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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축복(2) 하나님의 사랑 이병수목사 2011-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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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16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창세기 49:8-12

제목:야곱의 축복(2)-하나님의 사랑

지난 주 수요일 저녁 피택 항존직분자들 성경공부가 있었습니다. 성경공부중에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을 데려가시려는데 유언을 남길 시간밖에 없다면, 어떤 유언을 하겠습니까?’하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짧은 나눔이었지만, 숙연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제일 행복한 남편은 윤장로님인거 같습니다. 정권사님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말이지만, 나와 한평생 살아줘서 고맙고, 다시 태어난다 해도 당신과 결혼하고 싶다”는 말을 남기겠다는 것입니다. / 자녀들에게 “예수 잘 믿어라. 더 좋은 엄마가 돼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주일성수 잘하고, 십일조 생활 잘 해라”는 유언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혜원이가 있을 때)김명숙 집사님은 ‘엄마 때문에 믿는 믿음이 아니라, 엄마가 떠나가도 엄마보다 더 하나님을 잘 믿는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와 인이에게)조중성 집사님은 ‘아빠는 잘 살지 못했는데, 너희들은 아빠보다 더 잘 믿고, 더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빛나에게)유경희 집사님은 “예수님 다음으로 사랑하는 힘찬이와 빛나의 엄마로 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다. 예수 잘 믿어 나중에 천국에서 만나자”라고 했습니다. (적용)여러분들은 유언을 남길 시간 밖에 없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아버지 야곱이 12아들을 불러놓고 한 사람 한 사람씩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축복이라고 하지만 유언에 가깝습니다. 또 야곱의 12아들 당대에 누릴 축복이라기 보다는 12아들의 후손들을 통해서 행하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보여주시는 비전의 말씀입니다.

사실 야곱의 축복이라고 했지만, 내용을 보면 말이 저주에 가깝습니다. 유다와 요셉 말고는 모두가 저주에 가깝습니다. 아버지 야곱의 개인적인 마음 같아서는 누구를 축복하고 싶었을까요? 요셉과 막내 베냐민일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장차 행하실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예언하는 것이기에 유다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1.그러면 먼저 우리가 생각해 보길 원하는 것은 유다가 축복을 받은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유다가 이렇게 복을 받은 이유가 무엇이냐? 것입니다.

(1)많은 사람들은 유다가 축복받을 만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 우리들이 이미 살펴 본 바와 같이 유다가 살고 있는 땅에 큰 가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막내 동생 베냐민 데리고 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에 보여준 유다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헌신적이었습니다. 요셉이 형들을 시험하려고 은잔을 베냐민의 곡식 자루에 숨깁니다. 그리고 베냐민만을 노예로 삼으려고 잡습니다. 그 때 유다가 간청을 합니다. “우리가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다만 베냐민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자라. 만약 베냐민을 잃으면 늙으신 우리 아버지가 충격으로 죽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슬픔가운데 돌아가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베냐민 대신 노예가 되겠습니다. 내가 대신 남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충분히 유다는 복을 받을 만한 의로운 행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선한 행동을 했다고 해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엄청난 축복을 받기에는 유다의 행실이 아름답지 못합니다. 만약에 유다가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받은 것이 의로운 행동이었다고 하려면 창세기 38장 같은 수치스러운 일들은 감추어야 했습니다. 성경은 유다가 며느리와 음란한 행동을 한 것을 있는 그대로 밝히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유다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유다는 이런 엄청난 축복을 받을 만큼 의로운 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다가 이런 엄청난 축복을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결정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유다가 받은 축복은 복음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유다는 이런 축복을 받을 만한 의로운 사람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복음은 은혜입니다. 은혜는 벌 받을 자에게 상 주시는 것입니다. 죽을 자를 살려 주시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로마서 8장 30절은 구원의 4단계가 나옵니다. 헌데 이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하나님이 부르시고, 하나님이 부르신 그들을 또한 하나님이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이 의롭다 하신 그들을 하나님이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기억하세요. 우리 편에서는 값없이 받는 선물이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신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뻔뻔하지만 받을 자격이 안 되지만 주신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깨달아지면서 ‘내가 이런 큰 사랑을 받았구나! ... 내가 이런 사랑을 받을 만한 자가 아닌데...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는구나! 깨달아지면 스스로 철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단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받았으면서도 이렇게 살아서 되나?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지... 스스로 결단을 하는 것입니다.

매 맞을까봐 이러다가 저주 받을까봐서 하는 것은 종입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지! 하는 것은 종입니다. 헌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받을 자격이 안 되는데. 복을 받았습니다. 영생을 얻었습니다. 천국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감사해서,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해서 충성도하고 헌신도 하는 것입니다.

 

유다가 놀라운 축복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49장 2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12아들들이 받은 축복이 이들이 행한 분량대로 받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의 주어도 하나님이십니다.

2.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받을 분량은 하나님이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각 사람의 분량대로 하나님이 축복하였더라”는 것입니다. 행복의 시작은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헌데 우리는 이것이 잘 안 믿어집니다. 이유가 무엇이냐면 선한 행위로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적용)기도를 두 시간 하면 응답해 주시고, 20분 하면 응답이 안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함정이고 유혹입니다. 마귀에게 속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생기면 자신을 더 힘들게 합니다. 더 금식을 하고, 철야를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려고 뭐라도 하려고 합니다. 응답이 안되는 것은 아직 내 정성이 부족한가 보다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지, 종이 아닙니다. 종은 주인에게 잘 보여야 합니다. 주인을 기쁘게 해드려야 칭찬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허나 자녀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는 관계 때문에 복을 받는 것입니다. 자식이 잘하면 좋지만, 못해도 자식입니다. 우리가 잘못하면 아버지께서 마음이 아프시기는 해도 그렇다고 관계를 끊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시니까 마음대로 해도 되겠네! 어짜피 관계는 끊어지지 않으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면서도 일부러 불효한다면 그것이 어찌 좋은 자식이겠습니까?)

 

유다가 선한 일을 해서 이런 은혜를 받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가문에 은혜를 부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은 복을 부어 주셨습니다.

(예1)2011년 10월 16일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분량대로 복을 받은 것입니다. (예2)여러분의 가정도 하나님이 주신 분량대로 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다면 불평할 것이 없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예3)우리가 잘 아는 달란트 비유가 있습니다. 이 달란트 비유가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➀서로 비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교하니까 불행한 것입니다. 주인의 뜻대로(하나님 뜻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어떤 이에게는 두 달란트, 어떤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신 것입니다. 헌데 서로 비교하면서 불평하고 원망한다면 되겠습니까? 우리 교회에 주신 분량이 있습니다.

➁또 주신 분량을 갖고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다섯 받은 사람은 다섯 받은 사람답게 살면 됩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원망할 것이 없습니다.

➂중요한 것은 한 달란트도 결코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명 교인을 이끌어 가는 것도 힘들지만, 150명 이끌어 가는 것도 힘듭니다. 이것도 작은 것이 아닙니다.

➃더 더 중요한 것은 작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 장차 큰 일도 맡겨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작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여 사명을 다하면, 내일에는 하나님이 더 큰 사명을 맡겨 주시는 것입니다.

➄그리고 다섯 받은 사람이나 둘 받은 사람이나 칭찬내용은 똑같았습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적용)그러니까 주신 분량대로 감사하고, 충성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분량대로 영광 돌리면 되는 것입니다.

 

3.그러면 유다가 받은 축복이 무엇입니까?

(1)8절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하나님이 가장 으뜸이 되는 가문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2)또한 10절에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규는 홀이라고 하는 왕들이 들고 있는 작은 지팡이입니다. 유다의 후손들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후손을 축복하셨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다의 가문에서 이스라엘 왕이 세워졌습니다. 그가 다윗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이 왕의 가문으로 복을 받습니다.

(3)그러면 유다와 그의 후손들만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유다의 축복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유다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조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축복하셔서 우리 모든 인류를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을 상징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①먼저 사자입니다. 사자가 움켜 잡으면 그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사자를 당할 동물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은 결단코 죽음이 넘보지 못합니다. 어둠의 영인 악한 마귀와 귀신들이 넘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②둘째는 포도나무와 포도주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응답하리라”

“포도주는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을 상징합니다. 성찬식 때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예수의 피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죄를 씻어 주시는 예수님의 보혈을 믿는 것입니다.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이다.’

③셋째는 10절입니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중요한 말씀은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실로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유다에게 주신 축복은 하나님의 원대한 비전과 계획이 담겨 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구원자를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으로 고통하고 신음하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유다에게 주신 축복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4.유다를 통해서 약속하신 예수님은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왜 예수님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9-10절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이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설명)저는 아버지의 사랑을 잘 모르고 자랐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20여년을 가족과 떨어져 직장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헌데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키우면서 아이들을 향해 갖는 마음과 사랑이 하나님의 마음이시겠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아들이 둘 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주영이를 다 미워해서 죽이라고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합니다. (주영이의 양손을 벌리고 십자가에 못 박힌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지금 제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위기입니다.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막든지... 아니면 아들을 대신해서 죽든지... 할 것입니다.

 

헌데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 밖에 없는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씻기 위해서 그 아들을 죽이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자녀들을 끔찍이 사랑하시죠? 그러나 죄인들을 살리려고 그 자녀를 대신 내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려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사랑과는 비교도 안되는 사랑을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예화)그렇게 방황하고 엄마의 맘을 아프게 하던 아들이 어느 날 집에 와서 엄마를 꼭 안고 울더랍니다. 왜 그러냐고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친구들에게 들어보니, 학교에 같은 반 아이 엄마가 죽었답니다. 엄마와 딸이 집으로 돌아가는데, 기차 건널목에서 운전 미숙으로 시동이 꺼지고, 당황해서 미처 달려오는 기차를 피하지 못하고 추돌사고가 일어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니까 순간적으로 엄마는 아이를 차 밖으로 밀어내고, 자신은 피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 엄마를 생각하면서 우리 엄마도 똑 같은 경우라면 나를 살리고 엄마는 죽을텐데... 내가 이렇게 사랑을 받고 있는데... 엄마의 사랑을 깨달으면서 방황을 끝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지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면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당신의 독생자 예수를 우리 위해서 죽이시면서까지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와 함께 하는데, 우리가 망하겠습니까? 하나님의 품에 안기십시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 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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