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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의 태도 | 이병수목사 | 2010-12-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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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9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창세기 24:10-20 제목: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자의 태도 창세기 24장은 아브라함이 며느리감을 어떻게 얻게 되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며느리감을 얻는다는 것은 단순히 결혼문제만이 아니라,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것인가?라는 중요한 문제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 즐겨 사용하시는 두 가지 전략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억하시죠? 하나는 ‘결국 승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으시고 결국은 승리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과정은 어떻습니까? 연단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예화)이 원리는 세상에서도 적용됩니다. 2010년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은 드라마가 제빵왕 김탁구입니다. 그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김탁구 인생의 좌우명은 "이 세상은 착한 사람이 이기게 돼 있다"라는 건데요. 이것은 어머니인 김미순이 어릴 적에 김탁구에게 해주었던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 어떻습니까? 정반대입니다. 착한 사람은 바보 소리를 듣고 맨날 당하기만 하고, 약아빠지고 이기적인 사람은 떵떵거리며 착한 사람들을 이용하고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구마준의 실제 아버지 한승재 비서실장이 한 말이 있습니다. "니가 꿈꾸는 세상 같은 건 어른들의 세상에는 없다. 이 세상은 오로지 경쟁만이 있어. 니가 이기면 마준이는 낙오자가 되는 거고, 니가 존재하면 마준이는 영원히 2인자가 될 수밖에 없어. 둘이 같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이런 건 있을 수가 없어. 누군가 가지게 되면 누군가는 빼앗기게 되어있고, 누군가가 누리면 누군가는 밀려나게 되어있어. 그래서 이기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거다. 세상은." 하지만 김탁구는 꼭 누군가 불행해져야만 내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며, 모두 다 괜찮고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결국 드라마는 김탁구의 승리로 해피엔딩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어떻습니까? 서인숙, 한승재의 모함이 있습니다. 미움, 증오, 배신이 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들을 겪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히 견뎌내서 결국은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드라마가 재미있는 이유는 과정이 절대로 순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해피엔딩이지만, 과정은 어려울수록 힘들수록 재미있는 것입니다. 인생만 그렇습니까?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힘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교회를 다니면서부터 어려운 일들이 생깁니다. 악한 마귀와 세상이 가만두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고난입니다. 그래도 가야 하는 이유는 이 길 끝에서 예수님을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고 가는 이 길만이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결국 승리할 것이고, 해피엔딩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과정은 고난의 터널을 지나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엄밀하게 말하면 대접받는 기쁨이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는데도 왜 잘 안풀리냐고 합니다. 왜 힘드냐고 합니다. 왜 이렇게 희생해야 할 것이 많냐고 합니다. 힘들어서 못믿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자라서 알게 되겠지만, 신앙생활의 참된 기쁨은 대접받는 기쁨이 아니고요. 대접하는 보람입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가 무엇입니까? 대접받는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입니까? 아닙니다. 대접하고, 섬기고, 희생하는 자리입니다. 교회생활에서 기쁜 것은 희생에서 얻는 보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즐거움보다는 보람이 있는 것이고요? 성공보다는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을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결국 아브라함이 며느리감을 얻었습니다. 헌데 며느리감을 얻는 과정에서 쓰임 받은 종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24장의 주인공은 아브라함의 늙은 종입니다. 아무리 아브라함이 믿음이 있었다 해도 늙은 종의 수고가 없었다면 결코 이 일은 해결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주인의 고향에 가서 며느리감을 찾는다는 것은 너무 막연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종은 순종했습니다. 종은 통로로 쓰임받았습니다. 우리들도 중요한 인생의 문제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자의 바른 태도가 무엇인가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1.첫째로 조연멘탈리티가 있어야 합니다. 이 종은 단 한번도 자신을 드러낸 적이 없습니다. 늘 주인을 드러냅니다. 이 종은 조연 의식이 분명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창세기 중에서 24장이 가장 긴 장입니다. 67절이나 되는 내용인데도 종의 이름이 없습니다. 이렇게 큰 일을 이루는 사람인데 이름이 없습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많은 일들을 감당하되 이름은 나타내지 않은 삶을 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을 잘 읽어보시면 아시지만, 말마다 주인 아브라함을 높입니다. 12절 “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27절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34-35절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 말마다 “나의 주인”이라고 한다. 35절, 36절, 37절, 38절, 42절 등등) 세상은 일등만 기억하는 --- 세상이지만,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등은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연의 역할을 잘 감당한 사람들을 향해서는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성경에는 아름다운 조연의 삶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예1)여호수아와 갈렙 갈렙은 고참이다. 헌데 여호수아를 늘 인정한다. 아니 여호수아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자신부터 순종한다. (예2)바울과 바나바/브리스가와 아굴라, 스데바나, 뵈뵈 등 이들은 모두 동역자들이었다. 중보기도자들이었다. (적용)조연이면 어떻습니다. 아마도 이 종은 쓰임받는 기쁨만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포도원 품군의 비유 - 이른 아침부터 와서 일한 사람이 잃어버린 것은 쓰임 받는 기쁨이다. 나를 써주셔서 감사하다. 헌데 내가 한 일, 내가 고생한 일이 먼저 생각나면 이 기쁨을 잃어버린다. 헌데 오후 5시에 온 사람은 할 말이 없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써주시니 감사한 것이다. 이 마음이 아름다운 것이다. (2)둘째로 맡길만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종에게 돈궤를 다 맡겼습니다. 여러분의 돈궤를 맡길 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믿을만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착각합니다. 재능이 있어야 성공한다고 합니다. 실력이 있어야 쓰임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재능도 있어야 하고, 실력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재능과 실력이 출중해도 쓰임 받지 못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재능과 실력 이전에 필요한 것은 믿을만한 사람입니다. (예화)미국의 유명한 카네기 강철회사의 후계자는 찰스 스웹(Charles Swab)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초등학교 밖에 못나온 사람으로 이 회사의 잡역부로 취직을 했습니다. 그가 맡은 일은 잡역부였지만 그는 마음속에 무엇이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성실함과 밝은 꿈을 항상 지니고 다녔습니다. 그는 매일 매일 공장의 구석구석을 정리하고 깨끗이 청소했습니다. 마치 자기 집처럼 자기가 주인인 공장처럼... 그렇게 깨끗이 정리하고 정돈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찰스는 다른 사람의 비난과 조롱에도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꾸준히 공장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청소하며... '이 거대한 공장은 나의 것'이라는 꿈과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했습니다. 그러한 그의 행동과 태도는 결국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성실함을 인정받아 잡역부에서 정식 사원으로 발탁되었습니다. 정식 사원이 되고 난 후에도 계속해서... 그는 전과 똑같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의 행동은 곧 소문이 나고 이에 감동한 카네기 사장은 그를 비서로 채용했습니다. 카네기 사장의 비서가 된 그는 마치 사장님 입의 혀와 같이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주인의식을 가지고 "오리를 가라면 십리를 가고... 속옷을 달라하면 겉옷까지도 내어 주는 심정으로 일을 해야 한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열심과 성실로 일했습니다. 사장이 연로하여 이제 은퇴할 때가 되자 사원들은 이 거대한 회사의 후계자는 과연 누가 될지에 대해서 매우 궁금히 여겼습니다. 아마 하버드대학 출신이 후계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프리스턴대학의 출신이 후계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명문대가의 자녀가 후계자로 발탁이 될 것인가?... 저마다 생각들을 하며 술렁였습니다. 그러나 카네기 사장은 잡역부에서 자신의 비서가 된 찰스 스웹을 후계자로 지명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스웹 자신도 매우 당황해 했습니다. 카네기 사장은 학력과 지식이 높은 사람이 회사를 잘 이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대한 사랑과 주인의식... 그리고 꿈을 가진 사람만이 회사를 잘 운영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찰스 스웹이야 말로 이 회사를 잘 이끌어 갈 수 있는 적임자라고 했던 것입니다. 찰스 스웹이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믿을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실력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믿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믿으세요. 오늘 날에도 충성스러운 사람이 인정받고 쓰임받는다는 믿음으로 헌신하시길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얼마나 성실한지 이 사람은 늙은 사람입니다. 한 달을 여행했습니다.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리브가의 집에서 극진하게 음식을 차려 놓았습니다. 헌데 음식 먹기를 거절합니다. 그리고 33절입니다. “ ” 사명을 다하기까지는 음식 먹는 것도 뒤로 합니다. 이제 리브가와 가족들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며느리감을 구했습니다. 사명을 다했습니다. 헌데 하룻밤만 자고 난 뒤에 곧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노구의 몸으로 800km를 여행했습니다. 며느리감도 구했으니 좀 쉬었다가 갈 수 있지 않습니까? 헌데 이 종은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있을 주인을 생각하고 지체하지 않고 떠나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충성을 합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예화)꼴찌마의 아름다운 질주 2006년 10월 5일자 동아일보 10면에 실린 기사였습니다. “만년 꼴찌, 네 덕분에 행복했었다. 113연패 기록 일본 경주마 하루우라라 은퇴”라는 기사였습니다. 하루우라라 경주마는 1998년 11월 데뷔전 이래 항상 달렸지만 항상 꼴찌였습니다. 한번도 이긴적이 없는 말이었습니다. 발목이 가늘고 몸집이 작고 폐활량도 떨어졌지만, 매번 지면서도 전력질주하는 모습이 고단한 삶에 지친 일본 사람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준 것입니다. 꼴찌로 달리고 있어도 최선을 다해서 달린다고 합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처절한지 저러다 죽지 않을까? 싶을 만큼 전력질주를 한다고 합니다. 하루우라라가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우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우라라가 출전하는 경기는 메이저급에 비하면 3류에 해당하는 경기였습니다. 헌데 하루우라라 때문에 그 지역과 경기대회는 흑자를 내었다고 합니다. 세상사가 모조리 승자와 패자로 갈라지는 피곤한 시대에 지더라도 꾀부리지 않고 성실히 달리는 그의 모습에서 살면서 단 한번도 이겨보지 못한 내 인생과 똑같다며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이위로와 희망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유명 경제신문인 니혼게이자이는 '하루우라라'를 한류스타 배용준에 이어 2004년 상반기 히트상품 5위에 선정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무엇이 아름다운 인생일까요? 최고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최고가 되는 것은 소수입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는 삶은 살 수는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실까요? 너 왜 서울대에 입학을 못했느냐고 하실까요? 왜 대기업에 입사하지 못했느냐고 하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너는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느냐고 책망할 것입니다. 남이 알아주든 알아 주지 않든 높은 자리이든 낮은 자리이든 어떤 형편에 있어도 최선을 다해 볼 수 있지 않느냐고 하실 것입니다. (적용)신앙생활도 최선을 다할 수는 있지 않습니까? 최고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아름다운 성도가 되라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하나님이 믿을 만한 사람, 목사가 믿을 만한 사람, 성도들이 믿을만한 사람, 이웃들이 믿을만한 사람이되시길 바랍니다. (3)셋째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질문을 하나 던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늙은 무명의 종은 충성스러운 인격을 갖을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충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무엇보다 이 종은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종은 이 중요한 일을 기도로 해결해 나갑니다. ①기도하게 되면 자기 생각에 매이지 않습니다. ②기도하게 되면 잔머리 굴리지 않습니다. 내가 하면 내 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의 지혜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③또한 기도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알고 겸손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연히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원리는 우연입니다.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어떤 것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 일은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안할 이유가 없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모든 일이 우연이기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어 불안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일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심지어 그 일이 불행한 일이라도 그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믿기에 견디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려워 하지 말라고 누가복음 12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4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5 마땅이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6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 버리시는바 되지 아니하는도다7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컬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 보다 귀하니라8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9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 이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성서의 예)성경에서 아주 대조적인 삶을 살았던 두 사람이 있습니다. 사울왕과 다윗왕입니다. 처음 출발은 사울왕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결국 사울은 멸망했습니다. 다윗의 출발은 시골 목동이었습니다. 헌데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았습니다. 이 두 사람의 운명의 갈림길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사울은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매 순간마다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물었다는 말은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다윗의 인생을 추적하면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다윗이 여호와께 여짜와 가로되” 늘 다윗은 기도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의 기도를 보겠습니다. 12절입니다. “ ” 언뜻 보면 종의 기도는 도박과 같은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와 같은 것입니다. (예화)결혼 정령기를 넘긴 노총각인 청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유난히 기분이 업된 날이었습니다. 출근을 하기 전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브라함의 종을 인도하셨던 하나님! 저의 삶도 인도하여 주십시오. 저는 결혼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올해를 넘길 수 없습니다. 오늘 저에게 아내 될 사람을 보여 주십시오. 오늘 제가 여직원에게 커피를 사달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여직원이 커피뿐만 아니라 점심까지 사 주겠다고 하면 그 여자가 제 신부인 증표인줄 알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청년의 기도가 바른 기도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조롱하는 기도입니다. 헌데 문제는 종의 기도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헌데 하나님은 종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대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종과 청년의 기도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1)이 종의 기도에는 분명한 기준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제시한 며느리감의 두 가지 기준은 아브라함의 고향에 가서 친척가운데 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순결한 믿음의 여인을 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달이 결려서 주인 아브라함의 고향인 메소포다미아까지 온 것입니다. 이곳에 기분대로 온 것이 아닙니다. 발길가다보니 여기에 온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기도하면서 메소포다미아까지 온 것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아브라함의 친 동생 나홀이 살고 있는 성에 도착해서 이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단계에서 증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기준이 있다. ①하나는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으면 아닙니다. (예)발람선지자의 기도-발락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것은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지자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저주한다는 것이 말이 되겠나? 이것은 물어볼 필요도 없다. 헌데 자꾸 묻는다. 이것은 잘못된 기도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은 구하면 안된다. / 발람선지자는 나귀만도 못한 사람입니다.’ ②둘째는 신앙양심상 문제가 되지 않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다 좋아요? 헌데 성도라면 하면 안되는 일을 하겠다고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신앙양심상 문제가 없어야 합니다. ③셋째는 개인의 욕심으로 구하는 것은 아닌가?를 물어야 합니다. (나의 경우)군 문제를 놓고 기도했다. -방위가게 하옵소서 / 응답:현역 -후방에 자대배치를 받게 하옵소서 / 응답:전방 속초 -군종병이 되게 하옵소서 / 응답:받은 군종병과를 바꾸셔서 130 포병이 되게 하심 하나도 응답이 안되었다. 이유는 무엇인가? 욕심으로 구했기 때문이다. 헌데 제대할 때 알았다. 하나님은 다 응답하셨다. 최전방 울산바위 밑에서 포병으로 군목사님이 없어서 병사인 제가 군종업무를 보고, 교회를 건축까지 하게 하셨다. 더 큰 역사를 이루셨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크게 두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두 가지 방법은 무엇이라고요? (1)최종승리를 믿으라 (2)그러나 과정은 연단일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 갖아야 태도는 무엇인가? (1)조연의식을 갖으라. (2)믿을 만한 사람이 되라 (3)기도하는 사람이 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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