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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신앙계승 | 이병수목사 | 2010-11-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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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4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창세기 22:1-18 제목:아름다운 신앙계승 하나님은 당신을 소개하실 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니라”고 하셨다. 이렇게 하나님이 자신을 소개하시기를 기뻐하신 이유는 신앙이 계승되는 것을 기뻐하신 것이다. 할아버지의 믿음이 아들에게, 아들의 믿음이 자식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시고 기뻐하신다. 부전자전이라는 말처럼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아름다운 믿음을 본다. 정말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다. 이런 아름다운 신앙이 후대로 계승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2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깜짝(뭐라고 표현을 해야 하나요?) 놀랬을 것입니다.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시다니... 자신이 뭘 잘못들었나 귀를 의심했을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전 재산을 내놓으라고 해도 내 놓았을 사람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걸어야 하는 사명으로 부르신다고 해도 순종했을 것입니다. 헌데 아들을 번제로 내놓으라는 말씀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이 명령을 통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원하시는 것일까요? (1)먼저는 번제인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번제는 하나도 남김없이 불태워 드리는 제사입니다. 번제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직접 잡아서 피를 쏟고 고기와 내장은 불태워 드리는 것입니다. 아버지 손으로 아들을 죽여서 피를 쏟고, 모두 불태워 죽이라는 명령입니다. 왜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이삭을 번제로 내 놓으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번제인생이 되라는 것입니다. 아끼다가 못 쓰게 되는 것이 많습니다. 녹슬어 없애지 말고, 닳아 없애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많습니다. 우리의 목소리, 시간, 물질, 재능 등 아껴두고 쌓아두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다 써버리라는 것입니다. 번제는 남김없이 100%드리는 것입니다. (적용)나는 번제목회를 하고 있나? 지난 주간에 사랑의 교회 원로목사님이며 얼마 전에 소천하신 옥한흠 목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쓴 글을 읽었다. 읽으면서 너무나 부끄러웠다. 목회자로서, 설교자로서 어떻게 사셨는지.. 어떻게 헌신했는지.. 어떻게 진실했는지... 옥한흠 목사님 앞에서도 난 못 서겠다. 하물며 이런 내가 주님 앞에 어떻게 설까? 겟세마네 동산의 주님의 기도를 보세요.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눅 22:44) 주님도 번제인생을 사셨다. 사랑을 해도 번제사랑을 해야 합니다. 헌신을 해도 번제헌신을 해야 합니다. 남김없이 100% 쏟아 붓는 사랑, 헌신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한번 번제인생을 살아보십시오. 우리는 결국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림으로 다 잃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전부를 드렸더니 하나님은 전부 이상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식을 번제로 드리라는 것은 빼앗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의 사랑을 받기 위함입니다. (적용)우리에게 이삭은 무엇입니까? 자식일 수 있다. 물질일 수 있다. 명예일 수 있다. 내가 정말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성공하고 싶은 마음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신다. 내 삶에 가장 소중한 것을 번제로 드리지 않는 이상 여호와 이레의 복을 받을 수 없다. (2)또한 아브라함의 믿음의 삶은 시험인생이었습니다. 1절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아브라함은 지금까지 많은 시험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시험이 없을 것이라고 할만큼 시험을 받았습니다. 헌데 지금까지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험이 또 찾아 온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삶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인생을 대변하는 것이다.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었다. 이젠 끝났다고 생각할 때 상상할 수 없는 큰 시험이 있었다. 헌데 시험은 두 가지이다. ①유혹이다. Temptaion-넘어지게 하려는 목적이다. 악한 마귀의 시험이다. 야고보서 1장 13절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유혹, 죄를 범하는 것)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유혹이다)하지 아니하시니라” ②하나님의 시험의 목적은 하나이다. 훈련이다. Training -이것은 더 강하게 하심이다. 세우기 위함이다. 예-시험의 긍정성이 있다. 겉으로 봐서는 모른다. 시험을 쳐봐야 누가 공부를 잘하는지. 누가 실력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공부 잘하게 생긴 아이도 시험을 보면 아닌 경우가 있다. 정말 찌질하고 공부 못할 것 같은 아이도 시험을 보면 실력이 탁월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야고보서 1장 12절 “시험(훈련이다.)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예화)조선일보 11월 13일자 신문에 주바라기 이지선씨에 대한 보도가 나왔습니다. 10년전 교통사고로 온 몸이 불에 타는 큰 사고를 만난 자매입니다. 이 자매가 조선일보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 말끝마다 감사하고 웃고 하니까? 의심을 하더랍니다. 정말 기쁜거냐? 혹시 연극하는 것 아니냐? 또 짓궂은 기자는 “그토록 감사해하는 하나님이 당신을 정말로 사랑했다면 애초 이런 사고를 피하게 해줬어야 하지 않나?”(이것이 우리의 질문이기도 하다. 어짜피 복을 주시거라면 왜 이렇게 하시나?) “당연히 원망했다. 통증이 심할 땐 나를 살려주셨다는 하나님이고 뭐고 다 싫었다. 그때 엄마가 하루 한 가지씩 감사할 거리를 찾자고 제안하셨다. 내 발로 걸어가서 화장실 간 날, 내 손가락으로 환자복 단추구멍을 하나 채운 날, 아랫 입술과 윗 입술이 겨우 닿아 오빠를 ‘오까’라고 부르게 된 날 등등 감사 찾기를 했더니 진통제가 결코 줄 수 없는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더라. 그러면서 고난 자체가 가장 큰 축복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내가 평생 가질 수 없었던 보물들이다.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사랑이 얼마나 따뜻한 것인지. 절망이 얼마만큼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지. 기쁨과 감사는 얼마나 작은 것에서부터 비롯되는지. 내가 앞으로 마음을 쏟고 시간을 바쳐야 할 영원한 가치는 무엇인지 지난 10년의 시간이 내게 알려 주었다” 시험을 받을 때 두 가지이다. ①믿음이 약한 사람들-이게 뭐냐? 안 믿으면 안 믿었지... 하면서 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면 유혹이 됩니다. ②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의 훈련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으로 받아들입니다. (3)갈등인생 - 시험이 올 때 우리의 첫 반응은 갈등하는 것입니다. 갈등이 없다면 그것은 진실하지 않은 것입니다. 학자들은 하나같이 아브라함은 밤새 잠 못 이루며 갈등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갈등하지 않았다면 말이 안됩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중한 존재입니다. 헌데 그 아들을 번제로 드린다는 것이 쉽게 이해될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불가능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①먼저 하나님은 아무런 설명이 없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일러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끝입니다. 왜 드리라고 하시는지? 설명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늘 그런 식입니다. 75세 때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실 때도 “떠나라”고 하셨지 어디로 가라든지 왜 가라든지 설명이 없습니다. 아십니까? 믿음은 설명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설명해 주시고, 할래? 말래?하시지 않습니다. 믿음의 길은 알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가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설명 듣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가고나면 알게 되는 것입니다. 또 네가 그렇게 순종하면 어떤 보상을 주겠다는 말씀도 없습니다.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이 전부입니다. ②또 이삭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숱하게 하신 약속이 무엇인가? 네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를 이삭이라고 하라. 내가 그로 말미암아 네 후손을 창대케 하리라. 그러면 이삭은 죽으면 안됩니다. 헌데 죽이라는 것입니다. 약속의 자녀로 주실 때는 언제고,,, 이스마엘도 내보낸 마당에 이런 명령이 가당키나 하시나? 하는 것입니다. ③또 하나님의 성품과 너무나 다르다. 하나님은 살인을 금하셨습니다. 헌데 사람을 그것도 자기 자식을 제물로 드리라는 것은 평소 하나님의 성품과 너무나 맞지 않습니다. ④또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이삭을 죽일 때 피가 튀어서 아브라함의 온 몸이 피로 얼룩질 것이다. 그러면 산 아래로 내려가면 종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또 애굽인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심지어 부인인 사라가 무엇이라고 하겠는가? 아무리 믿음으로 한 일이라고 하지만, 아들을 죽이고 온 사라와 온전한 부부관계를 이룰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이고 뭐고 다 그만두자고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얼마나 갈등을 했겠습니까? 갈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3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갈등을 했지만, 결국 순종으로 나갔습니다. (적용)갈등을 하세요. 깊히 생각 하세요. 그러나 순종하기 위해서 갈등 하세요. 갈등 없는 순종은 맹신이고요? 순종 없는 갈등은 허울뿐입니다. 갈등을 하되 결국은 주님의 뜻을 따르는 쪽으로 결단하시길 바랍니다. (4)헌데 이렇게 이삭을 기꺼이 제물로 바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활신앙 때문이었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 죽은자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임을 믿은 것입니다. 5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우리가”라고 했습니다. 이삭을 죽이러 가는데 우리가 돌아오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부활신앙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히브리서 11장 18-19절에서 해석해 놓았다.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이해되지 않았지만 믿었습니다. 이삭을 어떻게 얻었습니까? 사람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삭을 번제로 드린다해도 하나님은 없는 것에서 있게하시는 분이시라고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결정적일 때는 말씀을 붙잡은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이해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내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어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똑똑함을 원하지 않는다. 태도가 중요합니다. 순종하려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너무 생각이 많고 똑똑하면 믿을 수 없습니다. 이 시간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각, 지성의 한계를 뛰어넘어 믿어지는 은혜를 주시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시험에는 숨겨진 뜻이 있습니다. (예화)지금 중국이 세계 열강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영적인 면에서도 중국교회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근대 중국은 결국 서구 열강에게 패한 뒤에 문화를 개방해야만 했습니다. 이 때 수많은 선교사들이 중국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들이 믿고 외치며 들어간 말씀이 하나님이 열면 닫을 사람이 없다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이었습니다. 헌데 1949년에 모택동의 공산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교회는 문을 닫았고, 선교사들은 다 쫓겨났습니다. 그 때 선교사들은 절망과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패한 것인가?까지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열었는데 복음의 문이 닫히다니... ‘하나님 왜 중국을 버리십니까?’ 헌데 지나고 나서 알았습니다. 중국이 공산화되기 전에 선교사들이 가장 복음을 전하는데 힘들었던 것이 수 천년 이어져온 미신들이었습니다. 헌데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모든 미신들을 타파했습니다. 10억 인구의 중국에서 아마도 선교사들이 미신을 몰아내려고 했다면 수 백년이 걸려도 못할 것이었습니다. 헌데 하나님은 공산정권을 통해서 미신을 깨끗이 없애고 난 뒤에 다시 복음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것도 서구 선교사들보다 우리 한국 선교사들의 손길을 통해서 지금 복음이 중국 온 땅에 퍼지고 있습니다. 보세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와 일하심의 손길이 있지 않습니까? 당장 볼 때는 실패한 것 같고, 안되는 것 같으나 결국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내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을 믿으십시오. (1)주석가 랑게는 이 때 이삭의 나이는 17세에서 20세 / 가장 혈기왕성한 때 /반대로 아브라함은 117세에서 120세의 힘없는 노인이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나귀에 싣고 가던 번제 때 사용할 나무 짐을 이삭이 짊어지고 올라갔습니다. 그만큼 이삭은 장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결박하여 제물로 드리려고 할 때 이삭이 저항을 했다면 결박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하였다고 했지만, 사실은 이삭 스스로 결박당한 것이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또한 아버지를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자신의 생명까지도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①농사를 지을 때도 다른 사람들은 다 흉년이 들어서 농사를 망쳤다. 헌데 이삭은 100배의 소출을 얻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러나 노력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은 아니다. ②또 이삭은 우물을 파기만 하면 물이 나왔다. 왜 그럴까? 한 번 파면 물이 날 때까지 팠기 때문이다. ③심지어는 아들을 축복할 때도 올인한다. 이삭이 늙어서 큰 아들 에서에게 축복해 주려고 별미를 만들어 오라고 했다. 헌데 부인 리브가가 듣고 둘째 아들은 야곱을 대신 들여보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인줄 알고 야곱에게 축복해 주었다. 후에 에서가 왔다. 축복해 달라고 하자 이미 축복을 해서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했다. 에서가 울면서 남은 복이라도 부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삭은 축복도 올인했다. 그래서 아무리 사랑하는 아들 에서이지만, 축복하지 못했다. 이런 모습들은 이삭은 절대로 적당하게 타협하지 않는다. 한 번 뜻을 정하면 목숨을 건다. 올인한다는 정신이었습니다. 3.하나님의 축복? 결국 이들이 받은 복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이레의 복이었습니다. 8절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14절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 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12절 “자기를 위하여”는 당신의 이름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걸고 복을 주신 것입니다. 헌데 여호와 이레의 복은 이삭을 번제로 드릴 때 받는 것입니?. -보이지 않는 저편에서 숫양도 오르고 있었습니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봐야 한다. 힘들고 어렵지만, 모리아산/순종의 산으로 올라가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을 받을 것입니다. -천지창조시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놓으시고 사람을 창조하셨다. -인간의 범죄로 사망가운데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셨다. -영원히 살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준비하신다. 이것은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아시고 예비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라는 것이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믿음으로 나가라는 것이다. 이 복은 우리들에게도 주시는 것입니다. 18절에서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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