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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변화의 단계 이병수목사 2012-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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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11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출애굽기 2:15-22 / 사도행전 7:29

제목:위대한 변화의 단계(3)

우리는 지난 주에 모세가 하나님의 사람 세워져 가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1.첫 번째는 ‘결단의 단계’였습니다.

모세는 무엇을 결단했습니까? 히브리서 11장 24-26절에서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2.둘째 단계는 ‘실패의 단계’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실력과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을 지지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세와 힘을 합쳐 애굽을 대항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헌데 이것은 예전에 유행어처럼 “그건 네 생각이고”였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모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모세는 뼈아픈 실패를 맛봅니다. 이 일로 인해서 혹독한 대가를 지불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실패는 아름답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세의 실패는 하나님에게 새로운 기회였습니다.

 

3.오늘은 세 번째 3단계입니다. ‘변화의 단계’입니다. 모세는 뼈아픈 실패로 인해서 더 이상 애굽 땅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15절입니다.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모세는 애굽의 통치권이 미치지 않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쳤습니다.

(1)첫째는 <중간지대의 불안을 극복하라>

이 때의 모세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매우 혼란스럽고 불안했을 것입니다. 어제까지는 애굽의 왕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호위호식하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밑바닥 인생이 되었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자리로 떨어진 것입니다. 떨어지는 높이가 클수록 정충격도 컸을 것입니다. / 또한 손 하나 까닥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다 해 주고, 보호를 받고 자랐습니다. 부족한 것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헌데 이제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자신을 스스로 지켜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배는 고프고, 두려워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 무엇보다 영적인 충격이 가장 컸을 것입니다. 자신은 확신을 갖고 이스라엘을 구원한다고 한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서 한 일이었습니다. 헌데 결과는 참담함입니다. 자신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결과였습니다. ‘이게 뭔가?’하는 영적인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런 모세의 혼란스러운 심리와 영적인 갈등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 ‘바로의 낯을 피하여 도망자가 되고, 낯선 땅 미디안 광야에 머물며,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물 곁에 앉아 있는 모세의 모습입니다.’ 이 때의 모세의 심리와 영적인 상태를 잘 표현하는 말이 있습니다.

(예화)폴 투르니에라는 유명한 상담심리학자는 이 같은 불안을 “중간지대의 불안”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자리>라는 책에서 “우리가 새로운 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떠나야 하는 자리가 있고, 그 둘 사이에는 자리가 없는 자리, 지지 받을 수 없는 자리, 자리가 아닌 자리가 있는 것이다.... 불안은 두 자리 사이에서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를 놓고 마음속에서 망설이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시라는 것이다.”

불안이란? 새로운 자리로 가려면 떠나야 할 자리가 있는데, 그 두 자리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 심리상태인 것입니다.

모세의 경우 왕궁의 자리에서 하루 아침에 도망자가 되어 광야의 자리 로 옮겨와서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고, 안정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불안을 느끼는 것입니다. 지금 모세는 ‘중간지대의 불안’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적용)모든 사람들이 중간지대의 불안을 경험합니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불안함이 가원이가 갖고 있는 중간지대의 불안입니다. 새로운 환경을 만날 때(직장에 첫 출근할 때, 새로운 사람들과 사귀어야 할 때, 교회를 처음 나왔을 때 등등 낯선 곳에서 느끼는 불안함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중간지대의 불안을 경험합니다.

(적용2)중간지대의 불안은 믿음생활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이제 용기를 내서 교회를 다니기로 합니다. 예수님을 믿기로 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합니다. 허나 아직 확신이 없습니다 신앙의 기쁨을 체험한 것도 아닙니다. 이 두 사이에서 갈등을 합니다. 불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이제는 주님만을 믿고 섬기며 열심히 살려고 합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은혜를 받습니다. 힘이 납니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헌데 막상 현실 속으로 들어가면 몇 시간 전에 갖았던 마음은 다 사라지고, 낙심하고, 답답한 현실을 보며 자신 없어지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고 싶어지는 마음이 듭니다. 그러면서 넘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이것이 중간지대에서 느끼는 불안입니다.

(적용)이 모세의 모습이 딱 우리의 모습 같지 않습니까?

모세가 믿음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욕심대로 살다가 이런 어려움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나름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고 했는데, 결과는 큰 어려움을 당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려고 했고, 충성한다고 했는데, 상황은 더 어려워지고, 힘들어 질 때 영적인 혼란을 겪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중간지대의 불안함’을 해결하는 길은 ➊먼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 주어야 합니다. 불안해 하고 두려워 하는 자신을 정죄하거나 그런 자신에 대해서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❷그렇다고 어쩔 수 없지! 하고 합리화시켜서도 안됩니다. 자연스러운 거니까 내버려두자!해서도 안됩니다. ❸불안한 마음이 들 때 과거에 받았던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무한한 신뢰와 사랑이 가장 중요합니다. ➍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자신의 모습을 솔직히 인정하고, 성령의 은혜를 구하셔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임할 때 담대해 질 수 있습니다. ➎또신자들에게 주시는 영원한 약속! 우리들의 인생관이 되는 말씀 로마서 8장 28절을 큰 소리로 선포하십시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둘째는 <실패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계속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물론 실수는 모세가 했습니다. 헌데 궁극적으로는 미디안 광야의 삶을 하나님은 연단의 기회로 삼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좋으신 분이십니까? 실패하고 낙심하여 있는 중에도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 가운데 가장 큰 복중에 하나는 만남의 복입니다. 16절입니다.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들의 아버지의 양 떼에게 먹이려 하는데” 미디안 제사장이라 함은 장차 모세의 장인이 되는 이드로입니다. 훗날에 이드로는 모세의 든든한 조언자요 후원자가 되어 줍니다. 또한 그의 딸 중에 십보라를 만나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가정은 외로운 광야생활을 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이 주신 위로였습니다. 은혜였습니다. (적용)보세요. 실패 중에도 하나님의 위로가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신자들에게는 진노 중에도 자비와 용서의 은혜가 있습니다. 고난 중에도 소망이 있습니다.

 

(3)셋째로 <왜 하나님은 모세에게 광야 레슨을 시키는가?>

➀낮추시기 위함입니다.

모세는 외적인 조건으로만 보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었습니다. 허나 주님은 기술이나 실력만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미디안 광야에서 내면을 성숙케 하는 훈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양떼들을 돌보는 일을 했습니다. 양을 돌보면서 온유와 겸손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구약에서 훌륭한 리더쉽을 발휘했던 지도자를 꼽으라면 모세와 다윗입니다. 헌데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광야에서 양을 쳐 본 경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능으로 살아가는 양떼들을 돌보면서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목양의 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모세는 양떼가 아프면 같이 아파하고, 길에서 벗어나는 양떼가 있으면 끌어오고, 맹수들의 공격이 있으면 보호하기 위해서 싸우면서 하나님의 심정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목자가 되셔서 당신의 백성들을 돌보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➁또한 광야생활을 갖게 하신 또 하나의 이유는 모세가 39년 6개월간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 사역지인 시내 광야를 사전 답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때 모세를 현장실습 시킨 것입니다. 만약에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 대한 경험 없이 곧 바로 왕궁생활하다가 광야로 백성들을 이끌고 나왔다면 모세가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편안한 삶만을 살던 사람이 갑자기 광야생활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또 왕자의 삶만을 살던 사람이 어떻게 히브리 노예인 백성들의 마음을 이해나 하겠습니까? 툭하면 백성들은 모세가 우리 맘을 알기나 해! 왕궁에서 편안하게 살던 사람이 우리 맘을 어떻게 알겠어!라며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겠습니까? 허나 자신도 광야 40년의 삶을 살았던 경험이 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적용)때로 우리 삶에 찾아오는 고난의 시간들은 다 뜻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비록 나의 실수로 인한 고난이요 어려움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진실하게 내어 놓을 때, 하나님은 새롭게 빗어가실 것입니다. 지금 고난 가운데 있으십니까? 훗날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시기 위해서 준비하시는 시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➂무엇보다 미디안 광야의 40년의 시간은 모세의 인생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 29절에서는 미디안 광야 40년의 삶을 단 한 줄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은 “미디안 땅에서 무엇이 되었다는 것입니까? 나그네 되어”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광야에서의 삶은 모세로 하여금 ‘나는 나그네구나! 우리의 삶은 나그네 인생이구나!’라는 것을 온 몸으로 체득하게 한 것입니다. 모세는 이 진리를 잊지 않기 위해서 큰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지었습니다.

출애굽기 2장 22절입니다.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이르되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첫 아들을 낳고 모세는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지었습니다. 이 이름의 정확한 뜻은 ‘게르는 곧 나그네, 솜은 여기에서’라는 말입니다. ‘이 땅을 사는 나는 나그네이다’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식들의 이름을 지을 때에 신앙고백을 담아 짓습니다. 모세도 첫 아들을 낳고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게르솜이라고 지은 것입니다. 모세는 큰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마음에 되새기지 않았겠습니까? ‘이 땅에 살아가는 나는 나그네이다’ 또한 인생을 살아가는 아들에게도 기억하게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이 땅을 사는 우리는 모두다 나그네란다!’

모세는 알았습니다. 천하의 제왕도, 광야의 목동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저 나그네일 뿐이다!라는 것입니다. 천하을 떨게하는 왕자의 신분에서 하루 아침에 광야에서 양떼를 돌보는 자신을 보면서 “나는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다”라고 겸손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적용)우리 신자들은 무엇보다 게르솜 신앙을 갖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나그네임을 아는 자만이 겸손할 수 있습니다. 나그네임을 아는 자만이 어제까지 천하의 왕자로 호위호식 하다가 한 순간에 바닥으로 추락하여 광야에서 목동으로 살아간다 해도 결코 낙심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나그네임을 알 때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내가 나그네임을 알 때 움켜쥐려는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나그네임을 아는 자만이 여유를 갖고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나그네임을 아는 자만이 높아진다해도 교만하지 않으며, 낮아진다해도 좌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그네임을 아는 자만이 보다 높은 삶의 가치를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지혜자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세 가지가 있습니다. ➊우리가 살아가는 날은 너무나 짧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사랑하며 삽니다. 감사하며 삽니다. 기쁨으로 삽니다. ➋또한 우리 인생은 단 한 번 밖에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자입니다. 지나간 과거도 다가올 미래도 내 것이 아닙니다. 오직 지금만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입니다. ➌셋째로 지혜자는 나는 나그네요, 반드시 이 땅을 떠나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아는 자입니다. 모세가 위대한 결단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장차 상주시는 이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알았습니다. 이 땅은 내가 살 영원한 땅이 아니라는 것을... 반드시 이 땅을 떠나 돌아가야 할 영원한 나라가 있다는 것을....

설교를 준비하는데, 옛날 아버님이 부르시던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고복수님의 타향살이 ♬를 아십니까?

1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 여년에 청춘만 늙~~~어

2부평같은 이 내 신~세 혼자도 기막혀서

창문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쪽

3고향 앞에 버드나~무 올 봄도 푸르련만

호들기를 꺾어 불던 그 때는 옛~~~날

 

우리는 이 땅에서 잠시 타향살이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영원한 본향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것을 진정으로 아는 자라면 내가 게르솜임을 아는 자라면 그 다음으로 가야 합니다.

모세는 광야생활에서 둘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엘리에셀입니다. ‘엘’은 하나님, ‘리’는 나의, ‘에셀’은 돕는 자라는 뜻입니다. 모세가 둘째 아들을 낳고 이름하여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이시다’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두 번째 신앙은 엘리에셀의 신앙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모세가 광야에서 타향살이를 하면서 한 손에는 게르솜을 품에 안고 또 한 손에는 엘리에셀을 품에 안고 살았다는 것이 메시지가 아닙니까? 내가 나그네 임을 아는 자만이 하나님만을 도움으로 삼고 살아가지 않겠습니까?

 

모세는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모태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생모의 품안에서부터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입니다. 또한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도 알았던 사람입니다. 헌데 40세가 되기까지 모세가 몰랐던 것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나그네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이 나그네임을 몰랐을 때는 자기 자신을 믿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힘과 능력과 실력을 힘으로 삼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했습니다. 자기의 능력과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할 때, 모세는 자기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고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그네요 내가 사는 날 동안 나의 도움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시다라는 믿음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했을 때 모세는 200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적용)여러분은 무엇을 도움으로 삼으십니까? 엘 - 리에셀이 아니라, 돈-리에셀=돈이 나의 도움이다 / 학 -리에셀=학력이 나의 도움이다.라며 사십니까? 모세는 지극히 초라해 보이고, 연약해 보였지만, 여호와 하나님만을 힘으로 삼을 때 모세는 위대한 지도자 진정한 이스라엘의 해방자가 되었습니다. / 돈이 무익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80세 노인이 되어 이스라엘을 인도할 때 왕궁에서 배운 학문과 어학과 리더쉽과 실력은 너무나 귀중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또한 광야에서 체득한 실력은 40년 이스라엘 지도자로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밑천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갖고 있다한들 나그네임을 깨닫지 못한다면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게르솜임을 겸손히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게르솜임을 알 때 모세는 변화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자신의힘이요 능력이요 도움으로 삼고 사명을 감당하는 신실한 자가 되었습니다.

-실패 중에도 하나님은 은혜와 자비의 손길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세상에서 붙잡고 있었던 손을 과감히 놓으십시오. 하나님의 손을 굳게 붙드십시오. 중간지대의 불안을 믿음으로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게르솜임을 잊지 마십시오. 내가 게르솜임을 알 때, 엘리에셀의 삶을 살수 있습니다. 엘 -- 리 - 에셀하는 삶을 살아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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