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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뱅이신앙에서 뛰는 신앙으로 이병수목사 2011-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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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2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사도행전 3:1-10

제목:앉은뱅이 신앙에서 뛰는 신앙으로

오늘 본문의 사건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1.성전 안에는 예나 지금이나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모습은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의 신앙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1)1절에 보면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성전에 올라가는 자가 있습니다. 무엇을 하러 성전에 올라가는 것입니까?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날은 안식일이 아닙니다. 평일입니다. 평일에도 성전에 기도하기 위해서 올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믿음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입니다. 교회 안에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2)반대로 2절에 보면 “나면서 못 걷게 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사람들이 메고 와서 성전 문에 두었습니다. 이 사람은 성전에 무엇을 하기 위해서 온 것입니까? 구걸하기 위함입니다. 이 사람의 방향을 생각해 보십시오. 성전을 등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전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전에는 나옵니다. 헌데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오지 못합니다. 성전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성전에 있지만, 성전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오늘 교회에는 나왔습니다. 허나 베드로와 요한과 같이 하나님을 향하여 더 깊히 깊히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성전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가에 앉아 있기만 한 사람입니까?

 

허나 우리는 오늘 앉은 뱅이 신앙을 갖은 사람이 변화되어 뛰는 신앙이 되었다는 것을 봅니다. 편의상 앉은 뱅이라는 표현을 이해해 주십시오. 나면서부터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결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8절입니다.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게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할렐루야!

앉은 뱅이 신앙이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 신앙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오늘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이런 은혜와 변화가 일어나길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2.성전 미문?

사람들은 앉은 뱅이를 메고 와서 어디에 두었습니까? 미문이라는 예루살렘 성전 문에 두었습니다.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 당시 예루살렘 성전의 구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전의 역사는 솔로몬 성전 ➔ 스룹바벨 성전 ➔ 헤롯성전입니다.) 이 당시 성전은 헤롯왕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리모델링한 성전입니다. 성전의 구조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집안에 계신 아버지를 만나려면 대문을 열고 들어가서 현관문을 열고, 안방문을 열고 들어가야 아버지를 만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신 성전도 여러 뜰과 문을 통과하여야 가장 깊숙한 곳 지성소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❶이방인의 뜰입니다.(이방인의 뜰은 아직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이 들어올 수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장사꾼들의 상을 둘러 엎으시면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신 곳이 이방인의 뜰입니다.) ➔ ❷ 다음은 여인의 뜰입니다. (유대 여인들이 들어 올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두 렙돈을 바친 여인을 칭찬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곳에 헌금함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 ❸다음은 유대인의 뜰입니다. (유대 남자들이 들어 올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유대 남자들은 하루 세 번씩 기도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이곳에 기도하러 올라온 것입니다.) ➔ ❹다음은 성소(제사장들만이 들어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 떡상과 금촛대, 분향단이 있습니다.) ➔ ❺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성소입니다. (이곳은 대제사장이 일 년에 단 한 번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있습니다.)

 

그러면 미문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이방인의 뜰에서 여인의 뜰 사이에 있는 문입니다. 성소로 들어가는 주출입구가 미문입니다. 미문은 Beautiful Gate 라고 합니다. 매우 웅장하고 아름다운 문입니다. 문의 높이가 23m입니다. 놀라지도 않으시네... 문짝은 황동으로 만들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 문의 화려함은 이루 형언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헌데 가장 아름다운 성전 문 앞에 가장 초라하고 불쌍한 사람 앉은 뱅이가 앉아 있습니다. 얼마나 넌센스입니까? 얼마나 안타까운 사실입니까?

 

3.변화되기 전 앉은뱅이 신앙을 살펴 보겠습니다.

(1)앉은 뱅이 신앙이란 끌려나오는 신앙입니다. 의존적인 신앙입니다. 이 사람은 사람들이 메고 나왔습니다. 자기 발로 자기 힘으로 나올 수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 중에도 누가 끌어줘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 때문에 나오는 신앙입니다. (예)엄마 때문에... / 아내 때문에...나오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목사님이 전화해서... 아는 사람이 나오라고 해서... 나오는 신앙입니다. 처음에는 그래야 합니다. 처음부터 믿음을 갖고 나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군가가 끌어줘야 합니다. 허나 이 사람은 40대의 남자입니다. 그렇다면 성전에 나오기 시작한지 30여년이 지났을 것입니다. 10년이 가도, 20년이 가도 남들이 끌어줘야 하는 신앙이라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수십년이 지나도 자기 스스로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허나 수십년이 지나도 앉은 뱅이 신앙이라면 그것은 심각한 것입니다. 이 사람은 수 십년을 성전에 나와도 참 예배의 감격을 맛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말씀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죄사함의 은혜와 감격을 맛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2)이 사람의 신앙은 구걸신앙입니다. 이 사람이 성전에 나오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몇 푼의 돈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적용)새신자 때는 그럴 수 있습니다. 기도제목도 자기 중심적입니다. 나를 사랑해주시고, 나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나의 병을 고쳐주시고, 나의 자녀들을 살펴주시고, 하는 일마다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날마다 자라가야 합니다. (예)현규나 연호는 보살핌을 받아야 합니다. 엄마 아빠가 모든 것을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사랑을 마음껏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10살이 되고 20살이 되었으면 그 나이에 맞게 자라서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합니다. 받았던 사랑을 이제는 나누어 줄 수 있도록 자라가야 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헌데 앉은 뱅이 신앙은 수십년이 지나도 구걸신앙입니다.

(3)앉은 뱅이 신앙은 보이는 복만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주시고 싶어 하시는 것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복입니다. 성경은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했습니다. 헌데 우리는 무슨 복을 구하고 있습니까? 어린 아이처럼 자기밖에 모릅니다. 현실적으로 보이는 복만을 구합니다. 하루 빨리 장성한 분량이 되어 섬길줄도 알고, 희생할 줄도 알고, 사명을 감당할 줄도 아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헌데 앉은뱅이 신앙이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 신앙으로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두 가지 능력이 임했습니다.

(1)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이 임했습니다. 이 사람을 일으킨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이었습니다. 빌립보서 2장 5-11절의 말씀을 우리말 성경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5.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던 마음이기도 합니다. 6. 그분은 본래 하나님의 본체셨으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기득권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 오히려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이 되셨습니다. 8. 그리고 그분은 자신을 낮춰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10. 이는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질병을 치유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자만이 죄사함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악한 마귀와 귀신들의 역사를 이길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경험)저는 대학시절 인간적으로는 너무 무섭고 떨렸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할 때 귀신이 떠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정상인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질병을 치유 받은 적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근심과 걱정을 이긴적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고 운명을 새롭게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적용)저는 여러분들이 찬양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체험하길 바랍니다. 찬양이 터지길 바랍니다.

고전 같은 찬양이지만,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뜨겁게 뜨겁게...성령충만으로 성령충만으로 뜨겁게 뜨겁게’ ‘예수님 찬양 예수님 찬양 예수님 찬양 합시다.’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찬양을 반복해서 부르고 또 부르면서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되고, 외로움을 극복한 적도 있습니다. 두려움이 몰려오면, 외로우면, 답답하면, 찬송을 부르시길 바랍니다. 부르고 또 부르다보면 성령의 만져주심을 경험하게될 것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우리를 살게 하시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이 길입니다. 행복한 길, 자유한 길, 기쁨의 길, 영원히 사는 길은 오직 예수이십니다. 예수님이 진리이십니다. 이 세상의 것은 다 변합니다. 다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만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생명이십니다. 영원히 사는 길은 오직 예수를 믿는 길뿐입니다. 할렐루야! 앉은 뱅이를 일이킨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었습니다. 이 능력이 저와 여러분 가운데도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2)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능력이 있어도 선포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성령충만한 자들의 사랑의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베드로와 요한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가던 길을 멈추고 앉은 뱅이의 오른 손을 잡고 선포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참고)이들을 통해서 우리는 성령 충만한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①눈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에 오고 갈 때마다 늘 보던 사람이었습니다. 헌데 이날은 다르게 보였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은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예화)지난 주간에 이민아 목사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이민아 목사하니까 잘 모르시는데, 한국의 지성인 이어령 교수의 딸이 이민아 목사입니다. 이 분이 한 번은 갑상선 암 수술을 받았다고 합니다. 수술을 받고 나니 숨을 쉴 수 없습니다. 얼마나 숨을 쉬는 것이 고통스러운지... 편안하게 숨을 들이 마시고, 내쉴 수만 있다면 백만불이라도 내겠다고 했습니다. 한 번은 망막손상으로 인해서 시력을 잃어갈 때였습니다. 얇은 망막이 찢어지지 않고 평생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은혜받고 눈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기적인가? 숨을 내쉬고 내뱉는 것이 기적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것이 기적이다. 하늘을 볼 수 있는 것이 감사이다. 더 무엇을 바랄까?

이것이 성령충만한 자들의 모습입니다. 보는 눈이 다릅니다.

②또한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영적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보세요. 베드로와 요한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허나 기도가 끝나고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은 미문 앞에서 외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다.” - 믿음이 약할 때는 이것은 열등감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생활이 안 풀릴까?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도 저렇게 잘 사는데... 나는 이게 뭔가?하며 비교합니다. 기가 죽습니다. 헌데 하늘의 신비를 경험하고 나니 이 땅의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화)지난 주간에 오창학 목사님을 모시고 부흥집회를 했습니다. 참석하신 분들은 아시지만, 이분은 명설교가도 아닙니다. 스피치가 좋지도 않습니다. 헌데 이분은 삶으로 설교하시는 분입니다. 삶으로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분임을 압니다. (봉투를 보여주면서) 이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부흥회를 마치고 사례비를 드렸습니다. 사례비를 받으신 목사님은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기도내용은 부족한 종에게 감사하게 사례비를 주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러시고 난 다음에 뜯어보지도 않으시고... 준비한 봉토에 그대로 넣으셔서 다시 건축헌금으로 내셨습니다.

드린 건축헌금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10년 안에 성전건축의 열매가 맺어지길 바란다면서 그대로 헌금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질이 싫은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성령이 충만한 신자들은 은과 금 때문에 기죽으면 안됩니다. 은과 금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서서 걸으며” 할렐루야!

이것이 영적인 자부심입니다. 줄 것이 있는 인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으로 사는 자입니다.

③또한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은 기쁨이 넘칩니다. 이민아 목사님의 남편은 변호사, 이민아씨는 검사였습니다. 헌데 어느 날 집안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금고에 시민권, 중요한 서류, 결혼 패물과 부모님께 물려받은 보석들을 한 보자기에 싸서 금고에 넣어 놓았습니다. 헌데 금고채 들고 가버린 것입니다. 헌데 신기하게도 걱정이 안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쁘더라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괜찮아요. 40일 특별새벽기도 중에 도둑맞은 것은 더 좋은 일이 있을 징조예요.” 남편은 정신 이상자로 보더라는 것입니다.

헌데 후에 미국은 집에 대해서도 보험을 드는데... 원래 보험내규에는 보석과 현금은 보상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헌데 보험회사 실수로 보험가입서와 정관이 담긴 바인더를 한 달 늦게 전달해 주었습니다. 바인더가 오기 전에 도둑을 맞아서 내규를 몰랐기에 그 기간 안에 도둑맞은 현금과 보석은 예외적으로 보상을 다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둑맞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상받았다는 것입니다.

보상받은 것이 기쁜 것이 아니라, 도둑을 맞은 불행한 상황속에서도 기쁨을 넘치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충만한 자의 특징인 것입니다.

5.그러면 성령충만한 자인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서 전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으로 이 사람은 앉은뱅이 신앙에서 뛰는 신앙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1)앉은 뱅이 신앙에서 예배하는 신앙이 되었습니다. 8절입니다.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2)구걸신앙에서 선포하는 신앙으로 변화되었습니다.

9절입니다.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이 사람은 예수를 증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단 한 번도 예수를 전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헌데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를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3)또한 얻어먹는 신앙에서 남들을 먹이는 신앙이 되었습니다. 구걸하던 사람이 이제는 건강해져서 스스로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번 돈으로 남들을 돕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자립하는 신앙이 되었습니다.

(4)죽지 못해서 억지로 살던 신앙에서 예수로 인해 기쁨이 넘치는 신앙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사람은 예수 만난 기쁨으로 날마다 천국같은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가장 좋은 복은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우리 모든 미래교회 성도들이 앉은 뱅이 신앙에서 걷고 뛰기도 하는 신앙으로 거듭나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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