시지요? 그림이 머릿속에 떠오르신다면 그림을 좀 아는 사람입니다. 밀레의 만종을 설명하는 글을 보고 참으로 은혜를 받았습니다. 밀레의 만종이 주는 메시지는 세 가지입니다. ①노동 - 노동의 아름다움입니다. ②가정 - 부부가 함께 밭에서 일을 합니다. ③신앙 - 하루 일을 마치고 부부가 함께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놀고 먹고 배불러서 헐떡이는 것이 행복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께 무엇을 구하는가? 욕심으로 구하기에 하나님에게 실족합니다. 실망합니다. 지금도 충분히 하나님의 복을 누리면서도 눈이 열리지 않아서 감사하지 못하고 사시지는 않습니까? 일 할 수 있는 것, 공부할 수 있는 것이 행복입니다. 감사한 것입니다. 가정이 있는 것이 행복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행복입니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이 행복입니다. 하나님께 겸손히 기도할 수 있다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실족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적용)우리 주변을 보세요. 우리를 믿음으로 감동시킨 사람들은 초월적인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이 아니라, 주어진 자리에서 믿음으로 살아낸 사람들입니다. (예1)손양원 목사님 - 두 아들을 죽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것을 넘어 사랑하는 것으로 위대함을 나타냈다. (예2)닉 부이치치 - 자신의 재능은 쓰러지는 것 / 다시 일어설 때 박수를 보낸다. 없던 사지가 생기는 기적을 맛본 것이 아니다. 사지가 없지만 감사하고, 기뻐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마음의 평안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주님이 주신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실족하지 말라. 실족할 일이 많다. 그러나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 또한 남들을 실족하게 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 주님은 한 사람도 실족하지 않기를 바라신다. 믿음에서... 교회를 섬김에 있어서...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변화산에서든지... 가버나움에서든지... 실족하지 말고 믿음으로 승리하며 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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