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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리라 이병수 목사 201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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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의 이혼녀가 있었습니다. 10년의 세월을 이혼녀로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결국은 한국을 떠났습니다. 그 뒤에 완벽한 남자를 만났다고 합니다. 얼마나 완벽한 남자인지 이 여인이 받는 년봉을 월급으로 받고, 결혼을 할 때, 펜트 하우스를 사주고, 베라왕 드레스을 입혀 주고, 차 한 대 값의 반지를 해주고, 속옷만을 전담해서 빨아주는 도움이를 붙여주고, 카드를 맡기는 남자라고 합니다. 이국 땅에서 외롭지 않도록 자상하게 가정적이고, 늘 사랑한다고 고백을 해 줍니다. 부부관계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 정도면 최고의 남자이지요? ‘내가 당신을 지켜줄께! 나만 믿어! 사랑해!’라며 사랑을 주는 남자입니다. 헌데 글의 내용인즉 ‘너무 행복해서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누구 염장 지를 일 있나요? 너무 완벽해서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나를 언제까지 사랑해 줄까? 혹 내 진짜 모습에 실망하여 사랑이 식어지지는 않을까? 두렵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굳은 약속을 한다고 한들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허나 하나님의 약속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도 불안해 하고, 두려워합니다. 믿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두려워 할 때마다 나타나셔서 약속을 주셨습니다. 심지어는 확실한 증거까지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흔들렸습니다. 몇 번을 실수하는지 모릅니다. 10년을 기다려도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자, 결국은 사라와 합의하에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얻게 됩니다. 인위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려는 것입니다. 이스마엘을 얻고 13년이 지났습니다. 하나님도 13년 동안 침묵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하나님은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1절의 말씀입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99세가 갖는 의미? 부름 받은 지 24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스마엘을 낳고 13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시간이 갖는 의미가 있습니다.

(1)아브라함에게는 기회의 시간이었다.

이스마엘 일로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안주했습니다. 안정을 찾았습니다. 이대로 족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은 결혼생활과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교회생활이 벅차고, 새롭고, 기쁨이 있습니다. 때로는 눈물이 핑도는 감격도 있고, 즐거움도 있습니다. 헌데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고비가 옵니다. 생각했던 것과는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조금씩 마음이 식어지고, 처음과는 달리 시들해집니다. 멀리에서 볼 때는 다 좋아보였는데, 조금 깊히 들어와 보면 사람에게 실망스런 모습도 보입니다. 기대감과 즐거움, 재미가 없어지기도 합니다.

아브라함도 그렇습니다. 처음 부름을 받을 때는 벅찬 감동이 있었습니다. 헌데 현실은 기대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기근이 들고... 아내를 빼앗기는 위기를 만나고...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못해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행동을 합니다. 처음은 두렵지만, 그런대로 지낼만 합니다. 이스마엘을 낳고, 이스마엘의 재롱을 보고, 잘 자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스마엘이나 잘 키워야겠다고 합니다. 늙어가는 자신과 아내를 보면서 더 이상 기대를 하는 것이 오히려 우습게 여겨집니다. 점점 현실에 안주해 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형식적이고, 타성에 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13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2)허나 하나님에게 이 시간은 기다림의 시간이었습니다. 무슨 기다림일까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무런 가능성이 없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람은 10년이 고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작정은 25년이었습니다. 인간의 가능성이 제로가 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만약 아브라함에게 조금의 가능성만 있었다고 해도... 사람이 한 일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예)왜 예수님이 가장 가난한 자, 미천한 자로 오셨습니까? 만약 예수님이 고관대작의 집안이 자식으로 배우기도 하고, 재력도 있었다면 그가 잘 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구원의 메시야이신 주님은 조금의 가능성도 없는 신분으로 오신 것입니다.

 

(우리 삶가운데도 13년의 침묵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때는 고난의 때입니다. 왜 하나님이 13년의 침묵기를 주시나요? 완전히 항복하게 하심이다. 내가 살아 있는 한 하나님은 일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완전히 가능성 제로가 될 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

(적용)응답이 없다고... 낙심하지 말라. 침묵의 시간에도 하나님은 일하시고 계신다. 침묵의 시간은 하나님이 기다리는 시간이다. 우리에게는 잊혀진 시간이고, 실패한 시간일지 모르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아브라함을 찾아 오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본문 1절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아브라함은 놀랬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불가능의 늪에 빠져 있는데, 하나님은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하신다.

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 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1)내가 하리라 -본문에서 “내가”라는 말이 6번이나 사용된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언약을 지킬 것이다.

내가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내가 너를 민족의 열국의 아버지가 되게 하리라

내가 너를 통해서 민족들이 나게하며 여러 왕들이 나게 하리라.

내가 네 후손을 축복하리라

내가 내 언약을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가나안 온 땅을 네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2)엘 샤다이라는 말이 구약성경에 47회 나옵니다. 모세 오경에 6번, 신명기에 10번이 나오고 나머지 31번이 욥기에 나옵니다. 욥의 삶을 아시지요. 욥이 통과해야 한 고난의 터널을 아시지요?

욥은 너무나 고통이 심하여 내가 스올(지옥)의 밑바닥에 거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고난의 한 복판에서 욥이 부른 하나님은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고난을 주시나? 생각해 보라.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나타나시려면 인간의 가능성은 제로가 되어야 한다. 불가능한 상황에서만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부인마저도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왜 당신을 구원하지 않느냐? 당신의 삶을 보니 무슨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냐?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욥이 믿고 의지한 하나님은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후에 욥은 외칩니다.

37장 “하나님은 놀라운 음성을 내시며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시느니라” “전능자를 우리가 찾을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정의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심이니라”

욥은 깊은 고난 중에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불가능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욥을 일으키시고, 승리케 하셨습니다.

(3)하나님의 가장 큰 전능 = 예수님이다.

회복이라는 영화-정통 유대인들의 기독교 핍박 /예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믿느냐?

예수는 사람인데 신인 하나님과 어떻게 동등되게 섬기느냐?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시다. 예수가 위대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는 하지 말라.

예수는 자기 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죽은 죄인인데, 우리의 죄 때문에 죽었다고 하니 이것은 말도 안된다는 것입니다.그래서 기독교인들을 핍박합니다. 2000년 전 이후 지금까지 예수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예수를 우리는 지금 구원자로 믿고 있습니다. 어떻게 나사렛 예수가 인류의 구원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 태어나던 순간, 마땅한 보금자리가 없어서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는 외양간에서 태어나, 짐승의 먹이통에 누워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살던 나사렛 동네는 달동네였습니다. 예수님은 내세울 만한 학력이나 경력이 전무했습니다. 2천 년 전 계급사회였던 당시에 예수님은 가장 밑바닥 최하층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분에 의해서 BC와 AD로 구분이 되고, 인류의 역사가 새로워지고, 누구도 이루지 못한 일들을 이루어 낼 수 있었습니까?

그것을 사동행전 2장에서 베드로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22절)”

달동네 나사렛에서 자란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예수가 권능과 표적을 행하는 메시야의 삶을 산 것은 오직 하나님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 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벌려 못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23-24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뒤 사흘 째 되는 날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망의 자리에서 풀어 살리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른 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33절)”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승천하게 하시고, 성령님을 부어주시고, 다시 재림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십자가 못박아 죽인 예수를 다시 살리시고,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민족의 구원을 얻을 이름으로 주시고, 승천하게 하시며, 다시 재림하게 하시는 이 모든 일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설교의 요지입니다.

 

(4)사랑하는 성도들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창세전부터 아시고, 예정하시고, 이 땅에 보내시고, 때가 되어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라 인쳐주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금 여기에 불러 모아 주신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가정을 주신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 아래에 우리는 있는 것입니다.

(예화)목사님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라고 묻는 다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할 것입니다. 제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결코 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닙니다. 모든 행동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기때문이었다는 것을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①전능하신 하나님은 제가 23살 때 군복무 중 임마누엘교회를 건축할 때 경험했습니다. 저는 당시 일반 병사였습니다. 그러나 군종병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교회를 지어야 할 상황이었기에 국민은행에 1만원의 돈을 저금해 놓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200명이 들어가는 성전을 건축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단돈 1만원으로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또한 우리 청주미래교회는 단돈 10만원을 국민은행에 입금해 놓고 시작했습니다. 오직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부어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②서남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길 때에 일천만원의 건축헌금을 드렸습니다. 당시 적금 들어 놓은 것을 해약해서 기쁘게 드렸습니다. 500만원의 퇴직금을 받은 것으로는 서남교회 교육부에 노트북을 한 대 사놓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년에게 장학금의 일부로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주성교회에서 담임목사를 할 때에도 일천만원의 헌금을 드렸습니다. 연금을 들어 놓은 것과, 자동차를 처분하여 현금으로 일천만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물론 아내와 합의하에 기쁨으로 드린 것입니다.

주변에서 미래도 생각해야 한다. 노년을 대비해서 연금도 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물론 준비 할 수 있을 때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허나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헌신해야 할 때 가만히 있을 수 없었기에 드린 것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지 못했다면 절대로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했으니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상해 주실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오직 사랑하는 주님께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좋았기에 드렸을 뿐이고, 그런 마음을 주신 것으로 충분히 감사했습니다. 사람이기에 미래가 두렵지 않겠습니까?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일이고, 뜻하지 않은 병을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조금은 준비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내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말로만 믿어서 되겠는가? 내 생명도, 내 가정도, 내 육신도, 내 미래도, 우리 교회도 모두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면서 결단해야 할 때, 헌신해야 할 때 드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자신의 것을 기꺼이 드린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한 것이기에 후회가 없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23편 4절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게 하신다면... 기꺼이 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고라자손의 시-시편46편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찌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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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찌어다 땅을 황무케 하셨도다

저가 땅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꺽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됨을 알찌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결론) 오늘 하나님은 99세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니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그러므로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너 왜 흔들리느냐? 왜 두려워하느냐? 왜 믿지 못하느냐?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내가 할 것이다. 내가 약속을 다 지킬 것이다. 내가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거룩함입니다. 복도 주시는 분이지만, 무엇보다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거룩한 백성을 삼기 위함입니다. 거룩한 백성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는 절대로 완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이 임하셔야 새 마음, 새 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고, 동행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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