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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누구인가(2) | 이병수목사 | 2010-02-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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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8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창세기 2:8-17(8-9) 제목:나는(인간) 누구인가?(2) 나는 누구인가? 오늘은 두 번째 시간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에덴 동산에 있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었는가? 왜 사람을 흙으로 만드셨는가?에 대한 질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에덴에서 살게 하셨는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엇을 목적하시는 것인지?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의 자리는 어디여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1.먼저 에덴은 하나님의 영광만이 나타나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영광이란 말씀을 종종 하셨습니다. 한 예로 요한복음 12장에서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영광이란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 내게 하라고 하신 일을 이룰 때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에덴에 있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15-17절에서 하나님은 명령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에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광 가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불순종했습니다. (질문)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전 세계 수많은 신자들과 지도자들을 상대로 대화를 나눈 결과 죄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단연 먼저 생각하는 것은 성적 비행이었습니다. 간음, 간통 변태 등등의 성적인 죄를 떠올리더라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약물 중독, 도박, 살인, 절도, 주술 같은 것을 두 번째로 뽑았고, 시기, 질투, 미움, 다툼, 용서하지 않는 것 등을 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보시는 죄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서의 예)마태복음 21장에 보면 두 아들의 비유가 나옵니다. 큰 아들에게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해라”했습니다. 아들은 “예! 가겠습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말만 들으면 이 아들은 착한 아들 같습니다. 그러나 가지 않았습니다. 또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은 “싫습니다”하고 대답했다가, 나중에 뉘우치고 지금 하던 일을 멈추고 포도원에 가서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뻔한 질문을 하십니다. “그 두 아들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듣고 있던 사람들이 대답했습니다. “둘째 아들입니다.”그러자 예수님은 바로 문제의 핵심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지금 주님은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입니까? 간음, 살인, 절도만 죄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리들은 공공연한 절도범들입니다. 창기들은 성적인 죄를 범한 사람들입니다. 헌데 이들은 둘째 아들처럼 뉘우치고 순종하여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허나 너희들은 세리나 창기들처럼 큰 죄를 짓지 않았다고 자부심을 갖고, 의로운 척 하지만,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지는 않지 않냐? 그것이 가장 큰 죄다라는 것입니다. 두 아들 중에 겉으로 보기에는 첫째 아들이 착해 보이지 않습니까?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눈을 부라리면서 싫다고 소리를 치니 말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씀에 결국 순종한 것은 둘째 아들입니다. 세리와 창기라 해도 회개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가 의로운 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서의 예)이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에 꼭 맞는 구약의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울 왕과 다윗 왕입니다. 이 두 사람을 엄밀하게 놓고 보면 치명적인 큰 죄는 다윗이 지었습니다. 다윗은 간음죄와 살인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반면에 사울은 그런 죄는 짓지 않았습니다. 헌데 성경은 이 두 사람의 평가가 너무나 판이합니다. 사울은 비참한 실패자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다윗은 어떤 실패와 죄악 가운데서 회복되어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으로 쓰임 받을 수 있다는 소망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이들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권위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사울은 결정적일 때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권위에 절대 복종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달아 보시는 것은 우리들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느냐?가 아니고, 얼마나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느냐?입니다. (적용)어떤 사람은 설교를 들으면서 아멘!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직책이 화목케 하는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도 서로 화목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든지 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풀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풀고 살라고 설교하면 아멘! 맞다!고 합니다. 헌데 문밖을 나가면 절대로 풀지 않습니다. 판단하고, 정죄하며 삽니다. / 헌데 어떤 성도들은 ‘목사님!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하고 성을 냅니다. 그 사람은 절대 용서가 안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놓고, 영 마음이 불편합니다.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너무 괴롭습니다. 그래서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결국은 가서 화해를 요청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영광을 돌리는 사람입니까? 당연히 후자아닙니까? (예)어떤 집사님이 회개를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남편이 너무 미워서 자녀들에게 절대로 너희들은 아버지 같은 사람을 닮지 말라고 했습니다. 헌데 회개기도 할수록 자꾸만 그 일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래서 이 일을 놓고 하나님 앞에 회개 기도도 많이 했는데, 여전히 마음이 무겁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집사님에게 하나님 앞에 한 시간 기도할 것, 30분만 하고, 나머지 30분은 남편에게 가서 진심으로 사과를 하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여보! 정말 미안해요. 당신이 한때 너무 야속하고 미워서 자녀들에게 당신 같은 사람은 닮지 말라고 했어요. 헌데 은혜 받고 보니 내가 너무 잘못한 것 같아요? 용서해 주세요?” 헌데 집사님은 그것만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과하면 남편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기도는 얼마든지 하겠다는 것입니다. 2시간이고, 3시간이고 하겠는데, 남편에게 찾아가 몇분 동안 고백하는 것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적용)우리 가운데도 이런 성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을 아뢰고, 회개기도를 하면서도 사람에게는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왜 그런지 아십니까? 기도할 때는 하나님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공수표를 날리고, 무슨 말을 해도 양심에 조금도 가책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헌데 남편 앞에서 하면, 인격이기 때문에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불신입니까? 사람인 남편에게는 함부로 말을 못하겠다고 하면서, 정작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는 청산유수처럼 기도합니다. 그리고 전혀 삶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이것만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적용)우리가 에덴에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설령 수도원 깊은 산골 속에 거한다 해도 우리 마음속에 주님보다 내가 먼저고, 세상적인 습관과 사고방식으로 가득하다면, 여전히 속세에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의 몸이 교회에 와 있다 해도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은 전혀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에덴에 있지 않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더러운 세상 한 가운데 있다해도 세속적인 생각을 버리고, 거룩한 성령이 충만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순종의 삶을 살아간다면 그는 에덴에 사는 것입니다.
2.둘째로 에덴은 보석이 있는 곳입니다. 에덴에는 금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순금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진주도 있었습니다. 호마노도 있었습니다. 에덴에는 각종 보석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왜 에덴에는 보석이 많았을까요?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서 특별히 준비해 주신 에덴동산에 수많은 보석들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천국은 복락원 에덴이 회복된 곳입니다. (성서)요한계시록에 보면 천국을 묘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8-21절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는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정이라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보세요. 천국에서 보석은 우리처럼 장롱 속에 고이 모셔져 있지 않습니다. 돌멩이처럼 집 짓는 재료로 쓰여 지고 있습니다. 도로 포장 재료가 정금입니다. 경제 논리를 잘 아시지요. 희귀성이 있어야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헌데 에덴이나 천국은 보석이 보석이 아닙니다. 단지 건축자재요 도로 포장용 재료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 땅에서 그토록 귀하게 여기는 보석들이 천국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들이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보석들을 갖고 집 짓고, 도로 포장하는 사용하셨을까? 에덴에 사는 자라면 진짜 보석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보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가치관이 천국에서는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석이라고 생각하여 목숨을 거는 것들이 에덴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면, 하나님이 사람을 에덴에 두신 목적도 세상 사람들과 같이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 건강, 성공, 명예(이번에 서울대 교수 한 분은 좋은 논문을 쓰지 못해서 가족과 학생들에게 마인하다며 자살을 했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성공한 사람인데... 늘 성공한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성공에 대한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우울증에 빠지고, 자괴감에 빠져 결국은 자살을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정말 복음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명예가 생명보다 귀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약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모든 것을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품에 안겨 새롭게 출발한다면 귀한 일일텐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좋은 집, 좋은 차가 보석입니다. 삶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잃으면 좌절하고 낙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런 것들의 노예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경시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필요 없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서 돈도 많이 벌여야 합니다. 성공도 하시고, 힘도 갖으십시오. 그러나 그것들이 우상이 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 갖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곳에 사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그 인생은 불쌍한 인생인 것입니다. (예)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부자라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찌무라 간조라는 목사님이 “해변을 산책하는데 내 앞에서 다이아몬드가 떨어져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내게 복을 주신 것이다. 웬 복인가?해서 덥석 주우라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을 보고도 그냥 지나칠 수 있도록 훈련시키시기 위함이다”라고 했습니다. 천국에서의 보석은 오직 하나입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적용)하나님이 사람을 에덴에 두신 목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보석으로 삼고 살라는 뜻입니다. (예)바울은 거듭나기 전에는 히브리인의 혈통과 순수한 바리새인, 로마의 시민권에 집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안 후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며 이런 것으로부터 초연했습니다. 그저 예수님에게 인정받으면 감사하고, 예수님만을 전하는 삶을 살고, 예수님께 쓰임받는 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알고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보석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의 것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집착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하고, 에덴에 살라면 에덴에 살면됩니다. 헌데 하나님과 동등되려고 과욕을 부립니다. 내가 행복을 만들려고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의 삶에 집착을 버리십시오. 목회에 있어서도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내가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삶에서도 사사건건 매이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면 감사하고, 안주시면 할 수 없고, 오직 주님만을 보석으로 삼고 섬기며 살면 되는 것입니다. (성서의 예)사도 요한이 하나님 나라인 천국에서 벌어지는 예배를 보았습니다. 요한계시록 5장 11-14절입니다.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 또 내가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천국은 오직 예수님만이 높여지고, 찬송하며, 영광을 돌리며, 능력을 의지하는 곳입니다. 오직 천국에서는 예수님만을 보석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예화)어떤 신학교 교수님이 차를 타고 가면서 라디오를 듣는데 설교가 흘러나오더랍니다. 설교를 듣는데 얼마나 설교를 매끄럽게 부드럽게 그러면서 감동적으로 잘하는지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인가?해서 마지막 멘트를 듣는데 “여기는 BBS 불교방송입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그것은 목사님의 설교가 아니라, 스님의 설법이었다고 합니다. / 그때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는 복음은 참된 복음이 아니구나! 그 스님이 사랑을 주제로 성현들의 말을 인용하고, 자신이 깨달은 것을 갖고 대입하면서 설법을 하는데, 너무 잘하더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아무리 듣기 좋은 말이라도 예수가 없는 이야기라면 그것은 결코 죽은 영혼을 살리는 복음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현대의 설교의 위기도 예수님이 없는 설교입니다. 교회의 위기도 예수가 없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이 가장 기뻐하셨던 장면이 나옵니다. 언제입니까? 사도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신앙고백을 들었을 때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어디에서 살든지 그곳에서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라고 선포한다면 그곳이 에덴입니다. 어떤 상황과 형편 속에서도 오직 나의 보석은 진리되신 예수님이라고 선포한다면 그는 승리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사람을 에덴에 두셨습니까? 8절의 말씀에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거기 두었다“는 것은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이 보호자가 되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보호자가 되셔셔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모두를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에덴에서는 입을 것, 먹을 것,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성서의 예)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40년 동안 인도하셨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아무런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이 없는 곳입니다. 보호장비도 없습니다. 헌데 하나님을 보석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보호자가 되셔서 살게 하셨습니다. (결론)우리는 에덴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에덴에서 살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십시오. 다른 것으로 자랑 삼으려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순종하십시오. / 오직 예수님만 보석으로 삼으십시오. 하나님에게는 이 땅에서 보석이라고 하는 것들이 넘치도록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로 사는 자들이지, 내 힘으로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행복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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