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년을 며칠같이 | 이병수 목사 | 2011-04-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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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아동복지센터는 “작년 5월 중학생 이하의 자녀와 부모 6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①이 조사에서 자녀들은 부모에게서 가장 듣고 싶은 말로 ‘사랑해’(38.4%)와 ‘용돈 줄까?’(28.2%)를 맨 먼저 꼽았습니다. 그 외 ‘엄마와 아빠는 너를 믿어’(11.0%), ‘놀아라’(11.0%), ‘괜찮아, 넌 할 수 있어’(6.0%)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②반대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로 자녀가 품에 안기며 ‘사랑해요’라고 표현할 때(52.0%) 가장 행복하다고 답했습니다. (예화)평소 무뚝뚝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중학교에 다니는 아버지보다 덩치가 더 큰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퇴근해서 집엘 들어가면 아들은 눈치를 보다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리곤 했습니다. 어느 토요일 오후 아버지는 TV를 보다가 거실에서 잠간 잠이 들었습니다. 조금 후 잠이 깨어 일어나려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안고 누워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피로가 아닙니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떨치고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났습니다. ‘이렇게 아빠를 가까이 하고 싶은 아들의 마음도 모르고 내가 아들을 멀리했구나!’ 사랑이 회복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고린도 전서 13장 1-3절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인생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마지막 절에서 사랑을 더 구체적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오늘 본문에 야곱의 삶이 그렇습니다. 야곱은 800Km를 걸어서 브엘세바에서 하란까지 왔습니다. 하란 우물가에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라헬입니다. 야곱은 라헬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18절입니다.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야곱은 혈혈단신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결혼을 하려면 지참금을 내야 합니다. 헌데 야곱은 갖은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라헬의 지참금의 대가로 7년을 일하겠다는 것입니다. 헌데 정말 놀라운 것은 20절입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칠년을 일했는데, 며칠 같이 보냈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라헬을 사랑하는 까닭에” 사랑에 빠진 것입니다. 야곱에게 라헬을 사랑하게 된 것은 에너지였습니다. 살아 있음에 증거였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였습니다. 얼마나 사랑하면 칠년을 며칠같이 보낼 수 있을까요? 여쭈어 볼께요? (질문1)이 가운데 중매결혼 하신 분들 손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이삭의 후손입니다. 그러면 연애결혼 하신 분들 손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다. 야곱의 후손입니다. (질문2)그러면 연애 결혼하신 분들 중에 7년 이상을 연애하시고 결혼 하신 분들 있으십니까? (있다면 선물을 드린다.-직접) / 이분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입니다. 어떻게 야곱은 ‘칠년을 며칠 같이’ 살 수 있었을까요? 얼마나 사랑하면 이렇게 살 수 있을까요? 어떤 분들은 천국은 영원히 산다는데, 지루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합니다. 헌데 기도하면서 성령님이 깨닫게 하셨습니다. 천국은 “천년이 하루 같습니다. 얼마나 좋으면 천년을 보냈는데 하루가 지난 것 같겠습니까?” 헌데 지옥은 “하루가 천년 같습니다. 너무 고통스럽고 지겨운 것입니다.” 사랑에 빠지니까 야곱은 이 땅에서도 천국처럼 삽니다. 칠년도 며칠 같습니다. (적용)정말 바라기는 여러분의 인생이 이와 같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생활, 직장생활, 학교생활, 교회생활, 신앙생활이 칠년이 며칠 같은 행복, 기쁨이 넘치길 바랍니다. 그러려면 믿음, 소망,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1.첫째로 믿음입니다. 야곱이 칠년을 일하겠다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야곱을 움직이게 한 것이 무엇입니까? 삼촌 라반의 말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라반이 어떤 사람입니까? 한 마디로 야곱보다 100배 더한 사람입니다.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야곱 머리위에 올라가 있는 대 사기꾼 기질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라반의 말을 굳게 믿고 7년이란 시간을 헌신합니다. 사람의 말만을 믿고도 칠년을 며칠 같이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예1)앞으로 잘해 줄께!라는 남편의 말을 믿고 지금까지 사시는 것 아닙니까? (예2)이번 일은 확실하다. 투자해 봐라! 그래서 사람의 말을 믿고 수 천 만원, 수 억원을 투자합니다. (예3)수술하면 고칠 수 있습니다. 수술 잘되었습니다.라는 의사의 말을 믿고 이제는 살았구나! 안심합니다. (예4)전문가의 말 한 마디, 특히 TV를 얼마나 잘 믿습니까? ‘누가 그래?’ TV에서 봤어. TV가 진리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말을 얼마나 잘 믿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믿고 살아갑니까? 사람의 말은 그렇게 잘 믿으면서 어찌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게도 믿지를 못합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그렇게 사랑한다고 하시는데 그 사랑을 얼마나 믿으십니까?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영원히 함께 하리라” “고난당하는 자가 있는냐? 저는 기도하라. 밤낮 부르짖는 자에게 어찌 내가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서로 사랑하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이시면서까지 너희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왜 믿지 않는냐?는 것입니다. (적용)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①우리의 능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우리들이 자녀를 사랑한다고 해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카이스트 학생을 부모들은 막지 못했습니다. / 재료공학분야에서 노벨상과 같은 상을 받은 카이스트 교수가 집에서 목숨을 끊을 때 그의 부모도, 아내도 막지를 못했습니다. 우리의 능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②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반드시 죽기 때문입니다. 죽음앞에서 두렵지 않을 자가 없습니다. 죽음을 맞이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③또한 우리의 의는 한계가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 본능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야 함을 알기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노력해도 우리 스스로는 의로 와 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머리로 지은 죄 때문에 가시 면류관을 쓰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가슴으로 품은 죄악 때문에 예수님이 채찍에 맞은 것입니다. 내가 손과 발로 지은 죄 때문에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이 박히신 것입니다. 이것을 믿을 때에만 우리는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의 말은 당시는 진실이었으나 그것을 지킬 힘이 없습니다. 내일 변할지로 모르는 사람들의 말도 그렇게 믿고 사신다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걸고 믿어도 틀림이 없는 진리의 말씀인 것입니다. 2.둘째로 소망입니다. 야곱은 7년을 며칠 같이 일했습니다. 헌데 남의 일이라고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후에 야곱이 라반에게 자신이 어떻게 삼촌을 섬겼는지를 스스로 고백합니다. 한 번 다 함께 찾아 보겠습니다. 창세기 31장 40-42절입니다.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 우리 아버지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 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야곱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헌데 이렇게 힘겨운 삶도 이기게 하는 힘이 무엇입니까? 소망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라헬과 결혼을 할 수 있다는 소망이 인내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제 드디어 7년이 되었습니다. 잔치를 베풀고 첫날 밤을 보냅니다. 헌데 자고 나서 보니 라헬이 아니라 언니 레아가 누워 있습니다. 얼마나 놀랬을까요? 라헬인지 알고 잠을 잤는데, 날이 밝아 깨어보니 레아입니다. 삼촌 라반이 속인 것입니다. 이 고장에서는 언니보다 동생이 먼저 시집가는 일은 없다고... 그러니 칠년을 더 채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라헬도 마져 주겠다는 것입니다. 헌데 야곱은 이것도 참습니다. 이런 억울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헌데 야곱은 참습니다. 라헬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4년을 참고 일을 했습니다. (예)세상 이치가 그렇지 않습니까?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서 지금 어려움을 참아 내지 않습니까? 자녀들 잘되라고 부모님들 얼마나 수고를 하십니까? 공부하고 12시에 들어오는 자녀들 잠 안자고 기다려야 합니다. 잠자고 있으면 성질을 내지 않습니까? 먼저 일어나 밥을 짓고, 깨워줘야 합니다. 늦게 깨웠다고 엄마에게 화풀이를 합니다. 남자들은 어떻습니까?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어도 미래를 생각해서 참고 참으며 직장생활을 하지 않습니까? (적용)이처럼 이 땅에서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 인내하시면서, 천국을 위해서 현재의 고난을 참지 못합니까? 하나님은 응답을 준비해 주시고 계시는데, 조금만 더 참고 기도하길 바라시는데, 참지를 못하고 포기하고 맙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인내의 과정을 지나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25년을 기다렸습니다. 모세는 40년을 기다렸습니다. 바벨론 포로시절은 70년의 기다림이었습니다. 요셉은 13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각자가 다르지만, 누구에게나 기다림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면 기다림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합니까? 소망이 있는 사람은 기다림의 시간에 자신을 아름답게 가꿔 갑니다. 소망으로 기다리는 사람은 절대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실수도 했지만, 아브라함이 모세가 요셉이 시간을 낭비했습니까? 허송세월을 보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며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어 갔습니다. (예화)전 너무 감동되는 문자를 성도에게 받았습니다. 일반 문자는 답을 안보내도 됩니다. 그러나 비싼 컬러메일을 받고도 답장을 보내지 않는 분들은 각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하 - 하 - ) 감동받은 문자는 “목사님이 저의 목사님이셔서 너무 행복합니다.♥♥♥(하트 세 개)” 그 문자를 받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런 인정을 몇 번이나 받을 수 있을까요? 이 문자를 받고 제가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는지 모릅니다. 저는 이런 찬사를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러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지금은 너무나 부족하지만, 우리 성도들이 목사님이 우리의 목사님이셔서 너무 행복합니다라고 고백 할 수 있도록 저 자신을 날마다 날마다 아름답게 가꿔가게 하옵소서!”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적용)아내에게... 당신이 나의 남편이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 자녀들이 아빠가 내 아빠여서 너무 행복해. 이런 고백을 들을 수 있다면 잘 산 인생 아닙니까? 그렇게 되도록 현재의 삶을 낭비하지 않고, 아름답게 가꾸어 가길 바랍니다.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기에 모든 고생을 견뎌냈듯이, 우리 주님을 사랑한 까닭에 우리도 우리 자신을 가꾸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3.셋째로 사랑입니다. 야곱을 생각해 보십시오. 야곱은 욕심 많은 사람입니다. 약점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하나님은 야곱에게 복을 주셨을까? “사랑”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위하여 모든 것을 내 줄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야곱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닮았기 때문입니다. 보세요. 야곱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올인 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사랑하는가?는 얼마나 희생하는가?를 보면 잘 압니다. 많이 사랑하면 많이 희생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는 무엇을 희생하셨는가?를 보면 압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내어주신 이가 어찌 모든 것을 선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야곱의 사랑을 훨씬 뛰어 넘습니다. 야곱의 사랑과 비교가 안됩니다. 야곱은 레아보다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이유가 뭐냐면? 레아보다 라헬이 더 곱고 아리따웠기 때문입니다. 곱고 아리따운 여인을 위해서 칠년을 며칠 같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사랑받을만한 가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하나님과 원수지간이었습니다. 사랑받을 만한 구석이라고는 찾아 볼래야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헌데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면서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화)오늘 저녁부터 우리를 위협하는 이단들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저녁예배에도 많이 나오십시오. 헌데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보십시오. 모든 면에서 우리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교주의 말에 절대 순종합니다. 헌데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아니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합니까? / 말씀을 사모하는 것을 보십시오. / 전도하는 것을 보십시오. 만사를 제쳐놓고, 안되면 가출하고, 학업도 중단하고 전도합니다. / 충성하는 것을 보십시오. / 헌신하고 헌금하는 것을 보십시오. 저들은 가짜를 믿으면서도 진짜처럼 믿습니다. 가짜를 진짜처럼 사랑합니다. 헌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진짜를 믿으면서도 가짜처럼 믿고 있지 않습니까? 진짜를 갖고 있으면서도 뜨겁게 사랑하지 않지 않습니까? 야곱은 사람의 말을 믿고 14년을 헌신합니다. 라헬을 사랑하는 까닭에 모든 고생을 참아 냅니다. 라헬을 사랑하는 까닭에 자신의 인생을 올인 합니다. 물론 나중에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듯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곱이 “라헬를 사랑한 까닭에 칠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는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한 까닭에 칠년을 며칠같이 여겼더라”는 말씀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사랑하기에 생기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에너지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삶의 이유요 목적이 되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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