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음성을 듣는 삶 | 이병수목사 | 2011-12-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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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1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요한복음 10:27-28 제목:주님의 음성(레마)를 듣는 삶 고린도후서 13장 5절 말씀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구약에 하나님은 멀리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육신을 갖고 계신 주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믿는 자들에게는 누구나 함께 하실 수 있도록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 마음속에는 이미 성령으로 주님이 와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내 안에 계신 확실한 6가지 증거를 살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일에는 내 안에 주님이 계신 것은 확실한데 왜 나는 알지 못할까? 내 안에 주님이 계신데도 능력이 나타나지 않을까? 이유는 자아 때문이었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내가 살아 있기에 주님이 일하시고 싶어도 일 하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자기 죽음을 선포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이제부터 내 안에 사시는 이는 내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순종이다. 주님이 내 안에서 일하시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내 자아입니다. 내 자아는 죄악으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하는 것마다 실패하고 맙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나는 죽고, 오직 내 안에 주님이 사시는 것입니다. 또 주님이 내 안에서 일하시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걸림돌은 내 열심입니다. 열심히 하면 좋은 것 아닙니까? 헌데 주님이 일하시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 내가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성서의 예화1)다윗이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옮겨 올 때일입니다. 다윗은 언약궤를 옮기는 일에만 열심 있었지... 주님의 뜻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언약궤를 옮길 때는 반드시 레위지파의 고핫 자손들이 어깨로 메고 옮겨야 합니다. 헌데 이것은 까마득히 잊고 멋진 수레를 만들었습니다. 가정 튼실한 소를 구해서 수레를 끌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수레 위에 언약궤를 얹고 대제사장이 소를 끌고 가게 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보기에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주님의 뜻과는 전혀 다르게 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열심히 오히려 주님의 뜻을 막을 때가 많습니다. (성서의 예화2)예루살렘 교회가 엄청나게 부흥했다. 사도들은 여러 가지 사역으로 너무나 바빴다. 누가 봐도 잘 되는 교회였다. 헌데 사도들의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부흥하고 사역은 많아지는데 마음은 점점 공허해져 갔습니다. 왜 그럴까? 사도들은 기도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것을 주님은 기뻐하지 않으시나? 그렇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주님은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면 주님과 24시간 동행하는 삶은 살지 않았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기도의 자리에 앉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뜻을 들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결정한다. 내려놓기로 한다. 그리고 주님의 뜻을 따라 결정한다. 우리는 기도와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고, 구제하는 일은 신실한 동역자들을 세워서 그들에게 맡기기론 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온 성도들도 기뻐했다. 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내가 열심히 하면 할수록 주님은 머리 싸매고 누우십니다. 주님의 뜻은 구하지 않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 더 심방해야 겠다. 더 잠을 줄어야 겠다. 월요일도 쉬지 말고 일해야겠다고 결정을 하면 주님은 몸 져 누우십니다.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시험에 들게 하는 사람들은 열심인 사람들입니다. 왜 열심인 교인들이 시험거리가 되는 것일까요? 문제는 열심은 있는데 순종이 없습니다. 순종하려면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헌데 주님의 뜻을 모르니까 내 뜻대로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2.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을 하려면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헌데 왜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까?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가장 주된 장애물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듣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서의 예화)사무엘 상 3장에는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사무엘이 사무엘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성전에서 자랐습니다. 열두 살쯤 되었을 때, 성전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사무엘아! 사무엘아!”하고 부르는 소리에 깨어납니다. 그리고 엘리 제사장이 부르시는 줄 알고 달려갑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같은 일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세 번째 같은 일을 겪은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이 부르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엘리제사장은 사무엘에게 다시 부르는 소리가 들리거든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말하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사무엘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평생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무엘이 됩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는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을 의심하는 분들은 없습니다. 허나 사무엘처럼 나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믿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모신 자는 주님의 음성을 반드시 듣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지금까지도 주님은 우리에게 수 없이 말씀하셨는데, 전혀 우리가 듣지 못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 말씀대로만 순종했더라면 얼마나 많은 복과 능력을 받았을까요? 이것만 생각하면 너무나 죄송하면서도 억울합니다.
우리 가운데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면 신비주의자나 광신자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정말 신비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신비주의는 아닙니다. 사무엘도 처음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는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엘리 제사장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가르침을 받고 난 뒤에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훈련을 하면 얼마든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내게 주시는 레마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3.그러면 어떻게 주님의 음성을 듣는가? 주님은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으나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도들은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육성으로 듣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혼란스러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육성으로 듣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으로 듣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우리 안에 영으로 와 계신 성령님은 생각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 오신 성령님은 우리 마음과 생각속에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생각나는 것이 성령님이 들려주시는 음성이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생각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생각을 잘 점검해야 합니다. 헌데 중요한 것은 모든 생각이 주님의 생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1)먼저 육신의 생각이 있습니다. 로마서 8장 5-6절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생각의 중심이 누구냐? 주님이냐? 나이냐? 육신의 생각은 나를 위한 생각입니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 생각입니다. 내 마음대로 하는 생각입니다. 목적이 나입니다. 생각의 원인이 나입니다. (예화)예를 들어 볼까요? 사울왕입니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사무엘은 분명히 주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쟁이니 절대로 어떤 생명도 살려두지 말라. 남녀노소를 불분하고 죽이라. 또한 모든 짐승들도 아낌없이 죽이라고 했습니다. 전쟁에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때 슬며시 내 생각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하는데, 내 생각이 역사합니다. 굳이 죽일 필요 있느냐? 짐승이 무슨 죄가 있느냐? 살려서 잡아가면 재산 증식 되고,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면 더 좋아하실 것 아니냐? 또 아말렉 왕을 살려가야 내가 승리했다는 것을 온 백성들이 알아줄 것 아니냐? 그래서 왕과 짐승들을 살려서 데려갑니다. 사울이 이렇게 결정하는 생각의 원인, 생각의 목적, 생각의 중심은 오직 자기입니다. 이것이 육신의 생각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그럴 듯 해 보입니다. 자기를 위한 생각입니다. (2)또 마귀가 주는 생각이 있습니다. (적용)마귀가 주는 생각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헌데 대부분 우리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신데 어울리지 않는 마음과 생각은 다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미움, 음란한 생각, 이기적인 생각, 분열케 만드는 생각, 이간시키는 생각, 죽이는 생각, 우울하게 하고, 낙심하게 하고, 시기하게 하는 생각 등등. 마귀가 주는 생각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화)이혼의 위기에 있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물었다. ‘당신도 솔직히 이혼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 우리 서로 솔직히 말해보자’ 남편도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다 끝내자. 이혼하고 말자” 그러나 그것은 마귀가 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했습니다. 내가 마귀가 하라는 대로 할거냐? 아니면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이 하라는 대로 할 거냐? 주님이 과연 이혼하여 가정을 깨는 것을 원하시겠는가? 아니면 힘들지만 쉽지 않지만 주님이 원하시는 뜻에 순종하고 사랑하도록 노력해 보자라고 생각하여 이혼의 위기를 넘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화2)두 번 다시 보기 싫은 사람도 있습니다. 가족들 중에 나에게 깊은 상처를 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래 힘들지만, 주님이 명령하시니 한 번 더 사랑해 보자, 주님께 사랑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해 보자!!! 너무나 쉽게 마귀가 주는 생각대로 살지 말고, 주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실까? 고민하면서 한 번더 사랑하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귀에게 지면 안 됩니다. 4.그러면 어떻게 주님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을까요?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잘 분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1)첫째로 성경 말씀을 많이 읽고 듣고 묵상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성경에 거의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혼은 우리의 자아의 생각입니다. 영은 성령의 생각입니다. 관절과 골수는 육신의 생각, 마귀의 생각의 통로입니다. 헌데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모든 생각들을 찔러 쪼갭니다. 그래서 분별하게 되는 것입니다. (2)꾸준히 기도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 중에 하나님은 우리의 진로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생각하지도 않던 아이디어가 생각나게도 하십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내가 전혀 생각하지도 않던 기도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예언인가 잘 살펴야 합니다. 주시는 생각을 기록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주시는 생각이 뜨거움으로 계속 내 안에 남아 있다면 주님이 주신 음성입니다. (3)주님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주님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주님의 마음을 갖으면 주님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생각을 했을 때 스스로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려는 것이 정말 주님의 마음인가? 주님의 마음과 일치하는 생각인가? (4)환경을 주목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내 환경을 열어 주십니다. 만남도 허락해 주십니다. 이 시간에 똑같이 설교를 들어도 은혜 받는 부분이 다릅니다. 결단하는 부분도 다릅니다. 나에게 주시는 레마의 말씀이 있습니다. 물 위를 걸어오라는 것은 베드로에게 주신 레마입니다. 우리들이 강에 가서 이 말씀대로 하면 우리는 죽습니다. 내게 주신 주님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어거스틴 - 어린 아이들의 노래!!!) (우리 미래교회 개척할 때...) (1)제일 먼저 약속의 말씀을 구했다. 그리고 두 말씀을 먼저 받았습니다. ➀마태복음 17:11 / ➁요한복음 14:1-3 (2)그리고 이 말씀을 품고 기도하는 가운데 한 가지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주님!!! 멍석은 주님이 펴 주세요. 춤은 제가 추겠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주님이 제게 말을 걸어 오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3)그리고 원칙을 정했습니다. 하나님이 해 주신 것이라고 확실히 알수 있도록 저는 절대로 사람들에게 돈 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다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비전을 나누겠다고 했습니다. (4)하나님은 이 자리를 주셨고, 계약을 하고 정한 기한 안에 하나님이 채우시길 기대했습니다. 하나님이 채우신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 믿기로 했다. 그리고 약속대로 하나님은 채워 주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었다. 검산하듯이 최종점검을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➀생각이 성경적인지를 늘 확인하라. ➁영적인 일치를 통해 분별해야 한다. 부부간의 일치가 되어야 한다. 오창학 목사님은 퇴직금과 아파트를 다시 교회에 헌금으로 드릴 때 사모님과 두 아들들과 상의하고 한 마음으로 찬성할 때 드렸습니다. ➂주위 사람들의 조언을 잘 들어야 한다. 제일 좋은 것은 조언자는 목회자입니다. ➃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상식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가 맺어져야 한다. 결과가 공동체를 분리시키고, 상처를 남기고, 더 복잡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라면 절대로 성령의 역사가 아닌 것입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나는 죽고 오직 그리스도가 사는 능력을 경험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잘 분별할 줄 아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과 24시간 동행하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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