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가 너를 보내어 | 이병수목사 | 2012-04-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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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15일 주일 낮 예배설교 성경:출애굽기 3:7-10 제목:이제 내가 너를 보내어 모세는 이미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라는 것이 능력 있는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지도자로서 보여준 모세의 믿음을 잘 알고 있기에 처음부터 믿음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로 지낼 때 모세의 믿음이란 하나님을 알기는 알지만 전혀 역동적이지 못한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만 관념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적용)우리들 가운데도 이런 분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합니다. 허나 그 믿음이라는 것이 너무나 약합니다. 어린 아이 같은 믿음입니다. 조금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금방 낙심하고 절망하고 흔들립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입술로 고백하지만, 전혀 삶에 능력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박제된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포효하고 있는 사자!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나를 집어 삼킬 듯한 사자입니다. 헌데 박제된 사자입니다. 사자는 사자이나 생명이 없는 사자! 움직임이 없는 사자입니다.
모세의 믿음이 그랬습니다. 이제 모세의 나이 80세,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돌보고 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찾아 오셨습니다. 호렙산맥 시내산에서 모세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 때 비로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만났습니다. (예화)지난 주일에 부활절을 보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죽으셨던 주님이 자신들 앞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직접 보고, 만져도 보았습니다. 그러면 능력 있는 믿음의 삶이 나타나야 하지 않습니까? 헌데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믿음이 있지만, 두려움도 여전히 있습니다. 믿음이 있지만 불안함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헌데 능력은 없었습니다. 이를 너무나 잘 아시는 주님은 명령합니다. “지금은 흩어지지 마라. 지금 이 상태로 가지마라.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가 약속한 성령을 기다리라. 몇 날이 못 되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오실 것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임하자 제자들의 믿음은 강력한 믿음, 두려움을 극복하는 믿음, 살아있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80세 노구의 몸을 이끌고 양떼를 치고 있던 모세에게 하나님은 나타나셨습니다. 불 붙은 떨기 나무가운데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았습니다. 이 불은 나무를 연소시켜 내는 불이 아니라, 스스로 타는 불이었습니다. 이는 식어진 믿음에 불을 붙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모세의 믿음은 불 붙은 믿음, 강력한 믿음, 역동적이고 살아있는 믿음이 됩니다.
식어진 가슴에 불을 붙여주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7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고통을 보고 또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 백성들이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또 듣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수고와 근심을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한 번만 보고 듣고 아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보셨고, 들으셨고,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적용)하나님이 다 아신다는 것만큼 위로가 되는 것은 없습니다. 모세가 얼마나 위로를 받았을까요? 모세는 하나님이 모르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곳 광야에서 도망자가 되어 장인의 양떼를 돌보고 있는 자신을 하나님은 잊었다고 생각했습니다. 40년 동안 아무런 약속도 징조도 없었습니다. 내 인생은 이대로 끝나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고통을 보았다. 너희 소리를 들었다. 너희 마음을 다 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악한 마귀가 주는 생각이 무엇입니까? 네가 되어지는 일을 봐라. 네 하나님은 너를 잊으셨다. 너를 구할 능력이 없다!고 낙심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들을 보고 또 보고 계십니다. 듣고 또 듣고 계십니다. 다 알고 계십니다. (예화)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받고 난 뒤에 가장 큰 기쁨은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는 확신만큼 흥분되고, 기쁘고, 신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또한 나를 아시는 하나님께 생명도 드릴 수 있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너무 힘들고 억울한 일을 많이 당했습니다. 다윗의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질문은 하나님은 아실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다윗이 시편 139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표준 새번역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1.주님, 주께서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으니, 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 2.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주께서는 다 아십니다. 멀리서도 내 생 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3.내가 길을 가거나 누워 있거나, 주께서는 다 살피고 계시니, 내 모 든 행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4.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께서는, 내가 그 혀로 무슨 말을 할지를 미리 다 알고 계십니다. 7.내가 주의 영을 피해서 어디로 가며, 주의 얼굴을 피해서 어디로 도 망 치겠습니까? 8.내가 하늘로 올라가더라도 주께서는 거기에 계시고, 스올에다 자리 를 펴더라도 주님은 거기에도 계십니다. 이 사실 하나만 분명히 믿는다면 우리는 절대로 낙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알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고통을 보시고 결단 하십니다. 8절입니다.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 -으로 데려가리라” 하나님은 ‘내가 내려가서’저들을 구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허나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이시기에 손과 발과 입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역사 속에 들어 오셔서 하나님을 신실히 섬기는 당신의 종들을 도구로 삼으셔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10절입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갖고 계시는 대책은 모세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도구삼아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대책은 항상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대안은 신실히 믿는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신 것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대책이신 것과 같이 우리들을 구원하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것은 우리들을 도구삼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 세상에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예1 -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였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보면서 믿음으로 순종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가치 있고, 결국에는 놀라운 복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2 - 요셉은 온 인류를 기근으로부터 구원하고, 용서와 사랑의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였습니다. 예3 - 바울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만민에게 전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였습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한 도구로 바울을 부르신 것입니다. 예4 - 지난 수요일 우리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다녀왔습니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의 주제 말씀이 “하나님이 조선을 이처럼 사랑하사”였습니다. 하나님이 조선을 이처럼 사랑하사 수 많은 선교사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 글을 대하는 순간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놀랍고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우리 조선이 뭐길래!!! 쇄국정책으로 우물한 개구리인 조선!!! 가난하고 무지하고 어두운 땅 조선에 하나님은 빛을 비추어 주시기 위해서 수 많은 선교사들을 불러 주셨습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 26세의 나이로 한국에 들어온 언더우드 선교사가 이 조선 땅을 바라보면서 드린 기도문은 당시 조선의 모습이 어떠했는가?를 짐작케 합니다. 이 기도문을 종종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 와 심으셨습니다. 그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 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의심부터 내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지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조선을 이처럼 사랑하사 수 많은 선교사들을 도구로 삼아 이 민족을 구원한 것입니다. 이들은 한국인들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병원을 세우고, 연세대, 이화여대, 배재대, 숭실대 등 학교를 세우고, 한글로 성경을 번역해서 평민들에게도 한글을 보급하며, 남존여비, 신분차별의 구습에 묶여 살아가는 이 땅에 주님 안에서는 우리 모두 하나요 서로 존귀한 자라는 정신의 해방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은 많은 선교사들을 대책으로 불러 쓰셨습니다. 이곳 양화진에 묻힌 외국인 선교사는 145명입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선교사들의 면면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보면서 여러 성도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➀정말 감동적인 것은 매일 매일 얼마나 두려웠을까? 하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어둠뿐입니다. 자신들을 섬기고 사랑하고, 구원하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지만, 적대적이고, 의심하고, 공격하였습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이 그렇게 하셨듯이 더 사랑하고, 더 희생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마음을 열 때까지... 그러면서도 매일 매일 수 많은 걱정거리들, 불안하게 만드는 환경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어려움들을 믿음으로 인내하였습니다. 오직 자신들이 이 한국민족을 섬기고, 저들을 구원하는 일에 하나님의 도구로 부름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길을 간 것입니다. ➁제가 정말 감동을 받은 것은 자신들은 사명을 받고 한국땅에 왔다고 하지만, 자녀들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사람이 내가 당하는 고통은 참을 수 있습니다. 내가 굶는 것은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자식들이 굶주리고 질병에 걸려 고통을 받는다면 어떻게 견딜 수 있겠습니까? 그들 가운데 홀 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윌리엄 홀은 캐나다 벽촌의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자수성가로 의대를 마치고 의사가 되었고, 뉴욕 빈민가에서 의료 봉사를 하면서 만난 의사 로제타와 약혼을 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한국에 들어와서 평양에서 의료 봉사를 하면서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1894년 이후 청일전쟁으로 많은 부상자들과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불철주야로 노력하던 윌리암 홀은 자신도 전염병에 걸려 한국에 온 지 3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이 때 그의 아내 로제타 홀은 둘째 아이 임신 7개월이었습니다. 29살로 남편을 잃은 로제타는 미국으로 돌아가서 딸 에디스를 낳은 후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평양에 병원을 세우고 헌신하던 중에 사랑하는 딸 에디스도 이질로 희생되는 말로 할 수 없는 슬픔을 겪습니다. 남편과 딸을 잃는 아픔 속에서도 그녀는 45년 동안이나 한국을 사랑하고 섬겼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피한 방울 섞이지 않은 한국 사람들, 보상이나 칭찬도 없는 섬김의 일, 고국에 있었더라면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땅에 와서 희생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도구삼아 한국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대책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한국인들이 감사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천개의 목숨이 있다해도 천개의 목숨을 모두 한국에 바치고 싶다는 그들을 통해서 조선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물어야 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대책이었다면, 우리들도 누군가를 위한 하나님의 대책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화)장애 아이를 낳고 난 뒤에 절망하여 탄식하던 엄마가 있었습니다. 헌데 그 엄마가 주님의 마음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은 온전하지 못한 이 아이를 누구에게 맡길까? 누구라면 이 아이를 자신의 생명처럼 살펴줄까? 생각하시다가 하나님은 나를 선택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 너라면 이 아이를 책임지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구나! 나를 믿어 주셨기에 나에게 이 아이를 맡겨 주신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장애를 갖고 평생을 살아 갈 수 밖에 없는 이 아이가 사랑받으며 존귀한 아이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나를 대책으로 삼아 주셨구나! 깨닫는 순간 더 이상 그 아이는 짐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사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부끄러운 아이가 아니라 사랑스런 아이가 되었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미래교회를 통해서 예배가 회복되고, 다음세대를 준비하고, 평신도 지도자들을 세우고, 주의 복음을 국내외에 전하는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은 대책으로 부르셨다는 생각을 해 보셨습니까? 나를 먼저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누군가를 섬기고 사랑하도록 나를 먼저 부르셨다는 믿음을 갖기 바랍니다. 이 혼탁하고 어지러운 시대에서, 우리 가정에서, 직장에서 하나님의 손과 발로 나를 쓰시려고 불러 주셨다는 것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힘들고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 있습니까? 그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 가정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라고 나를 먼저 불러주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각자의 처소로 돌아갑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입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십시오. 우리를 먼저 불러 주신 것은 하나님이 도구로 쓰시기 위함임을 믿고 하나님을 나타내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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