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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저희 좀 웃겨 주세요 | 이병수목사 | 2010-11-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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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7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창세기 21:1-7 제목:하나님! 저희 좀 웃겨주세요? 예수님을 믿는 것이 행복하십니까? 신앙생활하는 것이 정말 기쁘십니까? 하나님 앞에 늘 기도하는 것이 이것입니까? 하나님! 전 행복합니다. 목회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헌데 우리 성도들도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 예수를 믿는 것이 너무 좋아서 웃음이 떠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헌데 사랑하는 성도들의 얼굴을 보면 너무 어둡습니다. 하나님이 유일하게 사람에게만 주신 것에 하나가 웃음입니다. 왜 하나님이 웃음을 주셨을까요? 웃고 살라는 것입니다. 헌데 우리의 표정은 어떻습니까? 교회 모임에서 제일 잘 안 웃는 곳이 1위 당회, 2위가 안수집사회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직분자일수록 이상합니다. 웃지를 않습니다. 기쁘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선물로 웃음을 주셨는데, 우리는 웃지를 않습니다. 사람이 인상을 쓸 때는 64개의 근육을 써야 합니다. 헌데 웃을 때는 13개의 근육만 사용하면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상 쓰는 것은 힘들게 해 놓셨고, 웃는 것은 쉽게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헌데 힘들게 인상 쓰며 삽니다. 신앙생활의 열매는 웃음입니다. 기쁨입니다. 그리스도인의 3대 생활지침이 무엇입니까? “항상 기뻐하라=항상 웃어라”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십니까? 기도응답이 기쁨입니다. 울면서 무거운 짐을 지고 기도하러 왔지만, 기도가 끝나고 갈 때는 웃으면서 가기 때문입니다. 응답된 기도는 기쁨이 있습니다. 마음에 확신이 있습니다. 또 이 시간 지치고 상한 마음으로 인상 쓰고 교회 왔지만, 예배를 드리고 갈 때는 환하게 웃으며 가는 사람이 예배의 성공자입니다. 이따가 나갈 때 보면 압니다. 얼굴만 보면 예배를 어떻게 드렸는지를 압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도 기쁨과 기도와 다 통하는 것입니다. 기도 속에 감사가 있어야 하고, 감사하면 기쁨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아내를 웃게 하는 남편이 최고입니다. 제일 어리석은 남편이 다른 여자 웃기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하면서 정작 아내는 슬프게 만듭니까? 자기 아내를 기쁘게 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노후보장은 아내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또 아내들도 자기 남편을 웃게 하는 아내가 최고입니다. ) 웃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주는 기쁨이 있습니다. 환경이 좋아지면 기쁘죠? 육신의 기쁨도 있습니다. 결혼해도 기쁘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기쁘고, 좋은 옷을 입으면 기쁩니다. 또 하나님이 주시는 웃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6절입니다.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사라가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웃기시네!’ 설교 준비하면서...계속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브라함과 사라를 웃기신 것처럼 저희 좀 웃겨주세요. 하나님 우리 성도들을 웃겨 주세요.” (적용)1년, 2년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갖고 기도하는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셔서 환히 웃게 해 주세요. /도전에 실패해서 상심한 성도들에게 나를 향하신 아버지의 뜻이 무엇이며, 실패가 오히려 복이 되었다며 웃게 해 주세요. /질병을 놓고 기도할 때 예수님의 권능으로 치유받아 웃으며 주의 집에 달려 나오도록 해 주세요. /날마다 기도하는 믿음이 약한 성도들, 다메섹으로 가는 바울을 만나셔서 한 순간에 변화시키셨듯이 주님을 만났다고 간증하는 것을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하나님! 제발 저 좀 웃겨 주세요.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감옥에서도 기뻐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좋은 환경을 주셨기에 기뻐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감옥에서도 주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박국의 찬양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나님! 제발 우리 성도들 좀 웃겨 주세요. 사람이 웃기는 것 말고, 하나님이 웃겨 주세요.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아브라함 나이 100세, 사라의 나이 90세에 아들을 주심으로 큰 잔치를 벌이고 모든 사람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장면입니다. 원래 아브라함과 사라가 웃어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들을 나을 가능성은 점점 없어지고, 아브라함이 낳는 자녀면 되겠지 해서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웃어 보려고 했습니다. 내가 노력해서 웃어보려고 했습니다. 헌데 결국이스마엘은 두고두고 이스라엘과 분쟁의 씨앗이 됩니다. 이스람을 신봉하는 아랍인들은 우리는 이스마엘의 후손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는 이삭의 후손으로 우리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참된 기쁨은 내가 하려는 것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철저하게 주님이 하시도록 자리를 내 주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의 손발이 되어 심부름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하실 수 있도록 기다리고, 그분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 지 진심으로 듣고,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결과는 주님이 책임을 지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24년을 기다렸습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내년 이 맘 때에 너희가 아들을 낳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엎드려 속으로 웃었습니다. 사라는 장막 뒤에 숨어서 웃었습니다. 이때의 웃음은 비웃음이었습니다. 어이없는 웃음이었습니다. ‘하나님! 농담도 잘하셔. 지금 우리 나이가 얼마인데... ’하고 피식 웃었습니다. 헌데 하나님은 이들을 진짜 웃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들을 품에 안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웃게 하셨습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만이 참된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사라의 하나님은 “나를 웃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얼마나 표현이 아름답습니까? 얼마나 친근한 표현입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사라만 웃기실까요? 아닙니다. 우리들도 웃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 생각해 볼 것은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웃기시는가?하는 것입니다. 1.첫째로 끝까지 말씀을 붙잡고 사는 사람이 웃습니다. 1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다” ‘말씀하신 대로’가 두 번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붙잡아야 하는 것은 말씀입니다. 말씀대로 사는데 가장 큰 적은 눈에 보이는 환경입니다. 환경이 우리의 기쁨을 뺏어 갑니다. 세상의 것들은 왔다 갔다 합니다. 돈도 왔다 갔다 합니다. 건강도 그렇습니다. 명예도 잡았다가도 놓기도 해야 합니다. 이 땅은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어제는 내 것이었는데, 내일은 아닐 수 있습니다. (예화)공지영씨의 수필 집 <수도원 기행>이란 책에서 나오는 글입니다. 미국의 골프 영웅, 할 서튼이 25세에 세계 골프를 석권하고 10년간 세 차례의 이혼을 하며, 슬럼프에 빠졌다가 35세에 재기하면서 했다는 말입니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기까지 그에게 35년의 세월과 인생 경험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나마 더 늦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인생에서 제가 깨달은 한 가지 사실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깨닫기 전에 우리는 35세를 넘어버린다는 겁니다. 처음에 나는 빠른 차가 있으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포르셰를 샀죠. 그 다음엔 집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그래서 집을 샀죠. 그런데 그 다음에 비행기가 한 대 있으면 행복할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비행기를 한 대 샀지요. 그러고 난 다음에 나는 깨달은 것입니다. 행복은 결코 돈을 주고 살 수 없다는 것을..." 괴테의 말대로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은 그 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무거운 짐일 뿐"이었던 것이다. 공지영씨도 소설가만 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설가가 되었지만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다 쓰고 나서도 통장에 잔고가 100만원만 있다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쇄로 수 천만원씩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와 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유명해져서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줄어 서서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 때서야 알았습니다. 행복은 결코 조건과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을 걸만큼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영원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절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적용)사람은 무엇을 믿고 사는 것인가? 이사야 41장 10절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네가 너를 도와 주리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굳게 붙들리라” 이 말씀은 흔하게 듣던 말씀입니다. 아무 문제가 없을 때는 그런가보다 합니다. 잘 살 때는 몰랐습니다. 헌데 사랑하는 아들이 암선고를 받았습니다. 그것도 말기,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실컷 울기 위해서 병원 예배실엘 찾아갔습니다. 그 벽면에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이 붙어 있었습니다. 헌데 그 날은 이 말씀이 살아서 다가왔습니다. 이 말씀을 토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네가 너를 도와 주리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굳게 붙들리라” 시편 119:71,72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은금보다 승하니이다” 평소에는 금은보화가 좋은 것, 최고인 것으로 알고 살았습니다. 헌데 금은보화로도 안되는 절망적인 상황, 죽음의 순간을 만나자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 때 필요한 것은 오직 말씀뿐이더라... 결국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말씀을 끝까지 붙잡고 사는 사람이 결국은 웃게 됩니다. 결국은 말씀대로 다 이루어집니다.
2.둘째로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어야 웃을 수 있습니다. 2절의 말씀입니다.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고 아브라함과 사라는 웃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참된 웃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헛되게 시간을 보내면 안됩니다. 내가 시간을 계산하지 말라. 내가 점점 나이를 먹는다고 조급해 하지 말라. 믿음이란 기다림이다.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적용)집사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믿음이란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픈 사람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진찰을 받으니 무슨 질병인데, 수술하고, 얼마정도 있으면 치료 됩니다.라고 결과를 듣습니다. 그러면 의사의 처방이 나왔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기에 전혀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다 할 수 있다고 하니까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기도해 보겠다고 하면 무슨 맹신을 하는 사람처럼 취급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뭐하러 기도하느냐?는 것입니다. 수술하면 되는 것을... 헌데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도대체 우리는 누구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내 인생의 주인입니까? 주님의 생각은 어떠신지... 주님은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지 물어야 할 것 아닙니까? 의사 말을 주님 말보다 더 신뢰를 합니다. 주님을 무시해도 너무 무시를 합니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계획하고, 내가 노력해서 다 해결하려고 합니다. 생명이 의사에게 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 있습니다. 행동하기 전에 기도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따로 있습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너무 빨리 열매를 거두려고 하면 안됩니다. 한 주간 동안 시편 126편 5-6절의 말씀을 깊히 묵상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우리에게 해당하는 것은 눈물 / 씨앗 / 뿌림입니다. 지금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립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웃게 하십니다. 열매를 거두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웃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서의 예)요셉 - 하나님이 웃게 하시기까지 13년의 고난의 시간이 있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다. (적용)하나님의 시간표가 있습니다. 2010년 11월 제게 하나님이 맡겨 주신 양떼는 125명입니다. 1250명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소관이 아닙니다. 제 힘으로는 한 사람도 붙잡아 둘 수 없습니다. 저는 오직 주님의 심부름을 할 뿐입니다. 기도하고, 말씀 준비하고, 심방하고, 섬기는 삶을 최선을 다해서 감당할 뿐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릴 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1250명도 될 것이고, 300제자 훈련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난 최선을 다했는데, 125명으로 만족해야 한다해도 내가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면 그것으로 감사한 것입니다. 교회당은 큰 예배당, 작은 예배당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로 잴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큰 교회, 작은 교회는 없습니다. 사람을 잴 수 있습니까? 생명을 측량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교회는 작은 교회라고 하지 마십시오. 예배드리는 장소가 작을 뿐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정하신 때라 믿고, 최선을 다하고, 주어진 결과에 대해서는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잘 사는 인생은 무엇일까요? 올때는 울면서 왔지만, 갈 때는 웃으면서 가는 것입니다. 웃으면서 갈려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동안 잘 살아야 합니다. (예화)고 고운봉 선생의 히트곡은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을려고 왔던가?” 가사에 우리 인생이 다 녹아 있습니다. 어떤 인생을 살았느냐에 따라서 울면서 가는 사람이 있고, 웃으면서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어르신이 돌아가셨을 때, 가수들은 가수장을 합니다. 발인을 할 때에 마지막으로 고인의 히트곡을 함께 부르는 전통이 있습니다. 고운봉 선생의 발인식이 끝나고 난 뒤에 운구를 할 때 거기에 모인 가수들이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을려고 왔던가? 비린내 나는 부둣가엔 이슬 맺힌 백일홍 / 그대와 둘이서 꽃씨를 심던 그 날도 / 지금은 어데로 갔나 찬비만 내린다” 이 분이 독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남보원씨가 기독교인이면 기독교식으로 불러야 한다면서 살아 있을 때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을려고 왔던가? 아멘.”
하나님이 우리를 웃기신 최대의 사건을 뽑으라면 ? (1)첫째로 이삭입니다. 이삭?①불가능한 상황가운데 태어났다. 정상적으로 태어났다면 기뻐할 것이 없다. 그러나 모든 가능성이 끊어진 절망과 불가능 가운데 태어났기에 기쁜 것이다. ②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니라 약속의 자녀로 태어났기에 기쁜 것이다. ③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 (적용)하나님 우리에게도 이삭을 주십시오. 아무리 기다려도 해결되지 않는 일들... 내 힘으로 해결하기 힘든 일들... 아무리 봐도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하나님 우리에도 이삭을 주십시오. 이삭은 비단 아브라함과 사라만의 기쁨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의 기쁨이었다.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왜 이삭이 모든 사람의 웃음이 되느냐? 예수님를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이삭을 통해서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이다. 이삭과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태어났습니다. 불가능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얻은 약속의 자녀들입니다. -또 화목제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약속의 자녀가 된다. 이삭의 자녀라야 약속의 자녀이다. 즉 예수를 믿어야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2)또한 하나님이 우리를 웃기신 최대의 사건 두 번째는 예수님의 부활사건입니다. 부활은 최고의 기쁨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부활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에 우리는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이 전부라고 하면 이 땅에서 마음껏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는 부활이 있습니다. 영원한 천국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정하신 기간동한 천국을 예비하면 살아야 합니다. (3)하나님이 우리를 웃기신 최대의 사건은 로마서 8:28절 하나님이 합력하여 반드시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웃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웃음을 찾지 마세요. 하나님이 웃겨 주셔야 됩니다. 날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지금 내가 힘겨운 싸움을 하는 시간이라도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면 하나님 우리를 웃겨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저희 좀 웃겨 주세요?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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