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세우고 싶은 교회 | 이병수목사 | 2011-12-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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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8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마태복음 16:18 제목:주님이 세우고 싶은 교회 교회 건축에 대하여 주님께 받은 말씀은 요한복음 14장 1-3절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세 가지 원칙을 정했습니다. ❶근심하지 말자 - 집은 부모들이 걱정하는 것이지 자녀들이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걱정하시는 것이지 자녀인 우리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인도하시는 곳에서 살면 된다. ❷아버지가 하실 때까지 기다린다. 하나님 아버지는 풍성하시다. - 아버지가 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우리 성도들의 반대가 없어야 한다. 누가 보아도 하나님의 때가 되었다는 공감대가 이루어질 때 한다. ❸땅과 건물을 세우는 일보다 더 우선해야 할 것은 사람을 세우는 일이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교회는 땅이 아니다. 교회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이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교회를 세우는 일에 집중하고, 보이는 교회 즉 건물은 주님이 주실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척초기부터 기도해오는 것입니다. 헌데 지난 주간에 교회란 무엇인가? 주님이 정말 세우고 싶어 하시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를 깊히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전혀 생각하지도 않은 분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 요지는 우리 성도들이 건축헌금을 특별히 하지 않고도, 우리 형편에 도전해 볼 만한 땅과 교회건물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한 번 보고 들어보라는 것입니다. 기도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기도해 보겠다고 한 것은 ‘주님이 주신 기회인데 우리가 잘못 판단하면 안되기에...’ 기도하겠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뜻이 무엇일까? 주님은 어떻게 하시길 바라실까?를 놓고 기도했습니다. 순간 순간마다 우리 교회가 땅을 갖고 건물을 갖는 상상을 하면 설레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허나 기도하면서 이것은 시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물으십니다. 내가 세우고 싶은 교회가 어떤 교회인줄 아느냐? 미래교회를 세우는 것이 땅을 구입하고 건물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정말 세우고 싶어 하시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우리미래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기를 바라실까? 생각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게 하셨습니다. 18절 말씀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본문 설명) 가이사랴 빌립보(로마 황제가 다스리고 있는 땅, 로마황제를 주님으로 믿고 예배하는 신전이 있는 곳)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너희에게 누구냐?’ 그 때에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16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대답을 들으시고 주님은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반석이라) 내가 이 반석 위에(이 반석은 베드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한 신앙고백을 말합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갖은 자마다 모두 교회요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펼쳐 가실 주님의 비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헌데 이 말씀의 해석을 캐톨릭에서는 베드로 개인을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전권을 갖고 있는 교황은 베드로의 후계자요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이 다스리는 교회만이 참 교회라고 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조금 있다가 베드로는 주님께 사단아 물러가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바울도 사도 베드로가 외식하는 것을 보고 책망을 했습니다. 왜요? 베드로도 한 인간이요 실수하고 넘어지는 연약한 자라는 것입니다. 헌데 베드로와 베드로의 후계자들인 교황은 진리에 무오하다는 주장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 혹 우리 성도들 가운데 카톨릭이 이단입니까?라고 묻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카톨릭이 주장하는 교리들 중에 성서적이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허나 성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진리에 있어서는 잘못되지 않았기에 이단이라고까지는 하지 않습니다.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기독론과 성령론에서 다를 때를 말합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내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신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예수님이 사용하신 교회라는 말은 헬라어로 에클레시아입니다. 에클레시아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특별히 뽑아 부른 사람들을 말합니다. 유대 땅에 많은 젊은이들이 있었지만, 12제자를 뽑아 부르신 것처럼 주님이 부르신 사람들을 에클레시아라고 합니다. 수 많은 사람들 가운데 주일이면 이렇게 나와서 예배하는 여러분들이 에클레시아입니다. 에클레시아는 한 마디로 공동체를 말합니다. 그러면 구원받은 사람들, 부름 받은 사람들인 교회가 해야 할 4가지 사명이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세우고 싶어 하시는 교회입니다. 구원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을 통해서 주님께서 세우고 싶어 하시는 교회는 (1)첫째로 케리그마 공동체입니다. 케리그마라는 헬라어 단어의 뜻은 ‘선포, 설교, 전도’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무엇을 선포하는 곳입니까? 예수님을 선포하는 곳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유익한 이야기, 윤리적인 이야기를 전해주는 곳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오직 진리되시는 그리스도를 전해주는 곳입니다. 선포행위는 예배에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교회는 일차적으로 예배드리는 공동체입니다. 예배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일생 생활속에서 삶으로 드리는 예배와 이렇게 주일에 모여 공동체가 드리는 예배가 있습니다. 진정한 예배는 이 두 가지의 예배가 온전히 이루어 질 때 교회는 건강한 것입니다. 또한 전도와 선교의 현장에서 선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교회는 전도하는 공동체입니다. 선교하는 공동체입니다. 원근 각처에 나가서 선교, 전도를 통해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2)둘째로 코이노니아 공동체입니다. 들어보셨지요? 코이노니아는 성도들이 서로 나누는 교제, 친교, 나눔을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 친교, 나눔이 이루어지는 곳이 교회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큐티를 합니다. 성경을 공부합니다. 또한 성도들간에 목장모임도 하고, 남녀선교회 모임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3)셋째로 교회는 디아코니아 공동체입니다. 디아코니아는 봉사와 섬김으로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섬기려고 오셨음을 기억하고 우리들도 이 세상을 섬겨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4)넷째로 교회는 디다케의 공동체입니다. 디다케는 다음세대를 세워 말씀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는 사명입니다. 교회는 우리 당대로 끝나면 안됩니다.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세우고 싶어 하시는 교회입니다. 우리들을 부르셔서 미래교회에 모이게 하신 것은 주님이 세우고 싶은 교회를 세우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어디에도 주님이 세우고 싶은 교회에 땅을 사고 건물을 짓는 것은 없습니다. 물론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하고, 사랑하고, 선교하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생각하시는 교회에는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모이느냐? 교회 땅은 얼마나 넓으냐? 건물은 있느냐? 주차능력은 얼마나 되느냐? 일년 예산은 얼마나 되느냐?라는 성공지향적인 교회 모습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지상명령인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는 교회에 대한 비전만 있을 뿐입니다. 나머지는 성령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깨달았습니다. 주님이 세우고 싶어 하시는 미래교회는 두 가지에 집중하는 교회입니다. 2012년 우리 미래교회가 집중해야 할 방향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는 사랑으로 소문난 교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전도하는 교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추운데도 매 주마다 전도를 나갑니다. 한 어린 아이가 ‘미래교회다!’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어떻게 알았니? 하고 물었더니 ‘미래교회 밖에 안 나와요?’ 하더랍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주님이 세우고 싶어 하시는 교회 첫 번째 사랑으로 소문난 교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❶교회는 가르칠 敎 자를 써서 교회라고 했습니다. 헌데 원래는 교회는 사귈 交자를 써서 서로 사귐이 있는 공동체였습니다. 디다케 보다 코이노니아가 먼저였습니다. 헌데 우리나라는 가르치는 일이 시급했기 때문에 가르치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❷왜 사랑이 중요합니까? 한국교회가 사랑이 없어지고 세상과 다를 바 없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음은 강조했지만, 사랑은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예화)만약 어느 목사님이 ‘나, 십자가의 속죄의 복음이 믿어지지 않아!’하면 큰일나는 줄 압니다. “큰일이네! 어떻게 목사가 되었을까? 천국 못가겠네!”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 그 사람, 미워 죽겠어! 용서가 안돼. 나보고 그 사람 사랑하라고 하지마!”하면 우리는 뭐라고 합니까? “얼마나 힘드세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인데 어떻게 미운 사람이 없겠습니까? 그래도 용서해보려고 노력해 보세요.”라고 하며 넘어갑니다. 교회 안에서 성경 많이 읽고 , 기도 열심히 하고 예배에 잘 참석하고, 봉사 열심히 하면 사랑이 없어도 그다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사랑이 식어진 것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거지! 조금 미워했으면 책망은 받아도 구원받는 데는 문제가 없을거야!라고 생각합니다. 예! 구원은 100% 예수를 믿음으로 받습니다. 사랑이 구원의 절대조건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십니까? 사랑은 믿음의 증거입니다. 믿음이 뿌리라면 사랑은 반드시 맺어야 할 열매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사랑의열매를 보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 사람의 믿음은 있다고 하지만, 사랑이 없다면 그 믿음은 잘못된 것입니다. 가짜일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서로 싸우고 미워해도 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에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사랑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은 믿음의 뿌리가 말라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사랑의 열매가 없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죽은 믿음을 갖고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두렵지 않습니까? 헌데 문제는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안 되는데 어떻게 사랑하느냐?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사랑하려고 하니까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은사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 자아는 이기적이고 죄악덩어리이기에 병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가득 채워지면 사랑하게 됩니다. (적용)사랑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철야하고, 금식하고 작정기도는 하지 않지 않으시지 않습니까? 육신의 질병을 위해서는 금식하며 눈물로 기도하면서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을 놓고는 기도하지 않잖습니까/ 사랑은 은사입니다. 구하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하고 싶으나 내 정신, 내 마음, 내 능력으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게 해 주세요. 사랑의 은사를 부어주세요.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 구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면 사랑은 하는 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입니다. 몸부림을 쳐 봐야 할 것 아닙니까? ❸사랑이 제일인가? 그렇습니다. 주님이 꿈꾸시는 교회, 세우겠다고 하신 교회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함께 찾아 보겠습니다. 먼저 1-3절을 읽겠습니다. “ ” 똑똑한 교인들은 참 많습니다. 도덕적이고 예의 바른 교인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따뜻한 교인들은 많지 않습니다. 사랑이 많은 교인들은 많지가 않습니다. 우리들이 왜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까? 멋있으니까? 그래야 상급을 많이 받으니까요?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서로 사랑하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잘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 때문에 내 뜻을 꺽는 것입니다. 내 마음과 내 생각과 내 유익을 내려놓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절 이하에 사랑의 특성 15가지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닮은 모습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한 번 우리 자신들을 점검해 보십시오. 내게 있는 것과 내게 없는 것은 무엇인지?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❹우리 미래교회는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의 교제를 나누는 사람을 1-2명씩 꼭 만드세요. 마음을 여세요. 먼저 다가 가세요. -앞으로 상처받아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장모임이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를 대하든지 늘 친절하세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건물을 갖는 것, 땅을 사는 것,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 재정이 넉넉한 것, 휴게시설을 잘 갖추는 것이 우리가 세워야 교회는 아닙니다. 소용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세우시고 싶어 하시는 교회는 우리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부모님을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고, 부부간에 사랑하고, 성도들 간에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2012년 이를 위해서 간절하게 기도해 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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