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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2) 이병수목사 201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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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매몰된 33인 광부 전원이 69일 만에 무사히 구출되는 감동의 드라마를 우리는 보았습니다. 광산이 붕괴되는 사고로 큰 위기를 만났지만, 매몰순간부터 구출 될 때까지 많은 미담들이 전해졌습니다. ‘작업반장인 우르수아의 리더쉽이 빛났다. 가족들을 위한 위대한 싸움이었다. 대통령의 탁월한 기획력과 큰 재난을 경험하면서 쌓인 노하우로 정부와 국민들은 하나가 되어 침착하면서도 신속하게 대처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등등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였다면 진실이 왜곡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도 인간이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 이면에 엄청난 사고를 당하고 처음에는 망연자실하여 움직일 수 없었고, 먹을 것이 없어서 매일 매일 몸무게가 줄어가는 자신들의 몸을 보며 죽음의 공포를 느꼈습니다. 33명은 세 패로 서로 나누어져 갈등하고, 심지어는 주먹다짐까지 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이런 모습이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갈등하고, 분열하면서 결국에는 서로 하나가 되어 희망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인간의 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아브라함하면 너무 좋은 면만 전해진 것 같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다. 어디로 갈지를 알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갔다. 죽은 몸 같은 100세의 몸에서 믿음으로 아들을 얻었다. 100세에 얻은 아들 얼마나 귀중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이 제물로 드리라 할 때 기꺼이 드렸다. 등등’ 너무나 멋있는 아브라함의 모습만 우리에게 전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반응은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이니까 그렇게 살 수 있지만, 나는 그렇게 못 살어! 라는 반응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아브라함도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갈등했습니다. 의심도 했습니다.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안함도 있었습니다. 실수도 여러 번 했습니다. 성경은 언론처럼 아브라함의 좋은 점만을 부각시키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브라함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요.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은 길을 얼마든지 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함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등하듯 우리도 갈등할 수 있고, 아브라함이 잠 못이루며 고민하고 힘들어 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럴 수 있고, 아브라함이 실수하듯이 우리도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결국 승리한 것은 하나님이 그의 길을 인도하시고, 의로운 손으로 붙들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동일하게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시기에 수 없이 넘어지나 결국은 승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본문 16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아브라함의 반응이 본문 17절에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하나님은 우리가 환경의 인도함을 받지 말고, 말씀의 인도함을 받고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이미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어떤 삶을 원하시는가를 살펴 보고 은혜를 받기 원합니다.

아브라함의 두 번째 반응을 살펴 보기 원합니다. 18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이 말씀은 분위기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한 두 시간 잘 설명을 했습니다. 부탁했습니다. 설명을 진지하게 듣고 알아들은 것 같습니다. 헌데 한다는 말이 ‘그래도 그냥 하던 대로 하자’고 하는 식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약속을 했습니다. 증거도 주었습니다. 헌데 아브라함은 결국 “이스마엘이나 잘 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 ‘이스마엘이나’라는 말의 히브리 원어에는 “그래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래도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잘 살기를 원합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도”는 앞의 말을 뒤집어 엎을 때 쓰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무슨 약속을 하시든지... 무슨 일을 하시든지... “그래도 이스마엘이나”라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내가 너에게 주려는 것은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이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19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이스마엘이냐? 이삭이냐?는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앞에 놓인 도전이고, 반드시 결단해야 할 문제입니다.

1.첫째로 하나님은 이스마엘도 복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본문 20절입니다.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고 했습니다. 이스마엘은 (1)육적인 복입니다. 아브라함이 인간적으로 노력해서 얻은 자녀입니다. 또한 이스마엘은 (2)지금 현실속에서 누리고 있는 복입니다. 이스마엘은 눈에 보이는 복입니다. 손에 잡은 복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3)일반은총이라고 합니다. 일반은총은 불신자와 신자의 차별 없이 주시는 것입니다. 신자도 그렇지만, 불신자도 오래 살 수 있습니다. 부자로 살 수 있습니다.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성공하며 살수 있습니다. 신자라도 가난할 수 있습니다. 병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불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선인이나 악인에게 햇빛과 비를 고루 주시는 것처럼 일반은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입니다.

헌데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이나 잘 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환경이나 좋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삭은 모르겠고, 그저 지금 당장 건강하고, 하는 일들 잘되고, 자녀들 성공 하게나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거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들이 대부분 이스마엘이나 잘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현실이나 잘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해결되지 않은 육신의 문제나 풀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삭은 어떤 사람입니까? (1)영적인 복입니다. 이삭은 약속으로 얻을 자녀입니다. 이삭은 (2)영원히 누릴 복입니다. 헌데 지금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고, 귀에는 들리는 것이 없습니다. 약속을 주실 뿐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3)특별은총이라고 합니다. 이 특별은총은 이삭의 후손인 신자들에게만 주시는 복입니다.

물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이스마엘에게도 복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실제로 이스마엘의 후손인 아랍인들도 복을 받았습니다. 알라신을 섬기는 저들도 물질의 복을 받았습니다. 건강의 복도 받았습니다. 크게 번성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백성은 아닙니다. 약속은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마엘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육신의 건강도 주시고, 물질의 복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좋은 차, 좋은 집, 좋은 옷을 입으며 살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도 받을 수 있는 복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믿지 않는 자들은 받을 수 없는 복, 오직 하나님의 자식들만 받을 수 있는 복을 주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일반은총으로 내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고 자랑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이 신자나 불신자나 주실수도 있고, 주시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진정 우리의 자랑은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받는 복 영원한 복, 이삭의 축복을 받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삭의 축복은 ①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주신 복입니다. ②죄사함의 복입니다. 공로없는 내게 내 모든 허물을 동이 서에서 먼것같과 같이 멀리 옮겨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③셋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은 것입니다. 우리는 사망의 종이었습니다. 죄와 어둠의 종이었습니다. 헌데 예수님이 값을 대신 치러주시고, 우리를 사서, 하나님의 양자로 삼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호적에 올려 주신 것입니다.

④넷째로 특별은총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몇 십년 살다가 끝나는 인생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길을 주신 것입니다.

⑤다섯째로 천국의 상급을 주십니다. 내 집 마련이 일생 일대의 소망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근사한 내 집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요 축복입니까? 하나님은 이 복을 주시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우리 하나님께서 이삭의 복 위에 이스마엘의 복을 주시길 간절하게 축복합니다. 아멘도 안하시네!...

그러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둘 다 갖을 수 없다면... 삭개오와 같이 일반은총을 갖고 특별은총을 살 수 있기 바랍니다. 평생 모은 돈으로 영생을 사는 믿음의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이스마엘의 복을 잃어버렸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돈, 건강, 명예는 얻을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삭의 복은 영원히 쇠하지 않습니다. 이 복이 진짜 복입니다.

 

2.둘째로 이삭을 얻기 위해서 이스마엘을 끊어내야 합니다.

창세기 21:8-9절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드디어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삭을 얻었습니다. 이젠 아브라함의 집에는 이스마엘과 이삭이 있습니다. 헌데 문제가 생깁니다. 계속해서 9절입니다.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이 말씀을 잘 생각해 보세요. 세상의 복이 어두워서 신령한 복을 거둬차 버리는 것이 이삭이 이스마엘에게 놀림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 삶속에서도 이런 일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1)제가 신대원을 다닐 때 당시 총장이셨던 교수님은 개강예배와 종강예배설교를 하셨습니다. 이 분은 설교 하실 때마다 제목이 똑같습니다. “에벤에셀”입니다. ‘방학을 잘 보내고 개강하게 된 것 에벤에셀이다.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것입니다. ‘또 한 학기를 보내고 종강할 때도 “에벤에셀”입니다. 이것 말고는 더 고백할 것이 뭐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총장이 되신 분은 설교를 하실 때마다 “이스마엘인가? 이삭인가?”가 제목입니다. 설교 중에는 학점에도 이스마엘 학점이 있고, 이삭의 학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마엘 학점은 오직 성적관리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입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A학점을 받겠다. 그래서 좋은 성적 받아서, 좋은 교회로 부임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이삭학점이 있다고 합니다. 이 교수님은 학점하면 늘 자신은 비타민이 생각난다고 합니다. 비타민에는 A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비타민 B도 있고, C도 있고, D도 있다. 사람이 비타민이 부족하면 건강을 잃을 수 있다. 공부만 잘 한다고 목회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먼저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봄이면 아차산 위에 올라가 꽃도 보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도 해보고, 동료들과 여행도 가라는 것입니다.

지금와 생각해 보면 내가 노력한대로 세상일이 되던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목회를 할 때도 이스마엘 목회하지 말고 이삭의 목회를 해야 합니다. 젊은 신학생들은 이 말을 잘 모릅니다. 이들은 내가 열심히 하면 목회는 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 철이 들면 목회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구나!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것이구나! 깊히 깨닫게 됩니다. 내가 설교를 잘하고, 내가 재능이 많고, 내가 행정을 잘하면 부흥한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이스마엘의 목회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목회는 이삭의 목회가 되어야 합니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인간적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말고, 잠잠히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삭의 목회를 해야 합니다.

헌데 오늘 날 교회 안에서 이스마엘에게 이삭이 놀림을 받고 있습니다. 목사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요? 기도만해서 됩니까? 건물 없으면 교회 안됩니다. 프로그램이 좋아야 부흥합니다. 몫이 좋아야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주시면 됩니다. 교회 안에도 인간적인 방법과 경제논리가 들어와서 이삭을 놀리고 있습니다. 우리 미래교회는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의 목회를 통해서 참다운 부흥을 맛보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이스마엘로 키우기를 원하십니까? 이삭으로 키우길 원하십니까? 우리가 말로는 이삭으로 키우길 원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이스마엘로 키울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예) 21세기 자녀를 둔 엄마들의 가장 큰 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이웃집 엄마랍니다. ‘엄마는 네가 공부만 잘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아! 엄마는 네가 하나님을 잘 믿는 아이가 되면 좋겠구나 / 정직했으면 좋겠어. 남들을 도울 줄 아는 아이 마음이 따뜻한 아이가 되면 좋겠어!’ 헌데 시장을 갔다 오다가 이웃집 아줌마를 만납니다. ‘우리 집 애는 이번에 올 백을 맞았다. 1등을 했다’는 말을 듣고 집에 와 자기 아이를 보면 억장이 무너져 내립니다. ‘너는 어떻게 된 애가 성적이 그 모양이니! 이것도 아니라면 아이 성적표를 보고 “으--구”하며 한숨을 쉽니다. 그런 모습을 보는 아이들은 헤갈립니다. 어떤게 진짜 엄마의 마음일까? 특히 이웃 집 아이가 우리 아이와 같은 학년이라면 그 이웃집 아주머니는 타도의 대상이 되지요. 그래서 자기 마음을 잃어버리면 아이에게 이삭 같은 아이는 나중에 되고, 일단은 이스마엘이나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저는 사무엘상하를 새롭게 제목 붙인다면 21세기 자녀교육 백서라고 할 것입니다. 사무엘 상하에는 두 그룹의 가문이 등장합니다. 한 그룹은 아주 대단한 집안입니다. 잘나가는 집안입니다. 헌데 점점 내리막길을 가더니 결국은 망하고 마는 집안의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누구입니까? 엘리대제사장 가문과 사울왕 가문입니다. / 반대로 또 한 그룹은 출발은 보잘 것 없는 가문이었습니다. 헌데 점점 왕성하여 결국은 위대한 가문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사무엘선지자의 아버지 엘가나 가문과 다윗 왕가입니다.

이 두 그룹의 가문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씀이 사무엘하 3장 1절입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한 집안은 점점 강하여 가고, 한 집은 점점 약하여 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근본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무엘상 2장 30절에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는 것입니다. 점점 약하여져 간 집안은 자식을 이스마엘로 키우려고 했습니다. 하나님보다 자녀가 먼저였습니다. 삶의 목표, 삶의 목적, 삶의 우선순위가 하나님보다 자녀가 먼저였습니다. / 그러나 시작은 미약했지만, 점점 강하여 져 간 집안은자녀들을 이삭으로 키웠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고, 하나님을 존중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녀로 키웠습니다. 삶의 목적과 목표와 우선순위가 오직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 중심, 주일중심, 교회중심으로 키웠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이 이들을 지키시고 축복하셔서 승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3)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길을 가시렵니까?

이스마엘의 길입니까? 이삭의 길입니까?

우리 앞에는 내가 원하는 길, 내가 마음에 드는 길,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있습니다. 또 하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 하나님이 가라고 하는 길이 있습니다. 이 두 길 사이에서 어느 길을 가시기 원하십니까?

이번 주일 주보 미래교회에서 온 편지에 거창고등학교를 소개하는 글을 썼습니다. 거창고등학교는 미션 스쿨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교훈과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 사회에 나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고 정의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어 평화가 넘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비전으로 삼는 학교입니다. 철저한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학교이지만, 88% 이상이 대학을 진학하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고등학교입니다. 이 학교 강당 뒷벽에는 직업선택 십계명이 붙어 있습니다. 한번 주보를 보시지요.

1. 첫째 -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둘째 -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셋째 -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넷째 -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다섯째 -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6. 여섯째 -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일곱째 -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여덟째 -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아홉째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열째 -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웃는 분들이 계신데... 한 마디로 무엇입니까? 세상이 가는 길 /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가고 싶은 길, 성공하고 싶은 길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마엘의 길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신 하나님이 가라는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넓은 길로 가지 말고 좁은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이삭의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가야 할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가라는 길로 가면 아무 어려움이 없나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날마다 시험이 있습니다. 힘들어서 주저 앉기도 하고, 낙심하기도 하고, 잠 못 이루기도 하고, 새벽기도를 하면서 싸우며 가는 것입니다.

저는 낭만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가을이면 코스모스 길을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 지기 전에 꼭 가보고 싶습니다. 들에 꽃이나 나무를 보면 그런 마음이 듭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하나님이 심어놓은 자리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구나!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헌데 우리는 불만이 많고 비교하기를 좋아합니다. 꽃처럼 나무처럼 하나님이 심어놓은 자리. 하나님이 가라는 길을 묵묵히 가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특별은총을 받은 사람입니다. 물론 좋으신 하나님은 이스마엘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먹고 입고 마실 것을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믿음의 종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 앞에 “그래도 이스마엘이나”이란 말은 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정말 주시고 싶어하시는 복은 이삭의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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