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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기억하시는 하나님 이병수목사 2010-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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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30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창세기 8:1-19

제목:우리를 기억하시는 하나님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언제 그렇습니까? 기대와 현실이 너무나 다를 때 그런 마음이 듭니다. (예)어려운 일이 생겼습니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기대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승리할 것이라고... 헌데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이 때 어떤 마음이 듭니까?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나? (예2)가족들 가운데 병이 들었습니다. 간절히 기도합니다. 헌데 조금도 차도가 없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나? 회의가 듭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를 씁니다. 헌데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대와 현실이 너무나 다를 때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나?라는 마음이 듭니다.

 

노아가 그랬습니다. 창세기 7장 1절에서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이 때가 노아의 나이 600세 되던 해입니다. 7장 11절을 보겠습니다. “노아가 육백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 이렛 날이라” 600년 2월 10일에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7일 후에 홍수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방주에서 나온 때가 601년 2월 27일이었습니다. 그러면 방주 안에서 보낸 시간이 얼마입니까? 1년하고 17일입니다. 생각을 해보십시오. 1년 17일 간 방주 생활을 했습니다. 방주 생활이 어땠겠습니까? 절대로 편안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안락하지도 않습니다. 방주에 수영장이 있고, 운동시설이 구비된 호화 선박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쏟아지는 물줄기가 방주를 때리고, 출렁이는 물결을 따라서 이러 저리 흔들렸을 것입니다. 아마도 멀미로 고생을 했을 지도 모릅니다. 방주 안에는 온갖 동물들이 함께 있습니다. 냄새도 얼마나 고약했겠습니까?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아니라 1년하고 17일이나 있었습니다. 얼마나 고독했겠습니까? 철저한 단절을 경험한 것입니다. 몸도 몸이지만, 심리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잊으셨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성서의 예)일찌기 욥도 깊은 고난 중에 있을 때에 하나님 앞에 이렇게 탄식을 했습니다. 욥기 23장 8-9절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성서의 예2)다윗도 시편 13편에서 영혼의 침묵기를 보내면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이것이 영혼의 침묵기 아닙니까? 우리도 살다보면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를 경험합니다. 우리도 욥처럼 다윗처럼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들의 고백이 될 때가 있습니다.

헌데 오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이 정말 잊으신 것입니까? 1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할렐루야!

하나님은 한 순간도 노아를 잊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노아만 기억하신 것이 아닙니다. 노아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신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기억력)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기억력을 알 수 있는 단서가 있습니다.

①먼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죄는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멀리 던져 버리시고 결단코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②대신 하나님은 약속은 기억하십니다. ③신음소리를 기억하십니다. 당신으 백성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기억하십니다. ④우리들이 힘든 가운데 행한 순종을 기억하십니다. 또 선한 일을 기억하십니다.(사렙다 과부)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서 기억 할 것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나쁜 것은 기억하지 않으시고, 좋은 건만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 선한 일을 했으면 얼마나 했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은 순종했던 것, 헌신했던 것을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⑤또한 내 이름을 기억하십니다. ⑥내 기도를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한 마디로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다 듣고 기억하십니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를 늘 기억합니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 와 심으셨습니다. (중략)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중략)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126년 전 부활절 주일 아침에 인천항에 도착해서 무릎을 꿇고 드렸던 그 기도를 하나님은 다 기억하시고, 지금 이런 은혜를 주신 것 아닙니까? ⑦또한 요한계시록에 보면 심판 중에서도 기억하시고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적용)더욱 감사한 것은 나만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할 때 나를 통해서 그도 기억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이 나라를 기억하십니다. 내가 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교회를 기억하십니다. 내가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나의 자녀들을 기억하십니다. (예)불심판 중에서도 롯을 기억하신 것은 큰 아버지인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때문이었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49장 14절 이하에서 “그런데 시온이 말하기를 주께서 나를 버리셨고,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는구나. 어머니가 어찌 제 젖먹이를 잊겠으며, 제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찌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나는 절대로 너를 잊지 않겠다. 보아라, 예루살렘아(구원받은 백성들의 대명사입니다), 내가 네 이름을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네 성벽을 늘 지켜 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잊을 수 있습니다. 세상은 ‘일등만 기억하는 뭐 같은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사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1.첫째로 바람이 땅위에 불었습니다. 1절에서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홍수 후에 바람이 불었습니다. 바람이 불자 물이 줄어 들기 시작했습니다. 물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입니다. 헌데 하나님이 바람을 불게 하시매 심판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성서의 예)바람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나타납니다. 출애굽기의 가장 하이라이트 중에 하나는 홍해바다를 마른땅처럼 건너간 것입니다. 이 때에 출애굽기를 보면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더 발전해서 신약에서 바람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와 대화를 하시는 가운데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니고데모가 ‘사람이 어떻게 거듭 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바람이 임으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성령은 바람처럼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바람 같은 성령이십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성령이 내 안에 계심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적용)때로는 내가 기도하는 사람이 언제 거듭날까? 전도하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는 사람들의 마음이 언제 변화될까? 마른 뼈들처럼 죽은 것같고, 힘을 잃고, 지쳐 있는 성도들이 언제 다시 새 힘을 얻고 강력한 군대가 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은 결국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부흥은 사람의 힘으로 절대 안됩니다. 오직 성령의 바람이 불어야 됩니다.

(예)우리가 사모하는 마음으로 ‘부흥’이라는 찬양을 불렀습니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 우리의 죄악 용서 하소서 이 땅 고쳐 주소서 / 이제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이 땅의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을 때 우리의 우상들을 태우실 성령의 불 임하소서 /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오 주의 영광 가득한 새 날 주소서 오 주님 나라 이 땅에 임하소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오직 성령 받기를 위해서 기도했던 것처럼,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도록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성령의 바람이 일어날지어다. 우리 미래교회에 성령의 바람이 일어날지어다. 이 민족위에 다시금 성령의 바람이 일어날지어다. 선포하는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시고, 성령의 바람을 일으켜 주실 줄 믿습니다.

 

2.둘째로 아무리 급해도 때가 차야 합니다.

노아는 때를 알아보기 위해서 창문을 열고 먼저 까마귀를 날려 보냈습니다. 헌데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왜 까마귀가 돌아오지 않았는가? 여러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헌데 설득력이 있는 것은 여기 저기 시체가 널려 있습니다. 까마귀는 잡식성입니다. 뭐든지 잘 먹습니다. 그래서 먹을 것이 가득해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까마귀는 돌아갈 것을 까맣게 잊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비둘기를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돌아왔습니다. 아직 땅에 물이 가득해서 있을 곳이 없었습니다. 일주일 후에 다시 비둘기를 날려 보냈습니다. 이번에는 입에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고 왔습니다. 이제 땅은 마르고, 새 순이 돋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소망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다시 일주일을 기다려서 비둘기를 날려 보내자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되었구나!라고 노아는 생각했을 것입니다.

까마귀와 비둘기를 날려 보내는 노아의 마음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알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를 묻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때에 따라서 움직이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세월이 약이다’라고 합니다. 이 말은 시간이 흐르면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간을 그냥 흘려 보낸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때가 차야 한다‘고 합니다. 때가 차야한다는 것은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책임을 다하면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예)운동선수들이 4년이라는 시간만 보내면 금메달을 얻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금메달은 4년이란 시간을 얼마나 성실하게 채웠느냐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성서의 예)가장 좋은 예가 요셉일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꿈과는 너무 거리가 멀게 기약 없는 시간을 보냅니다. 헌데 요셉은 그냥 시간만 지나가길 기다렸습니다. 꿈은 이루어지겠지... 하고 가만히 손놓고 기다리기만 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순종의 때를 채웠습니다. 게으르게 보낸 것이 아니라, 그 시간도 하나님이 주신 시간으로 알고 최선을 다하며 때를 채웠습니다.

(적용)우리 교회부흥도 그렇습니다. 시간만 지나면 되는 것입니까? 창립 10주년이 되면 자동적으로 부흥을 하는 것입니까? 결단코 아닙니다. 기도의 양이 차야 합니다. 눈물의 헌신이 차야 합니다. 전도가 차야 합니다. 때를 채우지 않으면 절대로 부흥은 없습니다.

이 땅에 주님이 오셨을 때를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주님은 항상 하나님의 때에 따라서 움직였습니다. “아직 내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하시고, “보라 이제 내 때가 왔다”고 하셨습니다.

 

(적용)지금 방주 안에 계십니까? 언제 이 방주에서 나가나?하며 답답하십니까? 이 문제가 언제 해결될 수 있을까? 왜 응답이 안되는가? 왜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가? 왜 내 삶이 회복되지 않는가? 깊은 방주 속에서 고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때가 차야 합니다. 기도의 때가 차야 합니다. 순종의 때가 차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방주 안에서 우리가 할 일은 끝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방주 안에서 영원히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방주 안에서 불평하고 원망하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대신 믿음으로 때를 채우십시오.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며 때를 채워 가면 반드시 응답이 될 것입니다. 노아는 절대로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조바심을 내지 않았습니다.

3.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방주에서 나오라” 15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게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할렐루야! 때가 차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방주에서 나오라!”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노아는 절대로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비둘기가 감람 잎사귀를 가져 왔을 때 나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또 일주일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비둘기를 날려 보내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땅에 물이 완전히 말랐구나! 알았습니다. 그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 ‘방주에서 나오라’는 말씀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노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인 사람입니다. “방주를 지으라- 예! / 방주로 들어가라 - 예! / 방주에서 나오라-예!” 철저하게 하나님의 음성대로 했습니다.

(적용)그러면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유지할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으며, 부흥하는 교회치고 위기를 만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도 창립 3주년을 맞이하면서 지금이 가장 큰 고비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저는 더욱 두렵고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부흥의 정체기는 마치 방주 안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언제 성령의 바람이 불어올까? 언제 방주에서 나갈까? 우리는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때가 차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잠잠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한 걱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말씀으로 위로를 주셨습니다. 한 주간 동안 하박국 2장 3,4절을 묵상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질문도 내용은 다르지만, “하나님! 언제까지니이까? 언제 방주에서 나갈 수 있습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주신 답은 “이 묵시(하나님의 응답은?)는 정한 때가(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반드시 방주에서 나오라고 하실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리라) 보라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방주에서 나오라고 할 때까지 믿음으로 버티라고 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받고 얼마나 힘을 얻었는지 모릅니다. 우리교회 부흥도 때가 차야 한다. 기도가 차야 하고, 헌신이 차야 하고, 눈물이 차야한다. 그리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방주에서 나오라”고 하실 것입니다. (성서의 예1)

앞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욥이 고난 중에 탄식합니다. 부르짖습니다.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언제까지입니까? 언제까지입니까? 고통하며 절규할 때,

욥은 계속해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욥기 23장 10절 “그러나 그가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적용)지금 방주 안에 있습니까?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심판은 물러갈 것입니다. 또한 방주 안에서 우리가 할 일은 때를 채우는 것입니다. 허송세월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성실의 때를 채우고, 기도의 때를 채우고, 순종의 때를 채우고, 믿음의 때를 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도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실 것입니다. 반드시 때가 차면 하나님께서 “방주에서 나오라” 하실 것입니다. 전혀 인간 편에서 소망이 없는 절망 중이라도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126년전 우리 한국 땅에 방주 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를 기억하시고, 이 땅에 성령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우리 민족을 방주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런 은헤를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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