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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갈무리 인생 | 이병수목사 | 2012-01-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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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15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사도행전 15:36-41 제목:아름다운 갈무리 우리는 지난 주일에 달라도 너무 다른 안디옥 교회 지도자 5명의 면면을 살펴 보았습니다. 세상에서는 절대로 하나될 수 없는 이들이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나와 너는 다르지만, 나와 너 속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은 하나이시기에 가능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미래교회에도 안디옥 교회에 부어주신 은혜를 주셔서 하나되어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교회를 세워가자고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이들이 하나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주 안에서 한 마음 곧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도행전 13장 2절을 보겠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헌데 누구의 지시를 받아서 이렇게 하였습니까?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원하는 것, 네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 마음속에 거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한 것입니다. 언제 성령의 음성을 들었습니까? ‘주를 섬겨 금식할 때’ 금식하며 기도할 때입니다. 우리 함께 찬양을 올려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기도하면 귀를 기울이시고 내 기도를 들어주신다네” 주님의 음성을 듣고자 기도하면 주님은 말씀해 주십니다. 안디옥 교회성도들은 성령의 음성에 즉시 순종하였습니다. 13장 4-5절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이해를 돕기 위해서 바울의 1차 전도여행지를 보겠습니다. 오른쪽 중간 부근에 안디옥 교회가 있습니다. 안디옥에서 파송을 받은 바나바와 바울과 수행원 요한이 실루기아로 내려가서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이 구브로 섬입니다. 오늘 날 지중해의 섬 중에 하나인 사이프러스 섬입니다. 이 섬 동쪽 항구인 살라미에 도착해서 복음을 전하고 바보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다시 배를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로 갑니다. 헌데 이 버가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13장 13절을 보겠습니다.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버가에 도착하자마자 요한은 예루살렘으로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요한은 윗사람인 바나바와 바울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헌데 무슨 영문인지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요한은 히브리식 이름입니다. 그의 헬라어 이름은 마가입니다. 그래서 마가 요한이라고 부릅니다. 골로새서 4장 10절에 보면 마가 요한은 바나바의 생질 즉 조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헌데 생질이라고 번역한 헬라어 ‘아넵시오스’는 본래 사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마가는 바나바의 사촌동생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사촌동생을 데리고 전도여행을 떠났는데. 버가에서 중도포기하고 뺑소니를 친 것입니다. 학자들마다 왜 마가가 자신의 직무를 포기한 이유가 무엇인지 추측이 많습니다. 그 중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선교여행이라는 것이 생각과는 달리 너무나 힘든 여정이었기 때문에 경험없는 마가는 포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버가에 도착한 바울이 다음 목적지로 정한 곳이 비시디아 안디옥입니다. 지도를 보시면 알겠지만 비시디아 안디옥에 가려면 타우로스 산맥을 넘어야 합니다.(사진을 보여 주라) 멀리서 본 타우로스 산맥입니다. 해발 2-3천 미터의 고봉들이 험산준령을 이루는 산맥입니다. 그 산맥을 도보로 넘는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산맥 곳곳에는 강도들이 날뛰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그 산맥을 넘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이에 겁에 질린 마가는 집으로 도망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좀더 가까이에서 타우로스 산맥을 보겠습니다. (둘째 사진) 오늘 날 성지순례를 가보면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까지는 230KM인데 산맥을 넘는 길이 얼마나 험하고 고불고불한지 자동차를 타고서도 근 4시간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마가 요한하면 가장 생각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 마가의 다락방입니다.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집이 얼마나 크면 다락방에 120명이나 모일수 있었겠습니까? 마가요한의 집안은 그만큼 부유한 가정이었습니다. 자신의 집을 교회로 내어드릴 만큼 믿음도 있었지만, 고생을 해본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그가 선교여행의 어려움을 감내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바울과 바나바는 요한 없이 1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안디옥교회로 돌아왔습니다. 얼마 후에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이 1차 전도여행 중에 세운 각 교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 2차 전도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헌데 출발하기도 전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본문 37-41절입니다. “ ” 바나바는 이번에도 자신의 사촌동생인 마가 요한을 수행원으로 데려가지고 했습니다. 아마도 마가요한이 자신의 잘못을 철저히 늬우쳤을 것이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자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허나 바울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선교여행 중에 무책임하게 중도 포기한 마가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39절에 표현대로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섰다”고 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바울과 바나바가 어떤 사람들입니까? 믿음의 대가들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처음에는 의견차이가 있다가도 신앙인격상 피차 양보하거나, 상대방의 의견을 따라줄만한 사람들입니다. 헌데 이번 경우에는 서로 심히 다투고 결국은 선교팀이 깨지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적용)서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는데 있어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의견차이로 서로 다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떻게 갈무리를 하느냐?는 것입니다. 결별된 상태로 내버려 두시면 안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틈이 되어 악한 마귀가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분을 내어도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 보세요. 분을 내는 것은 되지만, 품는 것은 안됩니다. 갈등할 수 있지만, 미운감정 그대로 두시면 안 됩니다. 죄를 지을 수 있지만, 빨리 돌이켜야 합니다. 죄를 그대로 두면 죄가 나를 장악해서 마귀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도로서 이것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것을 그대로 묻어두시면 안됩니다. 빨리 회복의 매듭을 지어야 합니다. (현실적용) 2011년이 지나고 2012년을 맞이하면서도 해묵은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오시지는 않으셨습니까? 아직도 마음에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예! 힘든 것 이해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풀고 가라고 하십니다. 사람들과의 갈등을 풀지 않고 그대로 덮어두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주님이 기뻐하지 않을 죄악들을 대수롭지 않게 그대로 마음속에 숨겨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바울과 바나바와의 다툼과 분열 속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일을 하셨습니다. (1)이들의 갈등과 분열 속에서도 주님은 어떻게 섭리하셨는가? 바울과 갈라선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데리고 구브로 섬으로 갔습니다. 바나바 일행이 구브로로 갔기에 바울 일행은 반대쪽인 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바울의 계획은 아시아 일대를 돌면서 복음을 전할 생각이었습니다. 헌데 성령님은 바울의 길을 막으셨습니다. 성령님은 드로아에 바울이 도착했을 때... 유명한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마게도냐면 지금의 그리스 사람이 우리에게도 와서 복음을 전해달라는 환상을 봅니다. 그리고 즉시 바울은 아시아로 가려던 길을 접고 성령님이 유럽으로 자신들의 길을 인도하신다고 믿고 갑니다. 바울은 자신들이 유럽으로 갈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헌데 성령은 바울의 길을 유럽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유럽의 첫 성인 빌립보에서 루디아에게 세례를 주고, 빌립보 교회를 세우고, 고린도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2차 전도여행에 큰 성과를 거두고 돌아옵니다. 후에 3차 전도여행을 갈때는 당연히 유럽으로 방향을 정합니다. 2차전도 여행에서 세운 교회들을 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헌데 3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자신이 마지막으로 생을 바쳐 복음을 전해야 할 숙명의 땅을 품게 됩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로마입니다. 마침내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생을 마감합니다. 보세요. 주님은 인간의 나약함과 실수를 통해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만약 바울이 바나바와 결별하고 드로아로 가지 않았다면 유럽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땅 끝인 로마를 가슴에 품지 못했을 것입니다. (적용)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속에서도 함께 하시면 일하실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를 통해서 우리와 함께 이루시길 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 그대로 주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일하실 수 있도록 있는 모습 그대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나의 연약함과 갈등과 상처와 아픔과 실패를 주님께서 쓰시도록 내려놓기 바랍니다.
(2)아름다운 갈무리를 위해서 우리들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바울과 마가 요한은 아름다운 삶의 갈무리를 위해서 어떻게 하였습니까? 어느 날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 보면서 마가가 자기 인생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생각했습니다. 마가가 1차 전도여행에서 무책임하게 중도하차하지 않았다면, 바나바와 다툴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유럽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모든 것이 마가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가의 무책임한 실수를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를 원망하고 미워만 할 것이 아니지 않는가? 마가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지 않았나?? (예화)솔직하게 대답해 보세요. “미래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감사하십니까? 부족하지만, 이병수 담임목사를 만나서 신앙의 여정을 함께 하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이렇게 닭살스러운 것을 묻는 이유는 우리 미래교회도 저의 부족함과 연약함과 어리석은 과정속에서도 하나님은 함께 하여 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셔서 오늘 날 미래교회가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나고 보면 예전에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고맙게 여겨집니다. 지금이 이렇게 감사하고 좋은만큼 더 감사하고 고마울 뿐입니다. 그래서 미워하기보다 원망하기보다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속에서 주님 앞에 회개하고, 돌이키고, 나의 연약함을 적나라하게 봐야 하는 힘겨움은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것을 보면 감사할 뿐입니다. 바울도 이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후에 바울이 쓴 서신서를 보면 마가요한과 회복되어 동역하는 모습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골로새서 4장 10절에는 “나와 함께 갇혀 있는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사촌 마가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 옥중에서 순교를 앞두고 선교할 때 마지막을 함께 해 준 사람이 마가요한이었습니다. 또 빌레몬서 1장 24절에 보면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마가를 동역자라고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가 요한도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철저히 깨닫고 더욱 성숙해 졌습니다. 바울이 죽는 순간까지 함께 하고, 바울이 순교하고 난 뒤에는 베드로를 도와 사역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13절에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베드로는 마가를 자신의 아들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마가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를 알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마가요한은 4복음서 중에 가장 먼저 마가복음을 기록하였습니다. 초대 교회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적용)여러분의 인생에도 마가가 있었을 것입니다. 엄청난 경제적인 손해를 끼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예)신혼시절 1400만원을 떼고 달아난 집 주인으로 인해서 우리 부부는 용서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물질로부터 자유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 혹 여러분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배신감을 안겨 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들을 바라볼 때 내 중심으로 보지 마시고, 하나님 중심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일로 인해서 그 사람으로 인해서 내 믿음이 더 좋아지지 않았습니까? 상처받고 배신당했지만, 그로 인해서 주님의 마음을 더 깊히 깨닫지는 않았습니까?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면서 ‘그래 세상에서 의지할 분은 오직 주님뿐이야!’라는 믿음을 갖지 않았습니까? 그 때 그 사람! 그 일로 인해서 지금 생각지도 못한 은혜를 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성숙을 위해서 사용하신 도구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마음에서 미움과 증오와 원망과 시기와 질투로부터 나를 자유케 하십시오. 주저하지 말고 용서하시고, 화해하십시오. 그리하면 상상하지도 못하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2012년도에도 수 많은 만남을 갖게 될 것입니다. 어느 만남 하나 무의미하고 헛된 만남은 없습니다. 만남의 결과가 어떠하든지 아름답게 갈무리를 한다면 하나님은 놀라운 복을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갖고 살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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