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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장성한 후에 이병수목사 2012-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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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4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출애굽기 2:11-15/사도행전 7:22-29

제목:모세가 장성한 후에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 / 이 때가 언제인지는 출애굽기는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허나 사도행전 7장 23절에서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습니다. “나이가 사십이 되매”라고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바로의 공주의 양자가 된 모세는 이제 불혹의 나이 40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출애굽기 2장 10절에서 11절은 한 절 차이이지만 40년의 시간이 흐른 것입니다. 이 40년의 기간을 사도행전 7장 22절에서는 한 줄로 요약해 주고 있습니다. 표준 새번역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모세는 이집트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서, 그 하는 말과 하는 일에 능력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120년의 삶을 살았습니다. 헌데 120년의 삶은 정확하게 40년씩 3주기로 나누어집니다. ①첫 40년은 태어나서 바로의 딸의 아들로, 애굽의 왕자로 살아간 세월입니다. ②그리고 40세에서 80세까지의 중간 40년은 미디안 광야에서 양떼들을 돌보는 목자로서의 삶입니다. ③80세부터 120세까지의 40년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삶이었습니다.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 드와이트 엘 무디는 120년의 모세의 인생을 세 시대로 나누면서 모세가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처음 40년! 로열 패밀리로 자라났던 과정에서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I am Somebody!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갖고 살았던 시기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40년은 소위 미디안 광야에서 보냈던 시간으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I am Nobody!’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가 자신에 대해 철저히 절망하는 시기입니다. ?세번째 시기는 자기 교만이 깨지고 철저히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며 하나님 안에서 거듭난 시기입니다. 출애굽의 영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로 살아갔던 40년의 모세는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I am God's Buddy! 나는 하나님의 절친이다.’라는 자기 정체성을 갖고 살았던 시기입니다.

오늘 본문은 애굽의 왕자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나는 힘과 실력과 능력이 있다’고 자부하던 시기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자기 죽음을 경험하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I am Somebody!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시기에서 I am Nobody! 나는 죽고 오직 주님이 사는 정체성의 변화를 경험하는 과정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져 가는 과정을 함께 살펴 보기 원합니다.

1.첫번째 과정은 ‘결단의 단계’입니다. “위대한 결단”입니다.

한 번은 자신의 형제들인 히브리 노예들이 일하는 곳으로 나갔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고되게 노동하는가를 보았습니다. 헌데 어떤 애굽의 관리가 한 히브리 노예를 무자비하게 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히브리 노예가 당하고 있는 것을 보니 울분이 일었습니다. 좌우를 살피고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애굽 관리를 쳐 죽이고 히브리 노예를 구해 주었습니다. 완전 범죄를 위해서 죽은 애굽 관리는 암매장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나가 히브리 노예들을 둘러 보고 있었습니다. 헌데 이번에는 히브리 노예들끼리 싸우고 있습니다. 힘이 센 히브리 노예가 다른 히브리 노예를 치는 것입니다. 모세는 둘을 화해시키려고 말렸습니다. ‘너희는 한 형제인데 왜 서로 다투느냐? 왜 서로 해치느냐?’ 그러자 잘못한 히브리 노예가 모세에게 “네가 우리를 다스리는 재판관이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 같이 나도 죽이려고 하느냐?”며 모세의 죄를 폭로해 버렸습니다. 결국 모세는 자신의 죄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을 알고 두려워 하였습니다. 바로 왕이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려고 찾았습니다. 이제 모세는 더 이상 애굽 땅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바로의 낯을 피해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 이 일로 인해서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의 생활을 하게 됩니다.

 

헌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왜 모세는 애굽의 왕자 신분으로 같은 애굽의 관리를 쳐 죽이면서까지 히브리 노예를 구해주었느냐?는 것입니다. 단순히 동정심 때문입니까? 원래 정의로운 사람이기때문입니까? 당시 노예들을 인정사정없이 다루는 것이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히브리 노예 편을 들면 자신에게 어떤 불이익이 닥칠지를 알고도 이렇게 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출애굽기에서는 침묵하고 있으나 사도행전 7장 23절에서는 그 이유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지금 모세는 무슨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히브리 인들은 자신이 돌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40년간 왕궁에서 애굽의 왕자로 자랐습니다. 애굽의 왕자로서 제왕학을 공부했습니다. 헌데 모세의 정체성은 애굽의 왕자가 아니었습니다. 히브리 노예를 해방해야 할 자로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사도행전 7장 25절은 더 놀라운 사실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이미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히브리 사람이요 장차 애굽의 치하에서 고통하는 자신의 형제들을 구원하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쓰실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모세의 마음 안에는 정한 뜻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히브리서 11장 24-25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이미 모세의 마음속에는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받기를 거절했다고 했습니다.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장차 애굽의 왕위를 이을 자격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명예와 권세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애굽 왕의 딸의 아들이라면 얼마나 대단한 명예입니까? 그 자체만으로 수 많은 권세과 특권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또 그는 모든 쾌락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죄악을 떠나지 못합니까? 죄 짓는게 재밌기 때문입니다. 죄 짓는 게 고통스러우며 짓겠습니까? ?또 모든 부요함을 거절한 것입니다. 물질에 욕심을 내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세계적인 명품 구찌의 패트리지오 디 마르코회장은 ‘명품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조건은 으쓱하게 하는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은데, 모세는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고난 받기를 즐거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모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계속해서 히브리서 11장 26절을 보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가 공주의 아들이라는 명예와 권세와 부와 쾌락을 단호히 거절할 수 있었던 것은 상주시는 이를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지금 모세는 애굽의 왕자의 신분으로 살아가지만, 모세의 내면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기를 결단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결단하게 된 것은 이집트의 보화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을 더 큰 보화로 여겼기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본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명을 위해서 믿음의 길을 간 것을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은 것이라고 여겨 주신 것입니다. (적용1)우리들이 주님을 위해서 한 것은 어느 것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자이기에 행한 헌신과 수고와 희생은 모두 다 그리스도를 위한 것으로 여겨주시고 그 상을 결코 잃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치 있는 삶,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때, 이 땅에서는 고난이어도, 아픔이어도 고생이어도 주님 앞에 서는 날, 주님이 내가 살아왔던 삶의 진가를 인정하시고, 나를 받아주시며 상 주실 것을 믿는다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적용2)모세가 이렇게 위대한 결단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물론 믿음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헌데 그 믿음은 언제 어디에서 자란 것일까요?

우리는 흔히 모세가 부르심을 받고 사명을 받은 것이 80세가 되어 시내산에서 불붙은 떨기나무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을 만났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허나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왕궁에서 호화로운 삶을 살고 있을 때에 이미 자신이 누구며, 자신의 사명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40세가 되어서는 동족을 돌아볼 생각을 했습니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었던 것, 애굽의 그 어떤 보화보다도 장차 받을 하나님의 상급을 가장 귀한 보화로 여길 줄 아는 믿음이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그것은 모세의 친모 때문입니다. 바로의 딸은 나일강에서 건져 올린 모세를 위해서 유모를 불러오게 했습니다. 헌데 모세의 누나는 모세의 친 어머니를 불러왔습니다. 출애굽기 2장 9-10절입니다.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적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여기에 그 답이 있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왕궁에서 자라기 전에 생모의 품안에서 자랐습니다. 언제까지입니까? 젖을 떼기까지입니다. 보통 이스라엘 사람들은 최소 3년은 젖을 먹였습니다. 이것은 최소입니다. 5년이나 7년 동안 젖을 먹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평생 후원자가 되어서 유모가 뒤를 돌봐주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모세의 생모는 3년에서 7년 동안 모세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이면서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말씀을 가르치지 않았겠습니까? 모세의 생모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애굽왕 바로의 명령도 두려워 하지 않고 어린 아들을 키우기로 한 믿음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러니 어린 모세에게 젖을 물리면서 얼마나 기도하며 가르쳤겠습니까? ‘모세야! 너는 히브리인이다. 너는 공주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은 너를 통해 히브리 민족을 해방시키실 것이다. 하나님은 너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할 원대한 꿈이 있다. 이것을 명심하거라!’며 가르치고 가르치지 않았겠습니까? 날마다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어릴 적에 보고 들었던 말씀이 모세의 전인생을 좌우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잠언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적용)여러분은 자녀들에게 무슨 말을 가장 많이 하십니까? 자녀들을 품에 안고 무슨 축복을 하십니까? 장성한 자녀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기를 기대하십니까? 애굽의 왕자만 되면 됩니까? 로열 패밀리로 자신이나 호위호식하며 살기 원하십니까? 아니면 세상의 어떤 유혹과 달콤함도 거절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기를 더 좋아하는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모세는 다 실패하고 광야에 도망자가 되었을 때에 결단한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결단이 대단한 것은 모든 것을 갖고 있을 때, 애굽의 왕자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 때, 결단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위대한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공주의 딸이라 칭함을 받기 원하실 것인지?” “하나님의 백성들과 고난받기를 더 좋아할 것인지?” / 애굽 이 세상이 주는 보화를 좇으며 사실 것인지?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살아 장차 하나님이 주실 상급을 좇으며 사실 것인지?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2.두번째 과정은 실패의 단계입니다. 위대한 실패입니다. ‘위대한 실패’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실수와 실패였지만, 그럼에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리스도인의 실패는 새로운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모세는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관리에게 무자비하게 고통을 받는 히브리인을 구해 준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서 모세는 히브리인들이 자신을 받아줄 줄 알았습니다. 자신에게로 모여들어 ‘우리 힘을 합쳐 애굽을 무너뜨립시다. 모세를 우리의 지도자로 삼고 애굽과 맞서 싸웁시다.’라고 할 줄 알았습니다. 모세는 히브리인들이 하나님이 우리의 해방자로 모세를 보내주신 것이다라고 깨달을 줄 알았습니다. 헌데 모세의 예상은 틀렸습니다.

고통 받는 동포를 보고 ‘나는 히브리인이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고통받는 내 동포들을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는 마음은 올바른 것입니다. 헌데 모세는 동기는 좋았는데 방법이 틀렸습니다. 모세는 애굽 사람을 쳐 죽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마음에 확신이 있어서라기보다 순간의 울분과 감정에 치우친 행동이었습니다. 모세는 지금이야말로 자신은 가장 강한 때이기에 해방자로서 적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서 결국 모세는 광야로 도망을 칩니다. 자신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철저하게 실패를 경험한 것입니다. 자신의 실수로 인해서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실패를 놓치지 않으십니다. 모세의 실수와 실패를 기회로 삼으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광야의 수업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왕궁에서 다듬으신 것이 아닙니다. 광야였습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광야를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라고 합니다. 사실 광야는 사람이 도무지 살 수 없는 곳입니다. 광야에서 사는 길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 수 있는 곳이 광야이기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받기에 광야만큼 좋은 곳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기에 그곳은 광야라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것입니다.

(적용)이것이 우리 성도들의 갖는 위로입니다, 은혜입니다. 우리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 결과로 혹독한 시련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실패를 기회로 삼으시기 때문입니다.

(예화)중동지역에서 사는 한 사람이 여행을 하다가 자신의 낙타가 깊은 웅덩이에 빠졌습니다. 주민들에게 낙타를 건져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동네 주민들은 힘을 합쳐서 낙타를 끌어 올리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나 낙타도 흥분한 상태라서 도저히 끌어 올릴 수 없습니다. 동네에 지혜자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현자는 몇 가지 지혜를 알려 주었습니다. 주민들은 삽으로 웅덩이에 흙을 퍼 붓기 시작합니다. 낙타 주인은 그 광경을 보고 기겁을 합니다. 왜 낙타를 산채로 묻느냐고? 그러나 조금 뒤에 결과를 알게 되었습니다. 퍼부은 흙은 결국 낙타가 발을 딛고 나오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적용)때로 우리 성도들도 웅덩이에 빠집니다. 헌데 하나님은 우리를 웅덩이에서 꺼내주시는 방법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옳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실패가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예화2)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만약에 고층 빌딩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멈추었다. 이 때에 한 사람과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갈 수 있다면 누구와 타고 가겠나? 여러분은 어떠세요? 한 어린 아이가 대답을 했습니다. ‘엘리베이터 전문기사와 같이 가겠습니다.’ 정답이지요? (적용)우리는 인생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갑니다. 엘리베이터 밖은 볼 수도 알 수 도 없습니다. 갑자기 인생의 엘리베이터가 멈출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을 때에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돈입니까? 권세입니까? 명예입니까? 인생의 전문기사이신 하나님과 함께 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언제 쓰셨습니까? I am Somebody!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다. 나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기대는 무너지고, 자신이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른 실패를 경험하고 비로서 I am Nobody!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붙잡았을 때,,, 하나님은 시작하셨습니다. 모세는 혈기 왕성한 40세에 쓰임 받을 줄 알았지만, 하나님은 80세의 노인 모세를 쓰셨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혹 어느 모양으로든 실패가운데 있습니까? 신자들의 실패가 아름다운 것은 하나님이 그것을 새로운 기회롤 삼아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애굽의 왕자로 사는 것이 성공이 아니라, 사명을 따라 사는 것이 성공입니다. 사명을 따라 사는 삶이 결코 쉽지 않지만, 이 세상에서 다 보상받지 못한다해도 장차 상주시는 이를 바라보고 믿음의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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