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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배우는 레슨(2) 이병수목사 2011-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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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10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창세기 40:4-8

제목:감옥에서 배우는 레슨(2)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큰 기쁨을 안겨 주셨습니다. 2018년 강원도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바라기는 이 일을 통해서 한 단계 국가 발전이 이루어지고, 국민들이 하나로 통합 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도 나도 동계올림픽 유치 경쟁에서 얻은 승리가 기쁘고 짜릿한 것은 뼈아픈 실패 다음에 얻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승리할 것이고, 승리하기까지 겪은 실패는 결코 실패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실패 속에서 배울 수 있다면, 실패 때문에 더 성장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절대로 실패한 것이 아니다. 실패 속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이 유일하게 실패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성공으로 가는 과정이 실패입니다. 실패와 고난 없는 인생이 어디에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고난 속에서 자랍니다. 고난 속에서 인내할 때 믿음은 더욱 견고해지고, 마음은 더욱 넓어집니다. 고난을 제대로 다룰 줄만 안다면 고난만큼 인생에 유익을 주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한 평생을 산 사람에게 “당신의 인생 가운데 가장 유익했던 시간이 언제였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이구동성으로 사람들은 고난 당할 때를 말할 것입니다. “내가 고난당할 그 때에 내 인생이 깊어졌고 내가 성장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때 그 어려움이 없었다면 지금에 나는 없었을 것입니다.”라는 고백을 듣습니다.

 

이런 눈으로 보면 감옥에 갇힌 요셉은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감옥이 고난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망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인생가운데 요셉과 같이 감옥에 갇히는 것과 같은 어려움이 올 때에 기억해야 합니다.

감옥에서 배우는 레슨!!! 첫 번째가 무엇이었습니까?

1.만남을 소중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갇힌 감옥에서 술 맡은 관원장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이 만남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만남이었습니다. 우리의 만남도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내게 도움이 되든 되지 않든, 나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만남일지라도 모든 만남은 하나님이 주신 만남입니다. 그러므로 그 만남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 만남을 성숙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 감옥에서 주님을 찾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감옥만큼 주님을 만나기에 좋은 곳은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 감옥에서 배우는 레슨 두 번째....

2.만남을 섬김의 기회를 삼으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일을 만나면 ①하나는 그 사실을 부정하면서 강력하게 저항하는 것입니다. 사실을 인정하면 좋겠는데, 자기 마음에서부터 인정하지 않습니다. 남탓을 하고, 원망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적대적이 됩니다. ②또 어떤 사람들은 그 상황으로부터 도망칩니다. 아--몰라 몰라! 외면하는 것입니다. ③우울함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달팽이처럼 자기만의 세계로 숨어 버립니다. 바깥출입도 안하고, 사람들과 연락도 끊고, 숨어 버립니다. ④넷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바로 요셉이 그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 4절을 보겠습니다. 다 함께 읽습니다. “친위 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이 말씀은 요셉의 삶을 한 줄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변함이 없던 사람입니다. 아버지의 아들로 있을 때나, 보디발 집의 종으로 있을 때나, 감옥에 있을 때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도에 변화가 없습니다.

(적용)사랑하는 우리 성도들도 어떤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이 없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부요할 때나 가난할 때, 병들어 있을 때나 건강할 때나, 일이 잘 될 때나 일이 잘 되지 않을 때나, 높은 위치에 있을 때나 낮은 자리에 처할 때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이 없기를 바랍니다.

 

(예1)요셉이 요셉되게 된 것이 감옥이었다면 다윗이 다윗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둘람 동굴입니다. 아둘람 동굴은 이스라엘과 이방나라 블레셋의 국경지역에 있는 동굴입니다. 다윗은 지금 사울왕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겠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쫓기고 쫓겨 국경지역까지 왔습니다. 아둘람 동굴 속에 숨어 있습니다. 헌데 어떻게들 알았는지 다윗에게 사람들이 찾아 옵니다. 재산이 몰수 된 사람, 종으로 팔릴 위기에 처한 사람,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된 사람, 병든 사람들이 하나 하나 다윗을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인 사람들이 400명이나 되었습니다.

지금 다윗은 자기 자신하나 건사하기도 힘듭니다. 헌데 400명의 사람들이 왔습니다. 그것도 하나같이 다윗이 돌봐줘야 할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도망쳐 온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다윗에게 걸림돌이 되면 되었지, 도움 될 만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헌데 다윗은 어떻게 합니까? 나 몰라라 합니까? 화를 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400명을 섬기기 시작합니다.

①먼저 아둘람 동굴을 예배당이 되게 했습니다. 400명이 숨어 있는 곳이 환경적으로 얼마나 열악하겠습니까? 헌데 그곳에서 가장 먼저 예배를 드렸습니다. 서로 원망하고, 미워하고, 상처 때문에 싸우고, 힘들어할 사람들과 함께,,, 역발상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불평대신 감사를, 원망대신 찬양을, 슬픔대신 기쁨을, 근심/걱정대신 평안을 예배를 통해서 누리게 했습니다.

②그리고 그들 가운데 건장한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구해옵니다. 음식을 얻기 위해서 적대 국가들과 전쟁도 불사하고 먹을 것을 구해와 그들을 섬깁니다.

③또한 그들에게 소망을 줍니다. 장차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이 동굴에서 구원하신다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는 나라를 만들자고 꿈을 줍니다. 이것이 다윗의 섬김이었습니다.

 

아십니까? 훗날 다윗왕가가 세워질 때 다윗의 최측근들, 다윗을 위해서라면 생명도 내놓을 사람들이 모두 아둘람 출신들입니다. 다윗이 너무나 힘들 때 자기 코가 석자일 때, 그럼에도 사랑하고 섬겼던 그들이 다윗왕국의 충신들이 되고, 기둥 같은 자들이 됩니다.

 

사실 지금 요셉도 인간적으로 누구를 섬길 형편이 아닙니다. 자신도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기 문제만으로도 너무 힘듭니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섬깁니다.

(적용)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힘들 때는 남을 돕지 못합니다. 남들도 내가 좀 도울 형편이 되었을 때 섬기는 것이지... 지금 내가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죽겠는데,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느냐?고 합니다. / 내가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데, 어떻게 병든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느냐? / 내가 실직을 당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도 산더미처럼 많은데... 남들을 돌아볼 시간이 어디에 있느냐? 이런 상황에서 내가 누구를 위로하고 섬길 수 있단 말이냐?라고 말합니다.

더욱 더 큰 문제는 하나님도 그렇게 섬깁니다. 형편이 좋고, 마음의 여유가 있고, 평안하면 그 때 섬기겠다고 합니다. 지금은 내가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교회 갈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봉사도 다 여유 있을 때나 하는 것이지...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합니다.

또 급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은 뒷전입니다. 예배도 나오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너무 힘든데... 목자, 교사 난 못해!!! 급한 일이나 끝내놓고 여전도회도 하고, 기도도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을 때에 역발상이 필요합니다. 너무 힘듭니까?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 너무 문제가 많습니까? 그러니 주님께 나가야 합니다. / 부도위기입니까? 망할 것 같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해야 합니다. / 당장 먹고 살 것이 없습니까? 그럼에도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 너무 바쁘고 할 일이 많습니까? 그러니까 가던 길을 멈추고 골방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본문)

어떻게 요셉은 자기도 힘들고 어려울 때에도 한결 같이 관원장들을 섬길 수 있었습니까? 앞에서 살펴 보았는데요. 요셉의 일관된 삶의 태도를 한 눈에 알 수 있게 하는 말씀이 본문 4절에 있습니다. 4절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그들을 섬겼더라”입니다. “섬겼다”는 말의 히브리어는 ‘솨라트’입니다. 이 ‘솨라트’라는 말은 아주 독특한 단어입니다. 보통 히브리어는 하나님에게 사용하는 말과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말이 엄밀하게 구별되어 있습니다. 헌데 ‘솨라트’라는 말은 독특하게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동시에 쓰고 있는 단어입니다.

 

신명기 21장 5절에 “레위 자손 제사장들도 그리로 갈지니 그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사 자기를 섬기게 하시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신 자라” 여기서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를 섬기게 하시며” 할 때 쓴 단어가 ‘솨라트’입니다. 레위 자손 제사장들을 선택하신 이유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도록 구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동시에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모세를 수종 들었다라고 할 때에 사용한 단어도 ‘솨라트’입니다.

 

이처럼 요셉은 두 관원장들을 섬길 때, 하나님을 섬기듯 하였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눈에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 인생가운데 만난 사람들... 그들이 내게 이익이 되든 안되든, 내가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지 단순히 사람으로만 보지 말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수라도 내가 원수 갚지 않습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다는 말씀을 믿고, 내가 저주하고, 내가 원한 갚고, 내가 정죄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요셉의 섬김은 세 가지였습니다.

(1)먼저 얼굴 빛을 살폈습니다. 6절입니다. “아침에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전날 밤에 두 관원장들이 각각의 꿈을 꾸었습니다. 헌데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데 이것을 요셉은 알아 보았습니다.

사람들의 얼굴 빛을 살피는 것이 뭐가 어려운가? 생각할 것입니다. 헌데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두 관원장들은 당시 신적인 존재인 바로 왕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왕을 섬기는 사람들이기에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절대로 드러내면 안 됩니다. 집안에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잔뜩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으면 절대로 안됩니다. 이런 훈련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들이기 자신의 마음을 쉽게 들킬 사람들이 아닙니다. 헌데 요셉은 그것을 알아냈습니다.

어떻게 요셉은 그들의 얼굴을 보고, 마음속에 근심이 있는가?를 알 수 있었을까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사랑하면 보여요. 존재하지 않더라도 사랑하면 보입니다.

 

상대의 마음도 이웃의 아픔도

그냥 보아서 보는 것은 아름다운 게 아니에요.

 

마음으로 보는 것

사랑으로 인해 보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랍니다.

(서로 함께 인사-사랑하면 보입니다.)

 

(적용1)하나님의 사랑이 보이길 축복합니다. 성경을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이 보이길 바랍니다. 십자가를 바라 볼 때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보이길 바랍니다. 영적인 눈이 열려 하늘을 보고, 꽃을 보고, 아름다운 강산을 보면서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적용2)베드로와 요한은 늘 성전에 기도하러 오고 다녔습니다. 늘 다니는 길이었습니다.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던 앉은 뱅이를 늘 보았습니다. 헌데 어느 날에는 앉은 뱅이가 정말 보였습니다. 불쌍하게 보였습니다. 너무 안타깝고 불쌍하여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난 뒤에는 저도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저를 자유케 하시길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래서 다가가 손을 잡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였습니다. 그러자 곧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사람들의 아픔이 보이는 것입니다.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적용3)주만 바라볼찌라는 찬양 가사 중에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라는 찬양이 있지 않습니까?

(적용4)헌데 오늘 날은 서로에 대해서 너무나 무관심합니다. 무슨 아픔이 있는지, 무슨 고통이 있는지 전혀 헤아리지를 못합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남편의 마음을 볼 수 있길 바랍니다. 아내의 마음을 아십니까? 성도들의 얼굴 속에 담긴 근심의 빛을 볼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자기 문제에만 갇혀 자신밖에 볼 줄 모르는 성도들이 되지 않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의 영적인 눈이 열려서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 깃든 근심 빛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2)그리고 요셉의 섬김은 물어봐 주는 사랑이었습니다. 물어볼려면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두 관원장의 얼굴을 살피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7절에서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라고 묻습니다.

(적용)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한다는 것이 참 쑥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마음은 있는데... 묻기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틀림없이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서 물어 봐 주세요?

“별일 없습니까? 힘들지는 않습니까? 힘들어 보이는데, 무슨 일이 있는 것입니까? 하는 일은 잘 됩니까? 직장생활은 할 만하십니까?”

(3)그리고 세 번째 요셉의 섬김은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요셉이 물어보니까 관원장들이 대답을 합니다.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해석할 자가 없도다.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 같은데... 도무지 알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때 요셉이 그들에게 말합니다. 8절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①해석은 하나님께 있다는 고백은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당시에는 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앞으로 하실 일들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꿈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일이 되고 안 되고는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고백입니다. ②또한 해석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을 증거한 것입니다.

(적용)가장 큰 섬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하는 섬김만큼 가장 큰 섬김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 사람의 문제를 내가 해결 못합니다. 그 때에 그 문제를 해결하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라고 전하는 것입니다.

 

지금 죄와 사망으로 죽어가는 영혼, 그대로 두면 지옥에서 영원한 불가운데서 고통 받아야 할 영혼들인데... 그들을 사랑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실 분임을 전하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이요 섬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기 문제만으로도 너무 힘든 요셉!!!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붙여주신 사람들을 진심으로 섬겨 주었던 요셉!!! 영적인 통찰력을 갖고 사람들의 마음을 살피고, 다가가 물어봐주고, 위해서 기도해주고, 하나님을 전해주는 섬김의 삶을 산 요셉!!!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을 잘 섬김으로 훗날에 술 맡은 관원장에게 은혜를 입어 바로 왕을 만나고,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감옥에서 배우는 레슨 둘!!!! 만남을 섬김의 기회로 삼으십시오. 내 문제에만 빠져있지 말고,,, 역발상으로 그럼에도 사랑하십시오. 충성하십시오. 섬기십시오. 힘드니까, 너무 바쁘니까 그러니까 섬기십시오. 그리하면 요셉의 결국을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의 섬김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두 기억하신 바가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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