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교회는 이랬으면 좋겠습니다(3). | 이병수목사 | 2009-05-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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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3일 어린이 주일 낮 예배 설교 성경:사도행전 2:41-47 제목:미래교회는 이랬으면 좋겠습니다(3). 한국에 적극적 사고방식으로 널리 알려진 로버트 슐러목사가 있습니다. 언젠가 로버트 슐러는 교회 부흥을 위한 설교학을 강의하면서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자신은 설교를 할 때 절대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설교를 할 때 될 수 있는 대로 죄, 심판, 지옥, 징계 같은 말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신 긍정적인 희망, 확신, 가능성과 같은 것을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가슴을 칠 소리입니까?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 하시는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사람들이 듣기에 좋은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남왕국 유다나라는 죄악가운데 있었습니다. 이 때 예레미야 선지자는 회개하지 않으면 바벨론에 의해서 망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결국 바벨론에 공격을 받아 나라가 멸망을 했습니다. 이 때에 예레미야는 70년간 종살이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지켜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포로가 되어 잡혀 고생할 때는 조금 있으면 끝난다. 수년 안에 해방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구 말이 듣기에 좋습니까? 거짓 선지자들의 말이 듣기 좋습니다. 예레미야의 소리는 듣기 싫습니다. 듣기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듣기에 좋으냐? 싫으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이 적극적인 사고방식이 한국교회 강단을 저속하게 만들고 병들게 만든 주범이라고 생각합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형의 설교가 일시적으로 수적 증가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수평이동이었습니다. 진리를 선포하지 않고, 진리와 유사한 것들을 전하므로 단기적으로는 성공하는 듯 했지만, 결국 무너져 가고 말았습니다. 진정한 부흥은 ‘십자가 앞에서 철저히 깨짐으로 거듭난 회심 신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저 사람만 많이 모이면 부흥한 교회처럼 착각하면 안됩니다. 진정한 부흥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 앞에서 내가 얼마나 추악하고 더러운 죄인인가를 보고, 통곡함이 있어야 합니다. 날 위하여 십자가에 몸 찢기시고, 피 흘리신 예수님의 사랑 앞에서 처절하게 무너지는 회심이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교회의 부흥은 회심신자가 늘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 교회의 부흥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는가?에 있습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초대교회는 참된 부흥을 이룬 교회입니다. 41절을 보십시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회심신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능력 앞에서 철저히 회심한 신자들이 세운 초대교회는 어떤 공동체였습니까? 이 땅의 교회들이 그렇듯이 우리 교회도 구약의 광야교회와 신약의 초대교회를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이 시간 초대교회는 어떤 공동체였는가를 보고, 우리 청주미래교회가 벤치마킹을 하길 바랍니다. 1.첫째로 초대교회는 기도와 성령의 능력으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는 기도와 말씀이 살아 있는 교회였습니다. 42절에서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교회 부흥의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좋은 프로그램이 있어야 합니까? 시설이 완비되고, 시스템이 잘돼 있어야 합니까? 담임목사의 학력이 높아야 합니까? 모인 교인들의 수준이 뛰어나야 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 부흥의 원동력은 오직 기도와 말씀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할 두 가지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입니다. 우리 미래교회가 부흥하기를 바란다면 다른 것 없습니다.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전하는 일로 땀 흘리는 신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전파하는 일에 열심인 사람이 인정받고, 쓰임 받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들이 강력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기를 원하십니까? 기도하는 일과 말씀에 순종하는 일에 땀을 흘리십시오. 때를 따라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기 원하십니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십시오. 기도의 무릎을 꿇으십시오. (예화)용인 에버랜드에 가면 한 살 정도 된 수컷 호랑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몸무게는 160kg이 넘는 거구지만 집에서 기르는 개처럼 개줄에 묶여서 주인에게 끌려 다닙니다. 어려서부터 사람이 주는 우유를 먹고 자라 호랑이 특유의 야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마치 한국교회가 이런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교회가 잠든 교회라고 합니다. 그러면 다행입니다. 잠들었으면 깨우면 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한국교회가 병든 교회라고 합니다. 이것도 괜찮습니다. 병들었으면 고치면 됩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길들여진 교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 특유의 야성을 다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초기한국교회 성도들의 특징은 잡초근성이 있었습니다. 세련되지 않았지만, 진실함이 있었고, 열정이 있었고, 생명이 있었습니다. 헌데 오늘 날의 교회는 세련되었습니다. 너무나 좋은 시설을 갖고 있습니다. 돈도 많습니다. 헌데 성도들이 현장에서는 아무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교회에서는 호랑이 같습니다. 큰 소리를 칩니다. 헌데 세상에 나가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 한마디 못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힘들다. 피곤하다. 상처받았다.’는 말들입니다. 왜 이렇게 약해졌습니까? 왜 이렇게 길들여졌습니까? 기도와 말씀의 자리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 교인들이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자리가 기도의 자리, 전도하는 자리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이것이 능력인데... 능력의 원천은 잃어버리고, 다른데서 능력을 얻으려고 합니다. 요즘 개그처럼 ‘그리 성공하고 싶냐? 그러면 하나님께 연락해!’ 하나님께 연락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하고, 말씀을 증언하는 일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전화선만 붙잡고 있지 말고, 기도선을 붙잡기 바랍니다. (예화)매일 같이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옵니다. 이런 수도꼭지를 보고 놀랄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중국 본토에서 패하고 대만으로 온 장제스의 군대들은 달랐습니다. 이들은 틀기만하면 물이 콸콸 쏟아지는 수도꼭지를 보고 매우 신기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너도나도 철물점에 가서 수도꼭지를 사다가 벽에 박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틀어도 수도꼭지에서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습니다. 장사꾼에게 속은 줄만 알고 군인들이 가게에 쳐들어가 총질을 해대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수돗물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수원지에서 보내주는 물들이 벽 뒤에 그리고 땅속에 묻혀 있는 수도관을 통해서 나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와 말씀은 수도관과 같습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 능력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헌데 벽에 수도꼭지를 박아놓기만 한 무늬만 교인들이 많습니다. 수원지인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기도와 말씀의 관이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성령 하나님이 세운 교회였습니다. 기도와 말씀에 사로잡힌 초대교인들을 통해서 성령님께서 세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령이 일하시는 교회여야 합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에서는 맛 볼 수 없는 것, 세상이 줄 수 없는 것, 세상에는 없는 것이 교회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의 능력입니다. 초대교회는 강력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다 함께 사도행전 2장 1-3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곳에 모여서 기도하자 하늘로부터 강력한 성령의 능력이 임했습니다. 성령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현대는 영성의 시대입니다.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21세기는 더 더욱 영성에 대한 관심이 많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설명)영성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무엇에 사로 잡혀 살아 가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은 육과 혼과 영으로 되어 있습니다. ①육신에 사로 잡혀 살아가는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자고 운동하는 것을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이 기본적인 삶도 중요합니다. ②둘째는 혼적인 삶입니다. 지/정/의의 삶을 말합니다. ③그리고 사람은 영적인 삶을 삽니다. 영적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영에 사로잡혀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어둠의 영, 저주의 영, 사망의 영, 종의 영을 갖고 산다고 말합니다. 오늘 날 점쟁이와 무당, 인터넷 운세가 성업을 합니다. 헌데 이들의 주 고객이 20대 젊은이들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집니까? 옛날보다 살기는 더 좋아졌습니다. 몸은 한없이 편해졌습니다. 헌데 사람들의 영혼은 점점 더 메말라져 갑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영혼은 더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거짓된 영들을 따르는 것입니다. 무엇에라도 의지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5장에서 분명히 말하는 것처럼 거짓의 영을 따라가면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한 삶을 살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한국교회는 기회입니다. 이런 때에 참된 영성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참된 영성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철저히 닮아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내신 거룩한 영, 생명의 영인 성령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삶을 살게 됩니다. 교회는 이 땅에 참된 영성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43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이것이 교회만이 갖는 능력입니다. 교회에서 나타나는 성령의 능력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두려워 하였습니다.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입니다. 당시 초대교회는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두려워한 것은 내적인 파워, 성령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적용)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기쁨과 평안이 넘쳤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기쁨과 성경이 말하는 기쁨은 다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환경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은 돈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환경이 주는 기쁨도 있습니다. 그러나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망합니다. 돈으로 옷, 편안함, 먹을 것, 권세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시지 않습니까? 최고의 권력을 돈으로 지켰던 사람이 지금 무너지지 않았습니까? 세상이 주는 기쁨과 평안은 잠시잠간입니다. (예)마치 무더운 여름 날에 덥고 갈증이 심해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스크림 먹는 동안은 시원합니다. 그러나 먹고 나면 다시 갈증이 나고, 목마름은 더 합니다. 이처럼 세상이 주는 기쁨은 잠시 잠간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보다 더 귀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받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세상적으로는 도저히 기뻐할 수 없는 형편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질병 속에서도, 가난 속에서도, 어려움 속에서도 오직 내 안에 있는 예수님 때문에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2.또한 초대교회는 아버지의 마음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미가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본문 44-45절을 보기 바랍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라고 했습니다. 삶의 방식이야 지금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교회 공동체가 가져야 할 아름다운 모습은 “함께 모이기를 힘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었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려면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미가 넘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아버지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인간적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적이란 말은 자기중심적인 것입니다. 자기 밖에 모르는 애 같은 유치함입니다. 겉 모습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 같은데, 결정적일 때 보면 인간적으로 해결하고, 자기 이익대로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인간미가 있다는 것은 나보다 상대방 중심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품어주는 것입니다. (예화)여러분! 가수 백지영씨를 아십니까? ‘총 맞은 것처럼’이란 노래로 많은 사랑을 받는 가수입니다. 백지영씨가 수년 전에 이상한 불법 비디오가 공개되면서 완전히 밑바닥으로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이 때의 고통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기자들이 집과 사무실에 점령하고 있어서 갈 곳이 없었습니다. 만날 사람도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8층 호텔에서 숨어 지냈습니다. 하루 하루 후회와 고통의 나날이 계속되면서 ‘여기에서 뛰어내리면 모든 것이 끝날텐데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적 없습니까?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마음이 들만큼 괴로웠던 적이 없습니까? 이럴 때 사람에게도 갈 수 없고,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 앞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백지영 씨도 교회에 나가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며 고통을 이겨내었다고 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더러운 사람’이라고 돌을 던지는 때에 그래도 하나님 아버지는 품어 주셨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잠잠해졌을 때 집엘 갔습니다. 집에 들어서는데 아버지가 나와서 딸을 맞아주더랍니다. 당시 아버지도 공무원이었는데, 딸 때문에 더 이상 직장생활을 할 수 없어서, 사표를 내고 집에 있었습니다. 딸은 “아빠!”하고 불렀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다른 말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얼마나 힘들었니?”하며 꼭 안아주더랍니다. 사실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래 얼마나 힘들었니?’ 하고 품어주는 아버지의 사랑 앞에서 딸의 아픈 마음은 다 치유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도 할 말이 많겠지요? 그러나 아무 말하지 않습니다. 딸이 한 잘못보다 딸을 향한 사랑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이런 아픔을 겪고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고 난 뒤에 부르는 노래라서 그런지 ‘총 맞은 것처럼’이란 노래를 들으면 이상하죠? 은혜가 됩니다. 눈물이 핑 돌기도 합니다. ‘총 맞은 것처럼 정신이 너무 없어 웃음만 나와서 그냥 웃었어 그냥 웃었어 그냥 / 구멍 난 가슴에 우리 추억이 흘러 넘쳐 잡아 보려 해도 / 심장이 멈춰도 이렇게 아플 것 같진 않아 (적용)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아빠가 되십니다. 내 모습 그대로 나가면 정죄하거나 판단하지 않으시고, “그래 얼마나 힘들었니?” 이해해주시고, 품어주시는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4장 15-16절의 말씀을 참 좋아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합니까? 아빠에게 가듯이 은혜의 보좌 앞으로 가십시오. 하나님이 계신 곳은 진노의 보좌가 아닙니다. 심판의 보좌가 아닙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은혜의 보좌입니다. “그래 얼마나 힘들었니?”하고 품어주시는 분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46-4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두 그룹의 공동체를 갖고 있었습니다. 대그룹으로 성전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한 것입니다. 그리고 소그룹으로 가정에서 모여 아버지의 마음으로 서로 품어준 것입니다. 가정에서 모여 서로 떡을 떼고,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적용)이제 우리 미래교회는 예배에 더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미래인의 3대 신앙운동을 펼칩니다. (1)워쉽 플러스 즉 예배 한 번 더 드리기 운동을 합니다. 일주일에 공식적인 예배가 11번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드리던 예배에서 한 번만 더 예배에 참여하십시오. 일주일을 기준으로 주일 낮 예배만 드리던 분들은 주일 오후예배나 수요예배에 참여 하십시오. 새벽에도 좋고, 수요예배도 좋고, 금요예배도 좋습니다. 한 번만 더 예배의 감격을 누리기 바랍니다. (2)또 하나는 매월 둘째 넷째 토요일 새벽은 온가족이 드리는 새벽예배입니다. 놀 토를 맞아서 온 식구들이 함께 새벽을 깨우기 바랍니다. (3)그리고 목장모임을 시작합니다. 목장모임은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소그룹으로 서로 만나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고, 모이기를 힘쓰는 목장모임을 갖을 것입니다. 이 목장모임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은 오후예배시간을 통해서 더 자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다. 대그룹으로 드리는 예배와 소그룹으로 드리는 목장모임에 한 마음으로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결론 우리 미래교회는 초대교회를 모델로 삼는 교회입니다. 초대교회처럼 기도와 성령의 능력으로 세워가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전하는 일에 짐을 져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아버지의 마음으로 서로 품어주고, 사랑하는 인간미가 넘치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예배 한 번 드리기 바랍니다. 기도의 자리에 힘써 나오기 바랍니다. 소그룹 목장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더 행복한 신앙생활이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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