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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두렵다면 증거를 구하라 | 이병수목사 | 2010-09-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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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5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창세기 15:8-21 제목:여전히 두렵다면 증거를 구하라 어느 날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영원한 몸으로 변화되셨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황홀했습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의 체험을 주신 목적은 하늘의 영광을 갖고 산 아래에서 충성을 다하는 삶을 살라는 뜻이었습니다. 헌데 베드로는 하늘의 영광이 너무 좋아서 산 아래는 잊어 버리고, 이 곳에서 영원히 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목적은 산 아래였습니다. 산 아래에 서 악한 마귀에 종노릇하며, 죄악 가운데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헌데 세상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삶이 결코 쉽지 않기에 하늘의 영광을 먼저 보여 주신 것입니다. 장차 받을 하늘의 영광을 마음속에 품고 산 아래의 삶을 잘 살아 내길 기대하신 것입니다. 땅에 살면서도 늘 하늘을 늘 바라보고 살라고... 나그네처럼 언젠가는 모두 다 두고 떠날 때가 있음을 알고 살라고... 신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어렵지만, 장차 받을 하늘의 영광이 있으니 힘을 내라고 먼저 하늘의 영광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믿는 자의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주님이 보여주신 영광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힘을 냈을 것입니다. 헌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늘은 없고, 땅만 바라보고 사는 것은 아닙니까? 땅에서 열심히 살라는 뜻은 맞지만, 하늘을 바라보는 믿음은 너무나 약해졌습니다. 이 땅에서 열심히 사는 이유가 장차 하나님 앞에 서는 날 부끄럽지 않게 살다왔다고 고백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 땅에서 떵떵 거리고 살려는 목적 뿐은 아닙니다. 그래서 하늘은 온데 간데 없고, 땅에 집착하는 삶만 남아 있지는 않습니까? (예)우리 가운데 저도 마찬가지이지만, 나이 50이상 되신 분들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내려갈 준비를 하는 시기입니다. 인생의 계절로 따지면 가을입니다. 이제 곧 닥쳐올 겨울을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가을은 더 얻으려고 심을 때가 아닙니다. 뿌린 것을 잘 거두고, 인생을 돌아보고, 앞으로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깊히 고민하는 시기입니다. 이제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내 노력’보다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를 생각할 때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준비할 때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이 세상에서 신자로서 살아가는 삶이 고난이지만, 그래도 행복하고, 그래도 감사하고, 그래도 힘을 낼 수 있는 것은 장차 받을 하늘의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산 아래에서 치열하게 살아도 하늘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헌데 문제는 장차 받을 영광은 멀기만 한 것 같고, 현재의 고난은 너무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세는 내세이고, 지금 당장 급한 것부터하자는 마음으로 믿음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너무 긴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증표를 구합니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자녀를 제 때에 얻지 못하고, 땅도 차지할 가망이 없자 심각한 두려움과 불안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확실한 약속의 증거를 원합니다. 8절입니다.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님!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두렵습니다. 연약한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증표를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예화)젊은 남녀들이 사귀게 되면 둘의 사랑을 증거하는 물건을 주고 받습니다. 그것이 커플링입니다. 커플링은 비싼 것으로 하지 않습니다. 둘이 헤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헌데 결혼 예물은 비싼 것으로 합니다. 헤어질 확률이 적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은혼식, 금혼식 선물은 아주 고가로 합니다. 어짜피 나에게 투자하는 것이니까요? 사랑에도 다 계산이 들어갑니다. 살다보면 깨질 수도 있는 연약한 인간의 사랑에도 서로 증표를 주고 받습니다. 그러나 그 증표가 사랑을 지켜주지는 않습니다. 사랑하기에 증표를 서로 나누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증표는 다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증표는 영원한 것입니다. 부도나지 않습니다. 증거를 구하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증표는 무엇이었습니까? (1)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미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믿음은 약속의 말씀을 계속 붙드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듣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계속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는 언약 / 말씀으로 약속하셨지만, 지금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성경을 주셨습니다. 성경 속에는 하나님의 만 가지의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약속으로 붙잡을 수 있는가?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기억나게 하시고, 적용하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으로 생각나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하신 말씀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언제부터 아!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뜻이 그거였구나! 생각나기 시작했냐면, 성령님이 오시고 나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①먼저 설교를 잘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가장 쉬운 방법은 설교를 통해서입니다. 귀를 기울여 설교를 들으면 아하!하고 깨닫게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믿어지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②또 성경을 직접 읽을 때입니다. 처음엔 성경이 어려우니 그래도 쉬운 시편의 말씀, 잠언의 말씀을 읽으며 묵상을 하십시오. 신약은 마가복음이나 요한복음을 읽으십시오. 역사서를 중심으로 읽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성경의 등장하는 사람이나 상황이 마치 내 이야기 같은 공감이 되면서 마음에 도전이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나와 어쩜 저렇게 똑같을까? 그래 저거구나! 하고 힘이 되거나 위로가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을 붙잡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것은 제자훈련에 참여해서 궁금한 것을 묻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늘 더 갖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앞만 보고 위로만 달려가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이 사람은 늘 결핍을 느낍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많은 것을 갖았는데도 늘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러다보니 감사할 줄 모릅니다. 만족함이 없습니다. 이 사람이 설교를 듣다가 아니면 성경을 읽다가 고린도 후서 12장의 말씀을 봅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이것은 사도 바울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질병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남의 병은 고치면서도 자신의 병은 고치지를 못했습니다. 아니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병은 고치시면서, 정작 바울의 병은 고쳐주시지 않았습니다. 세 번이나 기도했지만, 응답대신 오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더 갖으려고 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면 ‘네가 약함으로 내가 너의 능력이 되어 주는거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고 불현 듯 깨닫습니다. 내가욕심으로만 살았구나! 지금까지도 베푸신 주님의 은혜가 많은데 감사하고, 있는 것으로 나누지는 않고, 채우려고만 했구나! 깨닫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평생을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말씀을 새기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 성령님은 우리의 형편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거나 들을 때 적용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말씀의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2)둘째 주신 증거물을 십자가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 어떻게 십자가가 나타나는가를 보기 원합니다. 증거를 요구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언약식을 갖으셨습니다. 삼년 된 암소와 암염소와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를 준비했습니다. 당시 쌍방간의 언약식은 짐승을 잡아서 이등분을 합니다. 둘로 쪼개서 양쪽으로 서로 마주 보게 놓습니다. 그리고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유는 만약에 어느 한 쪽이라도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는 쪼갠 고기처럼 된다는 뜻입니다. 생명을 걸로 약속을 지키겠다는 뜻입니다. 구약성경에 언약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베리트입니다. 이 말이 둘로 쪼개다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고기를 쪼개 놓고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언약식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반드시 주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이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어떤 경우에도 믿음의 길을 벗어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려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하나님은 오시지 않습니다. 너무 피곤한 아브라함은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흑암과 두려움이 임할 때에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가셨습니다. 17절입니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놀라운 것은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신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아브라함은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시겠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이름을 걸고, 생명을 걸고, 언약을 지키시겠다는 것입니다. 대신 아브라함에게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해질 때까지 기다리신 것입니다. 깊히 잠들 때까지 기다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얼마나 약한 자인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다 주를 버릴찌라도 나는 주를 버리지 않겠습니다’했다가도 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홀로 모든 것을 짊어지셨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약속을 반드시 지켜 주시겠다는 뜻으로 고기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대한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시고, 친히 저주받은 짐승 사이로 지나가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십자가 아닙니까?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헌데 예수님이 내 대신 모든 저주를 짊어지시고 홀로 골고다로 가셨습니다. 내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받아 주셨습니다. 내가 맞아야 할 채찍을 대신 맞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모든 책임을 당신 스스로 지셨습니다. 당신이 저주받고, 멸시받고, 천대와 조롱을 받고, 당신의 몸이 쪼개지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희생입니다. 십자가는 사랑입니다. 십자가를 복작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원래 언약식에서 필요한 짐승은 형편에 따라서 한 종류만 준비하면 됩니다. 헌데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암소, 암염소, 숫양, 집비둘기, 산비둘기를 준비하게 하셨습니까?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짊어지신 것입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높은 자나 낮은 자나, 남자나 여자나, 어른이나 아이나, 건강한 자나 병든 자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을 대신하여 일방적으로 약속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언약을 지킬 수도 없고, 해결할 수도 없는 연약한 자임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홀로 고기사이를 지나가시면서 모든 책임을 홀로 지신 것입니다. 우리들이 받아야 할 사망의 진노를 십자가에서 주님임 담당하신 것입니다. (적용)십자가가 희생으로 일구어진 사랑이라면 주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망의 십자가는 주님이 지셨습니다. 우리는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면 됩니다. 이것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내가 받은 생명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것도 못합니까? 내가 받은 사랑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지도 못합니까?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위로해 주지도 못합니까?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삶에서 벗어나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3)셋째로 주신 증거는 성령의 능력이었습니다. 17절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하나님은 타는 불로 나타나셨습니다. 활활 타오르던 화로에서 불이 튀어나왔습니다. 그 불이 가만히 있지 않고,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갔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불로 인을 치신 것입니다. 불이 임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임재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실 때는 불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식어진 가슴에 불을 붙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1)모세가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호렙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불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사명을 주실 때 불로 임하셨습니다. 불을 받으면 자신감이 생기고, 확신이 생겨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2)또 솔로몬은 성전 봉헌식을 하고 난 뒤에 하늘에서 불이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배 중에 불이 임한 것입니다. (예3)엘리야가 갈멜산에서 기도할 때 불이 내렸습니다. (예4)무엇보다 초대교회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모여서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의 불이 임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본 사람들은 500명이 넘는데 120명만 모였습니다. 나머지 380명도 예수를 믿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뿐 이었습니다. 아무런 힘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날 능력을 잃어버린 우리들의 초상이 아닙니까? 헌데 부활의 주님을 보았던 500명 중에 120명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성령의 불을 구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을 체험하고 싶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누가복음 11장 12절에서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성령의 능력을 받는 길은 오직 기도하는 것입니다. 구하는 것입니다. 구할 때 성령의 불이 임했고, 그들은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사는 길은 다른 것 없습니다. 오순절이 성령강림이 다시 오늘 이곳에서 우리에게 재현되는 것 뿐입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세 가지 확실한 증거를 주셨습니다. 이것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 증거인 하나님 말씀 / 십자가의 사랑 / 성령의 능력을 받아 무엇을 하라는 것입니까? 18절입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그 땅은 이미 10족속들이 차지하고 있는 땅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땅은 새 땅이 아닙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묵은 땅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묵은 땅을 차지해서 약속의 땅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날 신자들에게 주신 사명이 아닙니까? 이미 이 땅은 악한 마귀가 점령하고 있는 땅입니다. 죄악이 범치는 땅입니다. 이대로 가면 멸망해야 할 땅입니다. 이 묵은 땅을 하나님이 주신 세 가지 능력으로 정복하라는 것입니다. ①우리도 원래 새로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둠속에 있는 자들을 복음의 능력으로 구원하여 새 사람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②십자가의 사랑으로 가정과 사회를 변화시키라는 것입니다. ③성령의 불로 병든 자를 치유하며, 귀신들을 내어 쫓고, 저주와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살려내라는 것 아닙니까? 우리 미래교회를 이 곳에 세우신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십자가의 사랑과 성령의 능력으로 묵은 땅을 갈아 엎으라는 것입니다. 증거를 구하는 아브라함에게 기꺼이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우리들의 기도와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은혜와 능력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확실한 증거를 갖고 묵을 땅을 약속의 땅으로 바꾸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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