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지 말라 | 이병수목사 | 2009-03-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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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29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마태복음 22:1-7 제목: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지 말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왕의 혼인잔치 비유입니다. 특별히 2절의 말씀을 보면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말씀입니까? ‘천국’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초청하시는 잔치집과 같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①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이 궁극적으로 최종적으로 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②또 천국은 예수님을 믿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천국을 맛보며 살아가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준비한 혼인 잔치집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누구나 행복하고 즐거워야 합니다. 요즘 얼마나 살기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까? 이와 같은 때에 이 말씀이 얼마나 위로가 됩니까? 모든 수고와 무거운 짐들을 하나님 앞에 쏟아 놓고 하나님이 준비해주신 은혜와 복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답은 하나님이 갖고 계십니다. 우리에게는 답이 없습니다. 우리는 문제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언제든지 나와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즐거움에 참여 하여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이 말씀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나와야 하는가?를 살펴 보기 원합니다. 1.먼저 우리 하나님은 (1)초청하시는 분이십니다. 3절의 말씀에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더니” 우리 하나님은 부르시는 분입니다. 헌데 사람들이 오기를 거절했습니다. 이 당시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거절한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거절을 잘 설명하고 있는 말씀이 요한복음 1장 11절에서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다시 종들을 보내어 부르십니다. 간곡한 말로 사정하며 부르십니다. 4절의 말씀입니다.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사실 왕이 이렇게 사정할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사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의 하나님이시고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강압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호세아서 2장 14절에서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다른 남자와 눈이 맞어서 가출한 아내를 찾아와서 사정을 하듯이 하나님은 간곡한 말로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꽃 등심도 준비하고, 각종 스테이크 요리가 있단다. 그러니 꼭 와달라는 것입니다.
(2)그리고 하나님은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사랑은 아홉을 주고서도 한 가지를 더 주지 못해서 눈물 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주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냥 주고 싶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꼭 그런 분이십니다. 성경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는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난이후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시는 분이십니다. 창세기 1장 27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난 뒤에 가장 먼저 하신 일은 복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또 민 6:24-26에는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은 무엇입니까? 독생자 예수님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풀었다”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우리들에게 혼인잔치의 기쁨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17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뿐입니까? 성령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27절에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헌데 모든 것을 준비하고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했습니까? 거절했습니다. 5-6절의 말씀입니다.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실제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세례요한을 죽이고, 예수님을 죽이고, 사도들을 핍박했습니다.
(적용)이 모습은 오늘 날 사람들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거절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 즐거움에 푹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 버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습니다. 돈맛을 알고 돈 모으는 재미를 아니 교회에 올 마음이 없습니다. 젊은 남녀들은 사랑에 빠져서 데이트를 즐기느라고 오지 않습니다. 남녀의 사랑도 즐거움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아서 그 재미에 빠져서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왕되신 하나님의 초청에 오지 않는 것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세상은 금방 끝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현실에 매여서 왕이 준비한 잔치가 얼마나 황홀한지 아름다운지 모르기 때문에 거절하는 것입니다. (예화)어린 자녀들은 부모들이 말하면 듣지를 않습니다. 그때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먼저 살아봤기에 다 알고 해 주는 말이니 순종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헌데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것입니까? 또한 왕의 잔치는 은혜의 잔치입니다. 왕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은 죄입니다. 왕을 능멸하는 것입니다.
2.그러므로 좋은 것을 모두 준비하시고, 그것을 주시기를 기뻐 하시는 하나님의 초청 앞에서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쁘고 즐겁게 참여하는 것입니다. 오라면 즐겁게 오면 됩니다. 와서 즐거움에 참여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초청하는 사람에 대한 최고의 대우는 즐겁게 참여해서 잔치를 즐기는 것입니다. (실예)지난 주간에 교회에 새로 나오게 된 청년들을 심방했었습니다. 멀리 부모님 곁을 떠나서 기숙사 생활을 하니 먹는 것이 부실할 것입니다. 그래서 맛있는 것을 대접하려고 좋은 데로 데려갔습니다. 식당 간판이 보이자마자 환호성을 지르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먹는 것을 좋아해서 청주에 유명한 맛 집을 소개하는 카페에 가입을 했는데, 마침 우리가 온 식당이 나왔답니다. ‘아 여기에 가고 싶다. 얼마다 가고 싶었는지 꿈까지 꾸었답니다.’ 헌데 꿈에서 본 식당에 직접오니 너무 기뻐하는 것입니다.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계속 놀라는 것입니다. “와 멋지다. 너무 맛있다. 최고다 최고... 여기에 데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하며 얼마나 맛있게 먹던지 감사했습니다. 나중에는 배가 불러서 더 이상 못 먹게 되자 ‘아직 못 먹은 것도 많은데... 아깝다!’합니다.” 이 학생들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누군가의 초대에 가장 큰 예의는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너무 좋아하고, 즐거워하니 또 사주고 싶어집니다. 다음에는 더 멋진 곳으로 데려가야지!하는 마음이 절로 생깁니다. 젊은 학생들이 인생을 알더라니까요? 생존을 알아요? 사랑을 받을 줄 알더라구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즐겁게 참여하는 것입니다. 받아들이고 누리면 되는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을 믿으면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말고, 먼저 누리시길 바랍니다. 은혜를 충만히 받으시길 바랍니다. (적용1)예배 시간은 하나님이 차려주신 잔치에 초대받아 온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즐거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는 시간에는 열심히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는 놀라워 해야합니다. 아! 또 저 얘기! 아무런 기대감도 감격도 없이 말씀을 들으면 안됩니다. “감사해요. 주님! 주님의 사랑이 그런 거군요? 놀라워요? 아멘, 아멘하고 마음으로 새기고 감사해야 합니다.” / 예배를 마치고 난 뒤에는 점심까지도 즐겁게 참여하는 것입니다. 음식을 준비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칭찬은 맛있게 먹어주는 것입니다. 즐겁게 먹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너무 너무 맛있습니다! 제 평생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입니다.’ 적당히 거짓말도 하면서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성서의 예) 레위기에 보면 5가지의 제사가 나옵니다. 그 중에 아주 작은 것이지만, 자발적으로 감사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가 있습니다. 유일하게 농사를 지은 곡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화제라고도 하고, 소제라고도 합니다. 레위기 2장 1절에 보면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고운 가루 한 움큼과 기름과 유향을 가져다가 기념물로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불에 태우는 제사 소제입니다)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고 했습니다. 일년 동안 하나님께서 베푸셔서 풍성한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너무 많아서 너무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감사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곡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한 해 농사를 지으면 쌀 한 가마니를 주님께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 중에 한 움큼의 가루를 기념물로 만들어 제단위에서 불살라 드립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예배자의 마음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 때 한 움큼으로 만든 기념물이 ‘아즈카라’입니다. ‘아즈카라’는 어떤 사람이 더 높은 사람의 호의를 얻기 위해 드리는 작은 선물입니다.
하나님께 작은 것이지만, 너무나 감사하고 좋아서 자발적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즈카라’입니다. (적용)우리의 모든 신앙생활은 ‘아즈카라’입니다. 6일 동안 열심히 삽니다. 일 주일 동안 살면서 주님이 주신 은혜가 있습니다. 받은 은혜가 너무나 감사하고, 좋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주일 예배를 하나님은 ‘아즈카라’로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작은 시간을 드렸지만, 하나님은 전 인생을 드린 것으로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십일조 ‘아즈카라’입니다. 감사해서 열에 하나를 구별하여 드리면 하나님은 전부를 드린 것으로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말라기서에 보면 너희가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봐라 그러면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나 붓지 않나 시험해 보라고 하십니다. (예)앞으로 4월 달에 6일 동안 온 가족 특별새벽기도가 있습니다. 이 특새를 하나님께 드리는 ‘아즈카라’가 되게 하십시오. 지금부터 몸과 마음을 준비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온 가족이 나와 보십시오. 일년 중 단 몇 일이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전부로 받아주십니다. 이 특별새벽기도가 응답받고, 치유받고, 우리 인생에 축복의 문이 되도록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만 가지라면 우리가 갚아 드리는 것은 만분의 일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즐겁게 참여하는 그 작은 마음과 헌신을 보시고 전부로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헌데 아직 믿음이 약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가 안되시는 분들은 안하셔도 됩니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시면 됩니다. 무엇을 하든지 자발적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직 믿음이 약하여 자발적으로 안 되시는 분들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십일조도요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잘 안되시는 분들은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특히 새신자분들은 주일 날에 잘 나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시간이 지나서 믿음이 자라고,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수 있을 때가 옵니다. 그 때 하시면 됩니다. 신앙생활을 즐겁게 하십시오. 어짜피 해야 할 일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하십시오. (좋은 예)어떤 찬양 사역자가 찬양팀을 이끌면서 늘 강조했습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은 우리의 최선을 받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자.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콘티를 짜고, 연습하고, 기교 있게 연주를 하고, 땀을 흘리며 찬양을 드립니다. 그러나 찬양이 마치고 나면 찬양대원들은 시들해집니다. 심지어 말씀이 선포되는 시간엔 딴 짓을 합니다. 서로 쪽지를 주고 받고, 다음 찬양인도할 것을 확인합니다. 아니면 졸거나, 물을 마시러 밖으로 나가고, 뒷자리에 앉아서 구경꾼처럼 예배를 참여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들은 예배자가 아니라 ‘주일예배’라는 콘서트에서 한 순서를 맡은 게스트와 같은 모습으로 예배를 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자기들에게 맡겨진 일은 최선을 다하지만, 남은 시간엔 김빠진 사람처럼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깊은 고민 가운데서 성경을 읽다가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를 지금까지 전혀 다르게 읽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누가복음 21장 3절에서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주님은 무엇을 받으셨냐면, 즐겁게 참여하는 전부 즉 (전심)를 받으신 것입니다. 부자는 즐거이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인색함과 마지못한 마음으로 참여한 것입니다. 허나 이 여인은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한 것입니다. 액수에 상관없이 온 맘 다하여 드린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열심히 하기 전에 먼저 즐겁게 하길 바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열심히 사는 것 좋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러나 참 지혜가 무엇입니까? 참 부흥이 무엇입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즐거이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Stop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바쁘고 할 일이 많아도 주일이 되면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즐거이 주님의 성전에 나와서 예배할 줄 알아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서 맞서 싸우다가도 때가 되면 딱 주님께 맡길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저와 여러분이 행복하길 바랍니다. 기쁘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마지못해서 억지로 남들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자발적으로 감사해서 즐겁게 모든 일들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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