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 속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 | 이병수목사 | 2012-03-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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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18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사도행전 7:30 / 출애굽기 3:1-8 제목:부르심 속에 담긴 사랑 오늘 본문 출애굽기 3장은 모세의 소명장이라고 일컬어 집니다. 드디어 모세가 사명을 위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는 모습은 참으로 극적이고 감격적인 장면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 곳에 담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은 무엇인가?를 나누기 원합니다. 모세의 부르심의 감격과 은혜는 동일하게 우리들을 부르시는 모습 속에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우연이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나, 즉흥적이거나, 실수로 되어 지는 일은 없습니다. 모세의 부르심속에는 뭔가 특별하고 극적인 것인 있는데, 나를 부르실 때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1.먼저 우리가 생각해 보기 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모세를 떨기나무에 붙은 불 가운데에서 만나신다는 것입니다. 헌데 이 불은 시간이 가도 꺼지지 않습니다. 이 불은 혼자 타고 있지, 나무를 태워 불을 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놀라운 장면이지만, 우리들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습으로 모세를 만나시고 부르시는 것일까?하는 것입니다. 떨기나무는 현재 모세의 모습을 상징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금 모세의 나이는 80세가 되었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인생을 정리하고, 손자들 재롱이나 보아야 할 나이입니다. 모세는 40세가 되었을 때 자기 민족을 구원하겠다고 열심을 내었습니다. 이 때는 혈기왕성할 때였습니다. 모세 안에는 동족을 구원하려는 불이 타고 있었습니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열정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했습니다. 헌데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도 받지 못했고, 동족들의 지지도 받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쳐야 했습니다. 과거 40년 전에 모세는 자기 백성을 구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뤄 보겠다며 자기 스스로 내었던 헌신과 열심의 불은 하루 만에 타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제 80세가 되었습니다. 80세가 된 모세 앞에 펼쳐진 광경은 마치 과거 40년 전에 자신의 힘과 열정으로 하려다 실패한 모습을 깨우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모세 앞에 떨기나무는 활활 타오르고 있지만, 꺼지지 않는 불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붙여주신 불은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였는가?를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긴 것입니다. (적용)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람은 내 노력과 내 능력, 내 열정으로 이루었다고 믿는 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허나 기독교의 신앙은 은혜로 시작해서 은혜로 마치는 것입니다. 헌데 우리들의 문제는 구원은 은혜로 받는다는 것을 압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로 구원받았으면, 계속해서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은혜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헌데 구원은 은혜로 받고, 신앙생활은 내 힘으로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내 힘으로 열심의 불을 붙여 보지만, 이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예1)종교개혁자들이 붙잡은 3대 명제가 무엇입니까? Sola Fide! 오직 믿음으로, Sola Scriptura! 오직 성경으로, 그리고 Sola Gratia!! 오직 은혜로입니다. 왜 종교개혁자들이 ‘오직 은혜’를 붙잡은 것입니까? ➀당시 종교개혁의 대상인 카톨릭은 골리앗과 같았습니다. 그들에 비해서 자신들은 다윗에 불과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뿐이었음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➁뿐만 아니라, 캐톨릭이 타락하면서 인간의 행위를 강조하였습니다. 지금도 이것이 남아서 죄를 회개하고 죄를 씻기 위해서는 벌을 받습니다. 허나 이것은 복음을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씻음 받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로 거룩하여 지는 것입니다. 이 잘못된 것을 개혁하기 위해서 오직 은혜를 붙잡은 것입니다. (예2)수요예배시간에는 계시록의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계시록 11장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헌실할 두 증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 증인은 교회를 말합니다. 신실한 주의 백성들을 말합니다. 말세에 하나님의 대안은 두 증인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한국교회에 미래교회에 두 증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두 증인들에게 권능을 주시는데, 그 중에 하나가 총독 스룹바벨에게 주신 권능입니다. 총독 스룹바벨은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의 시간이 끝나고, 1차 귀환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한 지도자입니다. 70년 후에 돌아온 예루살렘의 모습은 처참했습니다. 참담했습니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스룹바벨의 사명은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과 성을 재건하는 일입니다. 헌데 현실을 보니 스룹바벨의 마음에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에게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여 주십니다. 스가랴 4장 6절 말씀입니다. “그가 내게(스가랴)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군사력, 금력, 학력 즉 세상의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인간의 재능, 지식, 노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성령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지금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40년 전에는 네 힘으로 네 능력으로 하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허나 이제는 내가 너에게 능력을 부어 줄 것이다. 너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적용)지금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네 힘으로 하려고 하지 말라. 네 능력으로 하려고 하지 말라. 이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느니라. 할렐루야!! 적용-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보잘 것 없는 ‘떨기나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떨기나무라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열등감에 사로 잡히지 마십시오. 오리려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일심으로 기도하여 성령의 능력을 받은 것 같이 위로부터 부어 주시는 능력이 임할 때 우리를 활활 타오를 수 있습니다. 2.둘째로 모세의 부르심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인내의 터널을 지나서 온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부르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말씀은 사도행전 7장 30절입니다. 함께 받들어 읽겠습니다. “ ” 가장 중요한 말씀은 “사십 년이 차매”입니다. “사십 년이 차매”라는 말은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이 되매”라는 것입니다. (1)왜 하나님은 모세가 80세 되었을 때 찾아 오셨을까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모세가 광야 사십 년 동안을 어떻게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전원생활하면서 여유있게 즐기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모세는 몸부림치는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이 때 가장 많이 물었던 질문은 “이게 뭔가?”였을 것입니다. 내 인생이 이게 뭔가? 이게 끝인가? 하나님은 무얼 하시나? 하나님은 왜 응답하시지 않으시나? 하나님 앞에 얼마나 엎드려 기도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답답해 하고, 불안해 하고, 심지어는 분노하기도 하고 억울해 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과 매일 매일 싸우지 않았겠습니까? 수많은 영적인 갈등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사년이 아닙니다. 40년의 세월입니다. 40년의 세월동안 고민하고, 힘들어 하고, 기도하고, 원통해 하고, 억울해 하고, 몸부림치고,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절망하고, 그리고 항복하지 않았겠습니까? 난 더 이상 아무 것도 아니야!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자아의 죽음을 경험했을 때, 바로 그 때 하나님은 찾아 오셨습니다. 모세가 완전히 탈진되어 항복할 때 하나님은 찾아 오셨습니다. 그 표현이 “사십 년이 차매”였습니다. (2)우리는 모세!하면 모세가 한 일만 생각합니다. 모세가 얼마나 대단한가? 얼마나 큰 일을 했는가? 그러면서 열등감에 사로잡힙니다. 나는 안돼! 헌데 우리가 정말 기억해야 할 것은 모세도 40년의 인내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뭔가? 왜 하나님은 응답하시지 않나? 죽을 것 같고, 답답하고, 불안하고, 미칠 것 같은 시간들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것은 보지 않고, 모세가 한 일, 모세를 통해서 나타난 기적들만 생각합니다. (저의 고민?) 제가 그랬습니다. 날마다 엎드려 기도할 때마다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응답하시지 않나? 우리 장로님의 기도의 제목을 해결해 주시지 않나? 힘든 것을 아시면서... 일 년이 가도 이년이 가도 3년이 되어 가는 데도 왜 응답하시지 않나? 왜 하나님은 잘 믿는 권사님의 가정에 어려움을 주시나? 자녀의 병을 고쳐주시면 안되나? 취업의 문을 열어주시면 안되나? 예수님 믿기로 작정하고 나온 성도들에게 응답하셔서 하나님은 살아계세요! 간증할 수 있게 하시면 안되나? 하나님! 간증을 주세요. 응답해 주세요. 저러다 낙심할까 걱정되 죽겠어요? 하나님! 제발 응답해 주세요! 구하고 구합니다. 때로는 답답하고 때로는 불안하고, 때로는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도 들고, 풀리지 않는 숙제였습니다. 헌데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답을 찾았습니다. ‘미디안 광야 40년! 인내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진리를 하나 찾아 냈습니다. 한 번 따라서 해 보세요. “지금은 모른다. 속단하지 말자. 끝까지 가봐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지나야 할 터널이 인내의 터널입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성경의 인물들,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하루 아침에 쓰임받고, 응답받고, 능력을 나타낸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헌데 우리는 과정은 보지 않고, 결과만 봅니다. (예1)요셉 좋아하시지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잘 살다가가 하루 아침에 영문도 모르고 형들에게 인신매매를 당합니다. 울고 불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노예가 되었습니다. 애굽으로 팔려 왔습니다. 얼마나 분통터지겠습니까? 이게 뭔가?하지 않았겠습니까? 슬퍼할 여유도 없습니다. 안정될만 하니까 억울하게 종살이를 했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13년의 인내의 터널을 지났습니다. (예2)누구 좋아하세요? 바울요? 바울처럼 하나님을 극적으로 만난 사람도 없습니다. 헌데 순탄했습니까? 아니요? 다메섹에 가서 예수를 전하는데 회심한 사람들은 없고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뿐입니다. 하는 수 없이 3년을 아라비아 광야에 숨어 지냅니다. 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사도들과 함께 복음 사역을 감당하려고 했는데,,, 믿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바울일 죽이려고 특공대가 조직됩니다. 또 하는 수 없이 낙향하여 13년이란 시간동안 잊혀진 자로 지내게 됩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16년이란 인내의 터널이 있습니다. 울고 불고 이게 뭔가?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예3)우리가 고난을 받는다 받는다 하지만, 욥만큼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루 아침에 굶어죽을 만큼 재산을 모두 잃으셨습니까? 자식들이 사고로 다 죽었습니까? 아내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습니까? 몸에 심한 병이 들었습니까? 우리 가운데 한 두 가지 시험이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허나 욥처럼 사방에서 공격을 당한 분들은 없습니다. 욥과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욥의 인내를 알지 않습니까? 내가 적신으로 왔은즉 적신으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이도 여호와이시니 여호와만이 찬양받으실지니라 우리는 성경의 인물들이 행한 능력과 쓰임 받은 것, 응답받은 것만 보려고 합니다. 죽을 것 같고 답답해서 갈등했던 인내의 터널은 보지를 않습니다. 인내의 시간은 각자마다 다릅니다. 허나 인내의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모세에게는 40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3)그러면 모세에서 40년의 시간은 아무 의미없는 시간이었습니까? 모세가 생각하는 것처럼 잊혀진 시간이었습니까? 하나님이 외면하고 계셨습니까? 모른척 하셨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은 40년의 인내의 시간에도 함께 하시고 계셨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6절의 말씀입니다. “ ”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모세의 사십 년, 아니 팔십 년 동안뿐만 아니라 훨씬 그 이전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이삭, 야곱, 요셉을 지나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성령이 오시고, 성령께서 세우시는 교회시대에도,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영원토록 그들을 지키시고, 함께 하시고, 인도하여 주시는 분이시라는 선포인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적용)우리 성도들 가운데도 지금 인내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지속될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끝까지 가봐야 압니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들에게 받으시고 싶어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입니다. (4)모세가 한 일에 주목하지 마십시오. 사명은 각자가 다 다릅니다. 모세가 한 일은 모세가 할 일인 것입니다. 바울이 한 일은 바울이니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다니엘이 한 일도 다니엘이 할 일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을 했느냐?가 아닙니다. 모세나 바울이나 다니엘이나 요셉이나 받은 은혜는 우리가 받은 은혜나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너 무슨 일을 했니? 얼마나 큰 일을 했니? 너도 모세같은 일을 했니?’라고 결단코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관심 갖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누리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어 주시고, 나를 당신의 자녀라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모든 죄가 씻김 받았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믿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난 천국에 갈 것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세보다 더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알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관계를 갖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기억하세요. 우리들이 모세가 한 일은 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믿었다면 우리는 이미 승리자인 것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을 붙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을 위로하고 싶습니다. 지금 인내의 터널을 지나고 계십니까? 각자 마다 인내의 시간은 다릅니다. 허나 인내의 열매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에게 하나님은 인내의 열매를 맺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떨기나무라도 괜찮다. 내 열정, 내 노력, 내 열심이 아닌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능력을 구하십시오. -모세가 한 일! 모세가 행한 능력만 보지 마십시오. 모세가 보낸 힘겨운 40년의 인내의 시간을 생각하십시오. 지금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절대로 조급해 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끝까지 가봐야 압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렸을 때 망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때에도 은헤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여기에 와 있지 않습니까? 힘겨운 인내의 시간에도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결 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지키시고 계십니다. 그것을 확증하는 시간이 성찬예식입니다. 오늘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서 지금도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나를 기대하시는지! 확인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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