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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이병수목사 2010-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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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국사회에는 아주 좋지 않은 관습이 있었습니다. 고려장이라는 것입니다. 70세 이상되신 노부모를 깊은 산 속에 얼마의 양식을 주고, 버려두고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국법으로 정한 것이었습니다. 한 아들이 노모에게 들로 소풍을 가자고 합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자신을 깊은 산 속에 버려두고 올 것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면서도 좋다고 아들이 지는 지게에 오릅니다. 산을 넘고, 골짜기를 굽이 돌고 돌아서 깊은 산속으로 어머니를 메고 들어갑니다. 헌데 어머니는 산으로 깊히 들어 갈수록 손에 닿는대로 나뭇가지를 꺽어 놓습니다. 한 참을 가서 쉬고 있을 때 아들이 물었습니다. 어머니 왜 나뭇가지를 꺽으셨습니까? ‘그것은 깊은 산속에서 네가 돌아가다가 길이라도 잃을까봐 그랬지!’ 이 말을 듣고 아들은 깊히 늬우치고 어머니를 도로 모시고 왔다는 것입니다. 국법을 어긴 죄로 왕에게 잡혀 갔을 때,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하자, 왕은 고려장을 중단시켰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머니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자기를 깊은 산속에 버릴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머니는 오직 아들 걱정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깊은 것이 무엇입니까? 사실을 다 알면서도 끝까지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다 아셨습니다. 본문 1절의 말씀을 보면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무엇을 아셨습니까?

?이 세상을 떠나 돌아가실 것을 아셨습니다. 바로 눈 앞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지금 때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전날인 목요일 저녁시간입니다. 큰 수술을 앞두고 수술 대기실에서 전신 마취를 하려고 할 때 얼마나 마음이 두렵습니까? 헌데 예수님은 내일이면 십자가를 지셔야 합니다. 십자가의 고통! 얼마나 큰 고통입니까? 지금 주님은 자기 문제만으로도 충분히 힘드신 상황입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당신이 어떠한 죽음을 겪어야 하실지를 다 아셨습니다.

?또 제자들의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 식사 자리에 둘러 앉았지만, 지금 제자들 사이가 안 좋습니다. 조금 전까지 서로 누가 크냐?는 것으로 다투었습니다. 서로 시기하고,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분위기가 냉랭합니다.

?무엇보다 가룟 유다의 행위를 알고 있습니다. 이미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넘겨주려고 돈까지 받았습니다. 기회만 엿보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라면 우리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헌데 성경은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무엇을 하셨다고 말씀하십니까?

1.첫째로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1절 하반절을 보시면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앞서 말씀을 드렸지만, 주님은 지금 당신 문제만으로도 너무나 힘겹습니다. 거기다가 12제자들이 하는 짓을 보면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다 아시면서도 예수님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사람은 에고가 강합니다. 자기 중심적입니다. 만약 주님께서 당신 힘드신 것에만 집착하셨다면, 절대로 제자들을 사랑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 학자들에 따르면,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실 때 가룟 유다의 발을 가장 먼저 닦아 주었다고 합니다. 가룟 유다가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를 넘겨주기로 하고 돈을 받은 사람입니다. 아닌척 하고 와서 앉아 있는 것입니다. 헌데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발을 가장 먼저 닦아 주셨습니다. (만약에 저 같으면, 발은 닦아주더라도 철수세미로 밀어버리든지, 꼬집든지 하지 않았을까!싶어요. 아니 도저히 시도도 못할 것입니다.) 헌데 예수님은 가룟 유다도 사랑하십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매여 버렸다면 나머지 11제자를 사랑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우리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99명이 다 나를 사랑해주어도, 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 한 사람, 그 한 사람에게 걸려서 아무것도 못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면서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였다는 말씀의 뜻이 있습니다.

(1)어떤 경우에도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예화)오래 된 이야기입니다. 90년대 초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던 조크입니다. ?정말 잘생긴 남학생이, 보기에도 민망하리만치 못생겼지만, 외모는 다 명품입니다. 옷, 가방, 신발을 고급스럽게 차려입은 여학생과 지나갑니다. 그러면 “저 여자애 아버지가 재벌인가 봐” ?이번에는 반대로 매우 예쁜 여학생이 자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찌질남, 얼굴도 못생기고, 옷도 후질근 하게 입은 남학생과 길을 갑니다. 그러면 “저 남학생이 사법고시에 붙었나 봐” 그랬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너무너무 못생긴 남학생이 정말 못생긴 여학생과 데이트를 하면 그렇게 말합니다. “저 두 사람은 정말 사랑하나 봐” 이 우스갯 소리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사람은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여건이나 상황을 떠나 사람 자체만을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사랑은 조건적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이 돈이 많아서, 그들의 학력이 높기 때문에 그들을 사랑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었고, 전혀 배우지 못한 무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남보다 의롭고 진실해서 사랑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내일이면 예수님을 다 배신하고 도망칠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그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사랑하셨습니다. 사람 자체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들도 사랑하십니다. 내가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격과 조건이 되기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로 작정하셨기에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랑자체 이시기에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2)또 ‘끝까지’라는 것은 ‘영원히’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증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처럼 ‘사랑해! 영원히!’라는 말을 잘 합니다. 그렇다면 이혼하지 말아야 합니다. 헌데 우리나라 이혼율이 세계에서 몇 번째 안갑니다. 아무리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다짐을 해도 그 약속을 다 지킬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자녀를 사랑하시지요? 자녀들에게 얼마나 헌신적이십니까? 그러나 내가 아무리 자녀를 사랑한다고 해도 영원히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 수도 없고, 영원히 마음을 지킬 수도 없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상황과 여건에 제약을 받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주님은 영원토록 우리를 사랑하시며, 지키시며,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3)그렇다면 우리들도 이 사랑에 도전을 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부른 찬양가운데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 문, 좁은 길 주의 십자가지고 /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 주시리”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여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 믿음 흔들리고 사람들 주를 떠나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나라는 영원히 쇠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적용)1년, 2년 열심인 것, 사랑하는 것은 그래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년, 30년, 40년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누가복음 18장 -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과부의 비유를 하셨습니다. 억울한 일을 만난 과부가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재판장을 찾아가 원한을 풀어달라고 구합니다. 재판장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헌데 귀찮아서 결국은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면서 하물며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기도를 왜 안들어 주시겠느냐?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에게 응답을 오래참으시겠느냐? 이 믿음도 없느냐?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되 절대로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낙심할 위기가 반드시 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응답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상상하지 못한 것으로 응답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끝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가정도 아내도 자녀도 사랑하시되 주님의 사랑으로 끝까지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축복은 이런 자들의 것입니다.

2.둘째로 모든 것을 아신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셨습니다.

4절입니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셨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신체 중에서 가장 더러운 곳이 발입니다. 그래서 발은 종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 종들이 하는 일입니다. 원래는 식사를 하시기 전에 제자들이 주님의 발을 닦아 줬어야 했습니다. 헌데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좀 전까지 누가 크냐는 것으로 경쟁하고, 시기하고 다투었기에 선뜻 누구하나 나서서 발을 닦아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주님의 발을 닦아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내가 가장 낮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눈치만 보고 있을 때 주님이 일어나셔서 친히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철저하게 경쟁사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곤합니다. 늘 긴장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앞서지 못하면 추월을 당합니다. 엄밀하게 친구도 없습니다. 모두가 경쟁관계입니다. 하루 종일 경쟁해야 하고, 서로 눈치를 보느라 긴장을 풀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저녁이 되면 견딜 수가 없어서 술에 자기몸을 던집니다. 이것이 세상의 질서입니다.

(예화)우리 아이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형제간에도 얼마나 시기하고 경쟁하는지 모릅니다. 이름을 불러도 다 불러줘야 합니다. 과자를 사도 세 개를 똑같이 사야 합니다. 가격대가 틀려도 안됩니다.

 

헌데 왜 이렇게 우리의 삶이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근본적인 이유는 이 땅에서 역사하는 악한 마귀 때문입니다. 악한 마귀는 원래 하나님께 지음 받은 가장 아름답고 완전한 천사장이었습니다. 헌데 하나님과 맘먹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땅으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땅을 배회하다가 하나님의 형상을 받아 지음 받은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을 유혹합니다. 창세기 3장 4-5절에서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악한 마귀는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이루지 못한 것을 사람을 통해서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은 피조물의 위치가 있습니다. 헌데 악한 마귀는 자기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도록 유혹합니다. 더 높아질 수 있다고 합니다. 더 앞서고, 더 높아지고, 더 갖으려고 혈안이 되어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악한 마귀는 예수님도 유혹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절대로 넘어지지 않습니다. 악한 마귀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돌을 떡으로 만들어 봐라, / 내게 절을 해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면서 유혹하는 것입니다. 악한 마귀는 계속해서 경쟁하고, 시기하고, 높아지기 위해서 남을 짓밟고, 서로 견제하며 살라고 부추깁니다.

헌데 예수님은 전혀 다른 길을 보이셨습니다. 원래 하나님이 계획하신 길이었습니다.

빌립보서 2:5-7절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교만은 무엇입니까?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된 분입니다. 헌데 스스로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어디까지 낮아 지셨습니까? 8절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적용)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분명해 졌습니다. 모든 사람이 경쟁의 논리, 시기의 논리, 서로 견제하는 논리를 펼 때 한 사람이 대야에 물을 담아 발을 씻겨주면 모든 긴장이 일시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일을 위해서 우리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세상식이 아닙니다. 주님이 보이신 길을 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주님이 가신 길입니다.

주님은 1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그리고 요한일서 4장 10-11절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가신 길을 우리도 따라가야 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길은 세상 보다 더 힘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먼저 섬김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곳이 있습니까? 우리가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없는 곳이 있습니까? 내가 먼저 들어가서 기도의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긴장이 감돌고, 하나되지 못하고 있습니까? 내가 먼저 낮아지면 됩니다. 내가 먼저 지면 됩니다. 전도가 없습니까? 내가 먼저 전도의 불을 붙여야 합니다.

죄악이 가득하고, 사망의 그늘에 앉아 고통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이 예수의 마음을 갖고 주를 따라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주님의 마음을 주시길 원하는 마음으로 떡과 잔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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