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목사의 유언"- '목사'란 말도 묘비에서 빼라
다음의 글은 암으로 4개월 시한부 삶을 살다 2000년 10월에 소천한 김치영목사님의 장례 절차에 대한 유언입니다.죽기 2개월 전에 자신의 장례에 관한 내용을 구술한 것입니다.
"입관 후에는 장의사가 관을 덮는데, 관보로 관을 덮는다. 이 보에는 보통 죽은 사람의 이름을 쓰지. 그래서 '000지구'(之柩)라고 쓴 보를 관 위에 덮는다. 내 관에는 그렇게 하지 말고,흰 무염에 붉은색으로 '십자가지도(十字架之道)'라고 쓴 천을 덮어 다오. 장지에 가서 하관을 한 후에는 그 천을 벗겨서 내 몸을 덮어라. 그 위에 흙을 채우면 된다.
관 안에는 아무 것도 넣지 마라. 시신을 관에 넣고, '십자가지도' 로 시신을 덮은 뒤, 고운 흙으로 관을 꽉 채워라. 흙외에는 아무 것도 넣지 마라. 묘비에는 목사라는 칭호를 쓰지 마라. 그냥 '김치영'이라고 이름만 써라. 묘비에는 성서 귀절 하나 새겨 다오. 마태복음 6장 10절의 'Thy Kingdom Come'(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시며)이 좋겠다. 내 평생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바라며 살았으니.....
너희들은 일절 상복을 입지마라. 그냥 평상복을 입도록 해라. 깨끗한 정장 차림이면 된다. 유족의 표시를 위해 꼭 필요하다면 넥타이 정도는 공동으로 준비해도 괜챦겠지. 그러나 검은 색으로 하지는 마라. 기독교인들은 죽음을 삶 속에서 그냥 자연스럽게 맞이해야 하는 것이야. 인간적으로는 슬프겠지만 터져 나오듯이 울거나 곡을 하지는 마라. 믿음도 소망도 없이 모든 것이 끝난 사람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부조는 받지 않도록 해라. 가족들에게 다소 경제적 부담을 주는 것인지는 모르겠구나. 나는 목사로서 평생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살았다. 사람들이 번거롭게 장례에 참여하는 것만도 미안한데.....
마지막으로 장례예배에 대해 말하니 잘 기억해 두어라. 장레예배의 모든 절차는 하00목사에게 맡긴다. 이 사람, 저 사람 와서 형식적으로 순서를 하나씨기 맡는 것이 뭐가 좋겠니? 한국교회가 총회장을 지역 안배로 매년 돌아가면서 뽑더니, 요즘은 매사에 구색 맞추기에만 신경을 쓰는구나. 무슨 행사나 에배를 드리면, 거기에 필요한 분을 초청하는 것이 아니라 '직책'을 따라 순서를 맡기지. 설교나 기도도 노회장,부노회장,서기 이런 식으로 맡아서 한다. 내가 00노회 노회장을 지냈으니, 내 장례도 노회에서 주관해 줄 것이다. 그렇지만 노회에서 내 장레를 형식적으로 맡아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하목사가 사회와 기도 등 모든 순서를 맡도록 해라. 장례예배때 죽은 자를 위한 일체의 조사나 약력 소개를 하지 마라. 매우 단순하고, 은혜 넘치는 예배 외에는 어떠한 것도 추가하지 않도록 해라.
나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부족하고 부끄러운 삶을 살았어. 철저하게 죄인으로 살다가 간다. 하나님 앞이나 사람들 앞에 내세울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언제 태어나서, 무슨 공부를 했고, 어떤 직함을 가졌고, 이런 것들을 너절하게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이런 것이 싫어서 묘비에 '목사' 칭호도 뺐다. 내게 무슨 내세울 것이 있느냐? 내 시신을 앞에 두고 추모사를 읽고, 약력을 나열하며,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 처럼 말한다면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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