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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이병수목사 2012-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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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1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출애굽기 3:1-10

제목: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우리는 지난 시간에는 왜 하나님은 모세에게 불 붙은 떨기나무 가운데서 만나주셨는가?를 생각했습니다. 이 불은 시간이 가도 꺼지지 않았습니다. 이 불은 혼자 타고 있지, 나무를 태워 불을 내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습으로 모세를 만나시고 부르시는 것입니까? “40년 전에는 네 힘으로 네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려고 했지만, 실패하지 않았느냐? 허나 이제는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내가 너에게 능력을 줄 것이다. 내가 너를 통해서 일할 것이다. 그러니 너는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라”는 메시지를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있나이다”

하나님은 친히 음성을 들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만나주신 것입니다. 이 때 만난 하나님은 지금까지 모세가 알고 있었던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이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5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은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모세가 서 있는 땅은 결코 거룩한 땅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모세가 올라 있는 호렙산에는 모세가 처음으로 올라온 곳입니다. 돌산에 불과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땅을 흙이라고 생각합니다. 논밭이나 부동산으로서의 토지나 집터 또는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 있는 흙으로 덮인 곳을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헌데 땅이라고 다 좋은 땅은 아닙니다. 풀한 포기 자라지 않은 버려진 불모지의 땅도 있습니다. 온갖 더러운 것들로 가득해서 쓸모없는 땅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도저히 살 수 없는 환경의 땅도 있습니다. 국어사전에 보니까 땅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지구에서 바다와 강 등 물이 있는 곳을 제외한 흙과 돌과 산의 모든 부분을 땅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룩한 땅이란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땅, 고고학적인 유물들이 묻혀 있는 땅, 위대한 인물이 태어나 자란 땅, 경제적인 가치가 높은 땅을 좋은 땅 거룩한 땅이라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모세가 서 있는 땅은 결코 거룩한 땅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올라오지 않는 돌산에 불과합니다. 결코 경제적인 가치기 있는 땅이 아닙니다. 헌데 하나님은 말씀하십니까? 80세의 노구의 몸을 이끌고 자신의 소유가 아닌 장인의 양 떼를 돌보고 있는 모세가 서 있는 땅을 가르켜서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실 때 거룩한 땅이란 어떤 땅입니까?

(1)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거룩한 땅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특정한 장소에만 계신 분이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예화1)예전에 세례문답 교육을 하는 시간에 한 할머님에게 여쭈었습니다. ‘할머니!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지요?’ 기대한 대답은 ‘안 계신 곳 없이 어디에나 계십니다.’ 또는 ‘나의 마음 속에 계십니다.’ ‘여기에 계십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헌데 할머니의 대답은 ‘그걸 왜 저에게 물어요? 목사님이 더 잘 아시면서!’ 예! 우리들이 정말 알아야 할 것은 주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데, 문제는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예화2)어느 한 교회에서 전도를 강조하기 위해서 강단 위에 이런 글을 붙여 놓았습니다. “오늘도 혼자 오셨습니까?” 얼마나 잔인합니까? 오늘도 전도 못하고 혼자 왔느냐는 글이었습니다. 물론 전도를 독려하기 위한 글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 글을 읽고 상처 받는 사람들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일주일 내내 공을 들이고, 마음과 물질을 드려서 전도했는데,,, 갈 것처럼 하다가 일 있다면서 혼자와야 하는 성도가 있다면 얼마나 상처를 받겠습니까? 헌데 그 교회에 설교를 위해서 초청받은 목사님이 그 글을 보면서 나 같으면 저렇게 쓰지 않겠다. 굳이 써야 한다면 이렇게 쓰겠다. “오늘도 혼자 가시렵니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교회에만 계신 분이 아닙니다. 교회에 와야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동행하십니다. 우리 마음 안에 성령으로 와 계십니다. 헌데 이 사실을 모르고 예배를 드릴 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 같은데, 교회 문 밖을 나갈 때는 또 혼자인 것처럼 자신의 힘으로 자기의 능력으로 안간힘을 쓰면서 살아간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우리 하나님은 늘 언제나 늘 어디에서나 함께 하십니다. 우리를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 곳은 거룩한 땅인 것입니다. 땅 끝에 거할지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확신한다면 그곳은 거룩한 곳입니다. 그곳이 기도원이요 예배당 한 가운데 있다 해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알지 못한다면 그곳은 불모지와 같은 곳입니다. 그러나 그곳이 광야이든지 감옥이든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곳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지금 여기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살아간다면 그 곳은 거룩한 땅인 것입니다. 환경이 안 좋다고 탓탓지 마세요.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고 내 자신을 지켜 간다면 그곳이 성지인 것입니다.

 

(2)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순종하는 자들이 서 있는 곳이 거룩한 땅입니다. 6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여기에서 ‘두려워하여’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레’라는 말입니다. 헌데 야레라는 말은 사람에게도 쓸 수 있고, 하나님에게도 쓸 수 있는 말입니다. 사람에게 쓸 때에는 사람을 무서워하고 세상을 두려워 할 때도 야레!라는 말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외할 때에도 야레!라는 말을 씁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야레하면 절대로 사람이나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헌데 반대로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두려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야레 하십니까? 사람을 야레 하십니까?

(예)요셉을 보세요. 주인 보디발의 아내가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에 은밀하게 유혹을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이 지금 자신과 함께 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었기에 순간의 쾌락에 빠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요셉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두려워 한 것입니다.

또 다윗을 보십시오.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보통 우리들 같으면 하나님이 기도응답하신 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나를 그렇게 힘들게 하고, 미워하고, 죽이려고 했던 그 사람에게 원수를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면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헌데 다윗은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을 죽이기를 두려워 하였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두려워 한 것이 무엇입니까? 얼마든지 복수 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기에 함부로 복수 할 수 없었습니다.

(적용)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라면 함부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라면 어떻게 교회를 분열케 하고, 저주룰 퍼붓고, 미움 가운데 살 수 있습니까?

우리는 깊히 생각해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사무엘상 2장 30절에서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이나 사람들을 야레 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만을 야레 하십시오. 오직 하나님만을 야레 하기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가 서 있는 그 곳이 거룩한 땅인 것입니다.

 

(3)또한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는 말씀은 약속이요 명령인 것입니다. “장차 네가 서 있는 곳을 거룩한 땅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3.그러면 내가 서 있는 곳을 거룩한 땅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것입니다. 발에서 신을 벗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➀첫째로 신을 벗는다는 것은 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신발을 신고 있다는 것은 안으로 들어갈 마음은 없고, 밖에서 안을 구경하는 것입니다. 허나 신발을 벗는 것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은 주님과 우리의 영적인 거리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님을 멀찍이에서 따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과의 거리가 마치 신발을 벗지 않고 밖에서 안을 구경하는 사람처럼 신앙생활을 하시면 안됩니다.

 

(예화)가정을 예를 들면 주님에게 ❶손님 같은 분이 있습니다. 손님이 가정에 오면 어떻습니까? 환영을 하나 예의를 서로 지킵니다. 화장실을 써도 될까요? 물 좀 마실 수 있을까요? 거리가 있습니다. 손님이 있는 마음도 행동도 편하지는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 주님과의 관계가 손님 같으면 안됩니다. ❷또 일꾼 같은 분이 있습니다. 주인은 명령하고 일군은 순종하는 관계입니다. 일로 만나는 관계입니다. 삶을 나누고, 아픔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거리가 있습니다. ❸셋째는 자녀 같은 신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이십니다. 안방 문도 마음대로 열고 들어갑니다. 냉장고 문도 마음대로 열고 먹습니다. 예의를 따질 것도 없습니다. 아버지와 자녀라는 관계가 무한한 자유를 주고, 쉼을 주고, 힘을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의심의 신을 벗으십시오. 무관심의 신을 벗으십시오. 신을 벗고 깊숙이 안방까지 들어와 주님과 사랑을 나누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➁둘째로 발에서 신을 벗는다는 것은 내가 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주가 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갑니다. 그리고 본성상 내가 하려고 합니다. 내가 가고 싶은 곳,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다닙니다. 내 경험, 내 힘, 내 노력, 내 지식과 내 경험으로 살아보겠다는 여기 저기를 다닙니다. 그래서 신발에는 온갖 더러운 오물들이 다 붙어 있습니다. 일 주일 동안 여러분의 신발은 어디를 다니셨습니까? 혹 죄악된 곳에 가지는 않았습니까? 자신의 힘으로 살아보려고 여기 저기를 정신없이 다니지는 않았습니까? 남들을 비방하고 상처주는 곳으로 다니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것은 욕망과 죄악으로 더럽혀진 신을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기심과 욕심과 죄악의 신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 앞에 나오라는 것입니다. 각자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지난 한 주간동안 나는 어디를 밟고 다녔는가? 내가 남긴 발자국에는 어떤 흔적을 남겼는가? 아름다운 발걸음이었나? 더러운 발걸음이었나?

 

➂셋째로 신발을 벗으라는 것은 모든 권리를 내려 놓으라는 것입니다.

룻기 4장 7-8절에 보면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예수전도단의 창시자인 로렌 커닝햄 목사님이 ‘네 신을 벗으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신을 벗는다’는 것은 모든 책임과 권리를 주님께 내려놓는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 된 이야기입니다. 한번은 사모님이 운전을 하면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헌데 갑자기 차가 고속도로를 벗어나면서 차가 전복되어 굴러간 것입니다. 중심을 잃으면서 대형교통사고가 난 것입니다. 정신이 든 로렌 목사님이 아내를 찾아보니 없는 것입니다. 충격에 의해서 튀어나가 저 멀리 쓰러져 있는 것입니다. 아내를 보니 눈이 풀렸고, 숨을 쉬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로렌 목사님은 아내를 위해서 기도를 하려고 했습니다. 바로 그 때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로렌 이런 상황에서도 나를 섬기겠나?’ ‘예! 주님!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제가 남은 것은 생명뿐입니다. 이 생명도 달라시면 주님께 드리겠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주님은 아내를 위해서 기도하라! 기도를 했더니 숨이 돌아오고, 풀린 눈이 정상을 찾더라는 것입니다. 긴급하게 병원으로 옮겨져서 자신은 하루만에 아내는 3일만에 퇴원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체험하면서 로렌 목사님은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 사건을 회상하면서 고백을 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절실히 깨달은 것은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내려놓을 때 하나님은 비로서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항상 내 차, 내 사역, 내 가족, 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헌데 이 사건을 통해서 내가 갖은 것은 한 순간에라도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잠시 맡겨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내 모든 권리를 내어 드릴 때 하나님은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신을 벗는 것은 내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나를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직 주님만이 나의 힘이시며 능력이십니다.’ 주님께 내 모든 권리를 내려 놓을 때 하나님이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결론)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우리 함께 찬양을 드리기 원합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걸음 걸음을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주의 강한 손이 우리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이제 내 마음대로 걷던 신을 벗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더 가까이 나오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권리를 주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주님 나라위해 사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걷는 여러분의 발걸음을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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