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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열심을 보라 이병수목사 2012-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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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19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성경:출애굽기 2:1-10

제목:하나님의 열심

라인홀드 니버 라는 신학자가 쓴 기도문입니다.

"나의 하나님,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그것들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들을 받아 들일 수 있는 마음의 평정을 주시고

 

그리고 어떤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

또 어떤 일이 내가 할 수 없는 일인지

그 두 가지 차이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의 역할 분담이 분명합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일이 있습니다. 또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헌데 죄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하실 일을 사람이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하나님이 교만을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도와달라 하지 않고, 자신이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겸손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인정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또한 마땅히 사람이 할 일을 하나님께 떠 넘기는 것도 죄입니다. 태만의 죄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해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하나님이 하실 일이고, 무엇이 사람이 할 일인가?를 구분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라인홀드 니버는 이것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늘 기도했습니다.

야고보서 1장을 보겠습니다. 신약성경 371면입니다.

1장 2절을 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기에서 시험은 시련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너희가 여러 가지 시련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시련이 없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도 수 많은 시련이 있습니다. 태양 빛이 신자들에게만 비추이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궂은 비가 신자들에게는 내리지 않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시련은 동일하게 옵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도 깊은 시련 가운데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헌데 시련을 만났을 때에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나를 정금같이 쓰시려고 단련하는 것인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인내해야 합니다. 견뎌야 합니다. 3절입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12절입니다. “시험(시련)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약1:12)”

또한 내가 잘못해서 일어난 시련이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를 구해야 합니다. 13-15절입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뜻이 있어 주시는 연단인데,,,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봐! 나를 사랑하시지 않나봐!’라고 한다거나, 내 욕심이 잉태하여 벌어진 일인데,,, ‘난 지금 연단을 받고 있어! 난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거야!’라고 한다면 우리는 속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헌데 우리 안에는 이 지혜가 없습니다. 그래서 구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적용)하나님이 하실 일과 사람이 할 일을 잘 분별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이면 기다리시고, 내가 움직여야 할 시간에는 용기 있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는 이 두 가지가 아주 균형 있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행하시는 일들과, 사람 편에서 행하는 일들이 균형 있게 등장합니다.

1. 오늘은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1)지금 때가 언제입니까? 이집트 왕 투트모스 1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아지는 것에 위협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혹하게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이스라엘의 젊은 남자들을 강제노역으로 끌고 갑니다. 자유도 인권도 없는 혹독한 시련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다음으로 산파들에게 명령하여 태어나는 히브리 남자 아이들은 다 죽이게 했습니다. 갈수록 탄압은 더 강해지고 잔인해 집니다. 이제는 군인들로 하여금 감시하게 하고, 부모의 손으로 자기 자식들을 나일 강에 던지게 했습니다. 우리는 생각합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인한 민족으로 삼으시려 해도 어떻게 자기 자식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는 지경까지 이르게 하실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지금이 가장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이 때에도 하나님은 일하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아무런 징조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일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습니까?

(마귀의 계략이 숨어 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지금 투트모스 1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배후 세력은 악한 마귀입니다. 악한 마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짓밟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무엇입니까? “네 자손이 하늘에 별과 같이 번성하리라. 내가 네가 발로 밟는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헌데 이 약속을 받는 아브라함은 아들도 없습니다. 나이는 늙어 아들을 낳을 가능성이 없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된 땅 한 평이 없습니다. 나그네입니다. 헌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아들 이삭에게, 야곱에게, 그리고 요셉과 12아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300년이 흐른 이 시간까지 모세의 부모들에게도 전하여졌고, 그들도 붙잡고 있는 약속이었습니다. 헌데 마귀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려고 투트모스 1세와 애굽의 권력을 앞세워 이스라엘 민족의 씨를 말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대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갔습니다. 남자 아이들을 죽이라는 왕의 명령도 두려워 하지 않는 히브리 산파들을 준비하셨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는 자기 손으로 남자 아이들을 나일강에 던져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그 명령도 두려워 하지 않는 모세의 부모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모세를 준비하십니다.

더 놀라운 것은 애굽의 바로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해하려고 하는 방법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모세를 구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 도구가 됩니다. 바로는 나일강에 유대인 아기들을 죽여 번성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헌데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십니까? 나일강의 끝자락이 홍해바다입니다. 나중에 홍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건짐 받고, 그들을 죽이려는 애굽의 병사들은 모두 빠져 죽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죽이려고 한 자리가 자신들이 죽는 자리가 됩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쓰임 받는 모세는 강물에 버려져 죽어야 하는데 살아나 구원을 받습니다. 그것도 모세를 살린 사람이 다름 아니라 바로 왕과 뜻을 같이 했어야 할 자기 딸입니다. 같은 식구인 공주에 의해서 바로의 계획은 실패하게 됩니다. 얼마나 아이러니합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을 것 같은 상황이 있지만 마귀는 결코 하나님의 자녀들을 손대지 못합니다. 이것이 신자의 확신입니다. 십자가가 왜 능력입니까?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십자가가 주는 메시지는 “얘! 이만한 일로 네가 죽을 것 같으면 내가 십자가에서 널 위해서 죽지도 않았어! 걱정하지마. 안 죽어!” (함께 인사하겠습니다. “이만한 일로 죽을 것 같으면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신자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눈으로 볼 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환경은 절망적이라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신 것도 버리신 것도 아닙니다. 그 때에도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고 계십니다. 우리들의 육안으로 볼 때는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열심히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조급해 하지 마십시오. 즉각적으로 응답이 되지 않고, 해결되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 하시면 안됩니다. 혹 시련의 시간이 길어진다면 그만큼 큰 은혜를 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예화)스포츠 경기가운데 가장 짜릿한 승리는 역전승일 것입니다. 1982년으로 기억됩니다. 제 나이 17살 때입니다. 야구를 좋아해서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한국야구 역사상 최고의 역전승 경기는 1982년 서울에서 펼쳐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였습니다. 일본과의 결승전이었습니다. 경기가 시작되었는데, 일본의 높은 마운드를 공략하지 못하고 한국은 계속 몰렸습니다. 8회말까지 0-2로 뒤지며 우승컵을 일본에게 넘겨주는 듯 했습니다. 누가 봐도 패색이 짙었습니다.

헌데 믿기 힘든 역전드라마는 8회 말부터 시작이었습니다. 선두타자의 안타로 찬스를 잡은 한국은 이어 나온 선수가 중월 2루타로 1점을 따라붙었습니다. '여우'라 불리던 김재박의 그 유명한 '개구리 번트'로 한국은 2-2 동점을 이뤘습니다. 그리고 5번 타자 한대화선수가 좌측 폴대를 맞추는 3점 홈런을 터뜨리며 극적인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때로 살다보면 점수를 내 줄 수도 있습니다. 홈런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누가 봐도 진 경기라로 할 수 있는 일을 만납니다. 그러나 야구는 9회말 쓰리 아웃 될 때까지 모르는 것입니다. 8회까지 지다가도 역전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리 절망하시면 안됩니다. 낙심하시면 안됩니다. 예! 우리 하나님이 역전시키는 하나님이십니다. (적용)지금 여러분의 인생이 0-2로 지고 계십니까? 상대에게 홈런을 맞았습니까? 패색이 짙습니까? 그래도 끝까지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눈 앞에 보이는 고난은 변장하고 오는 축복입니다. 지금 상황과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하나님은 열심을 갖고 일하시고 계십니다. 이것이 본문이 주려는 말씀입니다.

 

(2)앞서 말씀을 드렸지만, 아버지 바로는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모두 나일 강에 던져 죽이라고 했는데, 나일 강에 던져진 히브리 아이 모세를 살려낸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바로! 바로 딸입니다.”

모세의 부모들은 아이를 낳고 차마 죽일 수 없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다음 주일에 살펴 보겠습니다. 석 달을 숨겨 키웠습니다. 더 이상 키울 수가 없자 방수용 갈대상자를 만들었습니다. 그 안에 어린 아이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강물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상자를 나일 강 갈대 밭 사이에 놓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는지 큰 딸로 하여금 지켜보게 했습니다.

표준 새번역과 우리말 성경에 보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서서 지켜보았는데, “그 때 마침”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에 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의 딸은 목욕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헌데 왕궁에서 하지 않고 나일 강에서 목욕을 하고 싶었습니다. 왕궁에는 좋은 목욕탕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당시는 평민, 천민들이나 나일강가에서 목욕을 했습니다. 귀족들이나 특히 왕족이 나일 강에서 목욕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바로 딸은 나일 강으로 목욕하러 나왔고, 경호를 위해서 시녀들은 강가를 거닐었습니다.

시녀들이 움직이는 쪽을 따라 바라보다가 갈대 사이에 있는 상자를 보았습니다. 시녀들에게 명령하여 가져오게 했습니다. 갈대 상자를 열어보니 히브리 남자 아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죽이라고 한 히브리 남자 아이였습니다. 때마침 아이는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바로의 딸은 불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때 그 아이의 누이인 히브리 노예 계집 아이가 공주에게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를 위해서 유모를 데려와도 되겠느냐고 묻습니다. 공주는 허락을 합니다. 그 아이는 친모를 데려옵니다. 바로의 딸은 친모에게 이 아이를 위해서 삯을 줄테니 젖을 먹이라고 합니다. 돈을 받으면서 자기 자식을 키우는 최초의 여인이 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무엇을 깨달으십니까? 이 모든 것이 우연히 일어났다고 생각하십니까?

한번 만약을 가정해 보겠습니다.

만약에 바로의 딸이 목욕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요? / 목욕을 하더라도 왕궁 목욕탕에서 했더라면 / 시녀들이 거닐더라도 갈대 상자가 있는 반대쪽으로 걸었다면, 공주는 갈대 사이에 있는 상자를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애굽의 공주가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헌데 갈대로 만든 상자를 보고 궁금해서 가져오게 합니다. 만약에 관심이 없었다면... / 상자를 열었을 때 아이가 울지 않았다면, / 히브리 남자인줄 알고 시녀를 시켜 그 아이를 죽였다면... /

사실 바로의 딸이라면 얼마나 경호가 삼엄했겠습니까? 헌데 이상하게도 히브리 노예 계집 아이가 공주에게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경호가 삼엄하여 공주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다면..

히브리 노예가 애굽의 공주와 말을 섞을 수나 있었겠습니까? 헌데 히브리 노예가 제안하는 것을 듣습니다. 만약에 공주가 무시했다면,,

바로의 딸이 그를 양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생각해 보세요. 이 가운데 한 가지로도 틀어졌다면 모세는 강물 위에서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모세가 죽었다면 이스라엘 구원의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가지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을 누가 하신 것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하나님을 ‘P.D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하 P.D님!’

하나님의 연출을 보십시오. 이집트에서 히브리 남자 아이가 가장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의 말을 거역할 수 있는 오직 한 사람! 그의 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바로가 살고 있는 왕궁 공주의 양자가 되게 하십니다.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이곳에서 모세는 제왕학을 공부합니다. 40년간 군주로서의 필요한 훈련을 받지 않았던들, 어떻게 200만이 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 지도자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적용)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삶의 연출자도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하나님은 우리 삶을 계획하시고, 간섭하시며, 인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만남을 연출하고 계십니다. 때로는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는 사람들을 통해서 나를 다듬기도 하십니다. 때로는 나를 도울 자를 만나게 하십니다. 사랑하며 사랑받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인생을 연출하십니다. 지금 겉으로 보이는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아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일하시고 계심을 믿고, 인내하시고, 내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너무 힘들고 지칠 때 십자가를 보십시오. 십자가가 능력으로 다가올 때가 바라보십시오. 십자가에서 들려오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네가 이만한 일로 망할 것 같으면 내가 십자가에서 널 위해 죽지도 않았어! 두려워 하지 마. 내가 너와 함께 할거야! 놀라지 마. 내가 너의 하나님이야!” 할렐루야! 기독교 신앙이란 인격자이신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목적을 갖고 우리를 인도하시며,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지금도 하나님은 일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믿고 지금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지금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이 믿음으로 힘을 내시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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