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부흥 | 이병수목사 | 2011-05-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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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9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창세기 35:1-10 제목:드디어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다(야곱의 부흥) 부흥이란 무엇인가? 부흥하면 어떤 신비체험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진정한 부흥은 하나님을 만나고 내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신비체험을 했다고 꼭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비체험이 없어도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변화되는데 신비체험이 도움이 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몇 시간씩 기도하고, 은사를 체험해도 집에 오면 가정 일을 등한히 하고, 가족들에게 신경질을 내고, 전혀 친절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소위 은사체험을 한 분이 남편을 미워하고-사실 남편이 워낙 못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신자가 그러면 안되지요. 목회자에게 불리하면 거짓말을 하고, 다른 사람들과 원수를 맺고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진정한 부흥이 아닙니다. 진정한 부흥은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인격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야곱을 보세요. 야곱은 극적인 신비체험을 두 번이나 했습니다. ①한번은 30년전에 있었습니다. 형 에서가 받을 축복권을 도둑질하고 형을 피해 도망가던 길에 벧엘에서 돌베게를 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있는데 그 위에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하고,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②두 번째 신비체험은 10년 전에 얍복강에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내려오셔서 씨름을 하고, 축복을 받게 됩니다. 주님은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축복하셨습니다. 헌데 옛 사람의 성품은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가 살아야 하는데, 여전히 내가 주인 되어 살고 있습니다. (적용)우리 가운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여전히 삶도 성품도 변화되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세상에 나가면 불신자들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진정한 부흥은 변화에서 오는 것입니다. 헌데 오늘 본문에서 드디어 야곱이 변화됩니다. 오늘은 야곱 최종편입니다. 창세기 35장을 중심으로 어떻게 야곱이 부흥을 이루었는가?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부흥은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민족적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들도 야곱과 같이 참된 부흥을 맛볼 수 있는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1.첫째로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1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하나님의 명령은 4가지입니다. ①일어나라 - 지금 야곱은 어디에 있습니까? 세겜입니다. 어디에 있어야 합니까? 벧엘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약속한 장소는 벧엘이었습니다. 헌데 세겜에 머물렀습니다. 그것도 한 두 해가 아니라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벧엘에서 세겜은 50km밖에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입니다. 헌데도 야곱이 세겜에 머무른 것은 자신의 욕심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세겜에 머물다가 끔찍한 일을 당합니다. 딸 디나가 겁탈을 당하고, 이것을 복수하겠다고 야곱의 아들들은 대살인극을 벌입니다. 그러니 세겜족과 가깝게 지내던 가나안 부족들이 가만히 있습니까? 야곱의 집안을 멸절시키겠다고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야곱의 인생에 최대의 위기입니다. 최대의 위기를 만났을 때, 우리 하나님은 어김없이 나타나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먼저 찾은 것이 아닙니다. 최대 위기를 만난 야곱에게 하나님은 세겜에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불순종의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②그리고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어디로요? 벧엘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③그리고 거기 거하라는 것입니다. 벧엘을 떠나지 말고 거기서 살라는 것입니다. ④그리고 벧엘에서 무엇을 하라는 것입니까?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형 에서가 받을 축복권을 몰래 도둑질하고 피해 도망갈 때 만났던 벧엘에서 제단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제단을 쌓으라는 것은 30년 전에 했던 서원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30년 전 홀홀 단신으로 형을 피해 도망을 치던 야곱! 앞으로 어떤 삶이 자신에게 펼쳐질지 알지 못하는 두려운 상황입니다. 이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4가지의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 내가 너를 지켜 줄 것이다. / 너를 인도하여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 돌아올 때에 너와 네 집이 창대하게 될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과연 여호와께서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하고 그곳에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3가지 서원을 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①나는 평생 예배자가 되겠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②또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이곳에 제단을 쌓고 이곳에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③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게 물질을 주시면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라고 서원을 했습니다. 헌데 벧엘에 가까이 왔으면서도 세겜에 머물면서 서원을 이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적용-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일방적인 서원은 아닙니다만 그렇지 않으면 세겜에 머물다가 큰 일을 당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징계를 받습니다. 우리들은 급할 때는 약속을 합니다. 이렇게 이렇게 하겠다고 합니다. 헌데 막상 등따시고 편안하면 약속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간섭하십니다. 그래서 서원을 이루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맞고 할래? 그냥할래?’ 서로 옆사람에게 인사하겠습니다. “맞고 하시겠습니까? 그냥 하시겠습니까?” 헌데 더 중요한 것은 맞는게 축복입니다. 서원을 이행하지 않았는데도 아무런 일이 없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큰 일입니다. 하나님이 간섭해 주시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에게 매를 맞더라도 돌아오게 되는 것이 복입니다.) 야곱에게나 우리들에게나 벧엘은 어디입니까? 우리들이 머물러야 할 벧엘은 어디입니까? ‘벧엘에 올라가라’는 말은 (1)거기에서 다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야곱에게 벧엘은 원점입니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2)둘째로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첫사랑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3)셋째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시작하라. 저는 에스더의 고백이 너무 좋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마음을 딱 정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나가면 두려울 것이 무엇입니까? (4)이 시간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들이 머물 벧엘은 예배를 회복하는 것으로 다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신자들에게 예배란 무엇입니까? 예배는 신자들의 삶의 목적이다. 삶의 수단이 아닙니다. 예배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은 예배 받으시기 위해서 지음받고,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또한 예배는 신자들의 삶의 이유입니다. 신자들이 사는 이유는 예배입니다. 예배 드리도록 구원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올인하셔야 합니다. 현대어로는 예배에 올빵(?)해야 합니다. 도박에서 마지막 한 판에 모든 것을 다 거는 것을 몰빵이라고 합니다. 성도들은 예배에 몰빵해야 합니다. 거룩하게 말하면 예배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예배는 능력입니다. 예배는 나를 지키는 힘입니다. (예화)탄광촌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다 함께 둘러서 지하갱도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도시락을 펼쳤습니다. 헌데 한 사람은 도시락을 앞에 놓고 두 손 모으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헌데 이 때에 강아지가 기도하는 중에 도시락을 물고 도망을 갔습니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깔깔 거리며 웃었습니다. 기도하고 났더니 도시락이 없어졌습니다. 도시락을 물고간 강아지를 따라서 간 사이에 갱도가 무너져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는 교회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도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해야 합니다. (예화2)세계은행 부총재로 일하는 이희돈 장로가 있습니다. - 이 분의 사무실은 9.11테러로 무너진 뉴욕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있었습니다. 2001년 9월 11일 사건이 벌어지는 날 아침에도 이희돈 장로님은 아침 예배와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출근을 하려고 하는데 복통이 나면서 설사를 했습니다. 이일로 인해서 15분이 늦어졌습니다. 그 전에는 한 번도 출근 시간을 어긴 적이 없었습니다. 8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출근을 했습니다. 헌데 그 날은 갑작스런 복통으로 지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늦게 출근을 한 그날 오전 8시 45분부터 오전 10시 30분 사이에 항공기를 이용한 자살테러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이희돈 장로가 정시에 출근을 했다면 그는 죽고 말았을 것이다. 이희돈 장로님은 예배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자를 지켜 주십니다. 그러면 참된 부흥을 갖어오는 예배자의 바른 태도는 무엇입니까? 2절입니다. “ 세 가지 키워드-이것이 진정한 예배자의 태도이다. 2절“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 들의 의복을 바뀌어 입으라” 이 말씀에는 진정한 부흥을 가져오는 세 가지 키워드가 있습니다. 버리라 - 정결하게 하라 - 의복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1)버리라는 것입니다. 버려야 삽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원숭이를 이렇게 잡는다고 합니다. 병 안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과자를 넣어둡니다. 원숭이가 과자를 꽉 쥐면 손을 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오면 손을 놓고 가야 하는데, 쥔 손을 놓지 않아 잡힌다고 합니다. 그래서 원숭이를 잡으려면 빈병과 과자만 있으면 된다고 합니다. 버리지 못하면 죽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에서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그리스도인은 경주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헌데 경주를 잘 하려면 얽매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나쁜 습관, 잘못된 생각, 거짓, 불의, 교만, 시기, 질투, 술취함, 방탕함을 버리지 않으면 성장하지 못합니다. 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참된 예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2)둘째로 정결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물로 깨끗이 몸을 씻듯이 정결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더러우면 절대로 쓰임받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정결함은 마음을 깨끗케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여러 그릇들이 있습니다. 금 그릇도 있고, 은 그릇도 있고, 나무 그릇도 있고, 질그릇도 있습니다. 귀한 그릇이 있고, 천히 쓰는 그릇도 있습니다. 다양한 그릇들이 있습니다. 헌데 어떤 그릇들도 하나님께 쓰임을 받습니다. 그릇이 비싸냐? 싸냐? / 좋으냐? 나쁘냐?로 쓰임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용도에 따라서 모든 그릇이 쓰임을 받습니다. 헌데 절대로 쓰임 받을 수 없는 그릇이 있습니다. 더러운 그릇입니다. 더러운 그릇은 그것이 금그릇이라도 은그릇이라도 아무리 비싸도 쓰임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배자는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3)셋째로는 의복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의복을 갈아 입는다는 것은 성도들의 행실을 말합니다. 어둠의 옷, 거짓의 옷, 더러운 옷을 입지 말고, 의의 세마포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적용)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롭게 시작하고 싶습니까? 벧엘로 올라가십시오. 벧엘에서 다시 시작하십시오. 예배를 회복하는 것으로 다시 시작하십시오. 철저히 회개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할 때 반드시 하나님은 역사하실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예배의 성공자가, 인생의 성공자가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2.또 하나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람의 변화는 평생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생애를 생각하면 묻게 되는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사람은 진정으로 변화될 수 있는가?? 교인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불신자들이 신자가 되고, 새 신자가 믿음이 좋은 신자가 되는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 쉬운 것 같으면서도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도들의 변화를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는지 모릅니다. 특히 남성들의 변화를 위해서 날마다 기도합니다. 현실을 보면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도 다시 용기를 내는 것은 야곱 때문입니다. 야곱이 드디어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고, 참된 부흥, 변화된 것은 30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습니다. 우리는 이제 3-4년 되었으니까 아직 시간은 더 있습니다. 야곱은 10년 전에 얍복강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이체험은 영적으로 거듭남의 체험입니다. 헌데 여전히 세겜에 머물러 있습니다. 세겜에 머물수록 손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겜에서 최대의 위기를 맞았을 때, 하나님은 벧엘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헌데 하나님의 말씀이 진짜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들이 순종할 때입니다. 드디어 야곱은 벧엘로 올라왔습니다. 7절입니다.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하나님의 집)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라” 비로서 서원을 온전히 이루고 참된 예배를 드리기까지 30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10절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드디어 변화된 것입니다. 드디어 하나님은 야곱을 이스라엘이라 불러주셨습니다. 10년 전에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헌데 10년이 가도 여전히 세겜에 머물러 있다가 큰 위기를 맞은 야곱을 찾아오셨을 때, 하나님은 야곱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아직도 온전히 변화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헌데 벧엘에 올라와서 거기서 서원약속을 다 지키고, 예배함으로 다시 시작하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드디어 이스라엘이라 불러주셨습니다. 참으로 오래도 걸렸습니다. 30년이 돼서야 야곱은 진정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적용)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남편들, 자녀들, 전도대상자들...에 대해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저도 더 용기를 내고 성도들의 변화를 위해서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세겜이 더 살기 좋습니다. 영적으로 세겜과 벧엘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세겜과 벧엘은 오늘 날에는 예배자의 태도를 말합니다. 세겜은 여전히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습관들을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어울리면서 주일날에는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신자 같은데, 세상에서는 불신자와 다를 바가 없는 삶을 산 것입니다. 이것은 세겜에서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순종을 원하십니다. 세겜이 아니라 벧엘로 올라오길 바라십니다. 세상 속에서 신자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불편한지 모릅니다. 얼마나 힘들고, 희생을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벧엘에 있을 때 진정 구원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세겜에 있을 때는 야곱입니다. 허나 벧엘에서 다시 시작했을 때 드디어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 아직 세겜에 있습니까? 아직 야곱처럼 사십니까? 이제는 벧엘로 올라가십시오. 벧엘에서 새 출발을 하십시오. 이스라엘로 사십시오. 그리하면 진정한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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