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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권을 사모한 야곱 이병수목사 2011-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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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23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창세기 25:19-34

제목:장자권을 사모한 야곱

드디어 이삭이 아내 리브가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생각해야 할 것은

1.첫째로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도 문제는 있다는 것입니다.

이삭과 리브가 가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습니까?

(1)먼저 불임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21절“ ”

헌데 성경에는 불임으로 고통하는 여러 여인들이 나옵니다. 사라(이삭), 리브가(야곱), 한나(사무엘), 엘리사벳(세례요한) 다 불임으로 고통 받았다. 인생에는 이처럼 고통을 주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2)둘째로 갈등의 문제입니다. 22절입니다. “ ”

태중에서부터 에서와 야곱은 갈등합니다. 인생은 갈등의 연속입니다. 창세기에는 믿음의 조상들이 갈등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게 인생이겠지요. 가인과 아벨, 아브라함과 롯, 이삭과 이스마엘, 에서와 야곱, 요셉과 형들

(3)셋째는 가정의 불화입니다. 즉 편애입니다. 28절입니다. “ ”

아버지 이삭은 큰 아들 에서를 좋아하고, 어머니 리브가는 작은 아들 야곱을 좋아했습니다. 편애처럼 자녀를 잘못되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중매해서 이룬 가정입니다. 헌데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문제들을 갖고 살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문제를 어떻게 풉니까? 기도로 풉니다.

21절 “ ” 아내를 위해서 기도하는 남편입니다.

22절 “ ” 가정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아내입니다.

이삭의 나이 40에 결혼했는데, 60세에 쌍둥이 아들들을 얻었습니다. 20년을 기다리며 기도한 것입니다. 결코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적용)기도로 푼다는 것이 왜 중요한가? 영적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문제에 직면했을 때... 풀어가는 모습을 보면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사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예화)-영혼을 돌보는 일이 왜 중요한가?

미국에 이민을 간 한 가정이 있습니다. 이민 생활이 어렵지 않습니까?남편은 현역에서 일하는 목사님의 조카입니다. 믿는 집안의 남자였습니다. 아내는 신학대학을 나온 사람이었습니다. 헌데 이들은 이민을 와서 돈 버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슈퍼를 운영했는데... 얼마나 악착같이 일을 했는지 모릅니다. 1년 365일 중에 364일을 가게 문을 열었습니다. 1월 1일 단 하루만 문을 닫았습니다. 돈 버는 재미에 주일도 잊었습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9시까지 문을 열고 장사를 하니 교회 갈 시간이 있습니까? 이런 생활을 몇 년을 했습니다. 돈은 좀 버는 것 같았습니다. 헌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매일 저녁 남편은 술을 먹고 집에 들어옵니다. 부부간에 다툼이 잦습니다. 매사에 짜증이 나고, 몸은 점점 지쳐갑니다. 마음은 전혀 만족이 없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없기에 아이들은 방황하길 시작합니다. 결국 육신만을 위해서 살던 어느 날 벌어지지 말아야 일이 벌어졌습니다. 흑인 무장 강도들에 의해서 머리에 총을 맞고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이들이 살해되기 2주 전에 한 권사님은 이 부부들에게 ‘교회가야지? 그렇게 일하고 어떻게 사람이 버텨! 주일은 하나님께 나가 예배드리고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어야지’ 그러나 들릴 리 없습니다. 권사님의 충고는 한낫 잔소리로만 들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이 잘 사는 길입니까?

영혼을 돌아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육신을 위해서 돈은 벌었을지 모르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고, 피곤하고, 술을 먹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고, 자녀들은 방황하고, 가정에 평화가 없다면 어찌 잘 사는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한 주간 열심히 사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육일동안 열심히 산 만큼 내 영혼을 돌아보는 시간도 갖어야 합니다. 분주한 일상생활을 멈추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조용히 기도하고, 겸손히 예배드리며, 성도 간에 깊은 교제를 나누는 삶도 있어야 합니다. 너무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 너무 바빠서 예배할 시간이 없다면 그것은 잘못 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수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하나님 앞에 예배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돈은 벌지 모르나 결국은 무너지고 맙니다. 숱한 문제를 하나님과 기도로 풀어가는 영성이 되어야 합니다. (예)지혜로운 나무꾼은 50분 일하고 10분은 날을 가는 사람입니다. 도끼질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멈출 수 없다고 달리기만 하면 안됩니다.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채워야 합니다. 그래야 더 멀리 더 빨리 달릴 수 있습니다. 주일 날은 영혼을 돌보는 일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삭과 리브가처럼 모든 문제들을 영적으로 풀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2.둘째로 이삭과 리브가의 쌍둥이 아들들인 에서와 야곱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은 ‘장자권을 사모하는 인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본문)오늘 성경에는 유명한 팥죽 사건이 나옵니다. 형 에서는 사냥꾼입니다. 에서는 활동적인 사람입니다. 산으로 들로 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어느 날 사냥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너무 허기가 졌습니다. 헌데 야곱이 팥죽을 끓이고 있습니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모르지만, 저희 때까지만 해도 팥죽은 정말 맛있는 음식이었습니다. 고향의 음식 같은 것이지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성탄절 새벽송 돌 때 한 권사님 가정에서 끓여주셨던 팥죽의 맛!! 팥죽과 함께 얼음이 띄워져 있는 동치미!를 아랫목에서 목화솜이불을 덮고 마시는 기분은 정말 끝내줍니다.)

동생이 팥죽을 끓이고 있으니 한 그릇 달라고 합니다. 헌데 야곱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형의 장자권을 팔라는 것입니다. 사실 형제간에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사고 팔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에서는 장자권을 소홀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에서의 삶의 가치관을 알 수 있습니다. 에서의 별명은 에돔입니다. 에돔이라는 별명은 거칠고 물질적이고, 인간적이고, 육체적인 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32절입니다. “ ”

34절입니다. “ ”

 

야곱이 갖고 싶어했던 장자권이 무엇입니까?

당시 장자에게는 아버지 재산의 절반을 줍니다. 유산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장자권이 갖는 더 중요한 의미는 아버지의 권위와 명예를 상속받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자권은 물질적인 이익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유산인 것입니다. 믿음의 계보를 잇는 권한입니다. 헌데 에서는 장자권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에서는 영적인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육적인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영혼을 돌보지 않고, 오직 육신에만 매여 살아가는 인생이었습니다. 그저 자기 즐거움, 자기 계획, 자기 꿈, 자기 유익만을 따랐던 사람입니다.

 

허나 야곱은 달랐습니다. 야곱은 장자의 축복이 무엇이고, 어떤 정신적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알았습니다. 영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라는 고향에서 불러내셔서 여기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후손을 하늘에 별과 같이 많게 하리라고 약속하셨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아버지 이삭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그리고 이제는 형 에서와 자기 차례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헌데 명분상 장자권은 형에게 있었습니다. 장자권을 욕심낸다 해서 갖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에게 가당치 않은 것이었지만 갖고 싶었습니다. 야곱은 꿈꾼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그리고 에서의 하나님이다가 아니고 야곱의 하나님이다.’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이 영적인 축복을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영적인 것에 욕심이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목회자를 정말 기쁘게 하는 사람은 말씀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영적인 축복을 받기를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믿음의 사람이 되야겠다는 욕심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어려서부터 어머님이 축복기도를 참 많이 해 주셨습니다. 한참 자고 있을 때 어머님은 새벽기도를 다녀오셔서 찬송을 하시고, 잠을 자는 자녀들을 차례대로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형, 누나를 위해서 기도할 때가 되면 잠에서 깨어납니다. 그러면 자는 척하고 기도를 받습니다. 4형제 중에서 제가 가장 많은 축복기도를 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님의 축복기도를 받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습니다. 형이 장자이지만, 믿음은 내가 더 좋았으면 좋겠다고 경쟁한 적도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교회 청소하기 전에 내가 먼저 가서 청소하고, 특히 목사님이 설교하는 강대상을 초칠해서 마른 걸레로 닦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뺏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예배란 예배는 열심히 참석을 했습니다. 오늘 내가 가지 않아서 은혜받을 말씀을 못받으면 어떻게 하나?하는 마음에 열심히 갔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님이되었지요? 하면 할말은 없습니다.)

 

(적용)에서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장자라는 명분의 중요성을 몰랐습니다. 영적 가치, 정신적 가치를 몰랐습니다. 아니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현실, 당장의 눈 앞에 이익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오늘 날의 시대가 이와 같습니다. 영적인 것보다 물질적인 것이 더 중요한 시대입니다. 내면적인 것보다 외적인 것에 몰두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정치논리, 경제논리가 신앙의 논리보다 앞서고 있습니다.

책을 읽거나 묵상을 하거나, 고통을 함께 한다든지, 보다 의미있는 삶을 사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거의 육신적인 것, 내게 이익이 되는 것, 외적인 것에만 관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이와 같은 때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들이라면 야곱과 같이 장자권을 사모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장자권을 사모한다는 것이 오늘 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히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를 믿어서 누리는 은혜가운데 가장 복된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헌데 문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뭐가 좋은 것인가? 실감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고 하는데,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차라리 대통령이 우리 아버지라면 달라지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헌데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고 해도 달라지는 것이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가치를 잘 모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보다 어떻게 보면 ‘신의 아들’이 되고 싶어합니다. 이런 조크가 있습니다.

공부는 못하는데 돈은 잘 버는 아들은 장모의 아들!

공부는 잘하는데 돈은 잘 못 버는 아들은 국가의 아들!

공부도 잘하고, 돈도 잘 버는 아들은 신의 아들!

공부도 못하고 돈도 못 버는 아들은 내 아들!이라고 합니다.

 

보세요. 신의 아들하면 돈 잘 벌고, 권력도 있는 아주 특별한 사람입니다. 원래 ‘신의 아들’이라는 말은 돈도 많고, 힘도 있어서 군면제 받은 남자들을 말할 때 신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헌데 문제는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 예수를 믿어 받고 싶어 하는 복이 신의 아들이 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서 이렇게 잘되었다고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이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내가 성공하는데, 내가 출세하는데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기도를 보세요. 대부분이 달라는 것입니다. 해달라는 것입니다. ‘주실 줄 믿습니다. 주실 줄 (강하게) 믿----습니다.’

 

(본문)물론 믿음이 약할 때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야곱이 장자권을 사모했지만, 처음부터 영적 장자다운 삶을 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장자의 명분을 얻었지만, 여전히 인간적이고, 속이고, 거짓말을 하고, 치사한 방법으로 욕심을 채우려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야곱을 선택하신 한 포기하지 않고 만들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성숙한 사람이 되기까지는 숱한 세월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많이 깨지고, 어려움을 겪으면서 결국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처음부터 잘 믿는 것 아닙니다. 교회를 나오고, 예수를 믿어 자녀가 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인간적이고, 불안정하고, 실수하고, 육적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상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그래서 어디까지 가야 합니까? 예수를 믿어서 신의 아들같이 되는 것을 넘어서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이것만으로 행복한데까지 가야 합니다.

(예화)저는 어릴 적에는 아버지가 내게 좋은 것을 해 주어서 좋았습니다. 아버지가 퇴근하면서 사오는 과자 때문에 아버지가 좋았습니다. 장난감을 사주시고, 돈을 주어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커서는 달라졌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은 아버지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예전처럼 힘이 없었습니다. 약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받은 은혜만으로도 감사하고 족하기에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유산을 많이 남겨줘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버지이기에 좋았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다는 것을 언제 느꼈냐면 아들 노릇을 할 때였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몸져 누워 있었던 몇 개월!! 이 때가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구나!하는 것이 가장 감사했던 때였습니다. 참 역설이지요. 아버지는 가장 약할 때였는데, 그 때가 아들노릇을 제대로 했습니다. 아버지를 많이 안아드렸습니다. 평소 하지 못하던 사랑한다는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위해서 진정으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위해서 돈을 쓸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아들로서 아버지에 대한 책임을 다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이 땅의 아버지처럼 약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모시는 것은 똑같습니다. 믿음이 약할 때는 하나님 아버지가 나에게 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잘 해주니까 좋습니다. 소원을 들어주니까 좋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자라고 보니 하나님이 무엇을 해 주어서 좋기보다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어서 더 좋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1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는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광을 받고, 영적인 복을 상속받으려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믿음이 약하신 분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분의 사랑을 받았다면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헌신도 해야 합니다.

 

문제를 만났습니까? 기도로 푸십시오. 열심히 사시되 영혼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으십시오.

영적 장자가 되고 싶은 소원을 갖아 보십시오. 언제까지 영혼을 돌보지 않고, 육적인 것만을 위해서 사시렵니까? 신의 아들 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됨을 누리시고, 이제는 자식된 도리를 다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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