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다니는 사람, 예수 믿는 사람 | 이병수목사 | 2011-05-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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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2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창세기 34:13-31 제목:교회에 다니는 사람? 예수를 믿는 사람? (다함께 인사=한 주간 행복하셨습니까? / 이 시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음성을 들읍시다.) 오늘 본문은 세겜 땅에서 세겜이라는 추장에게 디나가 겁탈을 당합니다. 그 일을 야곱과 야곱의 아들들이 어떻게 처리 하는가?를 보게 됩니다. 이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듣기 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교회란 무엇인가? 신자란 무엇인가?를 깊히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1.첫째로 왜 신자의 가정에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종류는 다르지만 오늘 날 신자들의 삶 가운데도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냐?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도대체 살아계시는 것인가?하고 탄식하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서 하나님께 질문하면 하나님은 대답해 주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대표적인 것이 시편 73편입니다. 악인들이 잘되는 것을 시인은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줄을 때도 고통이 없고, 그의 후손들도 잘되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습니다. 또 악인들은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는 것을 보면서 질문을 합니다. 그 때에 17절에 가서야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다 이해되지 않으나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면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야곱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입니다. 그런데도 야곱의 가정에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디나가 세겜에서 고난을 받은 이유 중에 하나는 ①야곱의 불순종이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야곱은 우유부단한 사람입니다. 스스로 결단하지를 못합니다. 상황에 밀려서 어쩔 수 없이 움직이는 모습을 봅니다. 야곱이 있어야 할 자리는 세겜이 아니라 벧엘입니다. 헌데 세겜에 머물다가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합니다. 성도가 있어야 할 자리, 성도가 머물러야 할 가장 아름다운 자리는 예배의 자리임을 말씀드렸습니다. ②그리고 자녀들의 신앙교육의 실패였습니다. 신자들은 세상속에서 불신자들과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허나 세상에 갈 때 가더라도 영적으로 무장하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체험을 갖고 가야 합니다. 헌데 야곱은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하는 일에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도 야곱의 가정과 같은 뼈아픈 현실들이 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죄에 유혹에 넘어진 것입니다. 자신이 잘못해서 벌어진 고난을 마치 하나님이 나를 쓰시려는 연단이라고 착각하면 안됩니다. 또 하나는 욥의 연단과 같은 고난입니다. 욥의 가정에 임한 재앙은 연단이었습니다. 시험이었습니다. (예화1)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 선교를 하던 한재성 선교사는 결혼 10주년을 한 달 앞둔 2004년 9월, 아내 김진희 선교사가 집에 침입한 괴한 두 명에 의해 처참히 살해를 당합니다. 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간 선교사의 가정에 이런 끔찍한 일들이 벌어집니까? 한재성 선교사는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너무나 힘든 마음에 비록 하나님을 감히 원망할 순 없었지만, 왜 그 일을 허락하셨는지를 여쭙고 싶었다. 그래서 '왜요, 왜 그러셨나요 아버지...' 하고 기도했더니, 아버지께서는 오히려 내게 물어 오셨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이 길이 죽어야 되는 길이란 것을 모르고 갔더냐?' 나는 이 말씀에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가는 이 길이 바로 주를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떠난 길이었기에... 그리고 선교사로 떠날 때 주 앞에 고백으로 찬양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나의 맘, 나의 몸, 주께 드리오니... 나는 그때 마음만 드린 것이 아니라 나의 몸둥아리도 주님께 드렸지 않았던가? 카작으로 떠나기 위해 한국에 머문 두 달 동안 난 교회 앞에서 두 번이나 이런 고백을 설교시간에 했었다. '이번에 하나님이 순교시키면 나는 순교하겠습니다' 이렇게 내가 주님께 고백했던 말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렇군요. 예, 주님. 죽을 줄 알고 떠난 길인데도 아버지, 그래도 너무 힘들어요'. 하나님은 계속 내게 말씀해 주셨다. '너의 마음 내가 아노라. 나도 내 아들을 너희들을 위해 십자가에 내어줄 때 나의 마음도 너와 같았느니라" 이 말씀 앞에서 나는 하염없이 또 울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마음이 내 안에 들어 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신자들의 가정에도 끔찍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졌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한재성선교사는 상처를 품고 카작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제 카작에서 선교할 자격이 있다. 이곳에서 내 아내가 죽었기 때문이다.” 보세요. 악한 마귀는 성도들의 가정에 끔찍한 사건을 통해서 예수를 버리게 할려고 했지만, 이겨내고 더 큰 열매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1)왜 신자들에게 이런 실패한 현실들이 벌어집니까? 그것은 우리는 질그릇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을 보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신자란 무엇입니까? 보배를 담고 있는 질그릇이라는 것입니다. 이 보배 보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담고 있는 질그릇입니다. 질그릇은 조금의 충격에도 쉽게 깨집니다. 하나님은 신자들을 스테인레스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텅스텐으로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깨지기 쉬운 질그릇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신자들은 수 없이 깨지고, 고난을 당합니다. 죄로 넘어지기도 합니다.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보십시오. 수 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기독교를 말살하려고 공격을 했습니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무참히 깨졌습니다. 그러나 보배이신 그리스도를 깨뜨릴 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질그릇인 성도들이 깨지는 그 자리에 더 많은 열매들이 맺어졌습니다. 마치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듯이 성도들이 깨뜨려졌지만, 기독교는 나날이 부흥하였습니다.
반면에 어떤 분들은 교회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예 그럴 수 있습니다. 목사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장로는 이정도 수준은 되야 하는 것 아니냐? 그렇지 않습니다. 신자들은 질그릇과 같은 신자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교회에 나온다고 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예수를 믿지 않아도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불순한 동기로 교회에 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장사를 하려면 큰 교회로 가야 한다는 말을 공공연히 합니다. 이해관계 때문에 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불순한 동기로 교회엘 갔습니다. 사모님이 미인이시라서 친구와 구경을 갔습니다. 헌데 사모님은 못 만나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성령의 불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자가 되었습니다. 동기는 불순했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땅에 교회와 신자들은 질그릇처럼 약합니다. 유혹받아 넘어지고, 연단으로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2)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야곱의 가정에 닥친 불행은 결국 세겜을 떠나 벧엘로 올라가는 기회가 됩니다. 더 이상 세겜에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실수였지만, 하나님은 그것도 합력하여 좋은 쪽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주는 위로입니다. 하나님은 선택하신 자들에게는 어떤 것이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3)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신자들은 나 자신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 자신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깨질 수 있는 질그릇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우리가 의지할 이는 보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교회만 다니시면 안 되고, 예수를 믿으셔야 합니다. 예수를 갖은 자가 되면 하나님은 합력하여 주실 것입니다. 2.둘째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오늘 본문에는 두 아버지의 모델이 등장합니다. 디나의 아버지 야곱입니다. 그리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몰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헌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야곱이 보여준 모습은 정말 실망스럽습니다. 야곱은 딸 디나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헌데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아버지로서 책임지려는 모습이 없습니다. 세겜에게 찾아가 따지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디나를 위로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 억울하여 분통을 터뜨리며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겜의 아버지 하몰은 어떻습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먼저 달려옵니다.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합니다. 물질로 보상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하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된 거 결혼을 시키자고 합니다. 야곱이 보여주는 모습은 정말 찌질한 모습입니다. 아버지가 가만히 있으니 야곱의 아들들이 더 분노하기 시작합니다. 그 분노가 지나쳐서 복수심으로 발전합니다. 야곱은 아들들의 복수심을 막았어야 했습니다. 딸의 행동도 미리 막지 못하고, 이번에는 아들들의 행동도 막지를 못합니다. 야곱이 보여준 모습은 너무 소심하고 무책임한 모습입니다. (적용)우리 가운데도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사람들은 회개해야 합니다.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도망치는 남자,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는 영적 리더쉽이 없는 남자여서는 안됩니다. 형 에서를 만날 때에도 당당하게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앞장서지를 못합니다. 한다는 짓이 뇌물 보내고, 여종들의 자녀 앞세우고, 아내들 앞세우고, 자신은 맨 뒤에 서 있습니다.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들은 배워야 합니다. 아버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에게는 영적 책임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가정과 자녀교육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자녀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내게 맡겨진 자녀들을 잘 양육해야 합니다. (적용)또한 직분자들은 교회의 아비와 같은 자들입니다. 목사, 장로, 권사, 안수집사, 목자와 교사들은 맡겨진 양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교회의 문제를 품고 기도하고, 책임지려는 성숙한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찌질해도 믿음이 있는 야곱을 쓰셨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적으로 잘나고, 성공하고, 멋있어 보여도 믿지 않는 하몰을 쓰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은 찌질해도 믿음이 있는 야곱이었습니다. 야곱을 사랑하고, 편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남의 자녀가 아무리 잘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못난 내 자녀라도 귀한 것처럼 하나님의 마음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은 오직 하나입니다. 믿음입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했습니다. 힘든 세상, 승리하는 길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의지하는 것입니다. 교회만 다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하는데, 실상은 돈을 의지합니다. 사람을 의지합니다. 허나 예수를 믿는 사람은 정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삽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들의 목적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①그러니 현재 믿지 않는 남편/부모를 두고 계신 분들은 다른 남자들과 연봉, 출세, 학력 갖고 바가지 긁지 마시고, 어떻게든지 교회로 인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②그리고 교회는 따라 나오는 남편들을 두고 계신 분들은 돈 잘 벌어오는 다른 남자들하고 비교하지 말고, 예수를 잘 믿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온갖 서비스와 정성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예수 잘 믿으면 그 때 복수를 하십시오. ③또한 예수를 잘 믿는 남편을 두고 계신 분들은 믿음 없는 다른 남자들하고 비교하고, 부러워하지 말고, 기도하는 남편, 예배드리는 부모가 최고라고 인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화)교회 안에는 다섯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수준의 사람입니다. 아직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입니다. 교회만 다니는 사람입니다. 여기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두번째 자기 문제에만 매달려 있는 수준의 사람입니다. 미숙한 신자입니다. ⒞셋째는 남의 문제를 섬기는 수준의 사람입니다. 은헤를 체험한 사람입니다. ⒟넷째는 다른 사람들을 영적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수준의 사람입니다. 삶의 우선순위가 분명한 사람입니다. ⒠다섯째는 주님을 위해 순교하는 수준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여기까지 날마다 자라가야 합니다. 안주하면 안됩니다. 나도 성숙한 신앙을 갖으리라는 다짐으로 사모하셔야 합니다. 사모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주십니다. 하루 아침에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결국은 이스라엘이 된 것처럼 날마다 자라가시길 바랍니다. 3.셋째로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은 ‘신자들이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이 무엇인가를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악을 선으로 갚으라”는 것입니다. 디나의 사건으로 아버지 야곱이 가만히 있으니까, 오빠들이 나섰습니다. 이 때 아버지 야곱이 하나님 앞에 온 가족과 더불어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더라면 더 끔찍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직 야곱의 아들들은 어립니다. 신앙의 체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겜 사람들을 속입니다. ‘너희들이 우리와 같이 할례를 받으라. 우리와 똑같이 할례를 받으면, 그 때 가서 서로 딸들을 주고 받으며 함께 섞여서 살자’고 제안합니다. 하몰과 세겜은 이를 좋게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세겜 남자들이 모두 할례를 받았습니다. 할례가 무엇인지 아시지요. 남자의 생식기의 포피를 잘라내는 것입니다. 할례는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헌데 야곱의 아들들은 복수를 위해서 거룩한 할례를 이용합니다. 복수에 눈이 멀어 있다보니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합니다. 세겜 사람들이 할례를 받고 고통으로 걷지도 못하고, 꼼짝 못하고 있을 때르우벤과 시므온은 칼로 모든 세겜 사람들을 다 죽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야곱의 아들들은 재산을 다 빼앗고 부녀자들을 잡아 옵니다. 결국 누이동생이 강간을 당한 것에 대한 복수극이 엄청난 대살인극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복수의 본질입니다. 복수는 당한 것보다 더 강도가 높게 앙갚음을 합니다. 그래서 또 다른 복수를 불러오는 것입니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야곱은 알지를 못합니다. 나중에 아들들에게 한다는 말이 30절입니다.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우리는 수가 적으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이게 아버지가 할 소리입니까? 아들들 탓을 하고 있습니다. 책임을 회피합니다. 물론 야곱의 아들들의 한 일은 결코 잘한 일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신자들은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화가 나고, 속이 상하고, 복수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라는 것입니다. 레위기 19장 17-18절에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위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하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또 로마서 12장에서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의 손에 피를 묻히길 원치 않습니다. 살다보면 분통터지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도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십니다. 이것인 신자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처럼 열받는다고 화가난다고 세상식으로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 손으로 원수를 갚으면 속은 시원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근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손에 피를 묻히고, 원한에 사로잡히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임을 믿고 맡기라는 것입니다. 가장 큰 승리는 용서하는 것입니다. 오늘 날 그리스도인들도 원수를 맺고 살아가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단순히 교회만 다니지 마시고, 정말 예수를 믿으신다면 용서가 흘러넘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 용서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악을 악으로 갚는다면 불신자들과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 악을 선으로 갚으십시오. 모든 것을 아시고, 판단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은 내가 갚아 주겠다고 하십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1.신자들에게도 뼈아픈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유혹을 받아 넘어진 것이든, 하나님의 시험이든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뤄주실 것입니다. 2.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피하지 말고, 죄악과 맞서 싸우고, 분통터지는 일을 만나면 하나님 앞에 나와서 부르짖으십시오. 3.신자는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합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시고, 할 수 있으면 화평하십시오. 공의의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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