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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이병수목사 201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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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9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창세기 5:21-32(24)

제목:주와 같이 길 가는 것(동행)

‘인생이란 B와 D사이에서 C하며 사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B는 Birth태어남과 D Death 죽음 사이에서 C Choice 선택하며 사는 것입니다. 인생은 날마다 수 많은 선택을 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탁월한 선택이라면 Christ Jesus를 아는 것입니다. B와 D사이에서 C 예수님을 만났다면 가장 잘 산 인생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장에서도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인생이란 낳고 살다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가인의 후예들이 화려하고 부유한 삶을 살았다고 하지만, 이 길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낳고 살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유혹했던 악한 마귀는 “죽지 않는다”고 속였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두 다 죽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가인의 후손들이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셋의 후손들이나 모두 죽었습니다. 이 땅의 삶은 비슷합니다. 낳고 살다가 죽는 것은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헌데 죽고 나니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죽음 이후의 삶의 결정은 B와 D사이에서 어떤 C 선택을 했는가?가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죽으면 끝이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결코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왜 사람들이 죽음을 가장 두려워 할까요? 죽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다면 두려울 것이 무엇입니까? 죽지 않는데 불속이면 어떻고, 물속이면 어떻고, 어둠속이면 어떻습니까? 두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헌데 죽을까봐 두려운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합니까? 내 영혼이 영원한 심판을 알기에 두려움을 갖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정하신 법칙 속에서 살아갑니다. ⓵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 결혼법칙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 아래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아내를 안사람이라고 합니다. 내 갈빗대로 지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또 여편네라고 합니다. 옆에서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냥 부르는 이름 같지만, 그 속뜻을 보면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헌데 아내는 내 편을 늘 들어주는 사람인데, 남편은 왜 남의 편만 들어줍니까? 예로부터 남편을 영감이라고 했습니다. 영감은 정승에 해당하는 높임말입니다. 헌데 아내를 부르는 말은 마누라입니다. 이것은 남편보다 아내를 더 높이는 말입니다. 마누라는 왕이나 왕비와 같은 최고 높은 사람들에게 붙여 주는 말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높여주고 사랑할 때 아름다운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⓶자식을 낳고 살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입니다.

⓷또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게 된 것도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입니다.

⓸인생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인생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라는 것도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대로입니다.

⓹그리고 결국 모든 인생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죽음의 법칙을 다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보십시오. 제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모든 인생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⓺그렇다면 죽음 이후에 영원한 심판이 있다는 성경의 말씀도 믿어야 합니다. 죽으면 끝이 아니라, 천국과 지옥이 있어서 죽음은 영원한 삶의 시작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정말 큰 고통은 죽는 것이 아니라,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고, 영원히 고통가운데 살아야 하는 지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어났으면 잘 살다 잘 죽어야 합니다. 잘 죽는 것은 잘 산 자의 몫입니다. 잘 산 사람이 잘 죽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오늘 본문의 에녹이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잘 산 인생이라고 하는 에녹의 삶을 한 단어로 말하라면 ‘동행’입니다. 동행이라는 말은 ‘지속적으로 걸었다. 날마다 걸었다. 중단하지 않고 걸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이 시간 세 가지 차원에서 살펴보기 원합니다.

1.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2.에녹이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했는가?

3.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여 얻은 축복은 무엇인가?하는 것입니다.

 

1.첫째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도표를 하나 나누어 드렸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300년간 동행하게 된 이유를 잘 보여주는 도표입니다. 에녹은 예언자였습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신약성경 유다서 1장 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아담의 칠 대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에녹은 예언하는 사람이었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에녹이 65세에 아들을 낳습니다. 누구입니까? 므두셀라입니다. 본문 21-22절에서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중요한 말씀은 에녹이 아들 므두셀라를 낳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했습니다. 그 전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지만, 동행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헌데 아들을 낳고 난 뒤부터는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말합니다. 므두셀라를 낳고 난 뒤에 에녹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입니다.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반드시 끝이 있으리라 / 그가 죽으면 반드시 끝이 온다”라는 뜻입니다. ‘그의 죽음이 반드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의 죽음이 어떤 심판을 가져올 것이다.’라는 예언을 받고 난 뒤에 지은 이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녹이 아들을 낳고 난 뒤에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짓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에녹은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기억했을 것입니다. 이 아들이 죽고 나면 이 땅에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았기에 에녹은 그 때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도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역사적으로 므두셀라가 죽고 나자 어떤 일을 벌어집니까? 이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므로 물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대홍수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세상 속에서죄를 지으며 죽어가는 가인의 후손들을 물로 심판하신 사건이 있었습니다.

에녹은 끝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가인의 후손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적용)생각해 보십시오 만약에 한달 밖에 시간이 없다면 어떻게 사실 것 같습니까? 절대로 낭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끝을 아는 인생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우리들에게도 죽음이란끝이 있습니다. 우리들도 다 끝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 아닙니까? (예)맹자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아시지요? 맹자의 어머니가 실수로 공동묘지근처로 이사 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맹자에게 인생의 끝은 죽음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죽음을 알고, 끝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절대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 것입니다. 에녹이 이 사실을 안 것입니다.

(예화)집사님에게 들었는데요? 40대의 남자가 퇴근해서 자녀들 무등을 태워주고, 씻겠다고 욕실에 들어갔다가 돌연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은 40대분인데 저녁을 잘 먹고, 잠자리에 누워서 잤습니다. 아침에 아내가 식사를 하라고 깨웠는데 간 밤에 죽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죽음을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겸손히 인정한다면, 죽음 이후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부르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2.그러면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할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현실을 떠나서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우리를 만나시고, 동행하시길 바라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에녹이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무엇을 했습니까? “자녀를 낳았으며” 에녹의 삶이 뭐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가인의 후손들처럼 문화의 꽃을 피운 사람도 아닙니다. 주어진 현실의 삶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한 것입니다.

에녹이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깨닫고 난 뒤에 세상을 등진 것이 아닙니다. 있는 자리에서 자녀를 낳고, 키우고, 살면서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을 구하는 자였습니다.

(1)먼저 동행하려면 방향이 같아야 합니다. 동행한다는 것은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예화)세기의 결혼식이라는 장동건씨와 고소영씨의 주례를 맡은 이어령 교수의 주례사를 읽어 보았습니다. 그 내용 중에 결혼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어느 날 황제를 만난 제사장이 자신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보고를 했습니다. "무엇을 훔쳐 갔는가"라는 황제의 말에 "여러 벌의 은수저"라고 대답합니다. "딱하게도 값진 것을 잃었구나." 황제가 위로하는데도 제사장 얼굴에는 희색이 가득합니다.

"폐하, 그런데 그 도둑은 딴 집에서 훔친 황금 잔을 모르고 은수저 있던 자리에 놓고 갔답니다." "저런 잃은 게 아니라 얻은 게로군."

황제가 기뻐하자 제사장은 진지하게 대답합니다. "그렇습니다. 결혼이 바로 그런 것이지요. 남녀가 결혼하면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잃게 됩니다. 혼자 살던 때의 자유와 수입, 그리고 자기 시간을 잃게 됩니다. 모든 게 두 동강이 납니다. 그 대신 자기에게는 없던 황금잔 하나가 굴러들어오는 것이지요. 평생을 함께 사는 반려자말입니다." 결혼하면 반려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없었던 아이들이 생겨납니다. 도둑맞은 시간과 자유의 자리에 계속 증식하는 황금잔이 번쩍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족을 혹처럼 생각합니다. 물론 결혼을 하면 손해 보는 것이 있습니다. 잃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평생을 자신과 한 방향으로 걸어갈 여편네(내편)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인생의 자랑인 자녀들을 기업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더욱 감사한 것은 평생을 나와 한 방향으로 걸어가 주는 사모가 없었다면 이 길을 어떻게 갈 수 있을까?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포기할 것이 많습니다. 힘든 것도 많습니다. 손해도 많이 봅니다. 그러나 그런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신령한 복 / 영원한 복을 받습니다. 또한 내가 사망의 골짜기를 갈지라도 내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은 결단코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겠다고 했습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외로운 삶에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여 주시고, 내편인 남편과 아내가 있고, 교회 성도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같은 꿈을 품고, 같은 하나님을 섬기며, 한 방향으로 달려 나가는 동역자들이 있다는 것은 행복인 것입니다.

또 동행을 하려면 속도가 같아야 합니다. 주님이 빨리 걸으시면 우리도 빨리 걸어야 합니다. 주님이 천천히 가시면, 우리도 천천히 가야 합니다. ①절대로 주님보다 앞서가면 안됩니다. 하나님보다 앞서 가는 것은 서두르는 것입니다. 미리 낙심하는 것입니다. 두려워하고 염려하는 것입니다. 미리 속단하는 것입니다. 당장의 결과만 놓고 절대로 불평하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사랑하기로 한 이상 영광도 함께 받지만,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②또한 주님보다 너무 뒤쳐져도 안됩니다. 주님은 빨리 가시는데 나는 너무 천천히 가면 안됩니다. 너무 느린 것은 순종의 속도입니다. 육신의 한계를 이기지 못하여, 너무 더디 가면 안됩니다. 순종은 즉시 해야 합니다. 주님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순종해야 합니다.

(적용)목회를 하면서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너무 느린 것입니다. 주님이 저만치 가시는데 우리는 너무 게으릅니다. 너무 의심이 많습니다. 때로 설교를 할 때 마른 뼈들을 놓고 설교하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에스겔은 마른 뼈들을 놓고 설교했어도 뼈들이 살아났습니다.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너무 아파서 목사님에게 기도를 받고 싶다는 성도가 있었습니다. 가면서 기도하면서 기도 후에도 내내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약을 먹어도 안되고, 목사님에게 기도를 받으면 나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찾는데, 제가 병을 고칠 능력이 없다면 얼마나 불쌍하냐? 주님 능력을 주십니다. 주님과 속도를 같이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시오. 에스겔은 마른 뼈도 살리는 데,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도 사람들을 불러 모아 회개시켰는데, 주님 저에게도 능력을 주십시오. 주님이 행하신 일을 저도 할 것이라고 했는데, 속도를 못 맞추는 내가 너무나 안타까워 속이 상하고 눈물이 납니다. 주님과 같은 속도로 달려가는 종들이 되게 하옵소서.)

 

(2)둘째로 동행원리는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면 순종할 텐데 자신에게는 잘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틀린 말입니다. 오늘 날 하나님의 뜻은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언도 철저하게 성경을 기초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십계명을 중심으로 처음 다섯 권 안에만 613가지의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또한 신약은 서신서를 중심으로 1051가지의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헌데 성경을 보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아도 성령님이 말씀하시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는 게 너무 많고, 듣는 게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때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광야로 보내십니다. 광야는 인생의 고난을 만난 자리를 말합니다.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면 주님의 말씀이 더 선명하게 들립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확성기와 같습니다. 고난은 모든 인간의 기대하는 끈이 끊어진 상황이이게 주님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예화)국제기아대책에서 구호활동을 하는 한비야씨가 있습니다. 이 분은 50대는 어떻게 살까?를 늘 고민했습니다.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늘 기도했습니다. 늘 갈급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한번은 짐바브웨라는 곳에서 구호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워낙 낙후 되어서 수돗물도 전기도 공급되지 않는 곳입니다. 그래서 매일 한비야씨는 2시간씩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보냈다고 합니다. 주일이 되면 아프리카 현지인들이 모인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보통 예배시간이 4시간이라고 합니다. 하루 종일 성전에 모여서 예배하고, 교제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춤을 추면서 찬양하고,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이 있으면 간증하고, 설교를 듣습니다. 그리고 또 찬양하고, 순서도 시간제한도 없습니다. 우리 하고는 다르지요?

구호활동이 거의 끝이 나고 고국으로 돌아오기 마지막 예배시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저들의 눈물을 닦아주라” 아프리카 사람들의 눈을 바라보면서 감격과 기쁨의 눈물을 쏟으며 찬양하는 저들의 눈물을 내 대신 닦아주고, 위로하라는 음성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비야씨는 깊이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언제나 나와 동행하고 계셨는데, 말씀하시고 계셨는데, 내가 너무 바쁘고, 분주하여 듣지 못했구나! 그래서 전기도, 물도 없는 이 곳에 나를 보내셔서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기도하게 하셨구나!

(적용)우리는 너무 분주합니다. 우리는 너무 잡음이 많은 곳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주님의 음성을 도무지 듣지 못합니다. 들을 시간도 여유도 없습니다.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처럼 오늘 날은 물이 없어서 갈증을 겪는 것도 아니고, 양식이 없어서 굶주리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입니다.

 

(3)세번째 동행원리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전당인 히브리서 11장 5절에서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으면 절대로 동행할 수 없습니다. 서로 믿지를 못하는데 동행이 되겠습니까? 에녹은 무엇을 믿었습니까? 히브리서 11장 6절에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 앞에 서는 날 내가 이 땅에 산대로 상급을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을 때 어렵고 힘들어도 주님과 동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3.그러면 결론적으로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은 어떤 복을 받습니까?

(1)히브리서에서 말씀한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됩니다. 사람을 기쁘시게 해도 복을 받습니다. 어버이 날을 맞아서 부모님을 기쁘시게만 해도 얼마나 행복합니까? 하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면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2)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자녀가 잘되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에녹의 아들은 므두셀라입니다. 몇 살까지 살았습니까? 969세를 살았습니다. 역사 이래 가장 오랜 산 사람입니다. 왜 하나님은 므두셀라는 가장 오래 살도록 하셨을까요? 므두셀라가 죽고 나면 심판이 옵니다. 그래서 하루라도 심판을 연장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가장 오래 살게 하신 것입니다. 가인의 후손들을 살리기 원하시는 모습니다. 그러니까 에녹의 아들은 그 시대의 대안이었습니다. 마지막 소망이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동행하여 믿음의 가문을 세울 때 여러분의 자녀들은 이 시대의 소망이며, 대안이며, 영광된 자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또한 가장 장수한 것을 보면 가장 효자였던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에서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이 말씀대로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의 아들이 복을 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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