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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3) 이병수목사 2010-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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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7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창세기 2:9 ; 16-17

제목:나는 누구인가?(3)

오늘은 나는 누구인가? 세 번째 시간입니다. 복습을 잠시 하겠습니다. 제가 질문하면 여러분이 답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⓵첫째로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아담입니다. 나는 흙입니다.’ ⓶둘째로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에덴동산에 있어야 합니다.’ ⓷세번째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선악과를 절대 먹으면 안됩니다.’

왜 에덴에는 선악과가 있었을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왜 만들어 두셨는지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선악과만만들어 놓지 않았다면 먹지 않았을 것이고, 먹지 않았으면 죄도 짓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은 하나님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악한 것입니다. / 재미 있는 추측도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한국 사람으로 만드셨으면 절대로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뱀을 보는 즉시 잡아 먹어 버렸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덴에는 반드시 선악과가 있어야 합니다. 선악과 없는 에덴은 참 에덴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동산 안에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마음껏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아담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담이 무슨 과일을 먹든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아담이 에덴의 주인 같습니다. 하나님과 아담이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에덴에서 하나님과 사람이 분명하게 구별되는 나무가 하나 있습니다. 선악과입니다. 이것만은 아담이 절대로 먹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나무 앞에서 하나님은 창조자이십니다. 아담은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이 선악과를 에덴 동산 한 가운데 두었습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도록 중앙에 두었습니다. 아담은 이 나무를 볼 때마다 에덴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선악과는 ‘내가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게 하는 것입니다. 내 위치를 분명히 아는 것, 이 의식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이 시간 구체적으로 선악과가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1.첫째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에덴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이 될 수 있는 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하라는 것은 순종하고,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하나님이 하라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익이 되고 즐거운 일이라도 하나님이 하지 말라했으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했으면 먹지 말아야 합니다.

 

에덴이란 ‘기쁨’이란 뜻입니다. 헌데 이 에덴의 기쁨은 환경에서 오는 기쁨이 아닙니다. 조건이 좋아서 기쁜 것도 아닙니다. 에덴이니까 기쁜 것이 아닙니다. 이 기쁨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충실히 이행했을 때 주어지는 내적인 기쁨입니다. 순종했을 때 누리는 기쁨입니다. 정말 힘들고 어려웠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오는 기쁨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그런 기쁨을 맛보아야 합니다. 헌데 나의 기쁨을 구하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려 할 때 그 뜻은 쾌락에 빠진다는 뜻이 됩니다. 성도들의 기쁨은 내 자신을 위한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의무와 책임을 다했을 때 기쁨이 있는것입니다.

 

실제로 내가 드러나고, 내가 높아지면 행복하고 기쁠 것 같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어떤 성악가의 고백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하면,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고, 축하 꽃다발을 받고, 카메라 플레시 세례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헌데 모든 공연을 다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그렇게 마음이 허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텅빈 것 같고,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우울해진다는 것입니다. 헌데 박수도 없고, 꽃다발도 없고, 카메라 플레시도 없지만, 교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자랑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을 높여드렸기에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참된 기쁨은 하나님을 높여 드릴 때 성령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적용)진정 성령이 주시는 기쁨을 맛보기 원하십니까? 주님을 위해서 희생을 해 보십시오. 주님을 위해서 기꺼이 손해를 보십시오. 주님만이 영광 받으시도록 낮아져 보세요. 주님만을 높여 보십시오. 우리 마음에는 말 할 수 없는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빌립보서의 가치가 무엇입니까? 가장 열악한 상황 속에서 있으면서도 기쁨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옥에 있습니다. 헌데 4장밖에 되지 않는 빌립보서에서 기뻐하라는 말을 10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감옥에서 바울이 맛보는 기쁨이 무엇입니까? 주님 때문에 받는 고난이기에 기쁜 것입니다. 주님께 자신의 의무를 다했기에 기쁜 것입니다.

(적용2)신앙이 참 신앙인지 거짓된 신앙인지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성경은 참신앙의 표지는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헌데 성경에서 말하는 기쁨은 언제 맛보았던 것입니까?

⓵누가복음 10장 17절에서 예수님이 전도를 위해서 70명의 제자들을 파송했습니다. 그리고 70명이 복음을 전하고 기쁨으로 예수님께 돌와 왔습니다. 성도들은 전도 후에 기쁨이 넘쳤습니다. 전도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담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나를 자랑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만을 자랑한 것이기에 기쁜 것입니다. (예)순교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아십니까? 의를 위해서 예수님을 위해서 핍박을 받으면 말로 다할 수 없는 내적인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적용)목장별로 남선교회, 여전도회별로, 부부별로, 가족별로, 부서별로 연합하여 예수님을 전합시다. 교회를 자랑합시다. 4월 4일 부활하신 주님께 드릴 가장 아름다운 제물은 전도입니다. 기도하면서 전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⓶요한복음 16장 24절을 보면 “지금까지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쉽습니까? 기도가 즐겁습니까? 기도처럼 힘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기쁨이 넘칩니다. (예)저는 최근 영적 위기감을 느끼고 하루에 4시간 씩 기도하고 있습니다. 헌데 교회 부흥을 위해서 기도하려면 10시간은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글을 읽고 고민입니다. 주의 은혜를 구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서의 예)출애굽기의 말씀을 읽다가 32장에서 모세의 기도를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섬겨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한 상황입니다. 이때에 모세는 산위에 올라가 금식하면서 생명을 건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의 죄를 사하지 않으신다면 생명책에서 저의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이 기도를 묵상하면서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정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는구나! 자신에게 맡겨진 양떼를 생명 걸고 사랑하는구나!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 죽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모세는 생명을 걸고 기도합니다. 자신의 양떼들이 죽는다면 자신도 같이 죽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중보기도인데... 난 어떤가? 난 얼마나 내게 맡겨진 성도들을 사랑하나? 생각하니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기도의 자리를 회복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오직 기도와 말씀으로 뚜벅뚜벅 한 걸음씩 나갈 것이며, 결국은 부흥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저도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목회의 영광을 주옵소서. 교회의 부흥을 주옵소서. 성령의 임재가 있는 목회가 되게 하옵소서. 그렇지 않다면, 내 목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지 않을 거라면 더 이상 목회할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흥을 맛볼 수 없다면 차라리 제 생명을 거두어 주옵소서. 교회의 참된 부흥을 볼 수 없다면, 더 이상의 기쁨은 없습니다. 더 이상의 소망도 없습니다. 더 이상의 살 이유도 없습니다.”

교회 부흥을 꿈꾸고 기도하면서 내 자신을 점검합니다. 왜 교회 부흥을 원하는 것인가? 교회부흥을 꿈꾸는 마음이 야망은 아닌가?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목회의 영광을 누리고, 교회가 부흥되길 바라는 마음 중심에 추호도, 더 좋은 집,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싶거나, 큰 교회 담임목사님이라는 명예를 얻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이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다만 부흥하길 바라는 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마음껏 하고 싶어서입니다. 수십 수 백명의 영혼들이 함께 집중하여 해외선교, 농어촌 선교를 하고 싶습니다. 예수의 생명과 성령의 능력으로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깨어 기도하고, 비전을 꿈꾸며 감격가운데 살아 가게 하길 원합니다. 상하고 지친 영혼들을 영혼뿐만 아니라, 육신까지도 치유하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300의 제자들을 양육하기 원합니다. 지역사회를 진정으로 섬기는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이런 영광을 보기 원할 뿐입니다. 하루 하루 기도의 삶은 힘겹습니다. 꼼짝하지 않고, 교회를 지키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을 인정하며 기도할 때 마음은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성도들은 기도할 때 기쁜 것입니다.

⓷또 사도행전 2장 46절에서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예배할 때 기쁜 것입니다. 서로 사랑으로 교제할 때 기쁜 것입니다.

⓸사도행전 5장 41절에 보면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을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성도는 핍박 받아도 기쁜 것입니다. 환난 중에도 기뻐하는 것이 성도입니다.

보십시오. 요약하면 성도는 전도할 때, 기도할 때, 예배할 때, 교제할 때, 심지어 주님을 위해서 핍박을 받을 때 기쁜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성도입니다. 왜 기쁜 것입니까? 하나님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권위아래에서 순종하고 살아갈 때 에덴의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2.둘째로 선악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도 이 말씀은 지켜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경우에도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24시간 함께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언제나 함께 했습니다. 말씀은 언제나 유효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또 말씀으로 세상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헌데 에덴에는 하나님의 말씀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악한 마귀의 속삭임도 있었습니다. 창세가 3장 4-5절에 보면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적용)우리 앞에는 언제나 두 종류의 말이 들립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악한 마귀의 소리입니다. 악한 마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선악과를 f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습니다. 세상의 유혹이 그런 것입니다. 얼마나 달콤합니까?

죄는 세력이 있습니다. 우리를 잡아끄는 힘이 있습니다. 맨 정신으로는 죄의 힘을 이길 수 없습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돈이라는 선악과, 성이라는 선악과, 인기라는 선악과, 성공이라는 선악과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악한 마귀는 따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 잘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 이제 우리가 결단해야 합니다.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것이요 악한 마귀의 속삭임을 단호히 거절하는 것입니다.

(성서의 예)보디발의 아내가 날마다 요셉을 유혹합니다. 요셉의 귓가에 날마다 속삭입니다. 그러나 보디발의 아내의 소리는 악한 마귀의 소리입니다. ‘우리 서로 동침하자. 밤이 새도록 함께 침상에서 마음껏 즐기자.’ / 요셉만 그렇습니까? 우리 삶에도 이런 유혹의 소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 때 성도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요셉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창세기 39장 8-9절입니다.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오니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결국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선악과를 먹지 않았더니 영광이었습니까? 모함이었습니다. 감옥행이었습니다. 억울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때에도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악한 마귀의 속삭임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이 결코 순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괜히 이런 결정을 했나 싶을 만큼 피해를 볼 수 있고,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 고난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다가 당하는 어려움은 과정이지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크게 쓰임 받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적용)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였더니 어려움이 오고, 고난이 왔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할렐루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대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있으라 하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바운더리가 선악과입니다. 여기 이상은 절대 넘지마! 하신 것입니다. (예)물고기는 물속에 있어야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나는 왜 물속에만 있어야 하나’해서 물 밖으로 나오면 그게 자유입니까? 행복할까요? 꼴딱 꼴딱하다가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자리가 선이요 행복이요 생명인 것입니다. 선악과를 범하지 않는 자리가 영원히 사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하라 하면 하고, 하지 말라하면 하지 않으면 됩니다. 하나님이 있으라 하면 그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있어야 합니다.

저녁 기도 시간에 찬송가 442장을 부르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 장미꽃 이슬 위에”라는 찬양입니다. 이 찬양 중 3절 가사에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주님 품이 너무 좋습니다. 힘든 세상으로 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대로 힘들고 어려운 세상 빨리 떠나 주님 품안에 살고 싶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4절에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얼마나 좋습니다. 천국이 있음을 확실히 믿기에 빨리 그 곳에 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괴론 세상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아직 할 일 많아서 세상에서 사명을 다하라고 하십니다. 힘들고 어려운 삶이지만, 주님 나와 동행하면서 나를 친구삼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있으라면 있어야지요. 사명을 다하라면 사명을 다하는 그 자리가 선악과를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3.헌데 문제는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덴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에덴을 다시 회복하는 길은 선악과를 다시 심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다시 심는다는 것은 내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으라 하는 곳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선악과를 먹지 말아야 합니다.

선악과를 생각하면 또 하나의 나무를 생각해야 합니다. 생명나무입니다. 에덴 동산 중앙에 선악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나무도 있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음으로 영적으로 죽었습니다. 육신도 점점 죽어갑니다. 헌데 생명나무를 먹으면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불순종으로 죄의 유전자가 우리 안에 가득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로 죄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생명나무를 먹음으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과 일터와 그리고 이 사회를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선악과를 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집에도, 학교에도, 직장에도, 교회에도, 이 나라에도 선악과를 심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 한 가운데도 선악과를 심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 드리고, 세상의 속삭임에 넘어지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껏 따 먹을 것은 오직 생명나무 되시는 예수님입니다. “너희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므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을 먹고 마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여러분의 가정, 직장, 학교, 이 민족이 진정한 에덴이 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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