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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인도하실 때 사용하시는 두 가지 전략 | 이병수목사 | 2010-12-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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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2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창세기 24:1-9 제목:하나님이 인도하실 때 사용하시는 두 가지 전략 중국에서 열방학교를 통해서 선교하는 최하진선교사가 있습니다. 중국 땅에 한족을 중심으로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생선교센타를 세워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입니다. 중국은 17세 이하의 청소년 / 어린이들에게는 법적으로 전도하지 못하도록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최고의 명문사립학교를 세워 교육을 통해서 전도하므로 일년이면 80%이상의 학생들이 예수를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힘이 커지다 보니 한국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공부하기 위해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최하진 선교사는 카이스트 졸업하고, 스탠포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공학도입니다. 공학 박사로 대덕연구단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안정된 삶을 살았습니다. 신앙은 모태신앙이었지만, 기도 못해! 전도 못해! 헌신 못해!하는 못해신앙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근무가 끝나면, 동료들과 진탕 술을 먹고, 모여서 밤새도록 동양화를 그렸답니다. 고도리라는 것입니다. 어느 날도 동료들과 술을 먹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헌데 문든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이 방문하신 것이겠지요? 순간 순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서 들리는 소리는 ‘이렇게 살다가 끝나는 것이 내 인생인가?’하는 물음이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의 인생이 있습니다. ①첫 번째는, 육체적인 삶으로 피지컬 라이프(Physical Life)가 있습니다. 육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삶입니다. 육체적인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식, 먹는 것과 성, 생식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있습니다. ②두 번째는 소셜 라이프(Social Life)로 사회적인 성공과 명예를 추구하는 삶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위하여 열심히 공부하고 일을 합니다. 최하진 선교사도 소셜 라이프는 성공한 사람입니다. 최고의 학벌과 박사요 공학도로의 명성, 그에 상응하는 물질적인 보상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헌데 성공을 위해서 살다 보니 서로 대립하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타협해야 하고, 결국은 마음의 평안을 잃어버리고, 늘 쫓기는 삶, 두려움과 염려의 삶을 살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예화)신앙생활을 잘 하는 한 유명 연예인의 고백입니다. 우리 연예인들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를 잘 믿든지... 아니면 마약을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살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불안하고 외롭고 우울하여 견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연예인들만 그렇습니까? 오늘 날 우리들도 사회적인 성공을 위해서 끊임없이 경쟁하고, 갈등하고, 아파하고 상처받으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③세 번째의 인생의 삶은, 스피리츄얼 라이프(Spiritual Life), 즉 영적인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삶이란 보이는 현실세계만을 위해서사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영원을 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 영원한 삶에 대해서 소망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최하진 선교사는 집에 돌아오자 성경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창세기를 1장부터 읽던 중 11장에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아버지가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인지 아십니까? 예 데라입니다.) 그리고 11장 23절에서 필을 받은 것입니다. 그 말씀은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뭐 그렇게 대단하거나 관심을 끌만한 말씀은 아닙니다. 헌데 이 말씀에서 깨졌습니다. 술김에 읽어서 그런지... 다른 말씀은 안보이고... “데라는 --- 죽었더라”는 말씀만 또렷이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데라는 죽었더라” “데라는 죽었더라” “데라는 죽었더라”= ‘뒈-졌-더라’고 보인 것입니다. 아 결국 나도 이렇게 살다가 뒈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며서 인생에는 두 종류의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뒈지는 인생이 있고, -또 하나는 잘 죽는 인생이 있구나! 그러면 난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잘 죽는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나? 잘 죽을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겠구나!!
또 묻습니다. 그러면 잘 사는 인생은 어떤 것인가? 깨달았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지혜는 남들이 깨달은 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모든 결정기준이 나였다. ‘무엇이 내게 이익이 되는 것인가? 내게 좋은 것이 무엇인가?’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부터 질문을 바뀌었습니다. ‘내게 좋은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질문이 바뀌니까 너무 쉽게 답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화)한 번은 스탠포드 대학에서 교수로 청빙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는 중국에 선교사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교수하다가 나중에 가도 되겠지만, 30대 가장 좋은 시절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기도를 했습니다. 고민이 되었습니다. 한 길은 대박으로 가는 길, 또 한 길은 쪽박 차는 길! 어디로 가야하나? 갈등했습니다. 고민하고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을 했습니다. ‘내게 좋은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답은 분명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적용)한 번 여러분의 삶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성공하는 인생과 실패하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내 인생에 나의 이야기만 있다면 그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 인생에 ‘하나님의 이야기’가 많다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미국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연설가운데 게티스버그 연설은 아주 유명합니다. 이 연설문에서 민주정치의 이상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이 지상에서 펼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내 삶에 적용해 보세요. 내 인생에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삶의 이야기들만 가득하다면, 이 세상에서는 성공한 사람인지 모르나, 하나님 앞에서는 실패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 인생에 ‘주님이, 주님의, 주님에 의한, 주님을 위한 삶의 이야기들이 많다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적용)똑같이 돈을 벌어도 불신자들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위해 돈을 법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벌고 쓰는 것입니다. 자녀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아이, 주님에 의해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임받는 자녀를 키우느냐?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주님의, 주님에 의한, 주님을 위해서 말도 하고, 모든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23-24절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기독교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도 최선을 다해서 잘 살아야 합니다. 신자들도 먹을 음식이 있어야 합니다. 살아야 할 집도 준비해야 합니다. 타고 다닐 차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땅이 전부처럼 살지는 않는 것입니다. 나를 위한 준비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늘에 보화를 쌓아두는 것입니다. 이 땅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것은 아주 잠간입니다. 장관의 권력! 잠간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기는 받으나, 하늘에 쌓아두지 못한 인생은 구원을 받되, 불가운데서 받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번에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지니 사람들이 두려워서 피난을 나올 때 숟갈하나를 갖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불가운데서 구원을 받는 것은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사에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무슨 일을 하든지 무슨 생각을 하든지 주님께 하듯 하십시오. 내게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내가 사랑하는 주님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결정을 하십시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이 며느리 리브가를 어떻게 얻게 되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 결혼 문제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공교롭게도 창세기 50장 중에서 오늘 본문 24장이 가장 많은 분량인 67절이나 됩니다. 무슨 내용을 다루기에 이렇게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가? 결혼문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헌데 오늘 본문은 이렇게 중대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을 부릅니다. 그 종에게 아들 며느리감을 구해오는 문제를 모두 맡깁니다. 단 두 가지 원칙만 알려 주었습니다. ①하나는 여기 가나안 족속의 여인가운데서 구하지 말고, 내가 떠나온 고향 메소포타미아에 가서 구해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 있는 여인을 며느리로 맞이하겠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도 좋은 여자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스펙 좋은 여인들이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이 며느리감을 얻는데 내 세운 자격 조건은 믿음 있는 여인입니다. 메소포타미아는 가나안 땅에서 800Km떨어진 먼 곳입니다. 헌데 그 곳에 가서 구하오라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아들 이삭을 데리고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종이 혼자 가서 며느리 감을 구해오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누가 늙은 종의 말만 듣고 따라나설 여인이 있겠습니까? 신랑감이 누구인지 보지도 않고, 확인할 길도 없는데 어떤 여인이 따라오겠습니까? 헌데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이삭은 절대로 떠나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삭을 보지 못해서 오지 않겠다고 하면 너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붙잡은 두 가지 원칙은 믿음과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적용)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중대한 일들을 해결하는 원칙은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악한 마귀는 믿음으로 하지 못하도록 너무 방해를 합니다. 또한 순간 순간마다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가는 것입니다. 최하진선교사가 몸 하나로 중국 땅에 간 것은 오직 하나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이사야 43장의 말씀 “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16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새 일을 행하여 주십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자신의 전 인생을 하나님께 던지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며느리를 구하는 중대한 일을 종에게 맡기며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절입니다.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하나님은 복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1절의 말씀을 잘 보십시오. 하나님은 복을 주시되 끝까지 복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변함없이 범사에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조건속에서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해 주시고, 복을 주시길 기뻐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을 만드시고 가장 먼저 하나님이 하신 일은 복을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복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헌데 이것이 잘 안 믿어집니다. 하나님은 복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나에게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도 성경에 나와 있는 사람도, 최하진선교사도 다 복을 받는 것 같은데 나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시는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에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1)하나는 결국은 승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최종승리를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며느리를 구하는 아주 중요한 일의 결국은 48절입니다.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동생의 딸을 그의 아들을 위하여 택하게 하셨으므로 내가 머리를 숙여 그에게 경배하고 찬송하였나이다” 헌데 (2)두번째 기억해야 하는 것은 결국 승리하게 하시는데, 인도하는 과정은 어떠냐? 연단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요셉에 대한 이야기가 37장부터 50장까지입니다. 장수로는 13장입니다. 세월로 따지면 20년의 세월입니다. 37장에서 꿈을 꾸었습니다. 헌데 50장 20절에서 결국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그러면 결국 이 승리의 고백을 하기까지 과정은 어떠했습니까? 연단의 시간들이었습니다. 고생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오늘 성경은 하나님을 믿고 승리를 간증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싶은 것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이 다 책임지시고, 승리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정은 어려움도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고, 광야와 같은 고난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헌데 이것이 잘 안믿어지는 이유는 지금 우리는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끝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끝을 보지 못하고 힘든 과정에만 있기에 두려운 것입니다. 답답한 것입니다. 나만 하나님이 사랑하시지 않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늙은 종이 다 알고 갔습니까? 아닙니다. 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었고, 종의 믿음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시고, 지키신 하나님이 앞으로도 지키시고, 인도하실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인생을 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인생을 걸지 않으면 이런 영광은 볼 수 없습니다. 도망칠 수 있는 길을 항상 마련해 놓고는 절대로 최종승리를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대로 이루어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아무리 세상이 요동할지라도, 절대로 흔들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물며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망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북한이 아무리 도발을 해도, 전쟁의 위기가 있어도, 정치가 혼란하고, 경제가 불안정해도, 가정형편이 힘들어도 절대로 흔들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결국은 합력하여 선을 이뤄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두렵지만 그 두려움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기시기 바랍니다. 손에 쟁기를 잡았으면 뒤를 돌아보지 마십시오. 교회에 다니기로 했으면 중단하지 마십시오. 예수를 믿기로 한 이상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셔야 합니다. 악한 마귀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합니다. 그 모든 공격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지난 주간 우리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교회를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중에 받은 은혜의 말씀입니다. 유다민족이 아람의 총공격을 받고 큰 위험에 처했습니다. 유다민족의 힘으로는 싸울 힘이 없었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협하는 저들 앞에서 두려워하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15절: 야하시엘이 가로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찌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16절: 내일 너희는 마주 내려 가라 저희가 시스 고개로 말미암아 올라 오리니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만나려니와 17절: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할렐루야! 지금 치열하게 싸우는 일이 있으시지요? 어떻게 될까 두려우시지요? 이 전쟁은 우리의 싸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싸워주실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당당히 마주 내려가라는 것입니다. 맞서라는 것입니다. 뒤를 보이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죄를 짓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마주 내려가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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