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하나님 | 이병수 목사 | 2010-06-06 | |||
|
|||||
|
2010년 6월 6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창세기 8:20-21 제목:참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예화)“무거울수록 가벼워라” 주님을 영접한지 4개월이 된 한 성도가 예수님을 믿고 새롭게 살아가는 자신의 삶의 감격을 ‘무거울수록 가벼워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오래전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에 먹을 것이 다 떨어졌을 때 어린 딸을 부모님 댁으로 보내어 쌀을 얻어오도록 했답니다. 몇 시간이 지나 어린 딸이 머리에 쌀을 잔뜩 이고 들어오는 모습을 본 성도는 너무나도 안쓰러워, 무겁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어린 딸이 이렇게 대답을 했다는 것입니다. - “할머니께서 쌀 부대에 쌀을 퍼 넣어 주실수록 부대는 자꾸 무거워지는데, 이상하게도 무거울수록 가벼웠습니다.” 이 딸의 그 때의 고백이 지금 자신의 마음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 알수록,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지키면 지킬수록,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무거워야 할 것 같은데, 삶은 더 가볍다는 것입니다. 쌀을 부대에 넣으면 넣을수록 무거워지는 당연한 것입니다. 헌데 이 아이에게는 부대가 무거워질수록 가볍다고 느낀 것일까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그 쌀은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쌀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많으면 많을수록, 사랑하는 가족들은 배부름을 얻을 것이고,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이와 같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솔직히 쉬운 길은 아닙니다. 힘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 알수록, 그리스도인으로 살면 살수록 신앙생활의 짐이 무겁구나!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예배드리는 삶을 사는 것이, 말씀대로 사는 삶이,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신앙생활이 무겁기는커녕 도리어 가벼울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생명을 주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고, 능력을 받기 때문입니다. (적용)예배 시간에 은혜 받고, 그 힘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예배는 힘들지 않습니다. 헌데 왜 예배를 힘들어 합니까? 왜 예배가 지루합니까? 설교말씀이 들리지를 않습니까? 오늘 이 시간에 이 문제가 풀려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원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의 영광, 예배의 감격이 회복되기를 축복합니다. 공교롭게도 지난 주일 사역자 반 공부 내용이 예배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예배에 은혜를 받고 있는지 교인들에 대해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대체로 은혜를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이라도 예배가 힘들고, 은혜를 받지 못한다면 문제 아닙니까? 헌데 몇 몇 사람들이 졸았다, 말씀이 잘 이해가 안 되었다, 예배에 집중이 안되고 딴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목회자가 문제를 발견했으니, 문제의식을 갖아야 하지 않습니까? 한 주간 동안 예배회복을 위해서 더욱 집중적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또한 예배에 대한 말씀을 나눌 때가 되었는지, 이번 주일 본문도 노아의 예배입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오자 마자 예배를 드렸습니다. 방주에서 나와서 가장 먼저 한 것이 예배였습니다.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들이 드리는 예배가 갖는 영적인 의미 무엇이고, 성공적인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1.첫째로 누구에게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까? 즉 예배의 대상자가 누구신가?하는 것입니다.(Who?) 노아는 누구에게 예배를 드렸습니까?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수가성의 여인에게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누구에게 예배합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의 대상은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나 사람들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이 아닌 그 어떤 것을 예배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한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가장 가치 있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영어로 ‘Worship’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Worth’ 가치를 부여한다는 말입니다. (예)사람을 무엇에 가치를 두고 소중히 여기느냐가 그 사람이 예배하는 것입니다. 돈에 가치를 둔 사라은 돈을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돈 때문에 울고 웃고, 돈만 있으면 다 된다는 생각을 하고, 돈 때문에 괴로워하고, 돈 때문에 절망하고, 돈에 벌벌 떤다면 그는 돈을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 어떤 이는 사람을 예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쩔쩔매고, 사람을 기쁘게 하고, 사람 비위 맞추고,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사람을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 집을 예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명예를 예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하는 사람은 예배가 우선입니다. 기도가 우선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그분 눈치를 보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분이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적용)여러분은 무엇을 예배하는 사람입니까? 가치를 두고 살아간다는 입장에서는 모든 사람들은 다 예배자입니다. 나름대로 소중히 여기는 것을 예배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예배자는 하나님 아버지를 가장 가치있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2.둘째로 왜 예배해야 합니까?(Why?) 성경은 일관되게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제일 된 목적이 예배라고 합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도,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도 예배를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서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21절에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예배는 구원받은 자들의 마땅한 의무요 특권입니다. 예배는 오직 사람만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개들이 충성스럽고 하지만, 목장예배 드리는 것을 보셨습니까? 오늘은 달마시안 집사님이 기도하시고, 푸들이 특송하고, 치와와가 봉헌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이건 아니잖아요?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배는 하나님의 간절한 기대입니다. 하나님은 방주에 동물들을 태울 때, 부정한 짐승들은 한 쌍씩 태웠습니다. 헌데 정결한 짐승과 새는 몇 쌍씩 태우게 하셨습니까? 7쌍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예배를 받으시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방주 안에 있는 동안에도 예배를 드렸을 것입니다. 짐승을 잡아 불에 태워드리는 예배를 제대로 드렸는지를 모르겠지만, 분명 예배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방주에서 나오자 마자 정결한 짐승을 잡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정결한 짐승과 새들을 7쌍씩 태우라고 할 때부터 하나님은 예배를 받기 원하시는구나! 알았을 것입니다. (성서의 예) 어느 날, 예수님은 10명의 문둥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헌데 한 사람만 돌와와서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열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주님께 영광 돌리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열 사람이 육신의 고침을 받았지만, 영혼이 구원받은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살다가 주일날에는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하며 예배하는 자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은 오직 육신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육신의 병만 고치면 되는 것입니까? 육신의 문제만 해결되면 다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관심은 영혼 구원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면 병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실패했습니까? 그 실패로 인해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고, 영혼이 구원을 받았다면 그것이 좋은 것 아닙니까? (적용)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설교를 머리로 듣지 마시고, 가슴으로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정말 그렇게 기도하지 않아도 괜찮으신 것입니까? 난 기도하지 않아도 전혀 불편하지 않아! 그렇다면 그것이 가장 큰 위기입니다. / 난 예배가 없어도 사는데 전혀 힘들지 않아! 이것은 너무나 심각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하지 않아도 될 만큼, 하나님께 나와서 간절하게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아도 될만큼, 편안하다면 우리 영혼은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개구리 죽이는 방법을 아시지요? 이것은 악한 마귀가 우리 영혼을 집어 삼키는 방법입니다. 처음부터 뜨거운 물에다 개구리를 집어넣지 않습니다. 찬물에 개구리를 넣고, 서서히 열을 가하는 것입니다. 개구리는 물 만난 기쁨에 즐거워합니다. 서서히 물이 뜨거워질 때도 아 따뜻해!하며 즐깁니다. 그러면서 점점 힘이 빠집니다. 위험을 느끼고 뛰쳐 나가려고 할 때는 이미 때는 늦은 것입니다. 악한 마귀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굳이 힘들게 기도하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 삶을 편안하게 합니다. 급한 일이 있어야 부르짖을 텐데 그럴 일이 없으니 서서히 세상에 물들어 갑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상호연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 부분이 약화되면, 그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그래서 인생의 모든 출발은 예배여야 합니다. 예배가 약해지면 도미노 현상처럼 다른 부분도 서서히 약해지는 것입니다. 예배가 약화되면, 영적으로 약해집니다. 영적으로 약해지면, 봉사가 힘들어집니다. 봉사가 힘들어지면, 나오기 싫어집니다. 피하고 싶습니다. 피하려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 세상의 유혹과 시험에 넘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마귀는 예배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구원받은 성도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예배가 공격당하면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너집니다. 오늘 이 시간 예배하는 중에 영혼의 적신호가 켜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픔과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치유가 있길 축복합니다. 3.셋째로 그러면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합니까? (1)노아는 폐허 속에서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눈에 펼쳐진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폐허 그 자치였습니다. 종종 자연재해로 폐허가 된 땅을 보셨지요? 끔찍하고 비참합니다. 아무 소망도 없습니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모릅니다. (적용)우리 인생도 그를 때가 있습니다. 어디에서부터 손을 써야할지... 무너진 가정을 어떻게 세워가야 할지... 깨진 관계를 어디에서부터 풀어야 할지... 암담하고, 소망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에도 예배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기도부터 시작을 하십시오. 노아는 전혀 예배드릴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한 것이 예배였습니다. 예배는 어떤 상황에도 좌우되어서는 안됩니다. 어떤 감정에도 좌우되어서는 안됩니다. 지진 중에도 예배해야 합니다. 전쟁 중에도 예배드려야 합니다. 죽는 순간에도 예배해야 합니다. 어떤 이유로도 예배를 포기하면 안됩니다. 바빠서 예배할 수 없다고요? 일이 많아서 예배할 수 없다고요? (적용)우리 교회성도들 가운데는 주일에 부득불 출근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시대가 그러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보여야 합니다. 상황이 안되니까 어쩔 수 없지! 하면서 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리 알잖습니까? 이번 주일이 근무면, 토요일 새벽예배라고 드리십시오. 주일 출근 시간보다 30분 일찍 나서서 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주일 헌금 드리고, 그리고 출근을 하십시오. 주님이 보시는 것은 마음입니다. 정성입니다. 얼마든지 하실 수 있잖습니까? 노아는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재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다고 했습니다. 정결하다는 말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①처음 것이라는 뜻입니다. 처음 난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렸다는 것입니다. 잠언 3장 9절에서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했습니다. 그렇듯이 처음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내 마음에 일 순위가 하나님이라는 것이요, 가장 먼저라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드리면 하나님은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했습니다. ②또 정결하다는 것은 가장 좋은 것을 드린다는 뜻입니다. 최상의 상태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예배를 힘들어 하고, 은혜가 안 되는 이유가운데 하나는 예배준비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배를 위해서 10분이라도 간절하게 기도했다면 은혜가 될 것입니다. 내일 무슨 말씀을 주실까?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면 말씀이 들릴 것입니다. (예)내일 수학능력고사를 보는 사람이라면 삼가 조심하겠지요. 내일 수능 볼 사람이 먼 길을 가겠습니까? 음식을 함부로 먹겠습니까? 잠을 늦게 자겠습니까? 말을 함부로 하겠습니까? 초 비상입니다. 모든 분위기를 수능 볼 사람에게 맞추듯이 예배를 그렇게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면 엄청난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몸도 마음도 매사에 조심조심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은 잠도 11시에는 주무셔야 합니다. Tv나 인터넷도 절제를 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채우기 위해서 세상의 것을 조금 비워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 10전에는 오십시오. 지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또 예배 드리기 10분 전에는 찬양하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예배가 끝나고 하시면 좋겠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신앙을 회복하는 길은 예배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예배가 은혜가 되고, 회복이 되면 모든 것이 회복이 됩니다. 찬송 한번을 해도 진액을 쏟아서 하시고, 기도를 해도 심장이 터져 나오는 강력한 기도를 해보십시오. 그리하면 악한 마귀가 굴복하는 영광스런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4.그러면 결론적으로 참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에게 어떤 복을 주십니까?(What?) 2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1)첫째로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은 향기를 받으시고, 중심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예배의 영광입니다. 내 마음이 주님의 마음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 찬양을 다음에는 함께 배워서 하기 원합니다.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을,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모든 것 주께 드립니다 사랑으로 안으시고 날 새롭게 하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게 사랑을 가르 치소서. 당신의 마음으로 용서하게 하소서 주의 성령 내게 채우사 주의 길 가게 하소서 주님 당신 마음 주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사실 내 마음으로는 무엇 하나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마음이라야 주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2)둘째로 예배는 어떤 상황도 참고 극복 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마음은 무엇입니까? 남들은 잘도 사는 것 같은데, 난 왜 이렇게 힘들까? 언제까지 방주 안에 있어야 하나? 막연하고, 두려울 때가 많습니다. 노아도 그랬을 것입니다. 1년 17일을 방주 안에서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럼에도 인내하고,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예배하였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 몰려 올수록 기도하면서 마음을 추스르고, 새 힘을 얻어 이긴 것입니다. 우리들의 기도는 거의 피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어깨에 무거운 짐을 덜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잘 인용하는 말씀이 고린도전서 10장 13절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장 13절) 감당할 시험만 주신다. 그리고 피할 길을 주신다고 위로합니다. 헌데 여러분! 피할 길이라는 것은 도망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길을 주신 다는 것입니다. 넉넉히 감당할 다른 길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는 하나님이 지워주신 어떤 짐도 넉넉히 지고 갈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어깨의 힘을 키우는 시간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담당해 주셔야 할 짐이 있습니다. 맡겨야 할 수고와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죄의 짐, 죽음의 짐, 질병의 짐, 저주의 짐은 주님이 담당해 주셔야 합니다. 그러나 예배의 짐, 훈련의 짐, 기도의 짐, 사명의 짐, 헌신의 짐, 사랑의 짐은 내가 지고 가야 합니다. 이 모든 짐들을 넉넉히 지고 갈 수 있는 힘을 충전 받는 시간이 예배입니다. (3)셋째로 예배는 시선을 바꾸는 시간입니다. 노아라고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지 않았겠습니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갈등했을 것입니다. 내가 잘 하고 있는 건가? 남들과 이렇게 다르게 사는 것이 잘하는 것인가?하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흔들릴 때마다 믿음과 마음을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예배였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이 땅을 향했던 시선을 하늘로 향하는 것입니다. (적용) 죽고 싶을 때는 병원엘 가보라. 자신이 초라하다고 느껴질 때 높은 산에 올라가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시선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땅만을 바라보면 낙심하게 되고, 절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주를 보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들려 오는 소리를 뒤로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내 시선을 교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금 힘을 얻어 믿음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