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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입은 사람의 마땅한 삶 이병수목사 201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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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3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창세기 6:9-22

제목:은혜를 입은 사람의 마땅한 삶

하나님께 노아가 받은 은혜, 더 넓은 의미로 우리들이 받은 은혜가 무엇입니까? 지난 주일에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1)먼저 성령을 보내주신 은혜입니다. -우리는 삼손을 통해서 성령이 떠난 자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성령이 함께 하시는 사람만큼 복을 받은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오셔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 연약함을 돕는 자이십니다. 우리의 위로자가 되십니다. 우리 삶의 인도자가 되십니다.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분이십니다.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가르쳐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우리들이 알아 볼수 있습니다. 열매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성령의 열매는 사랑의 삶을 살게 됩니다. 희락 즉 기쁨이 있습니다. 평안이 있습니다.

(2)둘째로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해 주시는 은혜입니다.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고, 거룩한 의의 옷을 입혀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마치 돌아온 탕자의 모든 허물을 용서하시고, 새 옷을 입혀 주시고, 가락지를 끼워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영원한 천국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영생을 주십니다. 이것은 미래에 이루어질 축복입니다.

(3)그리고 셋째로는 현재 누리는 일상의 은혜를 주십니다. 지금까지 산 것이 은혜입니다. 지금까지도 살았다면 앞으로 살게 하시는 것도 은혜입니다. 날 구원하신 주 감사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감사 아닌 것이 없습니다.

날 구원 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로운 가을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헤쳐 나온 풍랑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 감사

따스함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누가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감사의 찬양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기에 부를 수 있는 찬양입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들이 받은 은혜가 이런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어떤 분이 물어요? 그런 은혜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왜 말씀해 주지 않느냐고 합니다.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기 위해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받을 자격이 안 되는데 거저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호의입니다. 하나님이 값없이 베풀어 주신 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순서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8절과 9절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의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자 보세요.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은혜를 입혀 주셨습니다. 그리고 노아는 은혜 받은 자로서 진실하게 신실하게 거룩하게 산 것입니다. 8절이 있고, 9절이 있는 것입니다. 노아가 의인으로 완전한 자로 살았기에 은혜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받았기에 은혜 받은 것이 감사해서, 감격해서, 기뻐서 주님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정말 물어야 할 것은 적용면에서 은혜를 받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하는 것입니다.

 

1.첫째 희생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노아의 삶을 보십시오. 은혜 받은 노아의 삶이 순탄하고, 승승장구하고, 아무 문제 없는 삶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니 순탄하고 영광된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은혜 받았기에 더 희생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 원리를 아십니까? 어떤 공동체에서도요.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가장 희생한 사람입니다.

(예1)자녀가 잘 되면 누가 가장 기뻐합니까? 본인도 본인이지만, 부모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녀를 위해서 가장 많이 희생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헌데 부모님들이 억지로 희생합니까? 은혜로 하는 것입니다.

(예2)교회를 위해서 누가 가장 많이 희생하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받은 은혜가 많은 사람입니다. (예화)예수님이 바리새인의 집에 초대받아서 갔습니다. 헌데 그는 손 씻을 물도 주지 않았습니다. 헌데 막달라 마리아는 옥합을 가지로 와서 깨뜨려 주님 몸에 부어 드렸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공격을 합니다. 왜 이것을 허비하느냐? 막달라 마리아가 어떤 여자인지 아느냐? 수군댑니다. 그 때 주님은 물으셨습니다. 주인에게 두 종이 있었다. 한 종은 100만원을 빚졌다. 한 종은 10억을 빚졌다. 둘다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인을 더 사랑하겠느냐? 그러자 제자들은 많이 탕감을 받은 사람이 많이 사랑합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대답입니다. 많이 은혜받은 사람이 주님도, 교회도, 이웃도 많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노아에게만 은혜를 베푸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반응한 사람은 노아 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은혜를 발견할 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차별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은혜를 받은 우리들이 얼마나 발견하느냐? 입니다. 많이 감사하는 사람이 많은 은혜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노아는 은혜를 알았기에 희생할 수 있었습니다. 영광을 보았기에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은혜를 받았다면 희생의 자리, 헌신의 자리, 고생의 자리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십자가로 갑니다. 십자가를 지는 곳으로 갑니다. 영광 받는 곳으로 가지 않습니다.

희생 없는 은혜는 가짜입니다. 우리들이 주님께 은혜를 받았다면 노아처럼 희생의 삶을 살게 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절대로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시고, 주신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희생 없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아픔 없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정말 은혜를 받은 사람은 희생하는 것을 기뻐합니다. 한 번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예화)로라라는 소녀가 가출했습니다. 마약하고, 문란한 생활을 했습니다. 로라의 어머니는 백방으로 딸의 연락처를 알려고 노력했습니다. 누가 로라를 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LA 어느 지역에서 창녀노릇을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LA 인근 지역이 얼마나 넓습니까? 모래 사장에서 바늘 찾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딸을 찾기 위해서 딸의 사진이 들어 있는 전단지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 전단지를 보면, 로라가 얼마나 창피해할까? 나중에 시집 가는데 지장이 있겠다.” 딸의 마음을 배려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고심 끝에 전단지에 자신의 이름과 사진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인쇄했습니다. “이 사진의 엄마가 딸을 애타고 찾고 있습니다.” 3일 후에 딸 로라로부터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자기 사진을 넣는 마음, 이것이 희생이요 은혜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무너져도 내가 무너지는 것이 낫다. 창피를 당해도 내가 창피를 당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과 태도가 은혜입니다. 이런 은혜와 사랑을 우리는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했을 때, 희생 없이 따를 수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은혜를 알고 사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고 믿음의 길을 갈 때 칭찬과 격려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받은 은혜가 많으면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오해를 살 때도 있습니다. 매도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은혜 받은 사람은 힘들어도 계속합니다. 당해도 계속합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차라리 당하라, 차라리 져주라. 차라리 손해를 보라고 합니다. 상대를 살리는 일이라면 희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면 십자가를 지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희생하지 않는 것은 사랑도 은혜도 아닙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은혜를 입은 자가 되기를 바라고, 힘들고 어려워도 자기 희생을 통해 남들을 살리는 은혜의 통로가 되시길 바랍니다.

 

2.둘째로 은혜를 받은 사람은 마땅히 ‘방주의 인생’을 삽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만들라고 하신 구원의 방주가 주가 은혜가 있습니다. 방주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테바'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테바’라는 단어는 출애굽기 2장에서 한 번 더 나옵니다. 아기 모세를 담아서 나일강에 띄웠던 ‘갈대상자’도 ‘테바’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갈대상자와 방주의 공통점은 물에 뜨는 상자 모양입니다. 또 갈대상자와 방주의 공통점은,

①첫번째 키와 노가 없습니다. 키가 없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또 노가 없다는 것은 내 힘으로 나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방주와 갈대상자가 나아갈 방향은 내 스스로 정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온전히 순종하며 가겠다는 것입니다. 내 능력이 아니라, 기도와 성령의 힘으로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②두번째 돛이 없습니다. 돛이 없다는 것은 어떠한 거센 바람에도 영향을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강한 쪽으로 흘러가는 것이 이치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 움직이겠다는 것입니다.

③마지막으로 닻이 없습니다. 닻이 없다는 것은 내가 있고 싶은 자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보기에 좋은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있어야 할 자리에 있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워두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미래교회 성도들은 갈대 상자 신앙, 방주 신앙을 갖기 바랍니다.

④방주는 고페르 나무 즉 잣나무로 만들고 안 팎을 역청으로 바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유월절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바름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임 받으라는 것입니다.

⑤또한 선박전문가들에 의하면 방주의 크기 비율이 가장 안전하고, 환상적인 비율이라는 것입니다. 길이 150M, 높이 15M, 넓이 25M입니다.

⑥또 16절에 보면 창을 하나 내라고 했습니다. 헌데 그 창문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게 내라는 것입니다. 오직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만을 사모하며 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겠다는 것입니다.

⑦그리고 문은 옆으로 오직 하나의 문입니다. 유일한 구원의 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몇일 전 그분이 오신 날이었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들이 그분을 기억하고 높여도 죄송한 말이지만, 구원받는 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 뿐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무엇보다 방주의 믿음을 갖고 살기를 바랍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성도들인 줄 믿습니다.

 

3.셋째로 한 사람만으로도 변화는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삶이 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1)변화는 한 사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2)또한 하나님께 쓰임 받는 데는 나이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한계지우지 마십시오. 나는 이것 밖에 안되! 나는 늙어서...(진짜 나이가 문제입니까? 아닙니다. 노아는 600세에 방주를 완성하였습니다. 모세는 120세까지 쓰임받았습니다. 갈렙은 85세에 전쟁에 나갔습니다.) 또 나는 실력이 없어서...학벌이 없어서...(에디슨은 학교 부적응자였습니다. 알을 품고 부화시켜보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신체조건이 안좋아서...(장애를 갖고도 쓰임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스스로를 한계속에 가두지 마십시오.

(3)남들과 다르게 산다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방주를 바닷가에서 지은 것이 아니라, 산 꼭대기에서 지었습니다. 또 그 때까지 하늘에서 비가 내린 적이 없습니다. 헌데 물로 세상이 뒤덮일 것이라고 하니 누가 고지를 듣겠습니까? 그래도 노아는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남의 눈 너무 의식하지 마세요.

(4)무엇보다 여러분 자신이 가족들을 구원하는 선교사가 되십시오.

정말 놀라운 것은 아직 비가 오기 전에 노아는 가족들에게 방주로 들어가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부인, 셈과 함과 야벳, 그리고 세 며느리들이 방주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며느리들도 따랐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노아는 영적인 권위와 신앙 인격이 뒷받침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대조적으로 롯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불로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사위들에게 말했습니다. 헌데 사위들은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들었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입니까? 영적인 권위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롯은 믿음의 가장으로 본을 보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믿음의 가장이었습니다. 노아의 믿음이 노아의 가족들을 구원한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신앙인격을 갖춤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가족들조차 내 말을 농담으로 듣는다면 할 말 다한 것입니다.

 

(적용)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믿지 않는 가족들, 믿지 않는 이웃들과 함께 섞여서 살아야 합니다. 헌데 내가 먼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은 나를 선교사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을 보여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해 내야 합니다.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라면 넉넉히 가능한 줄 믿습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은혜받은 자의 마땅한 삶은 무엇입니까?

①희생의 자리, 십자가를 지는 자리로 가는 것입니다. ②둘째로 방주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방주는 방향키도, 노도, 돛도, 닻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셔야 합니다. ③셋째로 나 한 사람의 가치를 소홀히 여기지 말고... 믿음의 싸움을 잘 싸워 주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선교사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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